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화도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행정구역, rd1=강화군)] [include(틀:세계의 섬들)] [include(틀:역대 한국의 수도)] ||<-2> '''{{{#fff {{{+2 강화도}}}[br]江華島 | Ganghwa Island}}}'''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강화도.jpg|width=100%]]}}} || || {{{#fff '''위치'''}}} ||[[한반도]] 중서부 / [[남한]] 북서부 || || {{{#fff '''면적'''}}} ||302.6㎢ || || {{{#fff '''인구'''}}} ||62,021명^^(2016년 12월 30일 기준)^^|| || {{{#fff '''인구 밀도'''}}} ||204명/㎢ || || {{{#fff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강화군]] || [목차] [clearfix] == 개요 ==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 [[섬]]. [[강화군]]의 본섬이다. 원래 [[경기도]]의 섬이었지만, 19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그럼에도 [[인천광역시]] 본토보다는 [[경기도]] [[김포시]]와 가깝고, 육로를 통해 가려면 무조건 김포시를 거쳐야 한다. == 역사 ==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일단 지리상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시|개성]])과 [[조선]] 및 [[대한민국]]의 수도인 [[한성]]([[서울특별시|서울]])과 가까우며, 양 지역의 주요 하천인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바다 쪽 출구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우선 [[몽골군]]에 항전하던 [[고려]] [[무신정권]]이 수도([[강도(고려)|강도]]江都)로 삼았던 역사가 있고, [[조선]] [[인조]]가 즉위하던 시절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청나라]]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도피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이때 [[봉림대군]] 등이 인질이 되었는데, 인조로서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며 결국 얼마 못가서 [[남한산성]]에서 항복한다. 왜란·호란 이후에는 [[강화군|강화유수부]]로 지정, 한양의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 그 외 유수부로 지정된 곳이 [[개성시|개성유수부]], [[광주시|광주유수부]], [[수원시|수원유수부]]였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심도(沁都)‘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구한말 조선군 편제 중, 강화도에 설치된 군영을 '심영(沁營)'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심도중학교, 심도지구대 등에 이름이 남아 있다.] 또한 강화도는 [[유형|유배]]지의 상징이었다. 살려두기는 위험하지만 죽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은 인물들을 유배를 보낼 때 강화도로 보낸 일이 많았다. [[고려]]의 [[희종(고려)|희종]]에 이어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이 곳에 유배되었으며, [[철종(조선)|철종]]은 왕위에 오를 때까지 강화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여기에 유배시켰다가 자신도 [[인조반정]]으로 여기에 유배되었으니 인생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근현대에 와서도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침공해와서 벌어진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인한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했고, 우리나라가 [[일본]]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 등 하여튼 일이 많다. 강화도의 역사를 공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농담이 존재할 정도. [[6.25 전쟁]]에는 [[개성시|개성]]의 실향민들이 이 곳에 거주하면서 개성의 문화를 이었다고 한다. 덤으로 크고 작은 [[고인돌]]이 은근히 도처에 깔려 있다. 얼마나 많은지 [[고창군]], [[화순군]]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며 관광지로 지정되어 얼굴이 자주 팔리는 큰 녀석 이외에도, 지나가다가 밭 한가운데나 산길 옆에 고인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걸 보면 [[충격과 공포]]. 그게 고인돌인지 모르고 보면 그냥 굴러다니는 돌덩이로 보일 정도의 위장이 되어 있다. 관심 있는 이라면 강화 북부와 서부에 몰려있으니 그 쪽을 뒤져보자. 강화도에선 [[로마]]나 [[경주시]], [[풍납동]]처럼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있던 도자기 등 유물들이 발견돼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것이 이 좁은 강화도에 무신 집권기, 즉 '''강화도 천도''' 당시 30여 개의 궁궐을 지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강화도에서 출토된 유물이 국보가 되는 사례도 있고 [[팔만대장경]]을 만든 선원사도 부지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 지리 == || [[파일:attachment/강화도/kanghwa.jpg|width=100%]]|| || [[강화군]]에서 제공하는 강화도 관광 지도 || 2016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면적이 큰 섬이다. 원래 [[제주도]], [[거제도]], [[진도군|진도]], [[남해도]]에 이어 5번째 섬이었고 면적이 300㎢가 안 되었으나, 장기간 [[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300㎢를 넘어, 원래 면적 차이가 적던 [[남해도]]보다 넓어져서 대한민국 제4의 섬이 되었다.[* 남해도 301㎢, 강화도 302㎢.] 동쪽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대곶면]]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황해가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과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휴전선 건너 북한의 [[개성시]], [[연안군]], [[배천군]]과 마주한다. 김포시와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4면이 바다 및 염하로 둘러싸여 있으며, 강화와 김포 사이에 [[강화대교]]와 [[초지대교]]의 2개의 다리가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 건너편은 북한이기 때문에, 강화도 북부에는 긴장이 느껴진다. 실제로 강화도의 관문인 [[강화대교]]에서도 멀리 개성시의 산이 보인다. [[인천광역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육로로는 인천광역시 본토로 바로 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로로 가려면 [[김포시]]를 경유해야 한다. 후술하듯이 이것 때문에 강화도 내에서도 경기도 환원 주장이 자주 나오고 있다. 다만, 언제 실현될지 기약이 없지만 [[영종도]]와 강화도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면 굳이 김포를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 해역의 물살이 상당히 험한 편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도 특히 격차가 심한 곳이고, 여기에 [[예성강]]과 조강이 강화도 인근 해역으로 유입되면서 더더욱 물 흐름이 복잡하기 때문. 그런 와중에도 이 곳이 한강 유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수운 거점이어서 강화도는 그 가치가 매우 컸다. 2023년 1월 9일 오전 1시 28분, 이곳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해역에서 규모 3.7의 지진이 발생했다. === 간척 === [[파일:attachment/ganghwa-ex0001.jpg]] 강화도는 원래부터 현재와 같은 모양이 아니었고,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된 것. 석모도도 본디 세 개, [[교동도]]도 두 개의 섬이었고, 강화도의 경우 수십 개의 섬이었던 데다가 서남부지역은 그냥 갯벌일 뿐이었다. 이걸 매립하고 개간하여 지금의 해안선이 만들어진 것. 해안선의 일부는 절벽이고 일부는 평지인 이유가 그것이다. [[파일:attachment/ganghwa-ex0002.jpg]]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도 원래는 강화도 본도와 다른 섬이었지만, [[1706년]]([[숙종(조선)|숙종]] 32년) 간척 사업으로 본도와 연결되었다.[* 강화 본도와 접하기 전의 섬 명칭은 고가도(古加島).] 실제로 마니산 근처엔 경지 정리가 되어 있는 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지가 있는데, 이 일대가 예전엔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길상면 초지리 일대에도 (일반적인 강화도 풍경에 비해)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경지가 있고, 이 곳도 20세기 중반에는 갯벌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파일:attachment/ganghwa-ex0003.jpg]] 그래서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의 강화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강화도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산이 있는 부분만 섬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대강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생각할 경우, 잦은 외침에도 강화도가 [[요새]]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해안선이 꼬불꼬불하고, 사방이 갯벌인데다가 섬의 해안선은 온통 산과 절벽뿐이니 적이 상륙하기 까다로운 지형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세곡선들이 이 근처를 지나다 수시로 침몰하기도 한다. == 생산물 == 주민 일부분이 농업 및 수산업에 종사하는 편으로 주로 쌀과 [[인삼]] 등을 생산하고 [[젓갈]] 등도 생산한다. 그 외에 한우, [[쑥]] 재배도 성하여 약쑥이 제법 유명하다. 강화약쑥을 싸주아리쑥, 사자발쑥이라고 불러서 강화도만의 특산종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이 아니다. 싸주아리쑥은 (아마도 [[황해도]]에서 유입된 듯한) 황해쑥(''Artemisia argyi'')이며, 사자발쑥은 싸주아리쑥 중 모양이 남다른 변이체만 선별하여 키운 것이다. [* 종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사자발쑥만 키워도 개중에는 싸주아리쑥으로 자라는 개체들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결론은 강화약쑥은 황해쑥이며 [[화문석]], [[근대떡]]도 유명한 특산품이다. 갈비와 젓갈, 야채 등을 넣고 끓인 젓국갈비라는 향토음식이 있다. 설에 따르면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왔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왕에게 대접하기 위해 급하게 백성들이 먹던 젓국에 고급 음식 재료인 갈비를 넣어 끓였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몽골 침공 당시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왔을 때 만들어졌다는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 강화군청 홈페이지의 특산물 정보에 따르면 강화인삼, 강화새우젓, 강화섬쌀, 강화순무, 강화사자발약쑥, 강화속노랑고구마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 [[강화군|강화]] [[방언|사투리]] == 지리적으로 [[황해도]]와 가깝고 [[6.25 전쟁]] 때 [[황해도]] 출신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들이 많이 이주, 정착했다 보니 본래 강화 사투리는 전반적으로 [[황해 방언]]과 상당히 유사했다. 어미가 전형적인 황해도 방언의 특징인 -시다(평서), -시꺄(의문) 등으로 변하며 일부 자음 발음이 탈락되거나, 중모음의 발음이 세분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강화도의 인구가 줄어들고 표준말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등,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줄어든 바람에 고유한 표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상태이긴 하나 아직 중노년층들에게서 강화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황해도]]와 가까운 [[교동도]] 지역은 거의 [[황해 방언]]과 판박이다. == 경기도 재편입? == 2015년 5월 들어 지역 내에서 [[경기도]]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현재 방향은 독립보다는 [[김포시]] 편입을 원하고 있다. 강화도가 다리([[강화대교]]·[[초지대교]])를 통해 김포시와 연결돼 있다는 지리적 여건도 작용했다. [[경기도의회]]는 "강화군 경기도 환원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는 등 강화도를 경기도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으나, 인천시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강화군은 상위 [[광역자치단체]]를 바꿀 수 없다. 상위 광역자치단체가 바뀌는 [[행정구역 개편]]에는 해당 시/도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관광지 ==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던 [[마니산]]으로도 유명하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이 남아 있고 (물론 현재의 참성단은 [[고조선]] 그대로가 아니라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조선)|숙종]] 26)에 중수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유롭게 방문도 가능했지만, 훼손이 심해 출입을 통제했었으나 현재는 다시 개방중에 있다,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의 성화는 전통적으로 여기서 출발한다. 길상면 초지리 [[초지진]] 근처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지정, 보호하는 [[http://baqui-blue.tistory.com/467|매화마름군락지]](멸종위기 2급)가 있는데, 람사르 습지에 처음으로 등록된 논 습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매화마름논에는 [[물장군]](역시 멸종위기 2급)과 [[저어새]](천연기념물 252-1호)도 서식한다.[[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090000&newsId=20090623000032|#]]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몰락한 요주의 인물들이 귀양살이를 한 곳이지만, 현재 자세한 위치들은 알려져 있지 않다. 효종 ~ 숙종 대에 걸쳐 세워진 53개의 [[돈대]]들도 올레길 형식으로 관광지가 되고 있다. * [[강화산성]] * [[강화석수문]] * [[고인돌]] * [[정족산성]] * [[참성단]] * [[전등사]] * [[강화행궁]] * [[고려궁지]] * [[초지진]] * [[마니산]] * [[고려산]] * [[혈구산]] * [[용흥궁]] - [[철종(조선)|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곳으로 철종이 이 곳에 있던 당시에는 초가집이었으나, 왕이 된 이후 기와를 얹었다. * [[연미정(문화재)|연미정]] * [[황형 묘]] * [[황형 택지]] * 평화전망대 * 옥토끼우주센터 * 덕진진 * [[광성보]] * 함허동천 * [[갑곶돈대]] * 동막해변 * 강화갯벌센터 * [[강화성당]] * [[온수리성당]] * 강화 선원사 [[분류:인천광역시의 섬]][[분류:한국의 옛 수도]][[분류:강화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