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호 지방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기호지방([[畿]][[湖]][[地]][[方]])은 [[경기도]]와 [[충청도]](호서)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고려 시대에 이 두 지역은 같이 [[양광도]]에 속했다. 조선시대의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와 같은 구분, 일제강점기의 '기호파'와 '서북파' 같은 용례가 있다. == 상세 == [[서울특별시]] 중심으로 [[경기도]] 등의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지역과 차령산맥 남쪽에 있는 [[충청도]]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서울특별시|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과 충청도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기"의 "기"와 충청도 지방을 지칭하는 별칭인 "호서"의 "호" 한 글자씩을 따와 "기호"지방이라 한다. 분류에 따라 지리, 문화적으로 가까운 멸악 산맥 이남의 [[황해도]]를 기호 지방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실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기호 세력의 거두로 분류된 [[이승만]]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군]]이다. [[백두진]] 재무장관이 고향이 황해도라며 아꼈다는 일화도 있다.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218/view.do?nttId=10017645&menuNo=200147&pageIndex=2|#]] [[김구]]는 아예 국외로 망명하기 전에는 황해도에서 활동하였으나 기호파로 분류된다. 이승만은 어렸을 때 한양으로 이사를 갔으나 그 가문은 몰락한 이래로 황해도에 살았으며, [[이이(조선)|이이]]가 강릉에서 활동했지만 파주 출신으로 여겨지고 [[이회창]]도 태어난 곳은 황해도지만 충청도 사람으로 여겨지듯이 이승만도 마찬가지다. 양반 가문이기에 기호파가 되었던 것이고, 양반이 드문 지역 중 가장 세력이 큰 평안도가 서북파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 변천사 == [[삼국시대]]에는 [[한산주]](漢山州), [[한주]](漢州), [[한양]](漢陽)으로 불렸고, 고려 초기에는 [[양주시|양주]]라고 불렸으며, 고려 성종 때에는 [[10도]] 편성(十道 編成)으로 인해 경기 일대를 관내도(關內道)라고 부르고, [[공주시|공주]] 중심의 충청도 전역을 하남도(河南道)라고 불렀다. 고려 문종 때인 1058년에 다시 재편성하여 "경기"라는 행정구역이 창설되었는데 이 때의 경기는 지금의 [[개성시]] 근처였고, 조선시대에는 도읍지가 지금의 [[서울특별시]]인 한양으로 이전되면서, 조선 시대 이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측면에서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 출처: 기호일보(2015년 1월 26일자)] [[분류:지역지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