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홍백가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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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홍백가합전
NHK KOUHAKU UTA GASSEN | NHK(こう(はく(うた(がっ(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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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국가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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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제작
파일:NHK 로고.svg
채널
파일:NHK 라디오 제1방송 로고.svg (1951년 (제1회) - )

파일:NHK G 로고.svg (1953년 (제4회) - )

파일:NHK 월드 라디오 일본 로고.svg (1964년 (제15회) - )

파일:NHK 월드 프리미엄 로고.png 파일:TV JAPAN 로고.png (1995년 (제46회) - )

파일:NHK 온디맨드 로고.svg (2009년 (제60회) - )

파일:NHK BS4K 로고.svg 파일:NHK BS8K 로고.svg (2018년 (제69회) - )

파일:NHK+ 로고.svg (2020년 (제71회) - )
방영 형식
생방송
방영 횟수
73회
방영 기간
1951년 1월 3일 ~
ON AIR

(73주년)
매년 12월 31일
방영 시간
19:15 ~ 23:45(270분)
프로듀서
야지마 료(2017년 ~)
오프닝곡
歌の力 (노래의 힘)[1]
엔딩곡
蛍の光 (반딧불의 빛)[2]
관련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2.1. 역대 로고
3. 시청률 및 인지도
3.1. 역대 시청률
4. 출전하는 가수들
4.1. 해외 가수의 출연
4.1.1. 한국 가수의 출연
4.2. 애니송 및 성우 가수의 출연
6. 역대 우승팀
7. 각종 기록들
8. 사건 사고
9. 기타



1. 개요[편집]


}}}
2022년 제73회 NHK 홍백가합전

일본연말 가요제.

시청률 및 화제성 면에서 일본 음악 방송 중 단연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슈퍼볼'이라고도 불린다. 한 해 동안 인기 가장 많은 가수들을 몇 선정하여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일본 가수들에게는 일본 무도관 콘서트[3]와 더불어 인기 가수로서의 척도로 평가받기 때문에 가요계 내 커리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2. 역사[편집]


매년 12월 31일 도쿄 시부야 NHK[4]에서 일본의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홍백팀 대항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대형 가요 프로그램이다. 홍백인 이유는 이 빨간색과 하얀색의 조합이 일본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색조합이자 길(吉)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5] 한마디로 새해에 가장 어울리는 색인 셈. 겐페이 전쟁에서 유래한 단어이기도 하다.[6]

위의 이유로 홍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에서 나온 검도의 룰인 상대방의 점수를 계산하기 위해 만든 홍백기에서 나온 것. 당시 프로듀서가 검도부인 탓으로 간부에게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만들어진 제목이다. 실제 일본인들도 이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12월 31일, 홍백음악시합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애당초 명칭 또한 홍백가합전이었지만, 연합군 총사령부가 전쟁 戦 자가 들어간 명칭을 허가하지 않아서 시합으로 바꿨다. 호응은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매년 같은 포맷을 하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당시엔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무능하다는 증거로 여겨 1회성 기획으로 끝났다.

하지만 워낙 인기를 얻었기에 연말기획이 아닌 신년기획으로 살짝 바꿔서 1951년 1월 3일에 제1회 NHK 홍백가합전(第1回NHK紅白歌合戦)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포맷의 방송을 기획했다. 1회 홍백가합전이 방송할 당시에도 스태프들은 홍백가합전이 단발성 새해맞이 프로그램으로만 끝날 것으로 여겨서 방송 장면의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1회 당시의 무대 사진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제 1~2회는 라디오 방송만 했지만, 제3회를 방영한 1953년에 NHK가 TV방송을 시작하면서 텔레비전 중계를 개시하였다. 제 3회까지는 신년특별 프로그램으로 1월 3일에 방영되었다가 제 4회부터 다시 12월 31일로 변경되었는데, 이때가 NHK 홀이 생기기 이전이라 일본 극장을 무대로 빌렸는데, 하필 비는 시간대가 이날이었다고. 그렇게 오늘까지 일본의 연말을 대표하는 국민 프로그램이 되었다.

1959년 후일 천황으로 즉위하는 아키히토 당시 왕세자와 쇼다 미치코의 결혼식 중계와 1964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TV붐이 일고 나서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 1982년부터는 다른 음악 방송의 흐름과 함께 가사 자막을 띄우게 되었다. 무려 60년이나 된 프로그램으로, 쇼와 시대부터 시작해 헤이세이 시대를 거쳐 레이와 시대에 이어지는 등 3시대를 거친 몇 안 되는 국민 프로그램.

보통은 19시 15분에 시작하여 23시 45분에 종료하고, 1부와 2부로 나뉘어 방송한다. 1부와 2부 사이에 5분 간 NHK 뉴스가 방송된다.[7]

보통 그 해에 히트곡을 낸 가수들이 출장하며, 홍백가합전에 출전할수록 인기와 경력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홍팀(紅組-아카구미), 남성은 백팀(白組-시로구미)으로 구성된다. 다만 그룹의 경우는 리드보컬의 성별에 따라서 결정되며 듀엣의 경우는 나이, 데뷔 연도에 따라 홍팀과 백팀으로 갈린다. 승패는 게스트로 초대된 심사위원들[8]과 시청자 참여로 결정된다. 현재까지 70번의 경기를 치러 양팀의 통산 전적이 과거엔 비등비등했지만, 최근 들어 백팀 쪽으로 기울어지고있는 추세. 역대 승률은 2022년 73회까지를 기준으로 백팀이 높다(40승 33패, 54.2%).[9]

가수들은 대부분 NHK 홀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1990년과 2002년 이후 야외 무대나 가수의 콘서트 도중 방송과 연결하여 무대를 여는 경우도 생겼다. NHK 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노래를 부른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2002년 홍백가합전 당시 나카지마 미유키가 쿠로베 댐에서 <지상의 별>을 부른 경우[10]와 동년에 히라이 켄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열창한 경우가 있다. 2012년에도 후쿠야마 마사하루[11]가 요코하마에 있는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MISIA도 중계로 노래를 불렀는데, 부른 장소가 무려 아프리카의 나미브 사막. 현지 아이들도 출연시켰다. 외국 가수 중에는 조용필이 바로 그 케이스인데 1990년 홍백가합전 당시 서울 롯데월드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한 전례가 있다. 실제로 NHK 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부른 것이 중계된 시점은 1990년부터이다. 그러나 1990년 당시 NHK 홀에서 노래를 부른 다른 가수들의 불만이 제기되는 바람에 1991년부터 2001년까지는 모든 가수들이 NHK 홀에서 노래를 불렀다. 더 정확한 이유는 1990년 베를린에서 중계로 출연한 나가부치 츠요시가 안 그래도 시간 분배가 팍팍한 상황에서 제 멋대로 3곡, 17분이나 불러제끼고 NHK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2016년에는 런던에 거주하는 우타다 히카루를 홍백 제작진이 찾아가 중계했다.

피날레는 <호타루의 빛(蛍の光)>[12]이라는 일본에서 주로 졸업식 등 마무리 노래로 많이 쓰이는 노래로 장식한다. 예외적으로 이듬해 1964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던 1963년 제 14회 홍백가합전은 도쿄올림픽 찬가[13]로 마무리되었다. 이듬해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2019년에도 약간 다를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홍백 양팀의 마지막 무대를 토리(トリ), 특히 맨 마지막 순서를 오오토리(大トリ)라고 한다. 이는 가수로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인기만으로만 아니라 경력과 품격 등을 갖추어야 설 수 있는 무대. 주로 관록 있는 엔카 계열 가수들이 맡는데 전설적인 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이츠키 히로시가 각각 13번의 토리에 나서는 영광을 안았다. 이외에도 미나미 하루오, 이시카와 사유리, 키타지마 사부로도 토리를 다수 맡은 바 있다.[14] 예외가 있다면 1978년 제 29회 야마구치 모모에사와다 켄지의 토리. 원래 솔로가수 외에는 설 수가 없다는 관례가 있었는데 2003년 SMAP이 토리에 서면서 관례가 깨졌고 2012년에는 SMAP과 이키모노가카리[15]가 나섰다.

참가하는 NHK 스태프들의 수당은 만원이며, 대본은 통째로 암기한다고 한다. 또한 참가한 가수들 모두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를 준다. 모두가 열심히 싸웠다는 의미.

방송사에서도 홍백가합전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한두 달 전쯤부터 시작해 뉴스 시간에 홍백가합전 관련한 소식들을 내보내고, NHK 종합과 BS 채널 등에서는 홍백가합전에 나오는 일부 가수들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든지 아예 ROAD TO 홍백이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스팟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한다.

2014년에는 NHK 측에서 직접 오퍼를 넣어 오와라이 콤비 바나나맨홍백 선전부로 기용했다. 선전부장은 바나나맨의 시타라 오사무. 홍백 선전부로서의 활동으로, 2014년부터 지금까지 홍백선전부(紅白宣伝部)라는 생방송과 홍백 우라 토크 채널의 사회를 맡고 있다. 홍백선전부는 홍백 본방의 며칠 전부터 각기 다른 홍백 출연자들을 게스트로 불러 PR을 하는 생방송. 쿠보타 유카 아나운서가 함께 사회를 맡는다.

홍백 우라 토크 채널은 백스테이지 중계 시스템이다. 시스템 자체는 2010년 61회부터 생겨나서 테리 이토가 사회를 맡고 있었지만, 주목을 받은 것은 2014년 65회부터 홍백 선전부인 바나나맨으로 사회가 바뀐 이후이다. 시청자와 같은 입장에서 공연을 보며, 호응하고 자유롭게 토크를 진행하는 바나나맨의 입답에 힘입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모님 세대는 시끄럽다며 부음성을 듣지 않는 편이라지만, 젊은 세대는 바나나맨의 우라 토크로 인해 홍백을 전부 챙겨보게 되었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 한 스포츠지에서는 바나나맨을 홍백의 숨겨진 MVP라 칭하며, 본공연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진행과 시청자의 시선에 맞춘 토크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모았던 것이라며 아주 호평했다. 물론 너무나도 자유롭게 토크하는지라 일부 시청자에게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함께 사회를 진행한 쿠보타 유카 아나운서조차 “정말 노래를 듣고 싶은 분들은 부음성을 듣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라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장려하기도. 듣는 방법은 리모콘으로 부음성으로 전환하거나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다.

참고로 우라 토크의 중계석은 객석의 뒤쪽에 위치해 있어 가끔 아는 가수들이 공연 도중 바나나맨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는데, 그때의 음성을 들어 보면 좋아서 난리를 치는 것을 알 수 있다.[16]


2.1. 역대 로고[편집]


2007년 이전 로고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파일:NHK 홍백가합전 로고(2007-2020).svg
파일:NHK 홍백가합전 로고.png
2007 ~ 2020
2021 ~ 현재


3. 시청률 및 인지도[편집]


홍백가합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청률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시청률은 30%대로 상당히 높다. 시청률만 두고 본다면, 가히 일본의 슈퍼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인지도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으로서 대개 그 해 히트한 곡이 있는 가수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외적으로 아예 그냥 인기가수의 급을 뛰어넘어 국민 가수 정도의 위치에 있어서 한 해의 흥행 성적은 신경 안 써도 되는 S급 가수들은 그 해 싱글이나 앨범을 내지 않아서 차트에 성적이 없었던 경우라도 그냥 나오는 경우도 있다.[17]

일본 가수와 팬들은 매년 11월에 홍백 연출 측에서 출연 제의가 오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제안을 받아들여 출연이 결정되면 이를 하나의 쾌거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신인이나 홍백에 첫 출연하는 가수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일종의 성공의 척도. 물론 슈퍼볼과 다르게 프로그램 시작 전후나 중간 광고를 삽입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18] 광고주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 같은 프로그램이다.[19]

역대 최고 시청률은 1963년 방송했던 14회로, 공식적인 조사치로는 81.4%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비공식 조사치로는 89.8%. 흑백으로 방송된 마지막 방송이자, 영상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회수이기도 하다. 출전

하지만 시대가 지나며 홍백가합전의 명성이나 의미가 많이 퇴색했고, 시청률도 떨어졌다. 1984년[20] 78.1%를 기록한 이후 단 2년만에 60%대도 붕괴해 이후로도 다시 찍지 못했을 정도로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다. 이후로도 계속 하락세이며, 최근에는 30% 정도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시청률과 관련된 여담은 기타 단락에서 후술.

다만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른 방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지상파 TV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이 비단 홍백만의 문제도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방송 매체의 전반적인 흐름이고, 2020년대 일본에서 30%의 시청률을 보이는 TV 프로그램이 사실상 홍백 말고는 몇 없기 때문에 여전히 홍백가합전은 시청률로는 제일 가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즉, 일본 지상파 방송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는 상대적 위치는 유지하고 있으나, 시청률이나 관심도 등의 절대적 위치는 시대 및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락세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래도 홍백가합전은 일본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다. 실제로 사회자나 출연자가 결정되면 그때마다 NHK에서 크게 보도되고, 여기에 출연하면 홍백 효과라 해서 가수의 음반 판매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일부 소속사에서 아티스트를 홍보하기 위해 무리해서 출장을 시키는 경우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벡스걸 넥스트 도어쟈니스의 NYC[21], Sexy Zone이 있다.


3.1. 역대 시청률[편집]


#
연도
시청률(%)
1
1951
-[22]
2
1952
3
1953
4
5
1954
6
1955
7
1956
8
1957
9
1958
10
1959
11
1960
12
1961
13
1962
80.4
14
1963
81.4
15
1964
72.0
16
1965
78.1
17
1966
74.0
18
1967
76.7
19
1968
76.9
20
1969
69.7
21
1970
77.0
22
1971
78.1
23
1972
80.6
24
1973
75.8
25
1974
74.8
26
1975
72.0
27
1976
74.6
28
1977
77.0
29
1978
72.2
30
1979
77.0
31
1980
71.1
32
1981
74.9
33
1982
69.9
34
1983
74.2
35
1984
78.1
36
1985
66.0
37
1986
59.4
38
1987
55.2
39
1988
53.9
40
1989
1부 - 38.5
2부 - 47.0
41
1990
1부 - 30.6
2부 - 51.5
42
1991
1부 - 34.9
2부 - 51.5
43
1992
1부 - 40.2
2부 - 55.2
44
1993
1부 - 42.4
2부 - 50.1
45
1994
1부 - 40.1
2부 - 51.5
46
1995
1부 - 44.9
2부 - 50.4
47
1996
1부 - 41.6
2부 - 53.9
48
1997
1부 - 40.2
2부 - 50.7
49
1998
1부 - 45.4
2부 - 57.2
50
1999
1부 - 45.8
2부 - 50.8
51
2000
1부 - 39.2
2부 - 48.4
52
2001
1부 - 38.1
2부 - 48.5
53
2002
1부 - 37.1
2부 - 47.3
54
2003
1부 - 35.5
2부 - 45.9
55
2004
1부 - 30.8
2부 - 39.3
56
2005
1부 - 35.4
2부 - 42.9
57
2006
1부 - 30.6
2부 - 39.8
58
2007
1부 - 32.8
2부 - 39.5
59
2008
1부 - 35.7
2부 - 42.1
60
2009
1부 - 37.1
2부 - 40.8
61
2010
1부 - 35.7
2부 - 41.7
62
2011
1부 - 35.2
2부 - 41.6
63
2012
1부 - 33.2
2부 - 42.5
64
2013
1부 - 36.9
2부 - 44.5
65
2014
1부 - 35.1
2부 - 42.2
66
2015
1부 - 34.8
2부 - 39.2
67
2016
1부 - 35.1
2부 - 40.2
68
2017
1부 - 35.8
2부 - 39.4
69
2018
1부 - 37.7
2부 - 41.5
70
2019
1부 - 34.7
2부 - 37.3
71
2020
1부 - 34.2
2부 - 40.3
72
2021
1부 - 31.5
2부 - 34.3
73
2022
1부 - 31.2
2부 - 35.3


4. 출전하는 가수들[편집]


일본 가수들에게 홍백가합전의 출전은 영예로 받아들여지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홍백가합전 출전을 하지 않는 가수들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B'z, CHAGE and ASKA 등이 있다. 두 그룹 모두 “연말에는 무조건 쉰다”는 원칙을 이유로, 홍백가합전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23]

<小さな恋のうた>(작은 사랑의 노래)로 인디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끈[24] MONGOL800도 홍백가합전에 출장 요청을 거절하고 홍백가합전이 열리는 날 작은 라이브 하우스에서 콘서트를 진행한 바 있다. 미스터 칠드런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출장을 사양하다가 2008년에 2008 베이징 올림픽의 테마송인 <GIFT>를 맡아서 한 번 출장했다. 이처럼 한 번 출장했기 때문에 이후의 출장은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아무로 나미에, 라르크 앙 시엘 등.)

어차피 못 나오는 팀은 못 나온다. 예를 들자면, 더 드리프터즈. 전설이라 불렸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지만, 현역 시절엔 응원전에나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무라 켄을 제외하면 다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2001년에 딱 한 번 나왔다. 사실 1970년에 출장 제의를 받았고 실제로 출장할 예정이었으나, 카토 챠교통사고를 거하게 일으켜서 출장권을 자진 반납했다. 즉,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출장이 좌절된 것.[25] 또 업프론트의 헬로! 프로젝트는 2007년 이후 한 번도 홍백에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모닝구 무스메마저 홍백에 못 나온 지 15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유명한 V6도 2014년에야 처음으로 참가할 정도. 또한 2010년대를 휩쓴 AKB48모 사건으로 인해 2019년 이후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부 여론에 따르면 가수들은 홍백가합전 출전이 확정되는 것보다 홍백가합전에 꾸준히 나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못 나오는 걸 더 불명예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사쿠라자카46은 사과문을 쓴 적도 있었고, 골덴 봄버는 홍백가합전을 몇 년 간 계속 나오다가 최근에는 계속 나오지 못하게 되자 그 주제로 '이젠 홍백에 내보내주지 않아'라는 이름의 앨범까지 냈다(...).

옛날에는 바리톤 성악가 타치카와 스미토, 일본 3대 중창단인 다크 덕스, 듀크 에이세스, 보니 잭스 등 성악가들도 많이 출장했었다.

2020년 기준으로 남성 솔로 가수 중 이츠키 히로시, 키타지마 사부로[26], 여성 솔로 가수 중 이시카와 사유리[27], 남성 그룹 중 TOKIO[28], 여성 그룹 중 더 피넛츠[29], 혼성 그룹 중 DREAMS COME TRUE[30]가 최다 출장을 기록했다.


4.1. 해외 가수의 출연[편집]


일본을 대표하는 연말 가요프로그램이다 보니 해외 가수가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 선발 기준은 당해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가수들의 올스타전이지, 국적이 아니기 때문. 일본의 문화개방성을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4.1.1. 한국 가수의 출연[편집]


1987년에 대한민국 가수로서 조용필이 최초로 출연해서 1990년까지 4회 연속 출연했다.[31], 1988년에는 계은숙이 출연해서 1994년까지 7회 연속 출연.[32] 1989년에는 김연자[33], 패티김[34]이 출연했다.

2002년에는 보아[35], 2004년에는 이정현[36], 류[37][38], 2005년에는 임형주[39], 2008년과 2009년에는 동방신기[40][41]가 출연했다. 2011년에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까지 3팀이나 출연하였다.[42]

그러나 2012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이명박 대통령 일왕 사과 요구 사건으로 한일관계가 급냉각되고 일본 내 반한 감정의 고조, 한국의 음악이 이전만큼 일본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한국 가수들은 2016년까지 홍백가합전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11월 15일 오후 5시 13분, NHK 홍백가합전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라인업에 TWICE의 이름이 올라오면서 6년 만에 한국 가수가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게 되었다.[43][44]

2018년 역시 TWICE가 참가하면서 2년 연속 출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MBC 가요대제전 무대는 비공개 사전 녹화로 진행되었다.[45]

2019년에는 징용 배상 문제 및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사태 촉발로 한일관계가 다시 급냉각되었다. 그러나 TWICE의 3년 연속 출장이 확정되었고, 역시 MBC 가요대제전에서의 TWICE 무대는 사전 녹화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안 좋은 한일관계를 반영하듯 트와이스 출연 부분은 굉장히 짧았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 가수들이 직접 NHK 홀에서 무대를 펼칠 수가 없게 되었고[46], 따라서 2020년에는 한국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다. 또한 2020년 3월 이후로 거의 모든 종류의 외국인 비자 발급이 일시 중단되면서 2021년에도 외국 가수의 출연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나, 2022년에는 일본 내부나 외국인에 대한 규제 조치가 크게 완화되어 출연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11월 8일, IVE가 제73회 NHK 홍백가합전 출연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LE SSERAFIM도 출연이 유력시되고 있다. #

하지만 Kpop에 대한 복합적 여론과 홍백가합전 자체가 가지는 상징적 이미지 등이 겹쳐져 반발이 거세다. '왜 한국 아이돌이 올 10월에 데뷔하고 홍백가합전에 나오냐'는 트윗에 5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찍히거나 #, 자칭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반발#(삭제됨) 여론이 커지고 있어서 향후 공식 발표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청률 30%라는 벽이 깨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점과, 일본 내에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NHK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섭외할 거라는 낙관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전에도 한국인 가수가 출연한 적도 있기에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11월 14일과 15일, 전날 출연이 유력하다고 뜬 LE SSERAFIM의 내정 기사가 연이어 나왔다. 기사는 AKB48의 멤버로서 이미 홍백에 4번 이상 출연한 미야와키 사쿠라의 복귀라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나, LESSERAFIM은 아직 일본 공식 데뷔 전인 그룹이기에 또 한 번 갑론을박이 펼쳐졌다.[47]

결국 11월 16일, 첫 출장 발표를 통해 IVELE SSERAFIM의 출장이 공식화되었다. 또한 TWICE도 3년만에 출장이 결정됐다. 한국 그룹의 복수 출전은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48] 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한국인만 있는 가수들은 전혀 뽑히지 않았다. 전부 일본인 멤버가 있는 가수들이다. 한국인들을 싫어하는 일본인 국민의 눈치를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2022년의 한국 가수들의 출연은 2023년에도 이어질 분위기이다. 과거와 다르게 한일관계 개선을 양국 정치권에서 밀어주는 분위기가 있으며, 일본 최대 남자 아이돌 사무소인 쟈니스 사무소가 큰 논란으로 인해 NHK 회장이 직접 사태 해결에 대한 개선책을 소속사가 내놓기 전까지는 쟈니스 사무소 소속 가수 신규 출연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규 출연 금지 선언은 홍백가합전에도 영향을 미쳐 올해 쟈니스 사무소 소속 남자 아이돌들이 전부 출연 못 할 가능성 매우 높다. NHK인터뷰전문 이렇게 비워진 출연자 부분들은 한국 가수들이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자면 2023년 한국 가수들이 최다 출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2022년처럼 반발이 심할 수도 있다. 일본인 멤버가 있는 아이돌 가수들만 뽑힐 가능성이 있다. 또 역시 한국어로 된 노래 역시 못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테마가 '보더리스'인만큼 10월 10일 기준 세븐틴, ENHYPEN, 투모로우바이투게더, NewJeans, LE SSERAFIM, TWICE의 출전이 언급되고 있다. #1 #2 #3

4.2. 애니송 및 성우 가수의 출연[편집]


오타쿠 문화가 대두된 이후로 홍백에는 매년마다 애니송, 오타쿠 관련 팀이 한두 팀씩 나온다. 요괴워치 같은 어린이용 애니나 마루코는 아홉살 같은 가족 애니는 매년 어김없이 나오며, 심야 오타쿠 애니가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다.

1990년대에는 1991년 모리구치 히로코가 부른 기동전사 건담 F91 테마곡인 <ETERNAL WIND>나 1994년 시노하라 료코가 부른 스트리트 파이터 2 무비 테마곡인 <사랑스러움과 안타까움과 믿음직함과>[49], 1995년 타무라 나오미가 부른 마법기사 레이어스 TVA 오프닝인 <양보할 수 없는 소원> 등이 나오기도 했다.

성우 출신 가수 중에는 미즈키 나나가 2009년에 최초 홍팀에 출전하여, 화이트 앨범 애니버전의 1기 오프닝 테마인 深愛를 부른 이래, 2014년까지 연속 출장하였다. 사실 2007년에 나카가와 쇼코가 나와서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오프닝 곡인 하늘빛 날들을 불렀으나, 나카가와는 성우 일도 종종 하는 탤런트인 데다 순수히 자력으로 출연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부상하던 오타쿠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아키바 문화 특집’의 일환으로 출연한 것이었다. NHK 측에서도 성우 최초 출연은 미즈키 나나로 공인했다.

2013년에는 애니송 분야로 Revo 주체의 음악 프로젝트 그룹 링크드 호라이즌도 출전하게 되었는데, 무려 100명의 멤버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링크 호라이즌은 진격의 거인 주제가가 노래방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히트했기 때문에 나온 것.

2014년에는 겨울왕국 주제가인 <Let It Go>를 부르기 위해 원곡 가수이자 배우인 이디나 멘젤이 직접 나왔다. 외국 애니송으로는 홍백가합전 최초이지만, 디즈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애니송과는 거리가 조금 있으니 예외.

2015년엔 아이돌 컨텐츠로 인기몰이 중인 러브 라이브!μ’s의 출연도 확정되었다. 난죠 요시노는 무릎 부상 및 fripSide 스케줄로 인해 불참하였다.

2018년에는 러브 라이브! 선샤인!!Aqours의 출연이 확정되면서, 3년만의 애니송 가수로 러브라이브 시리즈의 그룹들이 2번 연속으로 출연하는 쾌거를 안겼다.

2019년에는 LiSA의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1년에도 3년 연속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0년에는 YOASOBI가 첫 출연하였다. 2021년에도 2년 연속으로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1년에는 우타이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마후마후의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2년에는 원피스 필름 레드에서 가수 캐릭터로 등장한 우타가 출연했다.[50] 영화내에서 가창 시의 담당 보컬 성우의 명의가 아닌 그냥 캐릭터인 '우타'의 이름으로 출연 명단에 올라간 것이 특징.#


5. 역대 홍백가합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NHK 홍백가합전/역대 홍백가합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역대 우승팀[편집]


회차
연도
우승팀
1
1951

2
1952

3
1953

4

5
1954

6
1955

7
1956

8
1957

9
1958

10
1959

11
1960

12
1961

13
1962

14
1963

15
1964

16
1965

17
1966

18
1967

19
1968

20
1969

21
1970

22
1971

23
1972

24
1973

25
1974

26
1975

27
1976

28
1977

29
1978

30
1979

31
1980

32
1981

33
1982

34
1983

35
1984

36
1985

37
1986

38
1987

39
1988

40
1989

41
1990

42
1991

43
1992

44
1993

45
1994

46
1995

47
1996

48
1997

49
1998

50
1999

51
2000

52
2001

53
2002

54
2003

55
2004

56
2005

57
2006

58
2007

59
2008

60
2009

61
2010

62
2011

63
2012

64
2013

65
2014

66
2015

67
2016

68
2017

69
2018

70
2019

71
2020

72
2021

73
2022

통산 성적(2022년 기준)
홍조
33승
백조
40승


7. 각종 기록들[편집]


  • 가수별 최고 시청률
순위
가수
시청률
연도
1위
아무로 나미에
64.9%
1998년
2위
DREAMS COME TRUE
62.0%
1992년
3위
코메코메 클럽
60.3%
1995년
4위
타마키 코지
59.9%
1996년
5위
아무로 나미에
59.1%
1997년

  • 최연소, 최고령 사회자

사회자
나이
최연소
홍조
마츠 다카코
19세
백조
나카이 마사히로
25세
종합
쿠사노 미츠요
28세
최고령
홍조
모리 미츠코
64세
백조
스즈키 켄지
56세
종합
쿠로야나기 테츠코
82세

  • 최연소, 최고령 출장자

출장자
나이
최연소
홍조
아시다 마나
7세
백조
스즈키 후쿠
7세
최고령
홍조
다카하시 마리코
68세
백조
미와 아키히로
80세

  • 최다 출장자

  • 토리 최다 가창자

  • 오오토리 최다 가창자

  • 메이저 데뷔 후 가장 빠른 출장
순위
출장자
기간
1위
NiziU
29일
2위
WaT
59일
3위
TOKIO
101일
4위
SMAP
113일
5위
이토 유나
115일
6위
girl next door
119일
7위
오토코구미
129일
8위
닌자[51]
131일
9위
에나리 카즈키
145일
10위
소리마치 타카시
154일

기타 다양한 기록들은 일본어 위키백과 참고.


8. 사건 사고[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8.1. NHK 홍백가합전 가면라이더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NHK 홍백가합전 가면라이더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 NHK 홍백가합전 DJ OZMA 노출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NHK 홍백가합전 DJ OZMA 노출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기타[편집]


  • 홍백(紅白)이라는 단어는 겐페이 전쟁에서 유래한 단어로, 헤이안시대 말 겐지(原, 미나모토)헤이시(平, 타이라)가 일본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쟁에서 源(미나모토)씨는 흰 깃발을 사용하고 平(다이라)씨는 붉은 깃발을 사용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실제로 홍백가합전은 두 집단으로 나눠서 경쟁을 하고 점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있다.

  • NHK 홍백가합전의 가(歌)가 훈독(うた, =노래)이라 간혹 '홍백노래합전'이라고도 불린다. '홍백가요대전'이라고 의역한 책도 있다.

  • 1970년 홍백가합전의 토리 가수는 원래 미나미 하루오가 고려되었다고 한다. 당년도 만국박람회 테마송을 불렀기 때문. 하지만 모리 신이치의 '긴자의 여자'로 결정. 미나미 하루오도 가창곡을 ‘오다 노부나가’로 변경하였다.

  • 라디오로만 방송한 제1회(1951년)와 제2회(1952년)는 논외로 하더라도,[52] 제3회(1953년)~12회(1961년), 15회(1964년)의 영상은 남아있지 않다. 이는 1959년에야 도입된 VTR 기기와 테이프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방송이 끝나면 다른 프로그램 녹화에 쓰기 위해 테이프를 재활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던 데다가[53] 방송자료로서 녹화를 보존할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편의 TV 방송 영상이 남아있는 최초의 홍백가합전은 14회(1963년)이다.

그나마 제5회(1954년) 이후에는 라디오 녹음이라도 남아있으며,[54] 13회(1962년)는 뉴스 촬영 목적으로 녹화된 단편적인 흑백 영상이 있다. 여담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홍백가합전 컬러 영상은 16회(1965년)의 단축판이며, 그 이후로도 홍백가합전의 컬러 영상은 소실되거나[55] 열악한 녹화만이 전해져왔으나[56] 23회를 방송한 1972년부터 NHK가 홍백가합전의 VTR 보존을 결정함에 따라, 23회 이후의 방영분은 모두 컬러 영상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 중국에서는 CCTV의 '춘절만회'가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 의외로 출연료가 싼데, 1983년 제34회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적이 있는 유명 가수 우메자와 토미오가 자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7만엔[57]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실 한국도 음악방송 출연료가 회당 10만원 수준인 등 양국 방송계 전반의 문제인듯 하다.

  • 1970년대 후반 홍백가합전 무대 스테이지 조형물 보면 지금 2020년대에서 보면 한물 간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화려했던게 특히 1976년 제27회 홍백가합전 무대는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압권이며 다음해 1977년 제28회 홍백가합전 무대는 중앙에 홍팀가수 VS 백팀가수 전광판이 인상적이었다 다음해 1978년 제29회 홍백가합전은 물고기 비늘을 연상케하는 조형물로 재현했으며 1980년 제31회 홍백가합전은 왕궁에서 볼법한 호화스러운 파티장을 연상시키는 스테이지가 압권이었다.[58]

  • 시청률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물로 1972년부터 1984년까지 홍백가합전 연주의 지휘를 맡았던 밴드마스터[59]였던 '단 이케다'(ダン池田) 가 있다. 그가 홍백가합전에 처음 합류한 시점인 1972년에는 무려 10년만에 시청률 80%대로 복귀했으며, 마지막 해였던 1984년에도 78.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1985년 방영을 1달 앞두고 급작스레 자리에서 강판당한 뒤 66.0%, 1986년에는 최초로 50%대인 59.4%, 급기야 1989년에는 38.5%(1부)를 찍어버린다. 이후로도 계속 추락해 이제는 30%대도 겨우 사수하는 상황. 스타 가수들이 고작 1,2년 사이에 물갈이되지 않고 새로운 히트곡들도 계속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커리어가 프로그램의 흥망성쇠 그 자체였던 셈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와 그의 밴드였던 '뉴 블리드'는 1960년대 말부터 후지 TV의 전속이었지만 홍백가합전을 비롯해 NHK 등 다른 곳에서도 연주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이유는, 금기로 여겨지는 자서전에서의 연예계 뒷이야기 폭로 행위 때문이었다.[60] 가장 잘 나가는 밴드마스터였던 그의 이러한 돌발행동에는, 당시 시대 풍조와 신변 변화의 영향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기존의 가요, 라이브 연주, 가창력 등 가수의 기본적 소양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밀려나고 대신 전자음향기기와 녹음 연주 등이 점점 대세가 되어가던 중이었다.[61] 그의 밴드 역시 시대의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고 후지TV에서 16년간 출연하던 음악 프로그램인 밤의 히트 스튜디오[62]가 종영하기에 이른다. 이후 방송사의 라이브 연주 축소화 경향에 반발하다가 후지TV와 마찰을 빚어 밴드마스터 자리에서도 내려오게 된다. 그래도 잔여 계약이 있다 보니 홍백가합전에는 계속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 NHK조차 라이브 연주를 대체해 나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가수의 기본적인 실력과 인성보다 상품성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풍조를 비판하는 책을 내게 된다.
하지만 결국 당대 스타들을 죄다 거론해 버린 데다 70만 부나 팔려버린 탓에 쟈니스를 비롯한 소속사들과 방송사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이후 업계에서 철저히 매장당해 잊혀져 버리고, 가수 육성으로 재기하려던 시도도 실패해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한편 홍백가합전 역시 이후로는 녹음 반주와 MR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가 예상한 대로 특색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은 몇 년도 안 지나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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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HK 홍백가합전' 공식 테마곡.[2]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을 개사한 곡.[3] 일본 무도관 콘서트는 일본 음악계에서의 본격적인 메이저 진입을 의미한다.[4] 1973년 제 24회부터.[5] 제일 대표적인 예가 일장기. 일본의 경우 운동회도 홍팀과 백팀으로 나눈다. 일본의 교육과정을 들여와 똑같이 운동회를 하는 대한민국의 경우 이전 일본에 대한 반감+북한으로 인한 레드 컴플렉스 등의 이유로 색깔이 청백조합으로 바뀌었다.[6] 헤이케가 홍색을, 겐지가 백색을 상징했다.[7] 이 중간 뉴스의 아나운서는 방송 중 긴급지진속보 같은 긴급뉴스를 전할 때 담당 앵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8] 보통 탤런트스포츠 선수들, 유명인사들이 초대된다.[9] 2012년부터 3년 연속 백팀이 우승하다가 2015년, 2016년에 홍팀이 우승. 하지만 2017~2019년은 다시 백팀이 3년 연속 우승 중이다. 10년~14년까지 백팀 사회를 맡은 아라시 등 보이그룹 팬들의 존재가 백팀에 힘을 실어 주는 요인.[10] 이때 시청률이 53.8%로, 2000년대 들어와서 조사한 시청률 중 가장 높았다.[11] 작년에 이어 2년 연속.[12] 원곡은 그 유명한 “오랫동안 사귀었던~”으로 시작하는 독립군 애국가로도 쓰였던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다.[13] 東京五輪音頭(도쿄 올림픽 온도).[14] 단, 쇼지 타로처럼 출장 당시에 지나치게 원로인 경우는 토리를 맡지 않는다. 참고로 1960년대에 일흔이었던 사람이다.[15] <風が吹いている>를 불렸다. 이 노래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주제가(일본 방송에서 사용되는)였으며, 덕분에 NHK가 밀어 준 듯. 곡 마지막 부분은 사회자 및 다른 가수들이 나서서 같이 불렀다.[16] 바나나맨이 오랫동안 칸무리 MC를 담당한(현재 진행 중으로 결성 초기인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약 6년 가까이 하고 있다) 노기자카46이 등장한 순간의 호응을 보면 정말 공식 오빠답게 노기자카를 생각해 주는 멘트들로 노기 팬들을 또다시 감동시킨다.[17] 가장 대표적인 예가 홍백의 상징으로 불렸던 키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와 SMAP. 최근 마츠다 세이코도 이 포지션에 있다.[18] 한국의 KBS1과 마찬가지로 NHK는 자사의 프로그램 광고나 일부의 공익광고 정도를 제외하면 상업광고를 일절 편성하지 않는다.[19] 다만 1950~1960년대 일부 지방 방송국이나 오키나와 지역 방송국에서 홍백가합전의 방영권을 사들여서 홍백가합전 앞, 뒤에 자체적으로 광고를 삽입한 적 있었다고 한다. 물론 1970년대 이후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20] 엔카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결혼으로 인한 은퇴 전 마지막 무대로, 출전곡을 부른 후 이례적으로 앵콜곡을 위한 시간까지 마련되었으나 미야코 하루미가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자 전 출연 가수가 앵콜곡을 대신 불렀다. 미야코 하루미는 이후 1989년 이혼 후 연예계로 복귀했다.[21] 나카야마 유마, Hey! Say! JUMP야마다 료스케, 치넨 유리로 구성된 유닛.[22] 비디오 리서치 설립 전으로 기록치 없음.[23] 다만 CHAGE and ASKA의 경우 아스카의 숱한 마약과 범죄로 인해 사실상 이제는 나오고 싶어도 못나오는 신세가 되었다.[24] 당시 앨범이 230만 장이나 팔렸고, 발매 10여 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일본 노래방 차트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일본 펑크 록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25] 일부는 도리후의 장르가 코미디송이라서 못 나갔다는 생각하는데,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의 출장 횟수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크레이지 캣츠는 멤버였던 우에키 히토시의 단독 명의 출장까지 합치면 10번이 넘는다.[26] 총 50회 출장이자 역대 최다 출장이며 키타지마 사부로의 경우 출장 횟수에서 제외되는 특별 출연까지 합하면 51회 출연이다.[27] 총 43회 출장.[28] 총 24회 출장.[29] 총 16회 출장.[30] 총 15회 출장[31] 1990년 공연은 서울 롯데월드 현지에서 중계되었다.[32] 한국인 가수 중 최다 출연이기도 하다. 이전판까지는 조용필의 4회 기록을 보아가 깼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는 정말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서술이다. 참고로, 이 정답은 미야자키 미호후지와라 토모키가 진행하는 한류 예능 프로그램 ‘한류라보’ 에서 "한국인 중에서 가장 많이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가수는?" 의 주제로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33] 1989년, 1994년, 2001년 3회 출연.[34] 1989년 출연. 길옥윤 작사, 작곡의 이별을 불렀다.[35] 2007년까지 6년 연속 출연.[36]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어 출연했다. 일본에서의 공식 데뷔 무대가 홍백가합전이었다는 게 특이한 점.[37] 겨울연가의 OST인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부른 가수다. 겨울연가의 열풍으로 홍백가합전을 비롯한 일본의 각종 연말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38] 한국의 기레기들이 연말에 “올해 홍백가합전에 한국 가수 누가 출연할까?”를 주제로 기사를 쓰면서 류시원이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고 쓴다면 100% 이 사람이다.[39] 일본의 전설적인 여가수 마츠토야 유미 및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수들과 함께 ‘Friends Of Love The Earth’라는 프로젝트그룹으로 출연했다.[40] 2008년, 2009년, 2011년 3회 출연.[41] 한국 그룹 최초 출연, 한국 그룹 최초 2연속 출연.[42] 2010년에도 소녀시대카라의 출연이 유력했으나, 결국 출연 명단에 들지 못하였다.[43] TWICE는 한국 걸그룹이지만 대만, 일본 등 다른 나라 출신의 멤버들이 섞여있어 다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특히 일본인 멤버가 모모, 사나, 미나로 3명이나 된다. 이 점이 홍백가합전 출연에 있어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44] 이날 동시에 진행되는 MBC 가요대제전 무대에는 출연하나, 28일 사전 녹화 후 일본으로 갔다. 또한 리허설은 가요대제전 사전녹화 이후 29일 오전에 전세기를 타고 가서 리허설을 한 이후 다시 한국으로 날아와 KBS 가요대축제를 진행하고 또다시 일본으로 날아갔다.[45] 해당 사전 녹화 무대는 자정 타종 행사 직후 방송되었는데, 부산 MBC대구 MBC 권역에서 지역 행사 타종 중계를 이유로 이 무대의 일부 혹은 전체를 자르는 일이 벌어지면서 해당 지역 팬들의 불만 민원이 폭주하는 일이 있었다.[46] 일본에서 2주, 한국에서 2주 총 4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가져야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크다.[47] IVE와 LESSERAFIM 두 그룹 모두 출연을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건 데부 이후 제대로 된 일본 활동을 가진적이 없기 때문이다. IVE의 장원영과 안유진은 아이즈원 활동 당시 일본활동을 꽤 진행했고 일본인 멤버인 레이가 있지만 ELEVEN의 일본어 버전 내고 공연 2~3개 정도 돈 것이 끝이라 일본에서 가장 큰 연말 행사중 하나에 출연하는 것에 의문 부호가 붙을 수 밖에 없다. LESSERAFIM 역시 마찬가지로 사쿠라가 아이즈원 활동까지 포함해 일본 연예계 활동 경력이 매우 길고 익숙한 얼굴이고 김채원도 아이즈원 활동 당시 일본에서 꽤 얼굴을 비췄고 일본인 멤버인 카즈하까지 있다지만 르세라핌은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일본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일본 입장에서 보면 쌩 신인 그룹이 바로 연말 무대에 나온다고 하는것과 다름없다.[48] 또한 한국 그룹은 아니지만 한국 연예기획사인 JYP에서 관리하는 NiziU까지 출연을 하게 됐다.[49] 다만 애니송 가수로서의 출연보다는 1994년 오리콘 차트 싱글 3위에 여성가수 최초 투밀리언 달성라는 기록 때문에 출연했다고 보는 게 맞다.[50] 실제 출연은 Ado이다.[51] 90년대에 활동한 쟈니스 사무소 아이돌.[52] 참고로 상술한 것처럼 1회는 남아있는 사진이 전무하나, 2회부터는 당시 무대를 담은 사진이 남아 있다.[53] 물론 1958년까지는 VTR도 없었기 때문에 방영 당시에도 녹화 자료를 남길 수가 없었다.[54] 다만 5회부터 7회까지의 녹음은 음성 일부가 잘려 전편의 녹음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홍백가합전은 제8회(1957년)이다.[55] 17회, 18회, 20회. 물론 이들은 컬러 무대 사진은 물론 흑백 영상도 온전히 남아있어 당시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56] 19회, 21회, 22회[57] 뜨거운 형제들에서 사이먼 도미닉이 받은 출연료가 회당 70만원이었다고 한다.[58] 1976.1977.1978.1980 당시 홍백가합전 스테이지는 KBS가 열린음악회나 가요대축제에서 재현해도 원조랑 느낌이 다를것이다.[59] 지휘자와 비슷하지만 보다 상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재즈의 빅 밴드 형식이며 리더와 연주자도 겸하는 보직. 기본적인 통솔 인원 수는 지휘자보다 적지만 때로는 그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인원을 통솔해야 할 수도 있다.[60] 원서 芸能界本日モ反省ノ色ナシ. 베스트셀러가 된 덕분에 3부작으로 나왔지만 이후의 것들은 그닥 잘 팔리지 않았다.[61] 마이크도 1983년 이후부터 무선으로 대체하는 추세였으며 NHK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금 유선 마이크를 쓰였으며 1986년부터 완전 무선 마이크로 전환되었다.[62] 유튜브 등에서 1970~80년대 초 노래 잘 부른다던 일본 가수들의 스튜디오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면 대부분 이 프로그램의 녹화본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63] 홍백가합전도 빅 밴드 연주로 했던건 1990년 제41회 까지 하다가 1991년 제42회부터 녹음 반주,MR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빅 밴드를 통한 라이브 연주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