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냥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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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냥궁
Palasyo ng Malakanyang[1] | Malacañang Palace[2]
파일:말라카냥궁 로고.png
착공
1750년
증축
1750년 ,최초 완공,
1879년 ,1차 개보수,
1880년 ,2차 개보수,
1885년 ,3차 개보수,
1979년 ,이멜다 마르코스의 대대적인 확장 공사,
양식
신고전주의, 바하이 나 바토[3]
건축가
[[필리핀|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틀:국기|
]][[틀:국기|
]]
호르헤 라모스 ,1978년 개보수 담당,
소유주
필리핀 정부
주소




마닐라 산 미구엘
Malacañang Complex, J.P. Laurel Street
San Miguel, Manila 1005


1. 개요
2. 역사
3. 명칭
4. 구성
5. 여담



1. 개요[편집]


말라카냥궁필리핀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이다. 백악관의 경우와 비슷하게 말라카냥이라는 단어 자체가 필리핀 정부 수반을 일컫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통령이 기거하는 곳인 만큼 철통보안을 자랑하며, 부대시설인 말라카냥 박물관은 대중에 열려있다.


2. 역사[편집]


1750년에 지어졌다. 원래 갤리온 무역으로 돈을 번 스페인 부호 돈 루이스 로샤의 여름 별장이었다. 마닐라 중심부를 관통해 흐르는 파시그 강을 따라 지은 석조 건축물로 기록에는 소박한 건물이었다고 나와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시설로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하는데, 강 위에 동남아시아 특유의 수상가옥 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곤 한다. 그러다가 1825년 당시 총독이던 호세 미겔 포르멘토가 사망하면서 스페인 정부가 사들여 국유화된다.

1863년 마닐라 대지진[4] 때 정부 청사로 쓰이던 팔라시오 델 고베르나도르가 무너져 이를 대체할 건물로 말라카냥궁이 낙점, 이후 미국에 식민지 할양이 이뤄질때도 그대로 정부 청사로 사용했다. 말라카냥을 거쳐간 식민지 지도자만 32명에 달하는[5] 필리핀 근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독립 이후로는 필리핀 대통령의 거처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처음 사용하던 궁전을 그대로 쓰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개보수가 있었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변화는 마르코스 독재 시절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리모델링이다. 촉망받는 건축가였던 호르헤 라모스의 관리감독 하에 1978년~1979년 2년에 걸쳐 집무실, 침실, 다이닝 룸을 확장하고 디스코룸과 연회장을 추가로 지었다. 방탄 유리와 자체 발전 시설 등 요새화에 가까운 작업이 이뤄졌는데 모든 것이 마르코스 가족의 입맛에 맞춘 튜닝이었다. 오프닝 행사도 마르코스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치러졌다. 특이한 이름 덕에 한국에서 유명한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궁 전체를 대중에 개방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마르코스 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 된 탓에, 시위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취임한 코라손 아키노피델 라모스 두 대통령은 궁전에 입주하지 않고 근처 건물에서 지냈다. 워낙 건물이 많다보니 대통령 개인의 선호에 따라 관저를 바꾸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5 공화국에 들어서면서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 만이 집무실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부터는 부대 시설인 바하이 팡가랍(Bahay Pangarap)에서 지내고 있다.


3. 명칭[편집]


타갈로그어 마말라카야한(Mamalakaya-han)을 스페인식 철자로 바꾼 이름으로 어부의 집(Place of the fisherman)을 뜻한다.

표기법이 계속해서 바뀌어왔는데, 원래 Malacañang에서 시작해 미국 군정 당시 Malacañan으로 바뀌었다. 이후 막사이사이 집권기에 다시 Malacañang으로 되돌려졌다. 코라손 아키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확한 표기 체계가 확립되었는데, 대통령 관저는 말라카냥궁(Malacañang Palace)로 하고 집무실은 말라카냥(Malacañang)으로 부른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대통령 본인이 서명하는 문서에는 말라카냥궁이, 기타 정부 구성원의 문서에는 말라카냥이 들어간다.

안그래도 복잡한 표기법 문제가 한국에 오면서 한층 더 가중되었는데 말라카냥, 말라카낭, 말라카난 등 서로 다른 한글표기가 존재한다. 절대 마라카낭이 아니다[6]


4. 구성[편집]


  • 말라카낭 궁전
  • 칼라얀 홀
  • 신정부청사
  • 마비니 홀
  • 보니파시오 홀
  • 말라카낭 공원
  • 정원


5. 여담[편집]


건물 내부를 장식하는 미술작품 컬렉션이 대단하다. 후안 루나를 비롯한 필리핀의 전설적인 예술가 작품이 방마다 가득하다. 거울, 화분, 카펫, 샹들리에를 비롯한 가구 대부분은 지역 장인에게 의뢰했거나 체코 등지에서 들여온 제품이다.

에드사 혁명 등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곤 한다. 에드사 혁명 당시 시위대가 발견한 어마어마한 양의 사치품이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데, 밝혀진 것만 아래와 같다.
  • 천장이 거울로 치장된 욕실과 19세기 상아 조각상, 여기 딸린 금장 로브
  • 밍크 코트 15벌
  • 가운 508벌
  • 핸드백 888개
  • 신발 약 3,000켤레[7]

마르코스 가족이 하와이로 도피하면서 수십년간 주인없이 방치된 옷가지 대부분이 장마철 빗물에 침수돼 곰팡이개미로 망가졌다고 한다.

2022년 5월 9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마르코스)의 대통령 당선으로 마르코스 집안이 관저에 귀환하게 되었고, 어머니인 전 영부인 이멜다의 93번째 생일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봉봉 마르코스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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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갈로그어[2] 영어[3] 필리핀 전통 석조 건축 양식[4] 무려 진도 10~11에 해당하는 엄청난 지진이었다고 전해진다. 과연 불의 고리...[5] 스페인 총독 18명, 미국 총독 14명[6] 본 나무위키 문서는 언론사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말라카냥궁으로 작성되었다.[7] 7,500켤레라는 주장도 있다. 한 잡지사가 일일이 세본 결과 1,060켤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