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권정생 (문서 편집) [[분류:권정생]] ||<-2> '''{{{+1 권정생}}}[br]權正生 | Kwon Jeong-saeng'''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komun.net/kjs00-2-suin.gif|width=100%]]}}} || || '''아명''' ||권경수[br]權慶秀|| ||<|2> '''출생''' ||[[1937년]] [[9월 10일]]|| ||[[일본 제국]] [[도쿄도]] [[시부야구]] 혼마치|| ||<|2> '''사망''' ||[[2007년]] [[5월 17일]] (향년 69세)|| ||[[대구광역시]] [[남구(대구광역시)|남구]] 대명동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 '''거주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안길 57-12[* 일직면 조탑리 1.]||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제국)](1937~1945)[br][include(틀:국기, 국명=미국)](1945~1948)[br][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1948~2007) || || '''직업''' ||동화작가|| || '''데뷔''' ||1969년, 동화 〈강아지 똥〉|| || '''학력''' ||[[일직초등학교|일직국민학교]] {{{-2 (졸업)}}}|| || '''종교'''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 생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 소재 일직교회의 집사였다. 결혼을 하지 않아 안수집사는 되지 못하고 평생 서리집사로 머물렀다. 교회에서는 호적상의 이름 권정생이 아닌 어렸을 때 불리던 '권경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만 개신교 신자임에도 기독교에서 믿는 [[여호와|유일신]]을 칭할 때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이라는 칭호를 썼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배타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또한 [[개신교/대한민국|우리나라 개신교]]가 [[개신교/논란|부패하는 광경]]과 교회가 들어서면서 [[서낭당]]같은 토속 종교 시설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 '''링크''' ||[[https://kcfc.or.kr/board/index.php|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동화 작가. == 사상 ==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이고, [[기독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로도 평가받는다. 다음은 그러한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시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일생 == [[일본 제국]]의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이 시절 만났던 이웃들의 모습이 소설 [[몽실 언니]]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귀국했다. 조선인연맹[* 재일본조선인연맹. [[1945년]] 일본에서 결성된 [[재일 조선인]] 단체로, 결성 시 좌익이 주도했기 때문에 [[1946년]] 재일한국인거류민단([[민단]])이 별도로 출범하는 계기가 된다. 재일본조선인연맹은 결국 [[연합군 점령하 일본|일본 점령통치]] 중이던 [[미군]] [[GHQ]]에 의해 해산당했다. 이후 일본 내에서 [[조총련]]이 비슷한 역할을 이어받았다.]에 가입해있던 친인척 둘은 나중에 뒤따라 오기로 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아 평생 생사를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연맹 출신은 사실상 조총련, 즉 [[북한]] 2중대 취급받았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대한민국]]으로의 입국 자체가 힘들었다. 특히나 [[1974년]] [[육영수]] 피살 사건 당시 [[문세광]]이 조총련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한국에서는 더더욱 [[악의 축]]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귀국 후에도 살림이 무척 어려워서 [[국민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또한 바로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임노동자 등의 궂은 일을 하며 성장했다. 19세 때 그는 폐병에 걸려서 [[항생제]]를 보급받기 위해 읍내 [[보건소]]를 찾아갔으나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아 허탕치는 날이 많았으며, 같이 폐병을 앓던 고향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병세는 점점 심해져서 폐결핵과 늑막염을 거쳐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인하여 온 몸이 망가져버려서 사람 구실을 못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평생 [[투석|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 부모님마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집도 없고 기댈 곳도 없어진 그는 [[1967년]] [[경상북도]] [[안동군]](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부속의 토담집에서 기거하며 종지기를 하게 되었다. 생활은 여전히 조악해서, [[여름]]이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 사이로 [[개구리]]가 들어와 울고, 겨울이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거나 옷속을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귀찮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나중에는 아랫목에 먹을 것을 두고 생쥐들을 기다릴만큼 정이 들었다고 한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교회 뒤편의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혼자 살며 꾸준히 창작을 했다. [[1981년]]작 [[몽실 언니]] 등의 베스트셀러를 쓰면서 수억원에 이르는 인세를 매년 받았으나, 정작 산골의 흙집에서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고, 옷도 단벌이어서, 이웃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사망 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과 그가 남긴 재산에 대해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90여편의 작품에서 들어오는 연간 인세 1억원과 10억원 자산이 있었고 유언에 따라 이를 굶는 어린이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사실 여기엔 어두운 뒷 이야기가 있다. [[출판사]]에서 지급한 권정생의 인세가 작가에게 [[횡령|전달되지 않고 중간에 사라진 것]]. 출판사와 권정생 사이에 있던 아무개가 착복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아무개는 "권정생은 워낙 순수한 사람이라 돈이 있어도 쓸 줄 몰라 주지 않았다"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금전에 무지한 권정생이 훗날 유언장에 유산에 관한 부분을 남기게 된 사연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연 선생께서 정말로 모르셨을까?[* 자전적 소설 열여섯 살의 겨울에서 보면 권정생은 시장에서 고구마 장수 밑에서 장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생각보다 수완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마 무게를 재는 저울을 가지고 사기를 쳐 가난한 사람에게 정가보다 더 비싸게 파는것을 보고는 장사를 그만두셨다고 한다. 이런 분이 과연 금전에 무지하셨을 지는 의문이다.] 사망 2년 전에 작성한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세례명]] 루도비코. [[2012년]] 사망.] [[신부(성직자)|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장례)|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췄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것은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그리고 타계 직전에 쓴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전쟁|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남북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티벳]] 어린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마지막 [[유언]]은 '''"어머니… 어머니 아아, 어머니…"'''였다고 한다.(권정생 위인전 참고) 현재 그의 재산은 유언에 따라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서 관리하며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에 사용되고 있다. [youtube(B8dOBfQQCU8)] 그리고 권정생 작가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나 사망원인이 [[결핵]]이 아니라 [[의료사고]]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1675.html|관련 기사]]) 방광 조영술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진행한 탓에 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 주요작품 == *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 훨훨 간다 (2003.4) * 사과나무밭 달님 * 슬픈 나막신 - 1930~1940년대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새벗문고에서 '꽃님[* 슬픈 나막신에서는 '하나코'.]과 아기양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바 있다. 처음 쓸 때는 1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아이들에게 차마 읽힐 수 없는 부분들을 삭제하다 보니 지금의 분량이 나왔다고 한다. * 하느님의 눈물 * 무명저고리와 엄마 * [[몽실 언니]] *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권정생 선생님의 종지기 시절에 모티브. *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바닷가 아이들 * 길 아저씨 손 아저씨 (2006. 2)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 짱구네 고추밭 소동 * 내가 살던 고향은 * 우리들의 하느님 - 2008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있는 책이다. 좌우 이념을 선동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자연과 벗하여 사는 가난한 삶에 관한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오르자, 독자 및 네티즌들은 "오히려 필독서를 권해줘서 고맙다", "국방부는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거냐? 독후감 좀 써봐라"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 [[엄마 까투리]] - 그의 '''[[유작]]'''. 애니메이션화도 되었다. * 랑랑별 때때롱 - 이 작품은 200 페이지가 넘는데 일본식 번역체인 "~의"를 단 3번만 사용한 일화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번역체 문장/일본어]] 참조. 그리고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되었다. * 한티재 하늘 - 지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완결을 내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출판은 2권까지 되어 있다. * 점득이네 * 열여섯 살의 겨울(수필형식의 소설, 수필에 가까움) * [[강아지똥]] == 어록 및 발언 == * 유언으로 북한 어린이들에게 "3천달러 상당의 우유를 지원하라"와 "지금껏 나의 재산은 모두 어린이들 덕분에 번 것이니, 나의 인세를 북한 어린이를 위해 전부 다 써달라"고 부탁했다. *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과 함께 미군 반대 구호를 외쳤다. * 2006년 [[한겨레]]와 인터뷰 당시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라고 말했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68507.html|#]] *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 관련 문서 == * [[작가/목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