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길 (문서 편집) [[파일:external/kinimage.naver.net/ija_d060022a00.jpg]] [목차] == 개요 == 孔吉 생몰년도 미상 [[조선]] [[연산군]] 때의 [[광대]]. [[조선왕조실록]]에서 딱 한 번 언급된다. == 생애 == 공길은 궁궐에서 늙은 선비를 흉내내는 놀이를 하다가 '전하는 요, 순과 같은 임금이시고 저는 고요와 같은 신하인데, 요순은 항상 나오시는 성군이 아니지만 고요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신하입니다'라고 연산군을 띄워주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 [[논어]] 구절 중 하나인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란 말을 했다.[* 이는 공자가 한 군군신신부부자자와 많이 통한다.] 이를 자신이 임금답지 못하다고 놀리는 것으로 간주한 연산군은 공길에게 불경한 죄를 물어 [[곤장]]을 때린 후 [[귀양]]을 보냈다. 실록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고 그는 더 이상 역사의 무대에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왕의 남자]] 홍보 팜플렛에서는 이 기록을 한 줄로 요약해 적으면서 "배우 공길이 '왕이 왕 같지 않으니 쌀이 쌀 같지 않다'고 말했다가 '''[[참수]]되었다'''''라고 써 놓았다(...) 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고 신세 망친 대표적인 예로, 아니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 인물을 다룬 이 짧은 기록에 상상력을 부풀리고 부풀려서 결국 연극 <[[이#s-6.3|이]]>가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이준익]] 감독은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들었다. [[대장금]]과 비슷한 사례. [[KBS]] 스페셜에서는 그를 무용가 [[공옥진]] 여사의 조상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설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작 족보 연구가들은 --공갈치지마--'''글쎄올시다'''란 반응을 보이거나 거의 무관심하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천민이었던 광대 공길의 이름이 버젓이 조상이라고 족보에 올라 있을 리도 없거니와 천민 중에는 성씨가 없는 사람이 많았음을 감안하면 공길의 "공"도 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분류:조선 예술가]][[분류:몰년 미상]][[분류:조선의 유교 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