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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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RD의 리더인 사카이 이즈미의 모습
예명
사카이 이즈미
Izumi Sakai | 坂井泉水
본명
카마치 사치코
Sachiko Kamachi | 蒲池幸子
법명
여창원징향행휘대자(麗唱院澄響幸輝大姉)[1]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생
1967년 2월 6일
카나가와현 히라츠카시[2]
사망
2007년 5월 27일 (향년 40세)
도쿄도 신주쿠구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
신체
165cm[3], A형
데뷔
1991년 2월 10일 싱글 1집
Good-bye My Loneliness

(데뷔일로부터 12110일, 33주년)
활동 기간
1991년 ~ 현재[4]
장르
소프트 록, J-POP
소속사
SENSUI[5]
레이블
학력
쇼인여자단기대학 (졸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모바일 사이트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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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멤버
마치다 후미토 (町田文人)[6] - 기타리스트
호시 히로야스 (星弘泰) - 베이시스트
미치쿠라 고스케 (道倉康介) - 드러머
이케자와 기미타카 (池澤公隆) - 키보디스트

1. 개요
2. 생애
2.1. 데뷔 전
2.2. 1991년 ~ 1992년
2.3. 1993년 ~ 1997년
2.4. 1997년 ~ 1999년
2.5. 2000년 ~ 2001년
2.6. 2002년 ~ 2007년
2.7. 사망
2.8. 사망 이후
2.9. 2007년 ~ 현재
3. 음반
3.1. 싱글
3.2. 앨범
3.3. 편집 앨범
4. DVD
5. 라이브
6. 서적
7. 대표곡
8. 기록
8.1. 수상 내역
9. 논란
9.1. 표절 의혹
10. 평가
10.1. 목소리와 가사
10.2. 미모
10.3. 녹음
11. 여담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삿짱은정말최고야.jpg

늠름하게 피는 카사블랑카 꽃 같은 진정한 힘과 고결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팬지와 민들레처럼 가련하고 무방비 상태인. 가사나 음악 제작에는 진지하고 고상한, 세포 수준에서부터 눈부신 아티스트.

오구로 마키,[7]

ZARD 데뷔 25주년을 기념하여 사카이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일본밴드이다. 1990년대~2000년대 J-POP을 대표했다. ZARD는 원래 5인조 밴드로 시작하였지만 데뷔 2년만에 사카이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탈퇴해 1인 밴드가 되어 사카이 이즈미 본인을 지칭하게 되었다.[8]

5인조 밴드로 활동했을 때에는 기타를 맡은 마치다 후미토(町田文人), 베이스를 맡은 호시 히로야스(星弘泰), 드럼을 맡은 미치쿠라 고스케(道倉康介), 키보드를 맡은 이케자와 기미타카(池澤公隆)와 보컬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로 구성되어 있었다.

ZARD는 수많은 곡을 발표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곡인 '負けないで(지지 말아요)'는 오리콘차트 밀리언셀러로 등극하며 코시엔 입장곡과 한신 타이거즈의 응원곡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소학교(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와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이 곡은 10년 뒤 '지지마'라는 제목으로 한국 드라마 반올림의 주제가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데뷔 이후 왕성한 음반 발매 활동을 했으나, 생전 방송 출연분은 단 7회뿐이며 그것도 1994년 이후에는 없다. 그중 뮤직 스테이션이 5회. 라이브 공연도 전혀 하지 않았다. ZARD 최초의 라이브 공연은 1999년, 베스트 앨범에 포함된 응모권을 가진 사람들을 추첨을 통해 크루즈선에 초대해서 하였다, 이후 2004년엔 아리나급 라이브 투어를 개최하여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7년에 새로운 앨범과 3년 만의 새 라이브 투어를 열 예정이었으나 2006년 자궁경부암이 발견되어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2007년 4월 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 발견되어 다시 입원하였다. 그 뒤 2007년 5월 26일 병원의 비상 슬로프에서 실족해 후두부에 심한 충격을 받은 채 머리에 피를 흘리는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되었고 병원의 집중 치료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다음날 27일 뇌좌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병원 측에 따르면 그녀는 매일 아침 산책하는 게 일과였는데 사고가 났던 그 날은 비가 많이 왔었던 터라 산책 도중 빗물에 미끄러져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이 잘 지나가지 않는 곳이어서 늦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타계 이후에는 그녀를 기리는 많은 베스트 앨범들이 나왔고, 필름 콘서트가 개최되었으며, 라이브 공연도 정기적으로 할 정도로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트리뷰트 밴드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생애[편집]



2.1. 데뷔 전[편집]


파일:중학축제_1609.jpg
중학교 문화제 때의 모습이다.[9]

학력은 하다노시립 니시 소학교, 니시 중학교, 카나가와현립 이시다 고등학교, 쇼인 여자 단기 대학(松蔭女子短期大学)[10]을 나왔다. 대학교 전공은 영어였다고 한다.[11]

카나가와현 내의 병원에서 1967년 2월 6일에 태어났다. 의사가 없는 점심 시간 동안에 모친이 홀로 낳았지만 다행히 주변 가족들의 도움으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한 상태였다고.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관찰했고, "올챙이는 왜 다리가 나?" "물은 왜 흘러가는 거야?" 등의 왜? 어째서? 라는 질문을 정말 시도때도 없이 했다고 한다.[12] 종종 TV를 보다가 본인도 TV에 나오고 싶었는지 텔레비전 뒷편에 비집고 들어가 "나와?" 라며 몇 번이나 물어보아 가족들을 지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텔레비전과 씨름하다 옆에서 잠드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어머님께서 오르간 반주에 맞춰 불러 주시는 동요를 듣고, 함께 노래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피아노를 오랫동안 배우기도 했다. 친구들과 일본 전래 동요를 자주 불렀고,[13] 여동생과 함께 가수의 흉내를 내 가족들을 기쁨으로 웃음짓게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성격이 마이페이스인지라 다른 일에는 느긋느긋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열정을 놓지 않았던 성격이었다고 한다. 일단 한 가지 일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타입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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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시절 운동회 육상 계주 대표로 뽑힐 정도로 달리기에 재능이 있었고, 이후 중학교에 입학하며 육상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학교에서 표창장도 받았다.[14]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육상을 그만두고 테니스부에 입부했는데, 이때도 아주 활발하게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한다. 또한 본인 스스로 우체국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활면에서도 활발한 면모를 보였다.[15]

당시 시집도 몇 편 냈었고 교내 미스 대회에서 우승도 했으며, 그녀를 보기 위해 같은 학교는 물론이며 타 학교 남학생들도 북적였다고. 그야말로 외모와 실력, 그리고 인기를 모두 가졌었다. 그러나 본인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 바빴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쇼인 여자 단기대학[16] 에 입학, 영어 전공으로 학사를 마쳤다.[17] 대학 졸업 후 2년여간 부동산 회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타계 이후 그녀와 같은 직장 동료의 후일담으로는 "활발했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고 한 바 있다.

직장 생활 도중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콘테스트에 응모하였고, '1989 토에이(東映) 카라오케 퀸' 에 당선 후[18] 연예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19]

그 후 일본에어시스템(JAS) 캠페인 걸이 되었으며 포스터에도 몇 번 등장하며 1990년에는 닛신(日淸) 컵누들 레이싱팀 레이스 퀸으로 활동하였고, 모델 시절에는 주간지, 만화지 등의 그라비아 활동, 6종류의 전화카드에 모델로 나왔다. 또, 사진집 (프리미엄이 붙어 현재 약 10~15만 엔)을 내기도 했고 비디오 4편에 출연했다. (이 당시의 비디오가 현재 유튜브 등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비디오이다.)

생전에 이 활동시기의 사진들이 퍼져 파장이 상당하였을 때 사카이 본인의 과거와 연관지은 악의적인 보도들과 허위 루머가 많았었기에, 데뷔 후 인터뷰 내용중에서 본인이 레이싱퀸 등 모델을 했던 과거를 후회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20] 실제로 본인의 과거와 연관시켜 사실과 다른 허위 내용을 쓴 기사를 본 사카이가 그것을 보고 울었다는 스태프의 이야기가 있으니 내색은 안했지만 상처를 크게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온갖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와 잡지 그리고 루머가 판치던 당시 시대에 기자들은 밤낮으로 사카이를 쫒아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실제로 수수한 삶을 살았던 사카이에게서 제대로 건질 수 있던 루머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사카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기자들이 밤을 새서 몇달을 사카이를 따라다녔지만 부모님과 같이 살며 고작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는 것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던 것. 워낙 신비주의 컨셉이라서 사카이를 취재하러 다니던 기자들은 소속사의 문전박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사카이와 다이코의 연애설 등 허위 소문들을 만들어 잡지의 판매량을 높이려고 했지만 실제 사진이나 증거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사카이는 레이스 퀸이나 그라비아 모델 활동을 하며 사진첩을 낸 적이 있으나 성인 AV나 이상한 직업을 한 사실이 없다. 이러한 노출이 있는 사진첩은 당시 일본 모델로서는 일반적인 것이었으며 인터넷이 없어서 잡지 모델 사진첩 등이 크게 유행하던 시절로 모델로서 노출이 없다면 판매가 전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사카이가 가수를 하기 전 레이스 퀸, 그라비아 활동에서 노출이 있는 모델 사진첩이 소수 존재하는 것 때문에 현재도 마치 사카이가 가수 전에 이상한 일을 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직업을 그만두고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일본 연예계 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모델 등으로 수익을 벌어야했기 때문에 사카이에게도 레이스퀸, 그라비아 등 모델 잡지를 한 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된 관계자의 증언.

「사카이씨 자신은 (자신이 지금까지 온 레이스 퀸이나 가라오케 퀸의 활동)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정말로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처럼 스튜디오에 왔는데, 사카이씨가 울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신문을 들고 있었는데 전혀 말도 안되는 악의적인 기사가 실려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내가 정말로 했던 일이라면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는데, 이런 말까지 하는 건 너무해...’ 라고 했어요. 아마 울고 있는 모습을 저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다 곧바로 화장실에 가버렸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가 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저희들은 어떻게든 해서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중 앞에 나와서 활동하지 않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스타일을 관철해나가면서, 제작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저희들도 참거나, 울거나 한 적도 많았습니다.」

― 코바야시 사유리, A&R


가끔 일본쪽 포럼에 ZARD의 희귀 동영상이라는 AV영상 표지가 올라오는데 이는 1990년대에 데뷔한 무명 AV배우이다. 사카이가 타계한지 오래된 이 시점에서도 한몫 잡아보려는 괘씸한 사람들의 소행.실제 사카이가 가수 활동을 할때는 AV 출연설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나 타계한 이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사카이가 AV에 출연한 일은 전혀 없다.

또한 당시 일본 연예계에서는 데뷔 전 연예인으로서의 자질과 재능을 본다는 명목하에 그라비아 아이돌이나 레이싱 퀸으로 먼저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 전에 그라비아 모델로서 노출이 있는 잡지에 겨우 몇번 등장한 것으로 마치 무언가 잘못된 여성인듯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당시 시절에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현재는 이러한 관행이 어느정도 사라졌지만 아직도 연예계 진출 전에 그라비아 모델 등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카마치 사치코 시절 레이스 퀸 활동 당시 친분이 있었던 동료 중 한 명으로 탤런트 오카모토 나츠키가 있다. 사카이의 조용하고 수수한 성격이 연예계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연기자가 아닌 가수의 길을 걷겠다는 사카이의 결의에 전적으로 수긍했었다고.

모델 활동 당시에는 신인이었고 인지도도 전혀 없었기에 주로 드라마 엑스트라나, 버라이어티 엑스트라에 주로 나오게 되는 수준이었지만[21] 점점 경험을 쌓아가면서 가수를 하기 위해 오디션에도 꾸준히 참가했었다.

1990년 8월, B.B 퀸즈의 코러스 가수가 되기 위해 Being의 프로듀서 나가토 다이코 앞에서 오디션을 봤으나 탈락했다.[22][23]

하지만 이 때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후지 TV의 프로듀서 카메야마 카즈히로에게서 드라마 '결혼의 이상과 현실' 의 테마곡을 의뢰받게 된 나가토가 사카이를 발탁해서 그녀를 보컬로 내세운 ZARD를 결성하게 된다.


2.2. 1991년 ~ 1992년[편집]


그늘진 느낌이 있는 영국 락 같은 느낌을 원했던 카메야마의 요청으로 영국 출신의 락 밴드인 폴리스의 히트곡 Every Breath You Take를 샘플링해서 Good-bye My Loneliness를 제작했고 1991년 2월 10일에 데뷔하여 20만장이 넘는 싱글 판매량을 기록하며 순위 10위권 이내의 순조로운 데뷔를 하였다.

파일:굿바마론리너스.jpg
첫 자켓사진.[24]

당시 사카이가 가수로서 완벽한 기량을 갖춘 상태는 아니었어서, 1주일 동안 데뷔곡의 후렴 부분을 계속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특훈을 받기도 했었다.[25]

그 뒤를 이어 나온 앨범 Good-bye My Loneliness[26]도 25만장을 넘는 판매량을 보이며 괜찮은 스타트를 하였다. 다만 이 당시 방송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카이는 이에 대해 "아직 밴드로서 완벽히 갖추어지지 않아서 준비를 확실하게 해 나오려고 했습니다" 라고 답변.[27]

사카이는 후에 이 곡에 대하여 "ZARD의 데뷔곡이면서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곡입니다. 이 곡이 ZARD의 현재이자, 15년간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면 그 감동이 더욱더 커집니다." 라고 말을 남긴 바 있다.

사실 이 당시 모델 계약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91년 중반까지는 가수와 모델 활동을 병행했었는데, 그래서 밤샘 녹음이 끝나고 아침에 있는 촬영을 위해 첫 차를 타고 지방으로 간 적도 있다고. 걱정하는 스태프들에게 사카이는 "일이니까" 라며 웃어보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나온 싱글인 不思議ね…もう探さない는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다.[28][29] 정말 빠른 텀으로 계속해서 곡을 발표했지만 이 무렵에는 그다지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ZARD만의 색깔을 찾는 듯한 실험적인 음악들을 발표했다.

1992년 4번째 싱글 眠れない夜を抱いて가 45만장을 넘기는 싱글판매량을 기록하며 슬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그 뒤를 이어 나온 IN MY ARMS TONIGHT 또한 32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두 곡 모두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 두 곡을 통해 ZARD는 같은 해 8월 7일 뮤직 스테이션을 통해 방송에 모습을 처음 보이게 된다.[30]

그리고 나온 앨범 HOLD ME는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 순위 2위에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ZARD는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사카이 본인에게도 애착이 큰 앨범인데, 이유는 이 앨범을 시발점으로 ZARD만의 색깔을 찾아나갔기 때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ZARD의 스타일은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탄생했다.[31]


2.3. 1993년 ~ 1997년[편집]


파일:負けないで.jpg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직후 1993년 1월 27일 ZARD를 국민가수로 만들어주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많이 불리는 곡 負けないで가 발매되었다. 데뷔 이후 첫 1위 싱글이 되었으며 약 165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ZARD를 일약 국민가수로 만들어주었다.

이 곡은 원래 수록곡으로 들어갈 예정이었고 그렇기에 사랑이야기만 줄곧 가사로 써 오다가 뭔가 다른 느낌을 원했던 사카이는 곡을 듣자마자 '응원가 같다'고 생각했고 가사를 술술 써내려갔다. 결과는 초대박이였다.[32]

그 후 나온 君がいない는 2위곡이며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揺れる想い는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다시금 1위 자리에 올랐다. 특히 揺れる想い는 사카이 본인이 매우 고생한 끝에 만든 노래라며 애착이 강한 듯.[33]

이 이후 나온 앨범 揺れる想い은 또 다시 밀리언셀러를 기록, 223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첫 앨범 1위가 되었고[34] 대부분의 수록곡이 좋은 반응을 얻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라 평가받는다. 1994년 5집 OH MY LOVE가 발표되며, 4집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밀리언셀러 등극. 역시나 완성도가 높은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1995년에 6집 forever you를 발매, 역시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동명의 타이틀 곡은 팬들에게도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여담 하나로 이 시기에 팬들과 처음 만남을 가졌는데, 유선 방송의 모니터분을 모아놓은 음악방송에 출연한 것. 방송에 익숙치 않은 사카이라 떨기까지 했지만 팬들과의 만남은 인상깊었는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슬프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같은 년도에 발행한 싱글 サヨナラは今もこの胸に居ます에는 여담이 하나 존재한다. 스탭들의 의견으로 자켓 사진을 발행 직후 한 번 교체한 적이 있는데, 이게 화근이 되어 교체 전 버전이 레어 아이템으로 옥션에서 상당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35]

1996년 초에 マイ フレンド[36] 싱글 발매. 슬램덩크 ED로도 쓰여 친숙한 이 곡은 싱글 중 세번째 밀리언셀러이며 ZARD의 역대 싱글 중 마지막 밀리언셀러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년 7월 기념비적인 7번째 앨범 TODAY IS ANOTHER DAY가 발매되는데, 이 앨범부터 사카이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앨범 이후로 나오는 모든 ZARD의 앨범을 본인 스스로 프로듀싱하였다고. 프로듀서로서의 역량도 대단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기에 발표한 싱글로는 Don't you see!心を開いて가 있는데, Don't you see! 는 드래곤볼 GT의 엔딩송, 心を開いて는 포카리 스웨트 CF송으로 쓰였다.

Don't you see!가 발매되고 한 달만인 2월 하순, 20번째 싱글 君に逢いたくなったら…(그대를 만나지고 싶어지면...)를 발매했다. 이 곡은 1997년 선정된 일본의 결혼식 축가에서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다만,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은 아니었고, 전작 Don't you see!와 마찬가지로 셀렉션 앨범 ZARD BLEND〜SUN & STONE〜에 수록되었다.

이 시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싱글, 앨범은 1위 혹은 2위에 머물고 모든 싱글과 앨범은 TOP 5 안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정황상 이 시절 너무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여 건강이 서서히 악화되지 않았나 생각된다.[37][38]


2.4. 1997년 ~ 1999년[편집]


파일:영원.jpg

永遠(영원)이 발매되기 한달 전인 1997년 7월, 5개월의 공백 끝에 21번째 싱글 風が通り抜ける街へ (바람이 흘러 지나가는 거리)가 발매되었다. 이 곡은 97' Summer JRA(일본경마협회)의 CM송으로 사용되었다.

1997년 여름, TV 드라마 실락원의 주제가로 쓰이기도 했던 永遠이 싱글로 발매. 이 곡이 발매되기까지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고.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참조. 다만 이 시기 이후부터 발매한 싱글 판매량은 50만장을 넘지 못했다고. 그리고 같은 해에 負けないで가 교과서에 실렸다.

1999년 초에 8집 앨범 永遠을 발매, 또 한 번 밀리언셀러를 기록한다. 수록곡 중에는 My Baby Grand ~ぬくもりが欲しくて~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My Baby Grand ~ぬくもりが欲しくて~ 같은 경우엔 ZARD가 2004 라이브 연습 때 꼭 이 곡만은 불렀다고 할 정도로 애착이 있었다고 한다.[39]

같은 해에 ZARD의 베스트 앨범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이 발매되었는데, 무려 300만장에 달하는 엄청난 판매고를 세우게 된다. 싱글 중에서도 1~2위를 했던 곡들을 선별하여 낸 앨범으로 ZARD의 좋은 곡들 중에서도 골라서 나온 베스트 앨범이라는 점, 그리고 해당 앨범에 동년 여름 때 열리는 첫 라이브의 응모권이 동봉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기록적인 판매량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해 8월 베스트 앨범 응모권을 통해 양일 각각 300명씩, 총 600명의 당첨된 팬들을 위한 ZARD의 첫 라이브 Cruising & Live가 열렸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첫 라이브였다는 점 때문에 많이 긴장했던 탓인지 가끔 가사를 실수하거나 멘트를 외운 그대로만 말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성공리에 마무리했다고 한다. 라이브의 수준은 상당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일 정도로 아주 훌륭했다고. 후에 이 공연은 라이브 앨범으로 한정 발매된다.

1999년 말 Request Memorial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또 하나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팬들의 투표를 통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곡 14곡을 순위대로 수록한 이 앨범은 역시나 밀리언셀러를 기록, 한국에도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2004년 일본문화 개방 이후 한국에 처음으로 공식 발매된 ZARD 앨범이기도 하기 때문.

그 후 싱글 痛いくらい君があふれているよ(아플 정도로 그대가 넘치고 있어요)가 발표됐는데, 반응은 상당히 엇갈렸다고. 그동안 보여줬던 ZARD의 음악적 색채와는 거리가 있는 곡이라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사카이의 랩이 들어가 있기도. 사카이 본인도 다양한 방면으로 시도해 보고 싶어 도전했던 것이라고 한다.[40] 그리고 그 해 12월 1일,ZARD의 90년대 마지막 곡인 この涙 星になれ(이 눈물, 별이 되어라)가 발표. 또한 ZARD의 첫 맥시 싱글(12cm)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곡이다.


2.5. 2000년 ~ 2001년[편집]


파일:2000년 자드.jpg[41]
2000년에 들어 처음으로 낸 곡은 Get U're Dream. 이 곡은 NHK의 시드니 올림픽 공식 응원가로 채택되었으며, 덕분에 ZARD가 공식 인터뷰를 하게 되며 정말 오래간만에 방송계에 얼굴을 비추게 된다. PV에서 본인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까지 나오는 등 사카이가 많은 활약을 했던 곡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여력 때문에 NHK측에서 홍백가합전에 대한 출연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ZARD는 소속사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출연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42]

그리고 33번째 싱글 promised you와, 9집 앨범 時間の翼(시간의 날개)가 발매된다. 時間の翼는 2001년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10주년 기념 앨범이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찾아보기 굉장히 힘든 앨범이 되었는데, 폐반된 앨범이기 때문. 소속사의 문제로 완성도가 매우 떨어졌고, 평단에서도 혹평했으나 어찌어찌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본인의 의사로 폐반되어 카탈로그에서 사라지게 된다. 후에 2021년 9월, 30주년을 기념해 時間の翼를 30주년 버전으로 재발매하였다.

그리고 2001년 1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건강악화로 인한 활동 중단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ARD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집을 내는 등의 팬서비스는 꾸준하게 한 듯.[43]

당시 소속사는 컨디션의 하락이라고 밝혔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열애설 등의 각종 루머를 퍼트렸고, 한 잡지사가 열애 루머 관련 파파라치 기사를 쓰기 위해 잠복하며 그녀를 미행했지만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거나 책방에 책을 사러 가는 사진밖에 찍지 못했다.

지병 때문에 치료를 받기 위해 활동을 중단했단 사실은 나중에 알려지게 된다.


2.6. 2002년 ~ 2007년[편집]


파일:ZARD 2004.jpg
2002년 5월 싱글 さわやかな君の気持ち(상쾌한 그대의 기분)로 1년만에 복귀한다. 그러나 건강 때문에 바로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고, 2003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사카이는 싱글이 나온 직후에 이미 다음곡의 타이틀과 곡의 작업이 여러가지로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를 기대해 달라고 밝힌 바 있다.

사카이 본인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시기가 바로 'ZARD의 새로운 시작', '제 2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몸이 아팠을 당시 많은 고민을 했던 듯. 활동 스타일도 많이 달라진다.

2003년에는 明日を夢見て(내일을 꿈꾸며), 瞳閉じて(눈을 감으며), もっと近くで君の横顔見ていたい(좀 더 가까이서 그대의 옆모습을 보고 싶어요)를 차례대로 발매하게 된다. 4곡 모두 오리콘 차트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등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2000년대 들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였다고 보여진다.

다만 판매량이 10만 장을 넘기지는 못 했는데, 그 이유로는 ZARD를 비롯한 소속사의 신비주의 활동이 통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이로 인해 영상 인터뷰를 자주 하는 등 활동면에서 변화구를 던지게 된다.

또한 ZARD와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작곡가 오다 테츠로의 자리를 오노 아이카가 맡게 되며 음악 스타일에도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90년대 오다 테츠로와 쌍벽을 이루던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 또한 작곡 활동이 줄어들었고, 토쿠나가 아키히토, 테라오 히로시 등 다양한 작곡가들이 참여했다.

2004년 1월 10번째 앨범 止まっていた時計が今動き出した가 발매된다. 타이틀 곡은 오노 아이카가 아닌 Garnet Crow의 나카무라 유리가 작곡을 맡았으며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역시나 변화를 중심에 두려는 느낌이 보여지는 곡이라고 볼 수 있겠다.[44]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최초의 라이브 전국 투어가 개최되었다. 본래는 전국 투어가 아닌 3회에 걸친 공연이었으나 회가 계속 진행되며 사람들의 관심도도 높아져서 11회로 늘렸으며,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워 가며 성공적인 콘서트로 마무리했다. 무려 2년 동안 세심히 준비해 왔다. 99년 크루징 라이브를 함께 했던 밴드가 이번에도 사카이와 함께 했다.[45]

전국 투어가 한창 진행 중이던 6월에 38번째 싱글 かけがえのないもの를 발표했다.[46] 투어 중에 신곡을 발표하다보니 그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투어 마지막 공연이었던 부도칸 공연에서 이 곡을 실제로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다.

2004년 11월, 39번째 싱글 今日はゆっくり話そう를 발표했는데 당시 나온 PV에 팬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풀버전으로 사카이가 나오며, 사카이가 노래 가사에 맞춰 립싱크를 하는 것 때문에 놀랐다는 팬들이 상당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미공개 PV가 풀리지 않았을 시점이라 사카이가 노랫말에 맞춰서 립싱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던 듯 싶다. 다만 나중에 공개된 미공개 PV들을 보면 립싱크 많이 했다.

그리고 한국 팬들에게도 놀랄 만한 일은, 이 시기 즈음부터 한류에 빠져 겨울 연가 등의 다양한 한류 드라마나 음악을 즐겨 보고 들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여담에 후술.

2005년 9월 ZARD의 11집 앨범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인 君とのDistance가 발매되었다. 1년 전부터 준비해 온 앨범이라고.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은 9, 10집에서 추구해 온 변화된 스타일에서 다시금 우리에게 친숙한 ZARD의 스타일로 돌아왔다는 점일 것이다.[47]

2006년 3월 41번째 싱글 悲しいほど貴方が好き/カラッといこう!가 발매, 바로 두 달 뒤인 5월에 42번째 싱글 ハートに火をつけて가 발매된다. 그 이후에 잠시 컨디션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아주 잠깐 활동을 쉬고 있었다. 다만 팬들은 이 해가 데뷔 15주년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그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3번째 베스트 앨범인 Golden Best 〜15th Anniversary〜가 발매되었다. 사카이 본인이 직접 여러가지 곡들을 들어보며 선곡하고, 또 스태프들이 다시 디지털 리마스터링의 과정을 거쳐 보다 좋은 음질로 청취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신경을 쓴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사카이도 이 앨범을 기반으로 새로운 계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이 한국에 정식 발매되며 한국 팬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 내용 또한 여담에 후술.

2006년 4월 ハートに火をつけて의 PV 촬영 도중 복부의 격통으로 구급차로 이송되었고, 6월 암 확진 판정을 받는다.[48] 그러나 이는 2006년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다만 당시 인터뷰를 봤을 때, 2006년 한 해를 묘사하는 한 단어를 고를 때 격할 격(激)자를 선택한 것 때문에 팬들은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며 짐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9시간에 걸친 적출 수술을 마치고 순조롭게 호전되어 퇴원했다. 평소 녹음 스케줄 때문에 올빼미족 생활을 했던 사카이였지만 병원의 스케줄대로 살아가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큰 병에 걸린 만큼 불안감도 있었는지 어머니와 단 둘이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하거나, 여동생의 집에 놀러가서 조카의 숙제를 돕거나 악기를 가르쳐 주는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가수 생활 역시 종종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종종 어머니와 노래방에서 ZARD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암으로 투병 중일 때 많은 것을 느꼈는지, 회복 기간 중에 가족들에게 소아암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아직은 회복기간인지라 가족들은 "나중에 완쾌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오히려 암을 이렇게 이겨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잖아. 그러니 일단 본인의 몸부터 추스려라"라는 말로 만류했다고 한다.

퇴원 후 완치된 줄로만 알았으나 이듬해인 2007년에 암이 폐로 전이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1년 사이에 병원에 정말 많이 입, 퇴원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카이는 폐로 전이된 암을 치료받고 있었고 얼른 완치되어 다시 녹음하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2.7. 사망[편집]


2007년 5월 26일, 일과였던 산책을 하는 도중 난간 레일에서 실족했다. 비상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렀다, 바위에 부딪혔다 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비상 슬로프의 난간에서 실족사한 것이 맞다. 아침에 일어난 일이라서 발견이 늦었던 바람에,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하루만인 5월 27일에 뇌좌상[49]으로 인해 향년 40세로 사망했다.

그녀가 다쳤을 당시에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여러가지 추측이 나돌았는데, 대표적으로 사망 이후 난간 레일에서 손바닥 자국이 발견되었고 이에 관련하여 자살설이 제기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그녀의 자살설에 가능성을 높이 두었으나, 유족과 소속사는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은근히 자살설을 더 부추기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로는 사카이가 사망 전날 제작자 나가토 다이코우와의 전화 통화에서 건강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단기 입원으로 느끼는 피로나 괴로움을 슬쩍 얘기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전에 사카이는 암으로 투병 중이던 직원에게 본인도 암을 진단받았다며 무섭다는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언급으로는 자살을 했다고 단정짓기엔 불가능하다. 암이란 누구에게나 원래 무서운 질병이며, 자주 병원에 들락날락 하다보면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다.

또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가을에는 반드시 건강해져서 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다음”에 관해 꾸준히 말했던 만큼, 병마와 싸우는 힘듦보다도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훨씬 더 크다는 확신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예정된 일정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배우 박신양과 예정된 'Goodbye' 일본어 버전 듀엣곡 스케줄이었다. 영화 '약속'의 일본 개봉을 앞두고 박신양 측이 여러 번 요청한 끝에 사망하기 2일 전 매니저가 이 소식을 전했더니 사카이가 바로 수락하였다고 한다. 나가토 또한 그녀를 격려하며 퇴원한 뒤 바로 녹음을 준비하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사망하기 며칠 전 나가토 다이코와 전화 통화를 하였다.

세간에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다 빠졌으며, 40kg도 안된다는 둥 도저히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둥 그런 자신을 비관해 자살을 했다는 찌라시가 잔뜩 퍼져 유족들이 생전 그녀의 마지막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확실히 병상이기 때문에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긴 하나 찌라시와는 다르게 머리카락도 그대로고 평소와 크게 차이 없는 모습이었고 병실에서도 평소처럼 가사를 작사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유족도 소속사도 그녀의 자살설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 정도로 사카이는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고, 예정된 일정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공개된 사진이 가사[50]를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2019년 4월 일본방송공사에서 공개한 사카이의 폐로 암이 전이되어 병원에 재입원한 당시의 메모 내용을 참고하면 살고 싶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내용] 수사 결과는 사고사로 판정되었다.
난간의 높이가 세간에 3미터 정도라고 알려졌는데, 해당 장소의 사진을 보면 3미터도 되지 않는다.

파일:njhgv.jpg

사고 당시 보도방송에서 보여준 실족한 장소인데, 오른편에 있는 남성의 키로 추측해 보면 2미터가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장소는 많은 비상 슬로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층에 있는(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높이로 추정됨) 난간이었다. 이 정도의 높이는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투신할 장소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하지만 병약한 상태에서 실제로 실족하여 머리를 부딪친다면 뇌진탕이나 뇌좌상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는 경사가 진 장소이다. 또한 병원 관계자에 의하면 해당 장소는 경사가 져 있으며 미끄러워 넘어지는 사고가 가끔 일어나는 장소라고 인터뷰하였다.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뒹굴고 있지만 팬들 사이에서 통하는 정설로는 "평소 난간 등의 어딘가에 걸터앉는 것을 좋아했던 사카이가[51] 그날도 산책 도중 잠시 난간에 걸터 앉아 일출을 보거나,[52] 생각 등을 하다가 전날 내린 빗물 때문에, 혹은 앉아 있거나 내려오는 도중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서 뒤로 추락했다"는 추측이 가장 신빙성 있게 평가받고 있다. 해당 장소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위험한 장소였고 평소에도 미끄러짐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었으며 암 투병 중 혼자서 걷는 경우 어지러움 등으로 실족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물론 자세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2미터가 조금 넘는 난간 레일에 손바닥 자국이 발견되었다면 그 쪽이 유력하다. 애초에 사고사로 판정난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리고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자살설에는 무게를 두기 힘들다.일단 자살설에 무게를 두기에는 떨어진 장소의 자살하기엔 높이가 너무 낮은 점이 있다.


2.8. 사망 이후[편집]


파일:zard추도식.jpg
그녀의 추도식 사진

2007년 6월 26일 음악 관계자가 참석하는 추도식이 열렸으며, 이 날에는 오구로 마키, 오다 테츠로 등의 생전 그녀와 함께 작업한 동료들이 참석하였고, B'z쿠라키 마이 등의 Being 소속사 동료들, 같이 싱글을 녹음한 적이 있는 유명 야구 선수이자 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 등의 사람들이 추모사를 발표하였다.

당시 겨울연가 4돌차 일본에 왔던 류 또한 추도식에 방문하였는데 "가수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담을 갖는다. 천국에서 좋아하는 음악에 묻혀 지낼 수 있기를 빌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기려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7일 도쿄 미나토구의 아오야마의 장례식장에서 공개적인 추도식이 열렸는데, 접수 시작 전 5천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입장에만 1시간이 걸렸고, 접수시간 또한 주최 측에서 19시를 마감시간으로 정해놓았으나 퇴근 후 찾아온 팬들이 많아 21시 20분까지 연장하여 주었다.

이날 가수와 팬 등 4만 1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꽃을 헌화하며 이별을 안타까워하였으며 장례식장 건물 안에는 영정사진 대신 앨범 사진을, 그리고 그 앞은 마이크 및 생전 그녀가 녹음할 때 쓰던 헤드폰 등을 준비해놓아 마치 녹음 스튜디오처럼 꾸며놓았고 20만 송이의 꽃으로 그 주변을 꾸며놓았다.

마감시간이 지난 후에는 건물 밖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녀의 노래인 負けないで를 팬들이 다 함께 부르는 가슴 아픈 광경이 보였으며 ZARD의 추도식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 때의 5만 2천 명의 추모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추모객이 온 추도식이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헌화장이나 음악장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온 걸 보고 분명히 '나는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었구나'라며 정말 정말 기뻐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이지만요. 사카이씨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살아 있을 때 다 하지 못한 것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었다며 굉장히 기뻐했을 거예요."

ㅡ 노구치 마유


사망 이후 고인을 기리는 여러 앨범들이 많이 나왔으며, 공식 팬클럽 또한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다. 매년 기일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헌화대가 설치되고 있으며, 또한 사후 필름 & 라이브 콘서트 형식으로 추도 라이브를 3년 가졌고, 2011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2016년 25주년을 기념하여, 2021년 30주년을 기념하여 라이브가 열렸다. 그 외에도 ZARD 갤러리 등의 각종 기념사업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돈의 문제 이전에 고인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팬들이 함께 모여 지금도 계속해서 노래가 불려지고 있는 각별한 자리이다.

또한 생전 사카이 본인이 아이들을 좋아하였고 (뮤직비디오에도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러한 고인의 생각을 유가족들이 이어 사카이 사후 그녀의 가족들이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 활동을 했다.

2.9. 2007년 ~ 현재[편집]


2007년 8월 15일, Soffio di vento 〜Best of IZUMI SAKAI Selection〜,[53] Brezza di mare 〜dedicated to IZUMI SAKAI〜라는 추모 베스트 앨범 2장이 발매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생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43번째 싱글 グロリアス マインド가 발매. 사실상 가사가 1절만 있는 미완성곡이지만, 유작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자. GARNET CROW나카무라 유리가 피처링을 맡았다.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
파일:글로리어스마인드.jpg
유작 자켓 사진.[54]

동년 말일인 12월 31일 NHK의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상술했듯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의 활발한 활동 덕에 NHK 측에서 홍백 출연 제의가 들어왔었으나 거절한 바 있다. 다만 사카이 본인은 나가고 싶어했던 듯. 7년 후, 揺れる想い - グロリアス マインド - 負けないで로 영상으로나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2008년 1월 베스트 앨범 ZARD Request Best 〜beautiful memory〜가 발매되었다. 오리콘 차트 1위 기록.

같은 해 4월 9일 44번째 싱글 翼を広げて/愛は暗闇の中で가 리컷 사후 발매되었다. 둘 다 명탐정 코난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다.[55] 특히나 翼を広げて 같은 경우는 전율의 악보가 한국에 정식 개봉한 2019년 2월 14일부터 한국의 ZARD 팬들도 영화관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뒤인 5월 28일 44장의 싱글과 참가 싱글 5장을 세트로 묶은 ZARD PREMIUM BOX 1991-2008 Complete Single Collection이 발매되었다.

2009년 5월 27일 현재까지로서는 ZARD의 마지막 싱글인 素直に言えなくて가 발매, 오리콘 차트 5위를 기록. 쿠라키 마이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데뷔 20주년이 되는 2011년 2월 10일 모든 싱글곡을 7장의 CD로 묶은 ZARD SINGLE COLLECTION 〜20th ANNIVERSARY〜가 발매되었다.

1년 뒤인 2012년 1월 1일 모든 앨범을 묶은 ZARD ALBUM COLLECTION 〜20th ANNIVERSARY〜가 발매되었다.
같은 해 1월 8일에는 데뷔 20주년을 기념해서 니코니코동화에서 24시간 생방송을 하기도 했다.

데뷔 25주년인 2016년 2월 10일, 'ZARD Forever Best 〜25th Anniversary〜' 라는 25주년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계절별로 어울리는 곡 13개씩 총 52개의 곡이 수록되었고, 미발표곡은 수록되지 않았다. 그 외 다양한 행사도 진행되었다.

같은 날 오후 8시~11일 오후 9시까지 데뷔 25주년을 기념해서 니코니코동화에서 25시간으로 생방송을 하였다. 사회자는 Being의 음악 디렉터인 테라오 히로시. 그 밖에 FIELD OF VIEW의 전 보컬이었던 아사오카 유야, 작곡가 오노 아이카, 기타리스트 오가 요시노부 등 사카이 이즈미 생전에 가사를 제공받았거나 ZARD의 악곡 제작 과정에 참여했던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16년 4월 27일엔 데뷔 25주년 기념 ZARD MUSIC VIDEO COLLECTION 〜25th ANNIVERSARY〜가 발매. 모든 뮤직비디오가 들어 있다.

2016년 5월 18일에는 ZARD와 관련 있는 작가진들이 노래를 편곡한 앨범 d-project with ZARD가 발매되었다. 앨범 자켓에 있는 사카이의 사진이 종전과는 달라 인상 깊다는 의견도 있다. 참여한 아티스트 및 자세한 정보는 공식 사이트 및 d-project with ZARD 항목을 참고.
파일:external/giza.co.jp/intro_jacket.png

2017년 5월 ZARD 10주기를 기념하는 일본 특집 기사가 '영원한 가희 ZARD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생전 그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레코딩 중 있었던 사건, 그리고 ZARD의 음악에 대한 신념과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그녀의 심경 그리고 스태프들이 ZARD에 대해 말한 내용 등이 담겨져 있다. 또한 사카이의 미공개 사진들과 함께 한국에서도 필름 라이브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있다. [56]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위의 링크한 기사에서 한국, 홍콩 개최 예정이라는 문구가 삭제된 것으로 보아, 결국 무산된 듯 하다. (2018년 3월 기준, 무산되었다)

2019년 2월 1일 TV Asahi 인기 프로그램 Music Station 60주년을 기념하여 ZARD를 1993년 출연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 쿠라키 마이와 듀엣으로 負けないで를 불렀다.영상보기 확실히 소름 돋을 정도로 영상 기술은 진짜 실제로 듀엣을 하는 듯한 무대 같았지만, 실제 라이브 목소리는 아무래도 당시 아날로그 방식의 사운드의 음질 탓인지, 같이 부르는 듀엣 구간에서는 쿠라키 마이의 목소리가 좀 크게 들리는 것 이외에는 큰 문제 없이 잘 소화해냈다. 많은 팬들이 이 무대를 보고 감회가 새로웠고, 감격적이었다고.[57]

2019년 4월 20일 NHK BS 프리미엄에서 오후 9시~11시까지 2시간동안 ZARD 특집을 다뤘다. 방송 촬영을 2017년부터 했다고 하는데(한국 팬이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감감무소식이다가 다음 해인 18년에 해당 한국 팬으로부터 내년인 19년3월에 방영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58] 실제 방송은 한달 뒤인 4월. 해당 방송에서 오디션 때 부른 六本木心中, Good-bye My Loneliness와 負けないで 영문 버전, 揺れる想い Take-5, 어쿠스틱 버전이 처음 공개되었다. 負けないで 영문 버전

빌보드 클래식이 ZARD 데뷔 30주년을 기념해[59] 프리미엄 심포닉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 Billboard Classics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 풀 오케스트라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2020년 5월 2~3일 도쿄, 6월 13일 니시노미야에서 공연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연기. 그리고 2021년 2월 10일엔 코로나 사태로인한 비대면 스트리밍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 하였다.

30주년을 맞아 2021년 9월 15일 최신 디지털 리마스터판으로 정규 앨범 11작을 재발매하였고, 멜론, 애플뮤직 등을 포함한 음원 사이트에서 모든 음원이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도 당연히 풀렸으나, 소속사에 의해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시청해야 한다.[60]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다른 음원 영상들(소속사나 음반 권리사 계정이 아닌 일반인 계정에서 올라온 비공식 음원 영상들)은 소속사 측에서 저작권을 이유로 들어 대부분 차단하고 있다.

31주년이 되는 2022년 2월 4일에는, 두 번째 30주년 기념 포토북을 발매한다.
그리고 동년 9월 28일부터 한국의 CGV에서 2004년 열린 ZARD의 What a beautiful moment tour를 영화화하여 개봉하였다.
파일:86257_320.jpg


3. 음반[편집]






3.1. 싱글[편집]


볼드는 최고순위 1위 혹은 밀리언셀러이다.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수록 앨범
비고
1991.02.10
Good-bye My Loneliness[61]
9위
209,460장
Good-bye My Loneliness
데뷔작
1991.06.25
不思議ね…
30위
31,090장
もう探さない

1991.11.06
もう探さない[62]
39위
36,940장

1992.08.05
眠れない夜を抱いて[63]
8위
458,480장
HOLD ME

1992.09.09
IN MY ARMS TONIGHT[64]
9위
321,810장
揺れる想い

1993.01.27
負けないで[65]
1위
1,645,010장
첫 1위
1993.04.21
君がいない[66]
2위
801,690장

1993.05.19
揺れる想い[67]
1위
1,396,420장

1993.09.04
もう少し あと少し…
2위
843,880장
OH MY LOVE

1993.11.03
きっと忘れない
1위
872,130장

1994.02.02
この愛に泳ぎ疲れても/Boy
1위
887,190장

1994.08.08
こんなにそばに居るのに[68]
1위
787,660장
forever you

1994.12.24
あなたを感じていたい
2위
737,910장

1995.02.01
Just believe in love
2위
655,960장

1995.06.05
愛が見えない[69]
2위
720,790장
TODAY IS ANOTHER DAY

1995.08.28
サヨナラは今もこの胸に居ます
1위
551,260장

1996.01.08
マイ フレンド[70]
1위
1,000,620장[71]

1996.05.06
心を開いて[72]
1위
746,990장

1997.01.06
Don't you see![73]
1위
602,760장
ZARD BLEND

1997.02.26
君に逢いたくなったら…[74]
2위
635,840장

1997.07.02
風が通り抜ける街へ
2위
281,130장
永遠

1997.08.20
永遠[75]
1위
628,770장

1997.12.03
My Baby Grand ~ぬくもりが欲しくて~[76]
3위
331,840장

1998.03.04
息もできない[77]
3위
240,740장

1998.09.17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78]
1위
247,560장

1998.12.02
新しいドア ~冬のひまわり~[79]
3위
205,170장

1998.12.02
GOOD DAY[80]
2위
223,950장

1999.04.07
MIND GAMES[81]
1위
147,130장
Request Memorial

1999.06.16
世界はきっと未来の中
2위
201,410장
時間の翼

1999.10.14
痛いくらい君があふれているよ[82]
5위
124,730장

1999.12.01
この涙 星になれ
5위
129,000장

2000.09.06
Get U're Dream[83]
4위
241,220장

2000.11.15
promised you
6위
115,360장

2002.05.22
さわやかな君の気持ち[84]
4위
69,740장
止まっていた時計が今動き出した

2003.04.09
明日を夢見て[85]
4위
62,049장

2003.07.09
瞳閉じて
4위
44,208장

2003.11.12
もっと近くで君の横顔見ていたい[86]
8위
50,489장

2004.06.23
かけがえのないもの[87]
4위
46,244장
君とのDistance

2004.11.24
今日はゆっくり話そう[88]
5위
33,384장

2005.04.20
星のかがやきよ
/夏を待つセイル(帆)のように
[89]
2위
79,816장

2006.03.08
悲しいほど貴方が好き/カラッといこう![90][91]
6위
33,957장
Brezza di mare

2006.05.10
ハートに火をつけて[92]
10위
26,944장
Golden Best

아래부터 사후 발매
2007.12.12
グロリアス マインド[93][94]
2위
84,027장
Request Best
유작
2008.04.09
翼を広げて/愛は暗闇の中で[95][96]
3위
83,694장
리컷
사후 발매
2009.05.27
素直に言えなくて[97]
5위
49,655장
리컷
사후 발매


3.2. 앨범[편집]




ZARD 30주년 기획 오리지널 앨범 리마스터판 티저 영상[98]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91.03.27
Good-bye My Loneliness
34위
253,740장
1991.12.25
もう探さない
36위
333,080장
1992.09.02
HOLD ME
2위
1,065,190장
1993.07.10
揺れる想い[99]
1위
2,239,354장
1994.06.04
OH MY LOVE
1위
2,002,070장
1995.03.10
forever you[100]
1위
1,773,930장
1996.07.08
TODAY IS ANOTHER DAY[101]
1위
1,655,430장
1999.02.17
永遠[102]
1위
1,149,300장
2001.02.15
時間の翼[103]
1위
371,350장
2004.01.28
止まっていた時計が今動き出した[104]
2위
212,494장
2005.09.07
君とのDistance
3위
151,840장


3.3. 편집 앨범[편집]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비고
1997.04.23
ZARD BLEND〜SUN & STONE〜
1위
2,004,699장
셀렉션 앨범
1999.05.28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105]
1위
3,034,054장
베스트 앨범
1999.09.15
ZARD BEST 〜Request Memorial〜
1위
1,496,804장
베스트 앨범
2000.01.26
ZARD Cruising & Live 〜限定盤ライヴCD〜
2위
305,550장
한정 생산
2001.11.21
ZARD BLEND II〜LEAF & SNOW〜
4위
231,386장
셀렉션 앨범
2006.10.25
Golden Best 〜15th Anniversary〜
1위
943,349장
베스트 앨범
(아래는 사후 발매)


4. DVD[편집]


발매일
제목
순위
비고
2005.06.08
What a beautiful moment[106]
1위

2006.10.25
ZARD Le Portfolio 1991-2006
1위

2011.04.13
What a beautiful memory 2007
16위
[107]
2011.04.13
What a beautiful memory 2008
18위

2011.04.13
What a beautiful memory 2009
15위

2011.08.10
What a beautiful memory 〜forever you〜
1위

2016.04.27
ZARD MUSIC VIDEO COLLECTION 〜25th ANNIVERSARY〜
1위

2016.12.07
ZARD 25th Anniversary LIVE “What a beautiful memory”
3위



5. 라이브[편집]


1990년대 초반 첫 라이브 HOLD ME가 기획되었지만, 시작 2일 전에 취소되었다. 이유는 불명.[108]

이후 한동안 라이브 없이 활동하다가, 1999년 베스트 앨범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 안의 응모권으로 양일 각각 300명씩 총 600명을 초대하여 여객선에서 Cruising & Live at the PACIFIC VENUS 라이브를 개최. 300만장의 판매량 중 600장만의 추첨권이 있었기 때문에 공개된 라이브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팬들의 기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004년 최초 3공연으로 시작한 기획이 팬들과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인해 9개소 11공연의 전국 라이브 투어로 확장, What a beautiful moment Tour를 진행했다. 이는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 투어이기도 하다.

사실 오피셜에 따르면 그녀는 2000년 이후부터 자궁근종, 난소낭종, 자궁내막증이라는 병을 차례차례 앓아왔기 때문에 쭈욱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2004년 라이브 투어 당시에도 라이브를 하기 힘들었던 상태였다. 리허설도 취소했을 정도였다고... 해서 사카이는 이미지 트레이닝 형식으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 사카이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지지만 본인도 원해 왔던 라이브였던지라 기뻐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지며 실제로 이러한 연유 탓인지 공연 도중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였다.


공연 날짜
장소
2004년 3월 2일
오사카 페스티벌홀
2004년 3월 8일
도쿄 국제 포럼
2004년 3월 9일
도쿄 국제 포럼
2004년 4월 5일
고베 국제 회관
2004년 4월 8일
퍼시피코 요코하마
2004년 4월 30일
오사카 페스티벌홀
2004년 5월 8일
아오모리시 문화 회관
2004년 5월 10일
센다이 썬플라자
2004년 6월 2일
나고야 센츄리 홀
2004년 6월 11일
후쿠오카 선팰리스
2004년 7월 23일
일본 무도관

또한 이 라이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2007년에는 가을 컴백과 함께 3년만의 라이브 투어를 계획 중이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너무나 안타까운 일.


6. 서적[편집]


제목
내용
발매일
ZARD BLEND〜SUN & STONE〜
Official Band Score
1999년 2월 17일
永遠[109]
Official Band Score
1999년 2월 17일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
Official Piano & Vocal Score
1999년 5월 28일
ZARD BEST 〜Request Memorial〜
Official Piano & Vocal Score
1999년 9월 15일
坂井泉水ポエトリーセレクション第1弾「揺れる想い」[110]
Poetry Selection
2000년 2월 6일
坂井泉水ポエトリーセレクション第2弾「負けないで」[111]
Poetry Selection
2000년 6월 19일
坂井泉水のポエトリーセレクション第3弾「マイフレンド」[112]
Poetry Selection
2000년 9월 6일
坂井泉水のポエトリーセレクション第4弾「promised you」[113]
Poetry Selection
2000년 12월 12일
時間の翼[114]
Official Piano & Vocal Score
2001년 2월 15일
10° 〜decimo〜
10th Anniversary Book
2001년 11월 21일
ZARD Le Portfolio 1991-2006
15th Anniversary Book
2006년 10월 25일
아래 서적은 사후 발매
きっと忘れない ZARD[115]
Official Book
2007년 8월 15일
ZARD Portfolio du 20eme anniversaire 第1集 「揺れる想い」[116]
20th Anniversary Photo Collection
2011년 2월 10일
ZARD Portfolio du 20eme anniversaire 第2集 「負けないで」[117]
20th Anniversary Photo Collection
2011년 2월 10일
ZARD Portfolio du 20eme anniversaire 第3集 「きっと忘れない」[118]
20th Anniversary Photo Collection
2011년 2월 10일
ZARD Portfolio du 20eme anniversaire 第4集 「あの微笑みを忘れないで」[119]
20th Anniversary Photo Collection
2011년 2월 10일
ZARD/坂井泉水 〜forever you〜[120]
Official Interview Book
2020년 5월 2일
ZARD 30th Anniversary Photo & Poetry Collection 〜THE WAY〜
ZARD 30th Anniversary Collection
2021년 5월 1일
フォト・コレクション・ボックス あの微笑みを忘れないで[121]
ZARD photo collection box
2021년 5월 27일
ZARD 30th Anniversary Photo & Poetry Collection 〜THE WAY II〜
ZARD 30th Anniversary Collection
2022년 2월 4일

7. 대표곡[편집]



자신의 곡은 단 두 곡[123]을 제외하고 모두 직접 가사를 썼으며, 작곡까지 직접 한 곡도 4곡 정도 있다.[124] 소속사의 다른 가수들에게도 많이 작사를 해 준 편.[125]


8. 기록[편집]


(2021년 5월 기준)
  • 싱글 부문 Top 10 획득 수 역대 6위 (43작) (역대 14위) (여성 보컬 아티스트 역대 4위)
  • 싱글 부문 Top 5 획득 수 역대 5위 (36작)
  • 싱글 1위 획득 수: 12작 (여성 보컬 아티스트 역대 4위)
  • 싱글 TOP100 차트인: 45작 (90년대 데뷔 아티스트 역대 2위)
  • 싱글 최다판매량 역대 54위 (負けないで - 164.5만장)
  • 앨범 부문 9작 연속 밀리언 돌파 (역대 1위) (HOLD ME ~ ZARD BEST 〜Request Memorial〜)
  • 앨범 부문 8작 연속 첫 등장 1위 기록
  • 앨범 1위 획득 수: 11작 (여성 보컬 그룹 역대 2위)
  • 앨범 최다판매량 역대 19위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 - 302.3만장)
  • 음반 총 판매량 역대 10위 3767만장 (싱글 1774.3만장, 앨범 1992.7만장)
  • 헤이세이 시대 아티스트 총 판매량 8위#
  • 90년대 아티스트 총 판매량: 3위 (여성 보컬 아티스트 1위)
    • 1993년 연간 아티스트별 판매량 1위


8.1. 수상 내역[편집]


  • 제6회 일본 골든 디스크 그랑프리
    • THE BEST 5 NEW ARTIST OF THE YEAR
  • 제8회 일본 골든 디스크 그랑프리
    • THE BEST5 ARTIST OF THE YEAR
  • 제8회 일본 골든 디스크 그랑프리
    • BEST SINGLE OF THE YEAR ''負けないで"
  • 제8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앨범상 록 포크 부문 (여성) "揺れる想い"
  • 제9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앨범 상 록 포크 부문 (여성) "OH MY LOVE"
  • 제12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앨범 상 록 포크 부문 (여성) "ZARD BLEND〜SUN & STONE〜"
  • 제14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록 앨범 오브 더 이어 "永遠"
  • 제14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록 앨범 오브 더 이어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
  • 제14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록 앨범 오브 더 이어 "ZARD BEST 〜Request Memorial〜"
  • 제49회 일본 레코드 대상 특별 공로상

  • 오리콘 차트 1위 기록
    • 負けないで/Makenaide (1993)
    • 揺れる想い/Yureru Omoi (1993)
    • きっと忘れない/Kitto Wasurenai (1993)
    • この愛に泳ぎ疲れても/Kono Ai ni Oyogi Tsukarete mo (1994)
    • こんなにそばに居るのに/Konna ni Soba ni Iru no ni (1994)
    • サヨナラは今もこの胸に居ます/Sayonara wa Ima mo Kono Mune ni Imasu (1995)
    • マイ フレンド/My Friends (1996)
    • 心を開いて/Kokoro wo Hiraite (1996)
    • Don't you see! (1997)
    • 永遠/Eien (1997)
    •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Unmei no Roulette Mawashite (1998)
    • MIND GAMES (1999)


9. 논란[편집]



9.1. 표절 의혹[편집]


ZARD의 대표곡 負けないで의 담당 작곡가 혹은 편곡가가 다른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 사카이 이즈미는 해당 곡에 대해 작사만 담당했기 때문에 사카이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負けないで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평가[편집]


사카이 이즈미 사후 그녀의 측근들이 그녀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담은 대목이다.

성모가 된 우타히메(歌姬)[126]

― ZARD의 음악 인생을 정리한 가이드북의 제목


배려를 잊지 않는 섬세한 여자(사람) 이기도 하고, 떨어져 있어도 계속 내 앞을 걷고 있어서 좋았던 사람. 강타와 마구의 수행 시대에 누구보다 먼저 평가를 해 주고, 코러스도 잘 되면 언제라도 제대로 칭찬해 준 보물 같은 사람.

오구로 마키, ZARD 데뷔 25주년을 기념하여 ZARD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사카이씨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은 ZARD 외에도 많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ZARD의 사카이 이즈미는 어딘가 멀리서 음악적 능력을 받아서 음악을 해오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예요. 사카이 이즈미밖에 쓸 수 없는 가사나, 그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사카이씨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역시 선택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나 훌륭한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 왔으니까요.

― 테라오 히로시, 레코딩 디렉터


제 마음 속에서는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이 제 인생에 있어, 굉장히 소중하고 귀한 선물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것들이 제 자신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보람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껏 유일하게 100퍼센트, 끝까지 하나하나 직접 작품을 함께 만들어 온 아티스트입니다. 나이도 동갑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도 같이 많이 했었고, 직업 상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 자켓 디자인을 계속 해 왔지만, 역시 ZARD가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ZARD는 제 자신에게 있어서 큰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굉장한 자랑거리예요.

― 스즈키 켄이치


본인에게 물어본 게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제 생각입니다만, 일을 할 때 마다 ZARD로서의 자신을 객관적이면서도 냉정한 시점으로 보면서 일을 진행해 갔던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ZARD지만, ZARD가 아닙니다. ZARD는 나 자신도 있지만, 프로듀서, 디렉터, 스탭이 있어야만 가능한 프로젝트니까요. 저 혼자가 절대 아니에요. ZARD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저는 노래를 하고, ZARD로서 가사를 쓰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 온 사카이씨에게 감동했고, 앞으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 노구치 마유


사카이씨는 쭉 'ZARD'라는 스타일을 만들어 왔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지키면서 여러분들에게 작품을 발표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상상하기 힘든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그녀만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또 쾌감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 이케다 다이스케, 편곡가


회사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아무것도 확실치 않았던 시절에, 사카이씨는 ZARD로서 노력해 주셨고, 저희들을 키워 주셨습니다. 게다가 그 때가 20대에서 30대라는 젊은 나이였다는 것은 정말 같은 여성으로서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성에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만의 기준을 끝까지 관철해 온 사카이씨에게 배운 그 마인드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 코바야시 사유리


실제 모습의 ZARD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음악이라는 무형의 예술을 일편단심으로 계속해서 만들어 온 한 명의 여성으로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품 안에 살아있는 혼이 바로 진짜 ZARD와 다를 바 없으니까... 그녀의 작품 그 자체가 그녀의 인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와타베 료, 레코딩 디렉터


데뷔해서 16년, 사망한 것이 40세.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철이 들고 나서, 절반 이상의 인생을 'ZARD의 사카이 이즈미'로서 보내온 셈입니다. 그 시간 동안, 유명한 아티스트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정식으로 무대에 서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레코딩 스튜디오라는 닫혀 있는 공간에서, 작품을 만드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지거나, 발돋움해야만 할 때, 평범한 것을 부러워하거나... 그녀의 마음속에 이런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작품을 계속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는 그녀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평범한 단어로 쓰여 있는 가사인데도 많은 이들이 감동하는 것은 그녀의 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녀는 없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작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 속에서, 우리들은 앞으로도 쭉 그녀를 접할 수 있고, 그녀의 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로 고마워요!

― 타카노 아키히코, 영상 프로덕션 매니저



10.1. 목소리와 가사[편집]


특유의 투명감이나 때로는 중성적인 듯한 목소리가 초기 소프트락에 어울린다. 사카이와 좋은 궁합을 보였던, ZARD 다수의 히트곡을 작곡한 오다 테츠로 등 좋은 작곡가와 곡을 살리는 편곡, 그리고 사카이의 가사와 편안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아름다운 음색 덕분에 '단아한 록 음악'이라는 상상조차 힘든 이미지를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J-Rock의 지향점을 넓힌 가수로 평가받는다.

레코딩에 참여했던 스탭들이 사카이의 보컬 특징으로 이야기했던 공통적인 장점은 목소리를 음악에 완벽하게 맞춘다는 것, 그리고 블루스나 재즈같이 보통 리듬보다 조금 느리게 노래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사를 더욱 듣기 쉽고, 보다 설득력을 갖게 하여 한층 더 목소리의 감정을 느끼기 쉽게 효과를 낸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보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타고난 투명감과 표현력이 드러나는 음색을 지닌 것 또한 장점이다.

또 사카이는 두 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ZARD의 곡을 본인이 작사하였는데, 가사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만큼 감칠맛 나는 그녀의 가사도 성공의 한 몫을 했다.[127] 가사에 영감을 주는 원천에는 농담 삼아 본인의 경험이 50%라고 이야기했다. 나머지 반은 주변 사람들의 상황이나 다양한 요인에서 찾아내는 듯 하다. 주변인들의 말을 잘 경청하는 타입이었다던 사카이라서 그녀의 스태프들이 실컷 얘기하다 '이거 혹시 가사로 쓰이는 거 아닌가?' 하기도 했다.[128][129] 그녀의 가사는 팬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 취급되며 하나하나 자세하게 분석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10.2. 미모[편집]




파일:삿짱가라사대강아지같아.jpg
[130]
파일:삿짱미모로우주대통합2.jpg


파일:춤추는 ZARD1.gif
파일:춤추는 ZARD2.gif
신비주의 전략[131]이라는 게 성공 요인도 됐고, 실제로도 다른 전형적인 일본 여성 아이돌의 생김새와 확실히 구분되는 외모다. 그러나 본인은 과거의 일도 있고 회사가 신비주의 전략으로 가는 바람에 그 자태를 TV에서는 잘 볼 수 없게 됐다. 남성 팬이 많은 것도 아마 단아한 미모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잘 나가는 여가수임에도 화려한 스타일을 소화해내는 요즘 아이돌과는 다르게 화장조차 꺼리며,[132] 좋은 피부에 셔츠와 청바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뿜어내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 로망의 소유자다. 물론 사카이의 외모가 뛰어난 것은 맞지만 활동중에는 외모를 거의 팔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외에 나서지 않았다.[133][134]

B'z 조차도 라이브 활동을 해도 TV 출연이 적은 해[135]에 팬 이탈이 생겼었는데, 음악 방송은 물론이고 예능이나 연기 활동도 없고 심지어 라이브도 하지 않는 가수가 음반만으로 10년 넘는 시간동안 시디를 그렇게 판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에 가깝다.[136]

생전 사진집도 10주년과 15주년을 기념해서 두 번 나왔고, PV 촬영이야 하지만 이것 역시 활동 기간 중에 따로 팔지는 않았다. 한 일화로는, 인물 사진을 안 찍는 주의의 사진가가 처음으로 사람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레이스 퀸 시절의 사카이였다. 실제로 당시 그 사진가는, "원래 인물 사진은 안 찍는 주의지만, 너무 예쁜 사람이 있어 나도 모르게 셔터가 눌러졌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카이는 엄청난 동안으로도 유명했는데, 데뷔 이래 사망 이전까지 점점 얼굴 나이가 젊어지는 듯해 보였을 정도다.

10.3. 녹음[편집]


"저도 보통 사람보다 음정을 신경 쓰는 편이고 여러 사람의 노래를 작업해 왔지만, 음정에 대해 엄격한 것은 그녀가 최고였어요. 굉장히 엄격했어요."

― 코마츠 히사시, 레코딩 디렉터

사카이는 평소엔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음악에 관련해서만큼은 강단과 고집이 셌다고 한다. 한 곡을 녹음하는데 100번, 200번씩은 물론 280번까지 재녹음한 적도 있고, 들어보고 아니면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해서 스탭들이 밤샘근무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항상 납득이 될 때까지 그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녹음했다는 듯.

게다가 녹음한 것을 집에 가지고 돌아가서, 몇 번이고 다시 들어보고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을 체크해오고, 다시 스튜디오에서 고쳐서 노래하고 또 가지고 돌아가서 들어보고 하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적도 있다. 여러모로 프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

또한 작곡가를 만난 적이 거의 없는데, 작곡가를 만나게 되면 해당 곡에 대해 냉철해지지 못하고 작곡가를 신경쓰게 되어 원하는 만큼의 완성도가 나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ZARD의 히트곡을 다수 작곡한 오다 테츠로도 겨우 두어 번 만난 게 다라고 했다.

레코딩 부스에 커튼이 쳐져 있는 것도 유명하다. 사카이는 보컬 레코딩을 할 때 꼭 커튼을 치고 녹음을 했는데, 아무래도 집중하기 편하도록 배려 차원에서 빙이 설치해 준 듯. 다만 스탭들 입장에선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언제 사카이에게 말을 걸어야 할 지 타이밍을 항상 생각했었다. 레코딩 디렉터인 코마츠 히사시는 그녀가 혼자서 노래와 싸우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1. 여담[편집]


  • 타계 후 2016년 기준으로 팬카페의 대부분이 1주일에 글 하나 올라올까 말까 한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아직까지 활동이 활발한 카페는 네이버카페에 있는 ZARD 기념관으로 팬메이드 영상이 올라오거나 ZARD 관련 영상, 소식이 꾸준하게 올라오고 있으며 ZARD 관련 정보 또한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 네이버 블로그의 안녕안녕이 오피셜 북, 각종 인터뷰 등 ZARD에 관한 자료들을 한글화하고 있었고, 디시인사이드 일본-음악갤러리 등 각종 일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ZARD를 지지하며 소개글을 올렸었다. 그리고 어쩌다 그 소개글을 보며 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유게시판에 '~의 ~님의 소개글을 보고 새롭게 팬이 된 ~' 라며 가입 인사 글을쓰면 어김 없이 댓글란에 그 소개글의 닉네임과 같은 닉네임의 댓글이 '그거 저예요.' 하는 식으로 달리며 이곳에 대부분의 팬들이 모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 기준으로 블로그가 초기화된 상태이다. 하지만 ZARD의 팬분들이 많으시기에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ZARD 관련 내용을 많이 알 수 있으며, 블로그에 ZARD 항목을 따로 만들어 많은 글들을 게시한 분들이 많으시니 ZARD에 대해 궁금하거나 ZARD의 팬이 되었다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으니 검색을 해보자. 2019년 기준 해당 블로그는 다시 운영이 재개되었으며, 카테고리에 ZARD 항목을 따로 개설해 놓고 팬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나무위키의 서술도 대부분이 ZARD 기념관과 해당 블로그를 참고한 부분이 많다.

  • ZARD, 사카이 이즈미, 곡 이름 등으로 네이버 검색을 하다 보면 1~2달내 새롭게 포스팅된 블로그 글이 많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ZARD의 두터운 팬층은 여전한 듯. 유튜브의 영상들에도 꾸준하게 활동이 보이는 편이다.

  •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가족이나 친구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스태프들을 굉장히 잘 챙기고 다정하게 대하는 면모를 보면 상당히 따뜻한 사람이다. 사후 스태프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자주 선물과 메시지 카드를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받은 선물과 카드를 아직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사카이의 동생들도 상냥한 성격이라고 하고, 사카이의 어머님께서는 집 앞까지 찾아온 어린 팬에게 밥을 먹이고 데려다 주시기까지 했다는 일화를 보면 카마치 일가족 전체가 착한 듯 하다.[137][138]


  •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고 폭넓은 관심을 가졌다. 본인의 분야인 락 이외에도 오페라, 재즈, 블루스, 팝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겨 들은 듯 하다. 2004년 라이브 당시 공연장 개장 직전에 흘러나온 음악이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였는데, 본인의 선곡이었다.

  • 미술 또한 재능이 있었다. 특히나 유화, 도예에 흥미가 깊었던 듯. 개인적으로 도예를 한 적이 있으며, 유화도 몇 점 그렸었고 그 복제품이 일본 옥션에 경매로 나온 적도 있었다. 모딜리아니렘브란트에게 많은 영감과 자극을 얻었다고. 그림 실력도 탁월하다. 직접 악세사리를 만들기도 했다는 걸 보면 손재주가 기본적으로 좋은 듯.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 작사가인 만큼 문학에도 관심이 상당해서 심리학 관련 책이나, 릴케의 'Duineser Elegien(두이노의 비가)' 등등의 시집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 학창 시절 육상부, 테니스부를 하고 운동회 육상 계주 대표로도 뛰었던 것 등을 보면 운동 신경은 탁월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춤에는 영 재능이 없는 듯.[139] 노래를 부르면서 흥겨우면 몸을 좌우로 회전시키면서 팔을 양 옆으로 휘휘 젓거나 위 아래로 약간씩 흔드는데 어설픈 느낌이다. 팬들은 귀엽다, 펭귄같다는 반응.[140]

  • 연애에 있어 이상형은 순수하고 약간 어설픈, 마음 속에 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고 꿈을 쫓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좀 더 나중에 구체적으로 밝힌 이상형은 사카모토 류이치이며 본인보다 10살 정도 연상에, 자상하고, 어른이지만 소년의 꿈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본인은 상대방을 좋아하는 데에 있어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이 틀에 맞춰서 사람을 좋아하진 않았을 거라는 추정.[141][142]

  • 그녀의 이미지와 노래들이 사람들에게 상당히 좋게 기억되고 회고되는 만큼 여러가지 주제로 투표한 각종 음악 방송 프로그램 순위에서 꾸준하게 등장하여 매년 방송에 등장하고 계신다. 가령 예를 들어 뮤직 스테이션에서 가장 보고 싶은 무대 1위로 뽑혀 眠れない夜を抱いて와 負けないで로 생방송 출연했을 때 영상으로 나오기도 했다.(위의 장점에서 서술했듯이 목소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준다.)

  • 마지막 레코딩에 관한 일화. (Glorious Mind [143])
15시간에 걸친 자궁 적출 수술을 앞두고 몸 상태가 엄청 안 좋은 상태로 본인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2번 녹음했다고 한다.

"영광의 마음, 영광의 하늘, 실컷 울었다면 어제까지의 일은 전부 잊어버리자~, 해변의 달 해변의 하늘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그대에게 전하고 싶어요"

녹음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본인 어머니와 했던 이야기
사카이: "엄마 어땠어요?"
어머니: "몸이 안 좋은 티가 하나도 안 나네. 정말 괜찮았어."
사카이: "나도 할 때는 한다구요. 하면 되니까."

미완성인 곡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을 또 다시 안심시켜준 곡이 발매되었고 그 곡은 오리콘 2위를 날라다니며 또 다시 눈물 바다를 만들었고 팬들이 사랑하는 ZARD 인기투표 순위 4위에 올랐다.||

  • 친한/목록 문서에도 있듯이 한국을 좋아했다. 겨울 연가의 애청자였으며, 다양한 한류 드라마와 영화를 봤었다고 한다. 한국 팬들을 각별히 여겨 15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인 Golden Best가 나오고 한국 팬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한국 연예인들과의 교류는 이수영이 그녀의 곡 GOOD DAY를 리메이크했고[144] 2004년 라이브 투어 당시 쥬얼리와 만나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눴으며, 사망 직전 배우 박신양과의 영화 '약속' 의 일본 개봉을 위한 주제곡 'Goodbye' 듀엣도 예정되어 있었다. 매우 기쁘게 승낙했고 즐겁게 기다렸다고.[145] 생존했었다면 한국과 더 가깝게 활동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음은 겨울연가를 좋아했다는 사카이의 인터뷰 내용.
"요즘엔 겨울 연가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촬영때는 겨울 연가의 OST를 내내 들으면서 촬영에 임했네요. 겨울 연가를 너무 좋아해서 DVD 풀세트와 책, 악보까지 다 사버렸네요. (웃음)"

― 사카이 이즈미, WEZARD 인터뷰 中

  • 아래는 ZARD의 15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인 Golden Best가 나온 후 사카이가 한국 팬들에게 남긴 메시지의 전문이다.[146] ZARD가 특별하게 외국 팬에게 메시지를 남긴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현지 관계자의 반응이다. 그만큼 사카이 본인이 한국 팬들을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147]
2006년 10월 발매되었던 Golden Best 〜15th Anniversary〜의 한국 흥행 소식에 ZARD가 한국 팬들에게 보낸 감사 메시지 원문 글
“韓国のファンの皆様 はじめまして。ZARDの坂井泉水です。
この度ZARD15周年を記念してベストアルバムを発売、配信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今回(ZARDの楽曲がチャートを独占したという)このような
吉報を日本で聞きとても光栄に思います。この場を借りて御礼を申し上げます!
この15年、ひたすら良い作品を創る事に全力を注いできました。
それは音楽の神様が私に与えて下さった試練でもあり宝物です。
またこんにちまで続けることが出来たのも支えて下さる方々がいたお蔭です。
日本のファンの方だけでなく国境を越えてZARDの音楽が皆様に
今後も愛され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LOVE 坂井泉水||“한국의 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ZARD의 사카이 이즈미입니다.
이번에 ZARD의 1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베스트 앨범을 발매, 디지털서비스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ZARD의 곡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기쁜 소식을 일본에서 듣고 매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5년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이것은 음악의 신이 저에게 주신 시련이자 보물입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팬 여러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ZARD의 음악이 여러분에게 앞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길 기원합니다. ”
LOVE 사카이 이즈미||

  • 등려군에게 직접 작사한 곡을 준 적이 있다. 제목은 あなたと共に生きてゆく. 등려군 사후 사카이가 이 곡을 녹음했는데 곡에 짧은 북경어가 들어가 있다. 막간에 대사를 넣고 싶었던 사카이 본인의 의지로 넣은 것이라고. 홍콩 지인에게 직접 전화로 강의를 받아가며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었다. 93 프로야구 엔딩곡 '果てしない夢を'의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던 감독 나가시마 시게오의 가창 지도를 한 적이 있었다. 사카이는 그 곡의 작사와 합동 보컬 담당.

  •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취미도 혼자 노는 데에 최적화 되었다는데, 유화 그리기, 스케치, 한 번에 DVD 4~5개 빌려서 영화 보기, 책 읽기, 인터넷 서핑, 그리고 리스(Wreath, 크리스마스 장식) 만들기 등등을 했다고 전해진다.

  • 면허가 있긴 있는데 장롱면허였다. 그래서 주로 지하철을 애용했고, 절친한 ZARD 코러스 가수이자 후배 가수인 오구로 마키가 자가용을 몰고 올 때마다 그녀와 같이 레스토랑을 가거나, 밤중 몰래 드라이브를 떠난다거나 했다고. 지하철로 다닐 당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148]

  •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생활형 안경 착용자로, 밖에 나갈 때는 콘택트 렌즈를 착용했다.

  • 아재개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 처음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했을 때 의상 문제로 스태프들이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어떤 옷을 입혀도 ZARD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결국 스태프 한 명이 방송 시작 얼마 전까지 신주쿠의 옷가게를 다 뒤져서 아르마니의 남성용 셔츠를 사오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야 OK 사인이 떨어졌다.

  • 같은 소속사 선배 그룹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로의 곡을 피쳐링한 적이 있다. 제목은 異邦人(이방인).[149] 2003년 8월 27일 발매. 이 곡이 수록된 마츠모토의 앨범 THE HIT PARADE의 6번 트랙 港のヨーコ・ヨコハマ・ヨコスカ(항구의 요코, 요코하마, 요코스카/Downtown Boogie Woogie Band 원곡)에 사카이의 코러스도 있다. 또한 B'z의 라디오 'Beat Zone'에 데뷔 초 참여했던 적이 있다. 둘 다 마츠모토와의 콜라보라 보컬인 이나바 코시와는 특별한 작업이 없었는지 팬들이 찾아본 결과, 현재까지 유일한 이나바 코시와의 접점은 92년 후지 tv 사운드 아레나 인터뷰 당시 옆에 앉아있던 것 외엔없는 듯 하다.

  • 쥬얼리는 활동 초기에 Being 레이블 소속 가수 자격으로 ZARD의 라이브를 보러 갔고, 사진도 같이 찍은 적이 있다. 당시 쥬얼리 멤버들은 ZARD의 신비로운 이미지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사카이가 동네 언니처럼 친근하게 대해 줘서 환상이 다 깨졌다고. 잠깐 인사만 할 줄 알았는데 1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파일:삿짱과쥬얼리.jpg

  • 아이들과 반려동물을 좋아했다. 특히 본인의 조카(여동생의 아이)의 숙제도 봐주고 자주 놀아줬다고 하며, 촬영장에 아이들이 함께 하면 그 아이들과 당시 가장 인기였던 애니메이션 갑충왕자 무시킹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고.[150]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 인기있는 것들에 빠삭했다고 한다. 금발 머리의 아이들 세 명이 함께 촬영에 임했던 적이 있었는데, 가운데 남자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고 한다.[151] 그리고 '러브쨩' 이라 부르는 요크셔 테리어를 한 마리 키웠다.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아침잠이 많은 사카이를 항상 먼저 깨웠다고 한다.

  • 생선회를 잘 못 먹는다고 한다. 조리되지 않은 날 음식을 먹기 힘들어 했던 듯.[152] 그리고 양갱과 슈크림을 싫어한다. 반대로 좋아하는 음식은 야키니쿠(불고기)라고. 레코딩 스튜디오 근처 한국식 불고기 가게에서 불고기 도시락을 자주 시켜 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 샌드위치, 오므라이스도 자주 주문했고, 1990년대 후반엔 중국집 음식도 자주 먹었는데, 먹고 난 후 꼭 우롱차를 마셨다고. 애플 사이다와 도미빵도 좋아했다고 한다.

  • 팬레터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팬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고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팬레터였기 때문에 더더욱 팬레터를 좋아했다. 위에 언급된 見つめていたいね의 가사 "3G의 키퍼도 천국에서 보고 있어" 도 팬레터를 통해 착안된 가사이다. 소속사에서는 답신을 금지시켰지만 사카이 본인이 몰래 팬레터의 답신을 쓰기도 했다고.
"팬레터가 도착하면 곧바로 사카이씨가 레코딩을 하고 있는 스튜디오에 전해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정식 팬클럽도 창단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팬과 이어질 수 있는 수단이 팬레터밖에 없었습니다. 팬레터를 받았을 때 사카이씨는 굉장히 기뻐했고, 저도 그런 사카이씨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레코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었습니다 (웃음). 팬레터를 정말로 소중히 여겼었고, 여동생이 직접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 몰래 답장을 쓴 적도 있었을 거예요. 후에 노래 가사가 된 편지 내용도 있었고, 아마 팬레터에서도 많은 가사가 태어났을 겁니다. 제작에만 전념하는 활동 스타일이라, 사카이씨는 자신이 굉장히 열심히 만든 작품의 반응을 즉각즉각 보기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팬들과의 유일한 연결점이 바로 팬레터였기 때문에,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있었어요."

― 코바야시 사유리, A&R

  • 아래는 "ZARD로서 활동하면서 기쁘다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이건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전국의 팬 여러분들로부터 격려의 편지를 받거나 하는 거네요. 만약 데뷔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아 주실리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음악이라는 표현 방법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행복하네요."

― 사카이 이즈미, WEZARD 10호 인터뷰 中

  •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까지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일화가 있다. 사카이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30대 여성이 밝힌 일화인데, 매일 반복되는 검사와 강한 약을 먹으며 힘들어하는 본인에게 사카이가 힘이 되는 말과 응원의 노래를 종종 불러주었다고. 하루는 며칠 째 계속되는 고열로 사카이와 산책도 같이 못 가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 때 사카이가 자신에게 負けないで를 불러주었다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는데 사망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며 너무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사실 본인은 타 아티스트의 팬이었지만 사카이의 힘이 되는 노래와 말들에 용기를 얻고 ZARD의 팬이 되었으며, 본인도 살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며 "사카이씨가 천국에 먼저 가 있다면 저는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며 끝에는 팬들을 격려하는 문장까지 남겨 많은 이들을 울게 했다. 이 일화가 진실인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평소 사카이의 행실로 보아 주작일 확률은 0%다. 주작이 아니다! 현재 해당 글의 원문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글에 WEZARD 공식 홈페이지 관리자가 댓글을 달아주었다고 하며, 댓글 내용이 "우리들이 생각하던 사카이씨다, 멋진 사람이다" 라고 하며 실제 일화였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 팬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대부분이 정설로 믿는 것인데, 바로 미공개 곡이나 사진, 영상들이 상당수 소속사 내에 존재한다는 것. 아마도 자료 보관 창고 같은 곳에 있을것이다. 25주년 라이브 당시 공개된 미공개 영상 모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런 행보를 보았을 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미공개분을 조금씩 풀면서 마케팅을 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 리듬게임인 유비트지지 말아요가 수록되어있다. 다만 오리지널 음원이 아닌 커버보컬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그러나 아케이드에서는 판권기간 만료로 삭제되었다.

  • 디시인사이드 일본음악 갤러리에서는 사후 '이즈미 누님 돌아가신지 xx일째 되는 날입니다.'라는 꾸준글이 있었다. ZARD 마이너 갤러리도 있지만 활동은 미미한 편. (단, 2022년 9월 CGV의 2004년 라이브 특별상영회 개시 직후 잠시 붐빈 적이 있었다.)


  • 명탐정 코난의 4번째 오프닝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를 걸그룹 La PomPon이 리메이크하였다. 이 리메이크 버전은 명탐정 코난 50번째 엔딩으로 다시 사용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 참조.

  • 뮤직 스테이션 30주년 기념으로 과거 ZARD의 負けないで 방송 영상이 HD로 리마스터링 되었다.영상보기

  • Being 산하 레이블 'Giza Studio'에서 SARD UNDERGROUND가 트리뷰트 밴드 형식으로 ZARD 노래를 커버하며 데뷔 하였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 負けないで의 영어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 활동이 거의 미미하다시피 했던 ZARD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2019년 5월부터 WEZARD TV라는 이름으로 각종 ZARD 관련 소식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오프닝과 엔딩에 짧막하게 동일한 곡의 PV가 재생되는 게 인상적. 곡 선정은 보통 랜덤이지만 의미있는 노래가 선곡되기도 한다. 더불어서 WEZARD TV petit이라는 부속 코너도 있는데, 이 코너에서는 SARD를 다루는 듯 하다. 그러나 2021년 8월 27일에 올라간 영상 이후로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What a beautiful memory 당시의 라이브 영상과 뮤직비디오(!)를 업로드하고 있다.



  • ZARD는 그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트리뷰트 밴드가 존재하는데, 그 중 외모나 음색, 제스쳐 등이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밴드가 있다. 이름은 Bloom. Good-bye My Lonliness 초반 부분 얼굴을 만지는 손짓이나 몸짓을 보면 꽤 오랜 시간 연구해서 카피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음색 역시 매우 유사한데, 후기 ZARD의 목소리와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悲しいほど貴方が好き 데뷔곡보다 비교적 훨씬 나중에 발매한 후기 ZARD의 목소리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悲しいほど貴方が好き가 더욱 싱크로율이 유사한 듯.

  • 시부야의 타워레코드에서 콜라보레이션으로 2020년 2월 10일부터 27일까지 'ZARD Cafe'를 영업했다. 디저트나 식사의 이름이 ZARD 곡명들이며 천장부터 메뉴판, 벽면까지 ZARD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My Baby Grand의 정체였던 미니 피아노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메뉴를 구매하면 책갈피도 무료로 제공하는 듯. 디렉터 테라오 히로시가 소개하는 ZARD Cafe WEZARD TV 영상

  • 앨범 곡 스트리밍이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 뮤직 시절부터 되었으나, 정작 일본에서는 불가능했고 ZARD 대신 그들의 커버 그룹인 SARD의 곡만 가능했으나, 드디어 2021년 9월 15일 30주년 리마스터 버전을 출시하며 45종의 싱글과 11종이 앨범, 9종의 베스트 앨범, 총 389곡을 LINE MUSIC을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한국에서도 동일하다. 또한 이번 해금에는 2002년의 미발표곡, 約束のない恋(약속 없는 사랑)도 포함되었으며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들을 수 있다.


12.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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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초에는 징향행휘신녀(澄響幸輝信女)였으나 후에 지위를 올려 개칭하였다.[2]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카나가와현 하다노시에서 살았다.[3] 1988년 기준 17세 일본 여자 평균 키가 157.8cm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키이다.[4] 비존 측에서는 ZARD를 아직까지 활동하는 밴드라고 소개하고 있다. 즉, ZARD의 리더인 사카이 이즈미는 사망했으나, 밴드인 ZARD는 아직 해체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ZARD 이름을 내건 라이브 공연을 몇 년 주기로 개최한다.[5] 1998년 설립된 BEING 산하 레이블로, 사실상 ZARD 1인 기획사로 운영되고 있다.[6] 근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탈퇴 멤버이다. 사카이에게 친필 싸인을 받은 이력이 있다.[7]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일본 여성 가수로, 둘은 ZARD 데뷔 시절부터 가수와 코러스로 만나 인연을 이어왔고, 쭈욱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8] 본인을 소개할 때는 "ZARD의 사카이 이즈미입니다."라고 한다.[9] 숏컷도 잘 어울리는데, 실제로 데뷔 직전에 나가토 다이코 프로듀서가(당시에 사카이는 장발이었다) 숏컷 또는 단발로 스타일을 고수하고 하드 락 컨셉으로 데뷔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10] 現 쇼인 대학(松蔭大学)[11]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어 발음이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일상 회화는 능숙하게 해내는 듯. 해외 로케를 갔을 때 스탭들이 영어를 어려워하자 본인이 직접 나섰다고.[12] 이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져서 자신이 없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질문을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13] 당시 어린 사카이가 좋아했다고 알려진 일본 동요는 도나도나ドナドナ다. 원래는 이디쉬로 지어진 유태계 노래인데, 장터에 팔려가는 송아지를 노래한 동요. 그래서인지 슬픈 느낌이다.[14] 이 무렵 호기심으로 기타를 배우기도 했었다. 그 당시 사카이가 사용했던 기타는 자택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15] 당시에 운동을 활발히 했던 경험 덕분에 ZARD 데뷔 이후에도 스포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NBA에서 시카고 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었으며,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챙겨 봤다고.[16] 2000년부터 쇼인대학으로 교명이 바뀌었다.[17] 사카이는 1회 졸업생이다.[18] 당시 지원자만 2,721명이었다.[19] 카라오케는 일본의 노래방을 뜻하며, 그 당시 노래방에서 노래를 재생하면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공연 영상이 아닌 자체 제작한 영상을 썼는데 그 영상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카라오케 퀸이다. 카마치 사치코 시절 사카이 이즈미가 출연한 일본 가수 야시키 타카진의 '未練~STILL~' 의 카라오케 영상 [20] 과거를 후회한 이유들은 앞서 말한 루머 등으로 인해 다양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팬들이 떠날까봐였다고.[21] 꽤 많은 작품에 출연한 듯 하나 그 이력이 정확히 알려진 바 없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카이의 엑스트라 출연본들을 최근까지도 팬들이 발굴 중인 듯 하다.[22] 오디션 당시 アン・ルイス(안 루이스)의 六本木心中, WOMAN, 그리고 타카하시 마리코의 for you...를 불렀다.[23] 만약 이 때 사카이가 오디션에 합격했다면 그녀는 아마 ZARD가 아닌 B.B 퀸즈 시스터라는 코러스 팀에서 활동하다가, Mi-Ke라는 걸그룹으로 떨어져 나와 데뷔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 B.B 퀸즈 코러스 팀의 행보였다.[24] 원래대로라면 저 가죽자켓과 스튜디오 사진이 아닌 다른 컨셉의 사진이 들어갔어야 했다. 나가토 다이코는 첫 자켓에 미국 록 밴드인 Blondie 같은 느낌을 요구했고(캐미솔 드레스에 가터벨트, 검은 스타킹, 힐, 선글라스 등의 쎈 여자 느낌.) 따라서 머리도 포니테일로 올려 묶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촬영했으나 전부 폐기되었다고 한다. 사카이 본인과 어울리지도 않았고(Don't You See! PV를 보면 알겠지만 화장을 진하게 한 얼굴보다 쌩얼이 더 이쁘다는 느낌이 강하고 그런 의견도 많다.) 앞으로 나아갈 ZARD의 방향성과 상이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라고. 변경된 자켓사진은 당시 사카이가 입은 옷이 스튜디오와 어울리지 않아 스태프의 가죽자켓을 빌려 입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스태프가 찍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는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ZARD스러운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25] 그 후 사카이는 그 특훈이 자기에게 트라우마였다고 농담조로 엄청난 뒤끝을 발휘하기도 했다.[26] 이 곡의 MV를 촬영한 감독이 바로 이와이 슌지다.[27]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하진 않지만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존재하는데, 데뷔 앨범을 낸 무렵 방송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딱 한 번 대학 축제를 나간 적이 있었다. 미니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해당 무대에서 관객들이 ZARD에게 심한 말을 해서 그 뒤로 무대를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존재한다. 당시 이 소문은 거의 기정사실화로 굳어졌었고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도 보도될 정도였다. 다만 정확한 증거물이 없기에 사실로 치부하기엔 곤란하다. 무엇보다 ZARD는 그 이후에도 방송 출연을 했었다.[28] 지금에서야 재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판매량이 저조했던 이유는 정규 3집 이전까지는 현재의 우리가 잘 아는 친숙한 ZARD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하드 록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29] 파일:자드2집자켓사진.jpg 자켓 사진이 우리가 알던 ZARD의 컨셉과는 상당히 다르다. 모든 자켓 사진들 중 가장 어두운 느낌일 듯.[30] 긴장의 연속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 이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31] 많은 블로그나 글에서 ZARD에 관해 서술할 때 負けないで 이전에는 이름이 없던 가수였다가 負けないで 이후로 일약 국민가수로 도약했다고 적는데 사실 이는 잘못된 서술이다.[32] 이 때 나온 뮤직 스테이션 방송분은 그녀의 마지막 출연분이자 마지막 음악 방송 활동이다. 스태프가 방송과 사카이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사카이 본인도 너무나도 긴장하고 방송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보여줄 수 없다고 여겨 이후 과감하게 방송출연을 그만둔 것이다.[33] 몇 번이고 다시 써서 겨우 완성했고, 고생해서 녹음했다고. 그래서인지 1999년과 2004년 두 차례의 라이브에서 모두 이 곡이 오프닝곡으로 흘러나왔다.[34] 정규 앨범 중 가장 판매량이 높다.[35] 파일:삿짱자켓교체전.jpg파일:삿짱자켓교체후.jpg위가 초기 버전, 아래가 교체 버전.[36] 원래 1995년 연말에 낼 예정이었다가 생산 문제로 발매 날짜가 1월로 미루어졌다.[37] 실제로 사카이는 올빼미족이었다. 레코딩 스튜디오가 문을 여는 시간도 저녁이었고 녹음 작업이 워낙 빡세다 보니 밤샘 근무를 하기 일쑤여서 아침 9시에 잠들었다는 말을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할 정도였다. 단기간이면 모를까 장기간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몸이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병으로 병원 생활을 했을 때 생체시계를 제대로 맞추기 위해 아침 일과로 산책을 한 것이다.[38] 녹음 중 발생한 과호흡 증세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39] 나중에 알려진 사실인데 My Baby Grand의 정체는 녹음실에 있는 미니 피아노였다.[40] 여담으로 이 싱글의 자켓을 보면 사진을 찍을 당시 사카이가 컨셉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넘어져 버려서 발목에 흰 파스가 붙여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41] 2000년 11월 발매된 33번째 싱글 promised you의 자켓 사진이다.[42] 그리고 사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홍백에 출연하게 된다.[43] 2001년 11월 21일, 사카이가 직접 곡을 하나하나 선곡해서 만든 셀렉션 앨범 ZARD BLEND ~LEAF & SNOW~가 발매되었다. 앨범 제목처럼, 가을/겨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많다.[44] 이 앨범의 타이틀은 2003년부터 이미 정해뒀던 제목이었다는데, 사카이는 평소 머릿속에 생각나는 문구나 타이틀을 휴대폰이나 노트에 기록해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던 타이틀인 止まっていた時計が今動き出した로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45] 다만 밴드는 꾸준히 연습해 왔지만 사카이는 이들과 두어 번 정도밖에 합을 맞추지 못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이 때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리허설을 취소했고, 라이브 공연을 못 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오기도 했었다고. 해서 사카이는 반복적인 연습보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치중해서 단련해 왔다고 한다.[46] 이 곡은 팬송으로 볼 수 있는 게, 사카이가 작사를 하면서 팬들을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면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다.[47] 다만 이 때도 역시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녹음 당시 어깨 결림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48] 그래서 ハートに火をつけて의 PV에는 사카이의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49] 뇌진탕보다 심각한 두부 외상이다. 뇌진탕은 뇌에 충격을 받는 것으로 증상이 매우 약한 경우라면 휴식을 취하라고 진단하지만, 뇌좌상은 뇌 손상으로 인해 출혈이 생기는 것으로 당연히 치료가 필요하고, 심할 경우 식물인간 혹은 사망에 이른다. 후유증 역시 뇌진탕처럼 구토나 어지럼증, 체온저하 등이 아니다. 뇌좌상은 앞서말한 식물인간, 중추신경 마비, 치매 등을 유발하는 기질적 뇌 증후군, 정신병 등이 있다.[50] 폴더형 휴대 전화를 열어놓고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애초에 유서가 없었으므로 유서는 절대 아니며, 평소에 어디에서나 가사를 자주 썼던 그녀이기에 폰에 메모해 둔 가사를 수정하거나 옮겨 쓴 것으로 추정된다.[내용] 「입원해서」 그 사람이 이불을 덮고 울었다. 그건 지금까지 처음 본 눈물이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 나도 여기서 “제 1차 전투에 지고 있네”라고 당신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을 때 불안했다. 투지가 넘쳐 흐르는 순간순간 목숨을 꽉 잡아가며… 시내가 잘 보이는 곳을 기지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바라봤다. ‘이제 좀 편해져도 돼,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말이 없어도 그 등짝으로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걸로 진짜 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 인생에서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길이 있다. 그럴 땐 그 길을 난 묵묵히 걸어갈 거에요! - 번역 내용 출처는 ZARD 기념관이다.[51] 실제로 사진집이나 PV, 싱글 자켓 등을 보면 난간이나 어딘가에 걸터앉아 있는 사카이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52] 후술하겠지만 사카이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한 여성의 일화가 있다. 그 일화에 따르면 아침 일과로 산책을 하며 일출을 보는 일과가 있었는데, 일출을 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따로 비상 계단에서 일출을 봤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당 장소에서 일출을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53] 여담으로 Soffio는 사카이의 남동생이 운영했던 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54] 예전에 찍어 둔 사진을 사용한 것. 유작이니 당연히 자켓을 찍을 수는 없었겠지만 상당히 옛날 사진인 것으로 추정된다.[55] 하나는 극장판, 하나는 애니메이션.[56] 기사의 밑 문단 중 ※韓国、香港でも開催予定 (한국, 홍콩에서도 개최 예정) 일본어 기사(필름 라이브에 관한 기사) 일본어 기사(특집 기사들)[57] 엠스테가 참으로 치밀하게 이 무대를 준비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쿠라키 마이의 핸드마이크가 당시 사카이가 들고 부른 마이크와 똑같은 기종이었다는 것. 해당 마이크가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디자인임을 감안하면 대단하다.[58] 사카이의 새로운 메모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아무래도 방송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새로 발견해서 죽죽 미뤄진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59] 사실 데뷔 30주년은 2021년이지만, 전야제 같은 느낌으로 이해하면 될 듯.[60] 요즘은 유튜브에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공식 음원이 무료로 올라와있는 일이 흔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61] 자드의 데뷔곡,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한 결혼의 이상과 현실의 주제가이다.[62] 커플링곡 こんなに愛しても(이렇게 사랑하는데도)는 모종의 이유로 3집 HOLD ME에 수록되었다.[63] 무명 시절의 자드를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곡이다. 이 싱글로 자드는 아사히 TV의 뮤직 스테이션 방송에 첫 출연하였다.[64] 제작 과정 중에 재미있는 비화가 하나 있었다. 가이드곡(정식으로 가사를 붙이기 전에 임의로 가사를 붙여 부르는 곡. 일본어로는 仮歌(카리우타)라고 한다.) 후렴구 가사가 金を返して早く返して(카네오 카에시떼 하야쿠 카에시떼)였다. 뜻풀이하면 '돈 갚아 빨리 갚아'(...) [65] 명실상부 자드의 대표곡이자 응원가이다. 이 싱글로 뮤직 스테이션 방송에 한 번 더 출연하였으나, 이 방송이 마지막 방송이 되었다.[66] 원곡이 따로 있다.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가 1991년에 자신의 3집 앨범 You Never Know에 실었던 동명의 곡이 원곡. 쿠리바야시가 직접 작사했으나 ZARD가 리메이크하면서 ZARD가 가사를 새로 썼다. 두 버전의 가사가 비슷한 듯 다르므로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67] 일본의 포카리스웨트 CM송으로 쓰였다. 지금도 일본인들이 포카리스웨트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곡. 한국에서는 라라라라라라 날좋아 한다고[68] 6집 앨범 forever you에 살짝 변형한 버전으로 수록되었다.[69] 샴푸 Sea Breeze 광고에 쓰인 곡이다.[70] 슬램덩크 4번째 ED곡이다.[71] 싱글 기준 ZARD 마지막 밀리언 곡.[72] 揺れる想い와 더불어 포카리스웨트 CM송으로 쓰였다.[73] 드래곤볼 GT ED곡이다.[74] 1997년 선정된 일본 최고의 결혼식 축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아무로 나미에CAN YOU CELEBRATE?[75] 드라마 실낙원의 오프닝 테마. 드라마 버전은 1절뿐인데 드럼 연주가 "このまま消えてしまいましょう" 부터 들어가고, 음반에 수록된 버전들은 2절부터 들어간다. 원래 캐논 NEW EOS KISS의 CM송이었으나, 드라마 타이업이 결정되고 캐논 측의 양해를 얻어 가사를 변경했다. CM 버전은 ZARD BLEND II〜LEAF & SNOW〜에 수록되었다.[76] 커플링곡 Love is Gone은 드라마 실낙원 특별편의 주제가였는데, 가사가 드라마 버전은 여성 시점, 싱글 버전은 남성 시점으로 다르다. 바뀐 부분은 僕は取り残されて→私は取り残されて, ほお杖ついた君→ほお杖ついた, 君がいて→二人がいて, 君の笑顔が→あなたの笑顔が[77] 요리왕 비룡 OP곡이며, 자드의 기존 히트곡들을 대거 만든 오다 테츠로의 빙 퇴사 직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ZARD의 곡이다.[78] 명탐정 코난 4번째 OP곡이다.[79] 삿포로 맥주 CF에 사용된 곡이다.[80] 일본 내에서는 곡이 어두운 편이라 그런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으나, 이수영이 굿바이로 리메이크했을 때 한국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81]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ZARD의 마지막 싱글이다.[82] 시오지리 켄지가 작곡한 곡으로, 곡의 초반부와 중간에 사카이의 랩이 들어가 있는 이색적인 곡이다. 네스카페 재팬의 CF송이기도 하다.[83]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응원가로 쓰인 곡이다.[84] 니베아 카오 8x4의 광고곡이다.[85] 명탐정 코난 17번째 ED곡이다.[86] 월계관 츠키 CF에 쓰인 첫 번째 곡이다.[87] 이 곡의 가사는 라이브 종료 직후 복받쳐온 감정을 중심으로 썼다고 한다. 다시 만난 연인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 가사이자 팬들에 대한 헌정시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더없이 소중한 것" 인데, 그건 아마도 팬들의 사랑인 것 같다. 오랫동안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결론을 말하자면 이 곡은 팬송이다. 멜로디의 시작부터 가사의 의미 그리고 제목까지 따뜻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진짜 이분도 팬사랑 쩔어줌[88] 월계관 츠키 CF에 쓰인 두 번째 곡이다.[89] 星のかがやきよ는 명탐정 코난 15번째 OP곡이며, 夏を待つセイル(帆)のように는 명탐정 코난 9번째 극장판 수평선상의 음모 주제곡이다.[90] 悲しいほど貴方が好き(슬플 정도로 당신이 좋아)는 명탐정 코난 24번째 ED곡이다.[91] カラッといこう!(힘차게 가자!) 아사히 TV의 아침 날씨 방송 '메자마시 토요일'의 테마곡으로 쓰였으며, ZARD가 메시지를 보낸 방송 영상이 남아 있다.[92] 사카이 생전 발매된 마지막 싱글이자, 동년 10월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 Golden Best 〜15th Anniversary〜에 수록된 곡이다.[93] 명탐정 코난 21번째 OP곡이다.[94] GARNET CROW나카무라 유리가 피처링에 참여했고, 가사가 1절만 있는 미완성곡이다.[95] 翼を広げて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 12기 전율의 악보 주제곡이며, 愛は暗闇の中で는 명탐정 코난 22번째 OP곡이다.[96] 愛は暗闇の中で(사랑은 어둠 속에서)는 데뷔싱글의 커플링곡이었는데, 이 곡도 원곡이 따로 있다. 계열 소속의 메탈 밴드 BLIZARD의 EMPTY DAYS. 1988년에 발표된 SHOW ME THE WAY 앨범의 수록곡이다. 역시 리메이크할 때 사카이가 새로 작사했다.[97] 원래 2번째 싱글 不思議ね…의 커플링곡이었다. 현재까지 발매된 자드의 싱글 중 마지막 싱글, 쿠라키 마이가 피처링에 참여했다.[98] ZARD 공식 채널에서 올린 것으로 고화질 고음질로 ZARD의 곡들을 맛보기로 들어볼 수 있다.[99] 君がいない가 싱글과 다르게 키를 낮춘 B-version 이다.[100] 타이틀곡을 이수영이 리메이크했다.[101] 마지막 트랙 見つめていたいね의 2절 가사 중간에 "3G의 키퍼도 천국에서 보고 있어" 라는 구절이 있는데, 3G의 키퍼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센다이의 한 고교생을 가리킨다. 3G는 3학년 G반, 키퍼는 그의 별명이다. 생전에 ZARD의 열성팬이었던 그 학생이 죽은 뒤 교사와 급우들이 사연을 담아 팬레터를 써 보냈는데, 사카이가 이를 가사에 반영한 것이다.[102] 초기 한정판에 연두색 or 보라색 케이스의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7cm 미니디스크가 포함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곡 맞다. 리메이크 곡이며 제목은 약간 다르다.[103] 소속사의 문제로 인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고 본인의 의사로 폐반된 앨범이다. 30주년 기념으로 재발매되었지만, 당시의 발매 앨범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급이라고.[104] 초기 샘플버전에 I Can't tell이 비공개로 수록되었다. 정규앨범 발매 이후에는 삭제, 11집에 약간 다른 버전으로 수록되었다.[105] 이 앨범 안에 99년 크루징 라이브 응모권이 들어 있었다.[106]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열린 라이브 공연의 영상들을 담았다.[107] 여기서부터는 사후 발매[108]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나, 이 시기에 사카이를 제외한 ZARD의 멤버들이 탈퇴를 했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취소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성 의견이 존재한다.[109] 영원[110] ZARD 시집 셀렉션 제1부 '흔들리는 마음'[111] ZARD 시집 셀렉션 제2부 '지지 마세요'[112] ZARD의 시집 셀렉션 제3부 '마이 프렌드'[113] ZARD의 시집 셀렉션 제4부 'promised you'[114] 시간의 날개[115] 절대 잊지 않겠어요 ZARD[116] 제1부 '흔들리는 마음'[117] 제2부 '지지 마세요'[118] 제3부 '절대 잊지 않겠어요'[119] 제4부 '그 웃음을 잊지 말아요'[120] ZARD/ZARD ~forever you~[121] 포토 컬렉션 박스 '그 웃음을 잊지 말아요'[122] 코난 버전은 원곡과 반주가 다르며, Being 계열 소속사 후배였던 카미키 아야가 피처링한 리메이크곡이다.[123] 1집 Good-bye My Loneliness의 수록곡 恋女の憂鬱(사랑에 빠진 여자의 우울), 女でいたい(여자로 있고 싶어)[124] 素直に言えなくて, いつかは, 眠り, 君へのブルーズ[125] 대표적으로 등려군에게 あなたと共に生きてゆく를, DEEN에게 Teenage dream, 翼を広げて, 瞳そらさないで를, WANDS에게 Brand New Love와 明日もし君が壊れても를, FIELD OF VIEW에게 데뷔곡인 君がいたから, 유일한 밀리언셀러인 突然, 드래곤볼 GT 오프닝 DAN DAN 心魅かれてく, 그리고 Last good-bye 등의 작품을 제공한 바 있다.[126]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공주라는 뜻으로, 공주 같은 이미지의 가수인 자드에게 잘 어울리는 별칭이다.[127] 학창시절부터 가사를 쓰고 시집도 낼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128] Top Secret이라는 곡의 가사는 밤샘 녹음 작업을 하는 스태프의 아내가 저녁으로 스튜를 만들었다가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실망했다는 실제 상황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근데 팬들은 이거 혹시 사카이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가사가 아니냐며 엄청 신경썼다고.[129] 사카이 피셜 본인의 경험이 가사로 담긴 노래는 'ひとりが好き(혼자가 좋아)'이다.[130] ZARD는 정면사진에 비해 측면의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유는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서면 본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잘 나오지 않고 뭔가 어색어색해서 측면에서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나오게끔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PV도 정면보다는 측면 그것도 구석에서 틀어놓은 카메라 영상이 많이 나온다. 위 사진은 ZARD가 보자마자 "강아지 같아!"라고 하며 만족해 한 얼빡샷(!)이다.[131] 소속사에서 밀고 나간 것도 있지만 본인의 성격적인 부분도 한 몫 한 것 같다.[132] PV에서 한 번 화장을 짙게 한 모습이 나온 적이 있는데, 쌩얼이 더 예쁘다는 반응이 많을 정도이다.[133] 다만 완전히 숨긴 것은 당연히 아니고, TV에 나오는 음반 홍보 CM이나 싱글/앨범 커버까지 얼굴을 싹 감춘 것이 아니니만큼 예쁜 외모도 결국 홍보나 강점에 쓰인거나 마찬가지며, 결국 사카이의 절륜한 외모도 인기에 도움된 것은 사실 맞다. '노래도 좋은데 예쁘기까지?' 이런 느낌으로. 하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외모가 어필됐다면 당시의 팬은 배로 많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의 미디어는 사카이의 미모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직접 방송을 보거나(이마저도 뜸했으니) 앨범을 구입하는 정도가 아닌 이상 사카이의 외모를 접하긴 상대적으로 불리했으니.[134] 현재의 팬들 중에선 사카이 사후 팬이 된 경우도 많아서 가늠하기 힘들겠지만, 한창 ZARD가 활동했을 때는 정말 너무하리만치 외모를 팔지 않았다고 한다. BEING 소속사 특유의 전략 때문도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편이다. 여하튼 엠스테이션을 비롯해서 방송에 직접 나온 게 희귀해서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 돌아다니는 많은 영상들은 대부분 미공개였던 영상들이다. What a beautiful memory 공연 당시 공개된 수많은 미공개 영상을 보고 충격받은 팬이 한둘이 아니었다.[135] 1년 내내 투어를 뛰느라 연초, 연말에 1번씩 나왔다.[136] 생전 TV 출연을 단 한 번 밖에 하지 않은 오자키 유타카조차도 라이브는 꾸준히 해서 ZARD에 비하면 신비주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심지어 이쪽은 라이브의 경우 혹사 수준으로 진행해서 문제였다.[137] 사카이 한정으로 친한 사람들에겐 상당히 수다스럽고 개구진 성격도 갖춘 듯 하다. 스튜디오에 친한 스태프가 오랜만에 놀러오면 수다를 떠느라 레코딩 들어가기 전에 지쳐버린 적도 있다 하고, Don't You See! PV 촬영 당시 타임스퀘어 신호등에 매달렸었던 것도 그렇고.(당시 상황에 따르면 촬영하다 텐션이 올라가면서 한 해외 촬영 관계자가 신호등에 매달려 보자고 주문했는데 흔쾌히 매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그 이후 인터뷰에서 부끄러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사카이 본인은 자신을 남자같은 성격이라고 하기도 했다.[138] 정리하자면 상당히 입체적인 성격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낯을 많이 가리지만 그 속내는 매우 따뜻하고 심성이 고우나, 친한 사람들에겐 개구지고 장난도 잘 치는 면모도 있는 데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지기 싫어하고 강단있는 면도 존재한다. 사카이의 승부욕을 알 수 있는 한 일화로, 볼링장에 갔는데 본인이 자꾸만 져서 밖에 나가서 손톱을 깎고 돌아와서 다시 하자고 했다.[139] 아이러니하게도 사카이의 어머니는 사교댄스 우승자이시다. 남동생과 함께 참가했다고.[140] 참고로 2007년경엔 훌라 춤을 배울 계획도 세웠다고 했지만 결국 배우진 못했다.[141] 고등학생 시절 배우 이토 히데아키를 닮은 선배에게 고백했으나 차인 일화가 있다..[142] 그리고, 사카이가 떠날 때까지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준 연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4월 NHK에서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사카이의 간병을 하며 옆에서 계속 힘이 되어준 듯.[143] 사카이 이즈미 사후 2007년 12월 12일 발매[144] 당시 그 곡을 들은 사카이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145] 해당 듀엣 일화는 ZARD 사후 발간된 きっと忘れない ZARD OFFICIAL BOOK 에 실린 내용이다.[146] 해당 메시지는 2006년에 15주년 기념 앨범 라이센스를 수입한 당시 한국 음반 유통사 C&L에 보낸 메시지로 당시 C&L 공식 네이버 카페에서 공개되었다. 2016년 현재까지도 C&L 뮤직을 통해 관련 음반들이 수입되고 있다.[147] ZARD의 공식 팬클럽인 WEZARD는 회원가입을 하면 발행되는 계간지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게 한국까지 배송해 줄 정도였다.[148] 신비주의 컨셉 때문에 진짜 몰랐다거나 일본인 특성 상 알아봐도 아는 척을 안 했다거나 둘 중 하나였던 듯.[149] 리메이크이다. 원곡은 1979년 발매된 쿠보타 사키의 동명의 곡. 사카이가 피쳐링한 이 곡은 ZARD 20주년 기념 싱글 콜렉션에도 수록되어 있다.[150] 사카이 본인도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고, 주제곡도 많이 불렀으며, 에도가와 코난 성우인 타카야마 미나미와도 꽤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사카이가 푹 빠졌다고 밝힌 애니는 오쟈루마루.[151] 파일:삿짱과아이들.jpg[152] 조금 웃픈 비화가 존재한다. 1992년 후지 TV 사운드 아레나에 출연했을 당시, 사회자가 "사카이씨는 싫어하는 것이 뭔가요?" 라고 질문했을 때, 갑자기 당황한 사카이는 "이키테루모노(살아 있는 것)가 싫습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다행히 사회자가 "나마모노(생선회, 생새우, 오징어 등의 날 것)를 말씀하시는 거죠. 음식으로..." 라고 수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