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숙(노동운동가) (문서 편집) [[분류:1960년 출생]][[분류:노동운동가]][[분류:여성운동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e0ffff 100%)" {{{#ffffff,#ffffff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br]{{{+1 김진숙}}}[br]Kim Jinsu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43425_77622_3026.jpg|width=100%]]}}} || ||<|2> '''출생''' ||[[1960년]] [[7월 7일]] ([age(1960-07-07)]세)|| ||[[경기도]] [[강화군]] || || '''직업''' ||용접공, [[노동운동|노동운동가]]|| || '''상훈''' ||박종철인권상 || || '''현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 || || '''경력''' ||[[대한조선공사]] 용접공 || || '''링크'''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jinsuk_85, 크기=24)] || [목차] [clearfix] == 개요 == >"화장실이 없어 어둔 구석을 찾아 현장을 뱅뱅 돌고 식당이 없어 쥐똥이 섞인 도시락을 먹으며 떨어져죽고 깔려죽고 끼어죽고 타죽는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그 사고보고서에 '본인 부주의'라고 지장을 찍어주고 내가 철판에 깔려 두 다리가 다 부러졌을 때도 '본인 부주의'에 누군가 또 지장을 찍어주며 산재처리를 피하던 현장. > >일이 너무 힘들고, 스물 다섯 살짜리가 사는 게 아무 희망이 없어 죽으려고 올라갔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1년간 더 살아보자고 내려와 노동조합을 알게 됐고, '''화장실이 없고 식당이 없으면 요구하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 유인물 몇 장에 불순분자 빨갱이가 되어 해고된 세월이 35년. 박창수도, 김주익도, 곽재규도, 최강서도 살아서 온전히 돌아가고 싶었던 곳. '''현장으로 돌아갈 마지막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 >청와대 앞 희망행진 마무리 집회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지지 않는.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 >37년만의 복직 행사 [[용접]]공 출신의 여성 노동운동가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이다. == 생애 == 어린 시절에는 보세공장에서 일하며, 신문배달, 버스안내양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HJ중공업]]의 전신인 (주)대한조선공사에 용접사로 일했다가 [[노동운동]]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당시 해고 무효 소송에서 패소했으나, [[2009년]]에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에서 [[한진중공업]]에 복직을 권고했으나 사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아직까지 김진숙보다 더 먼저 용접일을 한 것으로 확인된 여성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는 다소 애매한데, [[1971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한 여성 용접공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 단지 [[1971년]] 입사한 여성을 포함하여 누가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인지 [[자료]]나 [[증언]]이 확실하지 않다. 그 증거로 지난 [[2020년]] [[11월 8일]] 방영된 [[KBS]] 교양프로그램 [[다큐 3일]] '굳세어라! 그 시절 여자 기술자' 편에 대한조선공사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했던 황순란 씨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황 씨는 20년 근속 공로패를 보여주는데 입사한 해를 역산해 보면 김진숙이 입사한 [[1981년]]으로 같은 해다. 황순란 씨가 본인을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라 소개하지 않는 이유도 입사 당시 이미 선배 여성 용접공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조선중공업이 창립한 [[1937년]]부터 김 씨가 입사한 [[1981년]]까지 여성 용접공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조선업계에서는 [[6.25 전쟁]] 당시 남자들이 징집되어 여성들을 대체 용접공으로 투입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이러한 전후 사정에 비추어 보면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은 해방으로 조선중공업이 대한조선공사로 바뀐 [[1945년]]부터 [[6.25 전쟁]] 전후인 [[1950년대]] 사이에 근무했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2011년]]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 하자 이에 맞선 [[희망버스]] 등의 항의를 주도하고, 고공농성을 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노동운동]]으로 [[해고]]된 지 한참이 지난 '''노동자를 [[정년]] 직전에 복직시키거나 정년 이후에 명예복직시키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2022년]] [[2월 23일]] 복직에 합의했다. 정년이 복직 시점에서 이미 지난 관계로 [[2월 25일]] 복직과 동시에 [[명예퇴직]]했다. == 같이 보기 == * [[https://youtu.be/xbYstA3LGFU|다시보는 김진숙지도위원 김주익열사 추도사 (2003년)]] * [[https://youtu.be/xwsbT-ikCYg|트위터 @JINSUK_85 의 일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