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오르크 틴트너 (문서 편집) [목차] Georg Tintner(1917. 5. 22. - 1999. 11. 2.) == 개요 == [[브루크너]] 전문가로 유명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지휘자로 일생의 대부분을 반 무명으로 지냈지만 말년에 [[낙소스(기업)|낙소스]]와 계약하여 낸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 생애 == 게오르크 틴트너는 1917년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빈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유대인|유대계]] 소년으로서는 최초로 입단한 사례였다. 당시 합창단 감독은 [[안톤 브루크너]]의 제자--이자 스승의 곡을 제멋대로 개정하--였던 프란츠 샬크(Franz Schalk)였으며, 브루크너가 작곡한 미사곡을 부르기도 했다. 브루크너와의 인연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이후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여 빈 국민오페라 극장(Vienna Volksoper)의 보조 지휘자가 되었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해 보이던 청년 음악인 틴트너에게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았고,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오스트리아는 나치독일에 의해 병합되었다]]. 틴트너는 그 해,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났고, 1940년에 [[뉴질랜드]]에 정착하였다. 우여곡절도 많아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경찰이 독일 스파이로 오해하여 체포당하기도 했다고. 문제는 [[뉴질랜드]]가 클래식계에서는 촌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에르빈 슐호프(Erwin Schulhoff), 파벨 하스(Pavel Haas), 레온 예셀(Leon Jessel)과 같은 수많은 음악가들이 나치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물론 [[토스카니니]]처럼 [[미국]]으로 피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때에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후 수십년 동안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남아공]][* 남아공에서는 지휘자 자리를 1년만에 때려치웠는데,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따라 흑인의 연주회장 출입을 막은 데에 대한 항의였다.] 등 남반구 국가들의 교향악단, 그리고 [[캐나다]] [[노바스코샤]] 교향악단 등을 지휘하였다. 당연히 이 기간동안은 2류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도 있다. 한편으로 다양한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젊은 음악인들의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90년대, 브루크너 교향곡을 녹음할, 적당히 저렴하면서 적당히 실력있는 지휘자를 물색하던 [[낙소스(기업)|낙소스]]는 틴트너와 계약을 맺었다. 낙소스 경영자 클라우스 하이만(Klaus Heymann)은 틴트너를 보고 '브루크너를 지휘하기 딱 적합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틴트너는 낙소스 레이블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을 녹음, 발매하였다. 그리고 낙소스에서 발매된 틴트너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들은 히트를 치게 된다. 그전까지 낙소스는 저렴한 가격에 걸맞는 가성비 있는 음반을 생산해 내는 이미지였지만 틴트너의 브루크너를 계기로 메이저 음반사 못지 않은 퀄리티 있는 명연주도 나온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후 메이져급 음반사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낙소스에서 그의 브루크너가 발매되어 히트를 친 후 메이저 음반사에서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크너를 재녹음하자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틴트너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하스판으로 재녹음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는 등 많은 브루크네리안들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틴트너는 이미 너무 나이가 든 데다가 암에 걸려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끝에 1999년 11월 2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 시의 아파트 자택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 음반 == 가장 유명한 것은 [[낙소스(기업)|낙소스]]를 통해 나온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낙소스사의 특성상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음반에 비하면 반값도 안된다. CD 한 장에 만원이 안된다! 그러나 음반의 품질은 여타 메이저 레이블에 비하여 꿀리지 않는 편. 다만, 규모있는 메이저 교향악단이 아니다보니 약간 파워가 약한 느낌도 드는 듯. 참고로 음반의 영어 및 독일어 라이너 노트는 틴트너가 직접 쓴 것이다. 틴트너가 사망한 이후에는 낙소스에서 '틴트너 메모리얼 에디션'(Tintner Memorial Edition)을 발매했다. 브루크너 이외에 [[구스타프 말러]] 등을 지휘한 녹음을 디지털 다운로드를 통해서 구할 수도 있다. 낙소스 이외의 음반사로 나온 음반도 '잘 찾아보면' 있다. 대표적으로 Testament사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이 있으며 Phillips사에서 Canadian Brass를 지휘해 녹음한 음반도 발매된 적이 있으며, 영상도 존재한다. == 작곡 == [youtube(IV4H9UClJPM)] 게오르크 틴트너가 작곡한 [[푸가]] [[낙소스]]를 통해 틴트너가 작곡한 작품들이 음반으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잘 알려져있지 않다. [[분류:오스트리아의 작곡가]][[분류:오스트리아의 지휘자]][[분류:1917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빈 출신 인물]][[분류:오스트리아의 자살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