T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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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C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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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4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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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R&B 앨범상
제41회
(1999년)


제42회
(2000년)


제43회
(2001년)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로린 힐


FanMail
TLC


Voodoo
디안젤로



역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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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비디오상
11회
(1994년)


12회
(1995년)


13회
(1996년)

Cryin
에어로스미스

Waterfalls
TLC


Tonight, Tonight
스매싱 펌킨스


역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MA_Logo.png
올해의 아티스트
제23회
(1996년)


제26회
(1999년)

TLC

가스 브룩스




파일:TLCLOGO.jpg

[[티보즈|T-Boz>
{{{-2

티보즈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transparent; width: 30%"
[[레프트 아이|Left Eye
{{{-2

레프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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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Chilli
{{{-2

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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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아이 · 티보즈 · 칠리

TLC
티엘씨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결성일
1990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데뷔일
1991년 11월 22일
데뷔 음반

분류

{{{-4
디지털 싱글
Ooooooohhh... On The TLC Tip

장르
R&B, , 소울, 힙합, 펑크(Funk)
레이블
아리스타, 에픽, 852 뮤직
링크
파일:TLCLOGO.jp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특징
3. 멤버
4. 활동
4.1. 데뷔 전
4.2. 데뷔 후
4.2.1. 1991~1993: 성공적인 데뷔
4.2.2. 1994~1998 : 최전성기와 공백기
4.2.3. 1999~2001: 성공적인 복귀
4.2.4. 2002~2012 : 레프트 아이의 사망과 공백기
4.2.5. 2013~ : 전설로의 도약
5. 한국에 미친 영향
6. TLC의 팬이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던 인물들
7. 라이벌
8. 디스코그래피
8.1. 앨범
8.1.3. FanMail (1999)
8.1.4. 3D (2002)
8.1.5. TLC (2017)
8.2. 싱글
9. 기록
10. 여담



1. 개요[편집]



파일:미국티엘씨.jpg


폭포를 쫓아가지 말아요

그대가 원래 있던 곳, 강과 호수에 그대로 머물러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하겠지만

그댄 지금 너무 빠르게 떠내려가고 있어요

Waterfalls


1991년 11월 22일에 데뷔한 미국의 3인조 R&B 걸그룹이자 199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그룹이다.


2. 특징[편집]


전세계적으로 85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고, 2집 CrazySexyCool롤링스톤지 선정 500대 명반에 꼽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 모두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걸그룹 중 하나이다.

전성기 시절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세계적으로는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의 인지도가 TLC보다 우위였으나, 미국에서만큼은 TLC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무엇보다 틴 팝 혹은 버블검 팝 노선을 걸은 스파이스 걸스와 달리 TLC는 R&B를 위주로 한 음악 노선을 추구해 음악적인 인정을 받았다.[1]

1990년대에는 내는 앨범과 싱글마다 초대박을 쳤다. 1집의 싱글 <Baby-Baby-Baby>는 빌보드 핫 100 2위에다 1992년 빌보드 연말 차트 5위를 기록했으며, 1994년 2집 CrazySexyCool의 두 싱글 <Waterfalls>와 <Creep>은 각각 1995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 3위를 기록하며 1995년 미국 음악 시장을 재패했다. 1999년 3집 FanMail의 첫 싱글 <No Scrubs>까지 빌보드 핫 100 4주간 1위, 1999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를 기록했다.

또한 TLC는 앨범을 낼 때마다 사회비판적 메시지들을 담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집에서는 여성의 성적권리와 안전한 성관계(safe sex)[2], 2집에서는 마약과 HIV 문제[3], 3집에서는 외모지상주의[4]를 비판했다.


3. 멤버[편집]



파일:TLCLOGO.jpg



파일:Fanmail Left Eyel.jpg


Tionne T-Boz Watkins
Lisa Left Eye Lopes
Rozonda Chilli Thomas
1970년 4월 26일

메인보컬[5]




아이오와주 디모인 출생
1971년 5월 27일 ~ 2002년 4월 25일

메인래퍼[6]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생[7]
1971년 5월 27일

메인댄서[8]




조지아주 콜럼버스 출생[9]


4. 활동[편집]



4.1. 데뷔 전[편집]


1990년 크리스탈 존스라는 여성이 걸그룹을 기획하게 되고 이후 멤버 모집 광고를 내는데 , 여기에서 많은 지원자들중 티보즈[10]와 레프트 아이[11]가 먼저 선택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머지않아 음악활동을 접고 자신만의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으나 이 와중에 당시 인기 여가수 페블스와의 만남을 통해 유명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와 그의 동료 LA 리드가 이끌던 라페이스(LaFace)[12]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지금의 TLC를 만든 장본인인 프로듀서 달라스 오스틴[13]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여기서 오스틴의 소개로 칠리가 영입된 뒤 1991년 공식적으로 TLC를 결성하게 된다.

TLC라는 닉네임은 원래 원년 멤버인 T-Boz, Left Eye, Crystal 세 명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닉네임이었으나, 이후 크리스탈이 빠지고 로존다가 영입되면서 그녀의 닉네임을 'Chilli' 로 명명짓고 이름을 따게 되었다.

그 후 페블스의 혹독한 트레이닝 하에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뷔를 위해 부당계약까지 감수하며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이는 후에 두고두고 그녀들의 커리어를 발목잡는 일이 되고 만다. 또한 데뷔 직전에 달라스와 칠리의 관계를 눈치 챈 페블스가 그녀를 내쫓았다가[14] 멤버들의 설득으로 다시 합류하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칠리가 임신한 아이를 낙태하고 합류하는 등 꽤나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여담으로 칠리의 낙태 경험은 이후 그녀들의 컨셉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1집 당시 레프트 아이가 끼고 다니던 콘돔은 이 사건의 영향이었다고. 또한 이 후 2집에서도 Waterfalls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주장하는 가사를 쓰는 등 안전한 성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불렀다.


4.2. 데뷔 후[편집]



4.2.1. 1991~1993: 성공적인 데뷔[편집]


1991년 첫 싱글 <Ain't 2 Proud 2 Beg>으로 데뷔했다. 노래 제목 그대로 여성도 당당히 성적 권리를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 이 곡은 반향을 부르키며 빌보드 핫 100에서 2주 연속 6위를 기록했고 1992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36위에 오른다.



이듬해인 1992년 3월, 데뷔 음반《Ooooooohhh... On the TLC Tip》가 발매된다. 앨범은 미국 최고 프로듀서/작곡가였던 댈러스 오스틴과 베이비페이스가 만들어 주었다.[15] 장르적으론 당시 크게 유행하던 뉴 잭 스윙과 R&B, 힙합 등 90년대 흑인음악을 다양하게 담았다. 앨범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도 큰데, 전체적으로 여성의 성적주체성, 안전한 성관계(safe sex)를 권하는 메시지가 노래 가사나 뮤직비디오에 있다.

이후 연달아 발매된 싱글 <Baby-Baby-Baby>은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빌보드 2위, 연간차트 5위를 기록하며 앨범에서 가장 성공한 싱글이 되었고 , <What About Your Friends>, <Hat 2 da Back> 등의 싱글도 히트를 쳤다.



1집 앨범은 세계적으로 600만장, 미국에서는 4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다.

파일:dc8da163691b9c970df1c1a5097cd379.jpg

특히 이 시기 TLC가 입고 다녔던 Baggy하고 Vivid한 스타일링은 당시 큰 화제였다. 남자들이나 입고 다닐 법한 옷을 이제 막 20살 남짓인 소녀들이 입고다니며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활보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시절 여가수는 대부분 드레스나 아니면 몸이 딱 달라붙는 타이즈 의상이 주류였는데, TLC가 통이 큰 옷을 입고 다니면서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 TLC의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 시절 레프트 아이는 알이 빠진 안경에 콘돔을 끼워넣고, 당당하게 라이브를 하는 모습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멤버 칠리가 데뷔 직전 겪었던 낙태 경험과 당시 피임, 성병 예방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미국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싶어서 선택한 방식이라고.


4.2.2. 1994~1998 : 최전성기와 공백기[편집]


1집의 어마무시한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TLC는 곧바로 2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 때 TLC 하면 꾸준히 언급되곤 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Left Eye의 주택 방화 사건이 그것이다. 1994년 6월 9일, 당시 남자친구이자 약혼자였던 미식축구 선수 안드레 리슨과 언쟁 도중 감정이 격해진 레프트 아이가 홧김에 욕조에 남자친구의 신발들을 모아 불태운 것이 그만 집 전체를 태워먹는 사고로 번지고 만다. 결국 레프트 아이는 5년의 집행유예와 1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알코올 중독 재활센터에 입원하게 되었다.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덕분에 TLC는 스캔들 메이커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후에 2집 싱글인 Waterfalls의 랩파트에서 그녀는 이 사건에 대해 회고하며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기도.

1994년에 발매한 2집 앨범 《CrazySexyCool》은 그래미 최우수 R&B 앨범 부문을 수상했으며,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 선정되는 등 음악적으로 큰 호평을 받는다. 동시에 무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빌보드 200 차트에 머물렀으며, RIAA 12x 플래티넘 인증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14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안겨줬다.

앨범의 각 싱글들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첫 싱글 <Creep>이 빌보드 핫 100 1위, <Red Light Special>이 2위, <Waterfalls> 1위, <Diggin' on You>가 5위를 기록하며, 싱글 4개 모두 Top5에 진입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TLC를 상징하는 곡으로 꼽히는 싱글 <Waterfalls>는 빌보드 핫 100 1위, 1995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를 차지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마약과 문란한 성관계 등을 비판하는 가사와 뮤직비디오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말초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것을 '폭포'에 비유하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안전한 호수에 머무르라는) 가사 내용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음악적인 면에서 전작 1집이 뉴 잭 스윙과 힙합이 주류였다면, 이 앨범에서는 뉴 잭 스윙, R&B, 펑크를 전면에 내세웠다.[16] 컨셉 역시 Baggy한 의상을 강조하며 일명 Kiddie-Cutie Hiphop을 내세운 1집과 달리, 보다 여성스러운 의상을 입으며 성숙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동시에 <Waterfalls>를 비롯해,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는 앨범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걸그룹이고

1000만장이 넘는 앨범판매고에

5년동안 이 바닥에서 죽어라 일했는데

결국 파산할 대로 파산해버렸네요

(We Are Broken As Broke Can Be)

- 1996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Chilli의 수상소감 -


다만 2집의 메가히트와는 별개로 정작 멤버들의 상황은 불행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미 데뷔 때부터 제기되었던 불공정 계약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을 파산에 이르게 만들었고, 이는 이후 TLC 멤버들의 커리어를 크게 발목잡는 원인이 되고 만다. 결국 멤버들은 96년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폭로하고 공론화하기에 이른다.

계약에 따르면, 앨범이 하나 팔릴 때마다 전체의 7%에 해당하는 고작 56센트의 금액이 TLC 멤버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수천만장을 팔아도 멤버들이 쥐었던 돈은 약 560만 달러에 불과. 여기에 당시 레코드 사였던 LaFace 측에서 음악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체를 모두 멤버들에게 청구했으며,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변호사비, 매니저비, 세금까지 모두 멤버들이 떠맡아야 했다고 한다. 결국 활동을 하면 할수록 멤버들의 빚만 늘어나는 구조였으며, 잔고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된 매니저 페블스와의 소송 비용과 앞서 언급한 레프트 아이의 방화 사건으로 인한 소송 비용 등 재정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정적인 문제 외에도 사생활 역시 영 좋지 않게 풀리고 있었다. 당시 프로듀서 Dallas Austin과 연인관계였던 멤버 Chilli는 남자친구의 심각한 여성 편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T-Boz 역시 선천적으로 앓고 있었던 겸상 적혈구 증후군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고생하고 있었다. 이미 1집 때부터 활동 중간에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크게 고생하고 있었는데, 계속 감추고 있다가 1996년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였다.[17]

결국 부당계약 건과 소송 사건 등으로 2집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TLC는 약 5년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전 소속사와 매니저와의 계약 문제는 어느정도 협의점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공백을 타파할 겸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멤버들은 각각 영화, 버라이어티, 프로듀스 같은 일에도 손을 뻗으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레프트 아이는 아예 자신만의 독립 레이블인 'Left Eye Production' 을 설립하고 주체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여기서 레프트 아이는 'Blaque' 라는 신인 걸그룹을 프로듀싱하고 데뷔시켰는데, 빌보드 핫 100 탑 10에만 2개의 노래를 올리고[18] 데뷔앨범이 플래티넘 인증을 받는 등 큰 성공을 이뤄낸다. 또한 MTV에서 'The Cut' 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도 참여해 직접 후배 양성에 나서기도 하였다.[19]


4.2.3. 1999~2001: 성공적인 복귀[편집]


1999년 발매된 3집 《FanMail》은 5년의 공백기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앨범 차트 1위와 발매된 싱글들 역시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세기말 사이버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컨셉도 호평을 받았고,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앨범의 음악 구성도 크게 주목받았다.[20]

R&B 장르의 첫 싱글 <No Scrubs>는 빌보드 핫 100 1위, UK 차트 3위, 빌보드 연간차트 2위를 기록하며, 1999년 가장 성공한 싱글로 꼽힌다. 이 곡에서는 한심한 남자를 'Scrub'라고 칭하며, 그러한 남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곡은 <Waterfalls>와 함께 TLC를 상징하는 곡으로 꼽힌다.



두번째 싱글인 <Unpretty>는 얼터너티브 록의 곡으로,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고있다. 이 곡 역시 큰 호평을 받으며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수어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역시 호평을 받았다.



세번째 싱글 <Dear Lie>는 빌보드 싱글차트 51위를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앨범부터는 티보즈가 아닌 칠리를 메인 보컬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1집과 2집 때는 티보즈를 메인으로 세우고 칠리가 코러스나 고음 파트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눠졌다면, 3집부터는 칠리가 메인 / 티보즈가 코러스 이거나 둘이 메인 파트를 양분하는 식으로 구성이 바뀌었다. 음악스타일도 기존의 정통 R&B, 소울이 아닌 팝 성향이 짙어졌다.

이 시기에는 드디어 그룹 이름을 건 첫 번째 투어인 <Fanmail Tour>도 계획.[21] 아레나 규모 급 투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석 매진과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얻으며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이 시기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레프트아이와 나머지 멤버들 간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레프트 아이는 인터뷰에서 팀의 음악적 방향과 자신의 음악성향이 맞지 않다고도 말했고, TLC에게 먼저 제의가 들어온 휘트니 휴스턴의 Heartbreak Hotel, 브리트니 스피어스Baby One More Time의 데모를 거절한 것에도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3집 투어 초기에는 멤버 간 긴장감도 팽배했고, 멤버들은 레프트 아이가 리허설에 나오지 않는다며 응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4집 발매전 레프트 아이는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2000년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멜라니 C의 싱글 <Never Be The Same>의 피쳐링해 UK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22], 2001년 솔로 앨범 <Supernova>를 발매한다.



첫 싱글 <The Block Party>는 UK 차트 16위에 오르긴 했으나, 해외에서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자 음반사에서 미국 발매를 취소해버렸고, 앨범은 아쉬운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 시기 TLC 멤버들은 레프트 아이를 위로해주었고, 예전처럼 다시 친해지게 된다.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TLC 4집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4.2.4. 2002~2012 : 레프트 아이의 사망과 공백기[편집]





그러나 4집 발매 직전이었던 2002년, 멤버 레프트 아이(리사 로페스)가 온두라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활동에 큰 타격을 받고 공식 그룹 활동을 중단했다. 알리야가 200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또 다른 R&B계 인재를 갑작스레 잃은 대중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두 사람 다 젊은 나이였고, 전성기에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레프트 아이의 사망소식을 접한 멤버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앨범 작업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23]그러나, 안타깝게 떠난 레프트 아이를 위해서라도 앨범을 마무리하기로 했고, 동년 4집 《3D》가 발매되었다. 앨범은 제목처럼 입체적이며 다각적인 장르를 담았으며, R&B, 소울을 기본 장르로 했다. 싱글 <Girl Talk>, <Damaged>가 빌보드 Hot 100 Top50에 진입했으나, 전작들에 비해서는 아쉬운 성적이었다. 수록곡 <Turntable>은 레프트아이의 추모곡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첫 베스트앨범인 《Now & Forever: The Hits》를 발매했다. 2005년에는 리얼리티 쇼인 《R U the Girl》을 런칭했으며, 우승자는 TLC의 새 싱글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미디어는 TLC가 레프트 아이를 대체할 새 멤버를 구한다고 보도했지만 TLC는 레프트 아이의 자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며, 영구적인 멤버가 아닌 이벤트성 게스트 멤버를 찾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후에도 큰 활동 없이 베스트 앨범과 여러 공연에 간간히 출연했으며, 2011년에는 아메리칸 아이돌 피날레 무대에 올랐다.


4.2.5. 2013~ : 전설로의 도약[편집]


그러던 2013년, Epic Records와 계약하고 데뷔 20주년 기념
컴필레이션 앨범인 《TLC 20: 20th Anniversary Hits》을 발매한다. 앨범은 리마스터된 TLC의 히트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Waterfalls>의 경우는 아무로 나미에가 피쳐링을 맡았다.[24] 또한 니요가 프로듀싱한 신곡 <Meant to Be>도 수록되었다. 동년엔 J. Cole의 싱글인 <Crooked Smile>을 피쳐링 했는데, 싱글이 인기를 끌며 빌보드 Hot 100 27위까지 올라 간만에 차트인하게 되었고, 신세대들에게도 TLC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동년 VH1에서 공개한 TLC 전기 영화인 《CrazySexyCool: The TLC Story》가 공개되었다. 영화는 450만명이 시청하는 등, 흥행하였고 호평을 받았다. TLC는 2013년 빌보드 앨범차트에 《20》, 《CrazySexyCool》, 《Now and Forever: The Hits》등 신보를 비롯한 과거의 앨범 등 3개의 앨범을 진입시키며 다시금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13년 AMA에서 Waterfalls를 공연했다.[25] 이후 TLC는 2014년까지 Dancing With The Stars 출연, 호주 투어를 진행하는 등 이전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2015년 1월, TLC는 그들의 정규 5집이자 마지막 앨범 제작을 위한 킥스타터 모금을 알렸다. 당초 15만 달러를 목표로 했는데, 무려 48시간만에 목표치를 달성했으며, 뉴키즈 온더 블록, 케이티 페리, 저스틴 팀버레이크, 베트 미들러 등 유명인들도 거금을 쾌척한 것이 알려졌다. 결국 40만 달러가 모였다고 한다.

TLC는 2016년까지 투어, 일본 앨범 발매와 동시에 5집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2016년에 5집 앨범의 싱글들이 일본, 뉴질랜드 등지에서 점차 공개되기 시작했다.


2017년 4월, 5집의 첫 싱글인 <Way Back>이 공개되었다.

스눕독이 피쳐링을 했으며, 90년대를 연상케하는 G-funk 곡이다. 동년 6월에는 5집이자 마지막 앨범인 《TLC》를 공개했다. 앨범 신곡들과 멤버들이 현재 다시 부른 히트곡들이 수록되었다. 첫주에 12,000장을 판매하며 빌보드 200 38위를 차지했으며, 메타크리틱 63점을 받았다. 당연히 전성기가 한참 지났기에 큰 성과를 거둔것은 아니지만, 15년만의 정규앨범인데다 팬들을 위한 앨범인 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90년대의 사운드를 잘 담아내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앨범 싱글 <Haters>, <Joyride>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발매되었으며, 보니엠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수록곡 <Sunny> 역시 호평을 받았다.


5. 한국에 미친 영향[편집]


1990년대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어[26], 걸스힙합/뉴잭스윙 열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뉴스윙'에 대응되는 '뉴스윙'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27] 국내에서도 'Waterfalls'와 'No Scrubs'로 인기를 끌던 1990년대 중후반 당시 1세대 걸 그룹으로 분류되는 에코[28], 디바[29], S.E.S.[30], 베이비복스[31] 등이 TLC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K팝 1세대 걸그룹에 상당한 영향을 준 TLC지만, 의외라면 의외로 TLC만의 악동적인 컨셉은 2010년대 이른바 걸크러쉬한 컨셉과 힙합으로 큰 인기를 끈 2NE1, 포미닛부터 BLACKPINK까지 2,3세대 걸그룹의 컨셉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도 있다.[32] 그 외 래퍼와 보컬 담당 멤버가 동시에 구성된 형식의 걸그룹은 TLC가 원조이기 때문에 비슷한 구성의 후대 그룹들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33]

국내 기획사 단위에선 특히 YG 엔터테인먼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와이지 1세대 걸그룹이었던 스위티는 아예 대놓고 컨셉부터 뮤비까지 고대로 베껴(...) 당시 넷상에서도 너무 따라했다고 비난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크게 뜨진 못했고, 지금도 YG 첫 걸그룹은 2NE1으로 아는 대중들이 다수일 정도. 이때 뭔가 깨달았는지 이후 2NE1은 본격 YG표 걸크러시 컨셉을 내밀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색깔을 추구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래퍼 CL을 프론트우먼으로 내세우는 기믹을 비롯해 힙합스타일 등 TLC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였다. 이후 CL은 미국활동 중 T-Boz와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6. TLC의 팬이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던 인물들[편집]


  • 채리나 - 그룹 디바를 결성할 적에 한국의 TLC가 되고 싶어 일부러 3인조 여성 그룹으로 계획하였고, 음악 스타일 역시 강렬한 힙합 장르에 스타일도 Baggy한 느낌으로 코디했다고 밝혔다. 당시 소속사에서는 채리나와 비키 2인조 그룹으로 내보낼 계획도 있었으나, 채리나가 무조건 3인조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결국 3인조로 데뷔했다.

  • 양현석 - K팝계 4대 기획사의 수장이자 유명 프로듀서. 오래전부터 TLC의 광팬으로 유명했고, 이는 본인이 프로듀싱했던 그룹들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애초에 걸그룹을 프로듀싱한 계기가 TLC 같은 그룹을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밝혔고, 실제로 양현석이 처음 만들었던 걸그룹 스위티는 대놓고 TLC의 3집 컨셉을 따라해 다소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정반합한 2NE1BLACKPINK를 히트시키며 현재는 한국의 대표 음악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하였다. 2017년에는 CL과 T-boz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나에게 큰 영감을 줬던 두 여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라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 2NE1 - 상기되어있듯 프로듀서였던 양현석부터가 TLC 덕후였던 데다가, 래퍼이자 그룹의 메인 격인 CL을 프론트 우먼으로 내세우는 컨셉 등 TLC의 흔적이 상당히 묻어나 있다. 리더 CL 역시 "2NE1은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TLC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상기했듯 음악 스타일 자체는 좀 차이가 있다.

  • 아무로 나미에 -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 TLC를 동경했고, TLC의 프로듀서였던 달라스 오스틴의 프로듀싱을 받기도 했다. 'SOMETHING 'BOUT THE KISS' 를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함께 음악 작업을 했다. TLC와의 친분도 깊어, 2013년도에 TLC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에 일본판 한정으로 Waterfall 레프트 아이 파트에 피쳐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34] 또한 노래 Put'em Up은 원래 TLC에게 주려다가 아무로에게 간 노래로, 발매 직전에는 칠리의 피쳐링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무산된 바 있다.

  • SPEED - 1990년대 일본 걸그룹계를 대표했던 그룹으로, 멤버들이 TLC의 팬이라서 아예 데뷔 컨셉 자체를 바꿨을 정도였다. 그리고 프로듀서 이지치 히로마사는 SPEED의 데뷔 때 TLC의 스트리트 패션 컨셉을 참고해 뮤비에도 반영했다. 우주전투복(...) 비슷한 패션은 후속곡부터 나타난 것.


7. 라이벌[편집]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라이벌 구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선 주로 TLC 쪽의 영향이 더 크고, 음악적으로도 더 두드러졌다는 평이 우세하다.

전성기간이 나뉘는 편이기도 한데, TLC가 90년대 초반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어 90년대 중반 최고점을 찍은 후에 90년대 말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나와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룹의 핵심 멤버 레프트 아이가 사망하면서 더 이상 그룹을 지속하기 어려워졌기 때문. TLC가 92년-2002년까지 활동했고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90년 데뷔라고는 하지만 주 활동은) 97년-2004년 활동했다. TLC가 빌보드 연말 차트 5위 안에 드는 초대형 히트곡을 배출한 전성기가 TLC는 1992-1999년이고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1999-2001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두 그룹이 전성기로 맞부딪힌 것은 고작 1~2년 남짓. 사실상 1999년 마주치긴 했지만 역시 TLC가 "No Scrubs"로 연말 차트 2위, "Unpretty"가 연말 차트 20위를 기록했는데 1999년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싱글 중 연말 차트에서 제일 높은 순위에 오른 노래는 "Bills, Bills, Bills"로 21위였다. 애초에 활동 기간이 겹쳤던 1999년에도 TLC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했던 것.

일단 앨범판매량은 약 3,400만 장으로, 역사상 걸그룹 3위이다.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3800만 장으로 역대 2위. 공교롭게도 두 그룹이 모두 정규앨범을 4장 발매했는데, TLC의 앨범이 빌보드 200 14위-3위-1위-6위로 67위-5위-1위-2위인 데스티니스 차일드보다 우위이다.[35] 싱글의 경우, TLC가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 4개[36]를 포함, 총 9곡의 빌보드 핫 100에서 10위 안에 든 싱글을 가지고 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경우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 4개[37]를 비롯, 빌보드 핫 100에서 10위 안에 든 싱글 10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 비욘세, 니콜 셰르징거에 다른 멤버들이 묻히는 감이 있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푸시캣돌스 등과는 달리 멤버 각각이 뚜렷한 개성과 존재감으로 대중들을 매료시킨 점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38]

라이벌 구도와 별개로, 두 그룹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인터뷰에서도 서슴없이 리스펙을 해줬으며,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자주 인터뷰에서 'TLC는 우리에게 매우 큰 영항을 줬던 그룹' 이라 언급했다. 특히 비욘세는 레프트 아이를 두고, "재능이 굉장히 넘쳤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가수였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라며 극찬하기도. TLC 멤버들 역시 가장 인상깊은 후배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데스티니스 차일드를 꼽기도 하였다.

사실 미국 밖에서 TLC의 라이벌 취급을 받았던 그룹은 데스티니스 차일드 보다는 오히려 스파이스 걸스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활동시기도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10대 소녀그룹, 음악성향의 차이라던가 비틀즈롤링 스톤즈 시절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온 미국 vs 영국 그룹 대결 구도 등 오히려 진정한 라이벌은 이 쪽이 더 가깝다. 실제로 90년대 대표 걸그룹은 누구냐는 질문에 두 그룹은 항상 묶여서 거론된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마찬가지로 TLC-스파이스 걸스 멤버들의 사이도 좋았다. 1999년 스파이스 걸스 멤버 멜라니 C와 레프트 아이가 콜라보 한 곡 Never Be The Same이 UK 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었고, 각 그룹 멤버들이 서로의 노래를 칭찬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활동시기와 장르가 겹친 En Vogue가 라이벌이었다. 스파이스 걸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는 TLC의 "CrazySexyCool"의 1995년 대성공 이후 1년이 지난 뒤였지만, En Vogue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고 1992년 활동 기간이 겹쳤을 때 인기 차이가 얼마 안 났다.[39] 그리고 장르만 봐도 En Vogue와 TLC는 같은 미국 출신의 컨템퍼러리 R&B 그룹이지만, 스파이스 걸스는 R&B와의 접점을 찾기 힘든 영국 출신의 틴 팝 그룹이었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0위 권 안에 든 곡이 단 한 곡[40]뿐이었지만, TLC는 1992년 "Baby-Baby-Baby"(5위), 1995년 "Waterfalls"(2위), "Creep"(3위), 1999년 "No Scrubs"(2위)로 4개였으며 모두 다 연말 차트 5위 안에 들었고, 라이벌인 En Vogue 역시 1990년 "Hold On" (8위), 1992년 "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 (7위), 1997년 "Don't Let Go (Love)" (7위)로 3개였다.

또한, 또 다른 미국 힙합 걸그룹인 솔트 앤 페파는 86~93년 경이 전성기로 TLC의 선배격의 걸그룹이다. 93년에 발표한 ShoopWhatta Man이 대히트했고, TLC의 1집 활동과 기간이 겹치긴 했다. 여성힙합의 시초로 TLC의 1집의 힙합, 악동, Safe Sex 컨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다만, 이들은 멤버 2명이 래퍼, 1명이 DJ로 이루어진 걸그룹으로 컨템퍼러리 R&B에 집중한 TLC나 En Vogue와 다르게 정통 힙합에 집중했다.


8. 디스코그래피[편집]



8.1. 앨범[편집]



8.1.1. Ooooooohhh... On the TLC Tip (1992)[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oooooohhh..._On_the_TLC_Tip_%28album_cover%29.png
Ooooooohhh... On the TLC Tip (1992)
빌보드 200 14위
월드 판매량 : 6,000,000장
메타크리틱 : 항목 없음
미국
2,500,000(4x Platinum)



8.1.2. CrazySexyCool (1994)[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_CrazySexyCool_album_cover.png
CrazySexyCool (1994)
빌보드 200 3위
월드 판매량 : 15,000,000장
메타크리틱 : 항목 없음
미국
8,970,000(12x Platinum)

1994년 발매. 이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범이다.

별도 문서 참고.


8.1.3. FanMail (1999)[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_FanMail.png
Fanmail (1999)
빌보드 200 1위
월드 판매량 : 10,000,000장
메타크리틱 : 항목 없음
미국
5,677,000(6x Platinum)

1999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 그룹 퍼포먼스 상 수상

1999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앨범 상 수상




8.1.4. 3D (2002)[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3D_Cover.png
3D (2002)
빌보드 200 6위
월드 판매량 : - 장
메타크리틱 : 71점
미국
680,000(Platinum)

TLC의 마지막 정규앨범이자, 레프트 아이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다. 이 앨범을 끝으로 TLC는 잠정 해체를 선언했으며, 이후에는 종종 베스트 앨범을 내거나 일시적인 차원에서의 재결합 외에 여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8.1.5. TLC (2017)[편집]



파일:TLC_-_TLC_album_cover.png
TLC (2017)
빌보드 200 38위
월드 판매량 : - 장
메타크리틱 : 63점
미국
15,000+장




8.2. 싱글[편집]


TLC 파일:빌보드 로고.svg Hot 100 기록
순위
연도
곡명
비고
#14주
1994
Creep

#17주
1995
Waterfalls

#14주
1999
No Scrubs

#13주
Unpretty

#2
1992
Baby-Baby-Baby

1995
Red Light Special

#5
1995
Diggin' on You

#6
1991
Ain't 2 Proud 2 Beg
[41]
#7
1992
What About Your Friends

#27
2013
Crooked Smile
[42]
#28
2002
Girl Talk

#30
1992
Hat 2 da Back

#42
1993
Get It Up
[43]
#45
1995
Freedom (Theme from Panther)
[44]
#51
2000
Dear Lie

#53
2003
Damaged

#58
1998
Silly Ho

[45]
2000
What It Ain't (Ghetto Enuff)
[46]
[47]
2002
Hands Up


9. 기록[편집]


  • 전 세계 65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
  •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걸그룹(RIAA 기준)
  • RIAA 다이아몬드(Diamond) 인증을 받은 최초의 걸그룹 -《CrazySexyCool
  • 역사상 RIAA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은 단 2팀의 걸그룹[48]
  • RIAJ(일본레코드협회) 밀리언(Million) 인증을 받은 최초의 R&B 그룹
  •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걸그룹 3위[49][50]



10. 여담[편집]


  • 레프트 아이는 생전 TLC의 앨범 작곡 작사에도 참여하며 키와 건반을 다룰줄 알았으며, 특히 자신의 랩 파트는 꼭 직접 쓰는 등 음악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 TLC의 특이한 점은 여타 그룹처럼 파트를 나누지 않고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파트라면 한 곡 전체를 거의 혼자 부를 정도로 각자의 장점을 잘 살려서 곡을 디렉팅 한다는 것이다.[51] 물론 도입부와 후렴 부분 전까진 티보즈가 책임지는 느낌이고, 후렴은 칠리가 부르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앨범을 들어보면 누구 파트가 딱히 많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장점을 곡에 잘 녹여내고 있다.

  • 흑인 그룹치고는 특이하게도 고음을 강조하지 않았던 그룹으로 유명하다. 멤버 구성만 봐도 메인 보컬인 티보즈가 고음보다는 저음을 강조하는 편이었고, 가장 음역대가 높았던 칠리 역시 주로 메조 소프라노 음역대를 담당하는 등 여타 그룹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눈에 띄었다. 거기다 보컬 멤버들 사이에서 랩을 하는 래퍼 멤버 구성은 당시로서는 꽤 독특한 조합. 이는 먼 훗날 바다건너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 케이팝 그룹의 원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 2013년 TLC의 일대기를 다룬 VH1 채널의 TV영화 가 방영되었다. TLC의 데뷔 전 부터 해체까지 일대기를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영화에서 여러 TLC의 명곡들이 사운드트랙으로 등장한다. 대역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멤버들과 외모도 닮았고, 굉장히 재연을 잘한 편이다.[52] TLC 멤버들조차 훌륭한 고증이라며 극찬할 정도. 잘 몰랐던 사실들이 다뤄지는등 TLC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는것도 괜찮을 듯 하다. 특히 니요가 만든 엔딩곡인 'Meant To Be' 의 가사가 굉장히 감동적이라 호평을 받았다.

  • 리아나와 사소한 디스전이 있었다. 2014년 리아나가 유명 패션쇼인 CFDA에서 전신 시스루 의상을 입고 등장해 주목을 받자, 멤버 T-Boz가 한 방송에서 리아나가 관심을 끌기 위해 벗고 있다고 비판한 것. 덤으로 TLC는 음반을 많이 판 그룹인데 항상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리아나는 TLC 멤버들의 상의탈의 사진을 트위터 배경으로 설정한 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메롱’을 외치는 듯한 장난기 넘치는 표정의 사진 한 장을 게시하며 비꼬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T-Boz는 이를 비난하며 그런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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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컨템퍼러리 R&B가 미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장르가 된 데에는 TLC의 영향도 크다.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휘트니 휴스턴, 보이즈 투 멘, TLC, Color Me Badd, En Vogue, 토니 브랙스턴, 브랜디, 모니카, 어셔 등이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를 이끌었다.[2] Ain't 2 Proud 2 Beg, Baby-Baby-Baby, Hat 2 da Back[3] Waterfalls[4] Unpretty[5] 메인보컬 치고는 특이하게도 고음이 아닌 저음을 무기로 내세웠고, 이 점이 TLC를 여타 그룹들과 다른 팀으로 만들어주었다. 데뷔 전 애틀란타에서 남자들과 댄스배틀을 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춤실력으로 정평이 나있었고, 프로듀서였던로부터 펑크에 특화된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유니크한 보컬을 소유했다.[6] TLC의 래퍼이자 음악성의 중심.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와 음악적 역량으로 팀 내외에서 인정받았으며, 늘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작곡/작사 능력도 뛰어나며, blaque라는 신인 걸그룹을 발굴해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기도 했다.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였으며 TLC의 중심 멤버였기에, 솔로 활동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는데, TLC 활동으로도 못해 본 UK 차트 1위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정작 미국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못냈다. 괴팍한 성격과 각종 기행으로도 유명했는데, TLC가 악동 이미지를 얻었던 이유 중에 상당수는 이 분의 공이 컸다(...). 어린 시절 심각한 가정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으며, 이미 데뷔 전부터 술을 늘 달고 살았을 정도로 심각한 알콜 중독이었다. 그 덕에 온갖 사건사고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일도 다반사였다.[7] 성에서 볼 수 있듯,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혼혈이다.[8] TLC의 고음과 코러스 담당이며 특이하게도 보컬이 아닌 춤으로 캐스팅된 케이스다. 당시 고등학생이었음에도 인기 가수 Damian Dame의 댄서로 활동할 만큼 뛰어난 춤실력을 지녔던 인물. 여기에 의외로 뛰어난 보컬 실력과 음역대가 있음을 안 페블스가 직접 영입한 케이스이다. 최근 50대의 나이임에도 외모와 몸매가 전성기 시절과 흡사해 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2019년에는 심한 성대결절 판정을 받았는데, 노래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2019년 예정되었던 투어도 취소되었으나, 2022년 글래스톤베리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9] 외모가 아시아인과 흡사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뱅골계 인도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을 가진 다인종 혼혈이다.[10] 당시 애틀랜타의 헤어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을 통해 멤버 모집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크리스탈이 롤러장에서 남자 댄서들과 댄스 배틀을 벌이던 티보즈를 눈여겨 보고 직접 걸그룹을 하자고 제의하였다고 한다.[11] 길거리에서 랩을 하며 음악을 선보이던 레프트 아이를 평소에 친분이 있던 티보즈가 크리스탈에게 소개해주면서 인연이 닿게 되었다.[12]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LaFace= LA Reid + Babyface이다. [13] TLC의 명곡들은 대부분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 90년대 초에는 멤버 칠리와 교제하기도 했다.[14] 웃긴 건 정작 페블스 본인도 자신의 프로듀서였던 LA 리드와 결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후술할 부당계약 사건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15] 물론 베이비페이스의 프로듀서 동료 LA 리드도 같이하였다.[16] 레프트 아이의 랩 파트도 많이 줄었다.[17] 여담으로 이 이력으로 인해, 그녀는 현재 겸상 적혈구 증후군 협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18] 808, Bring It All to Me[19] 이 프로그램에는 의외로 지금까지도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니요, 아나스타샤 등등[20] 원래 이 컨셉은 레프트 아이가 2집 컨셉으로 적극 밀고 있었는데 앨범의 장르가 R&B, 소울로 잡히면서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3집에서 시도된 것. TLC 전기 영화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21] 원래 월드와이드 규모로 유럽과 일본을 아우르는 투어를 계획하였으나, 해당 지역들은 취소되었다.다만 일본은 프로모션 목적으로 방문하기는 했다. [22] 1990년대 최고 인기 걸그룹 멤버들이 합작한만큼 상당히 의미있는 곡이다.[23] TLC 멤버들에 의하면, 녹음실에서 곡 작업을 하다 레프트아이의 생전 남겨진 녹음본을 듣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24] 아무로는 유명한 TLC의 광팬인데, 아무로가 들어간 대신 레프트 아이의 파트가 빠져서 유족들은 유감을 표했다. 다만 유족들이 이전부터 티보즈와 칠리가 레프트 아이의 미공개 음원들을 이용해 신곡을 발매하려는 걸 여러 차례 반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설도 있다.[25] 레프트아이의 파트는 전기 드라마에서 레프트아이역을 맡았던 래퍼 Lil' mama가 대신했다.[26] 후술되어있듯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어 당시 J팝에 영향을 끼쳤다.[27] New Jack Swing에서 남자 이름인 Jack을 여자 이름인 Jill로 바꾼 것이다. 이는 한국의 '철수와 영희'에 대응되는 표현인 'Jack and Jill'에서 유래됐다.[28] 2집 수록곡 ‘행복한 나를’로 히트를 친 바 있는 3인조 걸그룹. 2집과 달리 1집은 TLC를 표방한 느낌이 짙다.[29] 데뷔 당시부터 한국의 TLC를 대놓고 표방하고 등장했다. 팀의 리더였던 채리나 자체도 한국의 TLC를 만들고자 해서 디바를 제작했다고 하고 멤버 수도 3명으로 같았다. 1집은 음악적인 부분이나 의상 스타일링이나 컨셉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은 그룹이다. 멤버중에 지니, 비키의 영어랩이 TLC 음악과 매우 흡사했다. 1세대 걸그룹중에 가장 힙합적이고 전문적인 랩을 시도했던 그룹이다.[30] 이름 앞글자에서 따온 팀명에서부터 TLC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데뷔곡 'I'm Your Girl'도 TLC가 부흥시킨 뉴질스윙의 궤를 따르고 있다. 다만 S.E.S.의 경우 걸스힙합은 제대로 시도하지 않았고, '드림컴트루'처럼 유로팝의 영향도 많이 받긴 했다.[31] 베이비복스는 데뷔 초창기부터 스파이스 걸스를 모티브로 잡은 팀이었지만, 컨셉으로 봤을 땐 1집의 페미니즘 컨셉과 힙합음악은 TLC 1집의 컨셉과도 유사한 점이 있었다. 이후 섹시 컨셉으로 회귀한 3집에서도 TLC의 영향을 받았다. 앨범 발매 당시에도 TLC 언급을 종종 했다. 1세대 아이돌 걸그룹 중 드물게 전담 랩퍼가 있는 팀이기도 한데, 당시 메인 스트림 걸그룹 중에서도 랩퍼가 있는 팀은 TLC가 으뜸이었다.[32] 다만 음악 스타일은 자세히 파고보면 차이가 좀 있다. 한국에서 TLC의 힙합 쎈 언니 악동 컨셉을 직접적으로 계승한건 디바라고 볼 수 있고, 아이돌 걸그룹들은 아무래도 그것보단 순하고 세련된 맛에 좀 더 군무를 강조하는 등 차이가 있다. 알앤비스런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33] 사실 힙합 컨셉 걸그룹으로 따지자면 훨씬 먼저 데뷔한 솔트앤페파(Salt-N-Pepa)가 원조지만, 솔트앤페파는 2명의 멤버가 래퍼, 1명이 디제잉을 담당하는 등 현대적인 걸그룹과는 다른 컨셉이었다. 현대적인 걸그룹, 즉 보컬과 래퍼 담당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은 TLC가 원조다.[34] 레프트 아이 목소리가 빠진터라, 유족이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35] 다만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컴필레이션(소위 베스트앨범)으로 빌보드 200 1위를 가지고 있다. TLC의 경우 20위.[36] Creep (1994), Waterfalls (1995), No Scrubs (1999), Unpretty (1999)[37] Bills, Bills, Bills (1999), Say My Name (2000), Independent Women Part I (2000), Bootylicious (2001)[38] 사실상 미국 걸그룹/보이 밴드의 전통이 멤버 중 한 사람만 몰아주고, 나중에 그 사람을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는 구조인데 왜냐하면 그 레코드사가 얻는 무지막지한 수익 때문이다. 다이애나 로스슈프림스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최고의 여가수로 군림했으며, NSYNC 이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10년이 넘게 최전성기를 누렸던 것을 생각해 보자.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비욘세의 성공 역시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유지되는 이 전통을 이미 깨고 멤버 셋 모두가 공평한 인기를 얻었던 TLC는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39] TLC의 Baby-Baby-Baby1992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5위, En Vogue의 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이 1992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7위[40] Wannabe1997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0위 기록. 이 노래의 인기는 미국에서도 대단했다.[41] 데뷔 싱글[42] J.Cole의 곡을 피쳐링[43] 영화 Poetic Justice의 사운드트랙[44] 영화 Panther 사운드트랙[45] 버블링 언더 #3[46] Goodie Mob의 곡에 피쳐링[47] 버블링 언더 #7[48] 다른 한팀은 딕시 칙스[49] 1위는 스파이스 걸스(1.2억장), 2위는 The Andrew Sisters(7500만장)[50] TLC의 판매량이 8500만장이라는 추정치도 있다. 이 경우 2위다. 내수시장 의존 경향이 강한 흑인음악을 하는 그룹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51] Creep, No Scrubs[52] 레프트아이 역의 경우 래퍼 Lil Mama가 맡았다. 평소에 레프트아이를 매우 존경했으며, TLC와 AMA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