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누메리아누스 (문서 편집) [[분류:로마 황제]][[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3세기 집정관]][[분류:암살된 인물]][[분류:284년 사망]][[분류:로마 제국의 고대 로마 다신교 신자]] [include(틀:역대 로마 황제)] || '''{{{#FCE774 누메리아누스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3세기)]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CE774,#FCE774 로마 제국 제42대 황제}}}[br]{{{#FCE774,#FCE774 {{{+1 누메리아누스}}}[br]NVMERIANVS}}}'''}}}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umerianusAntoninianus.jpg|width=100%]]}}} || || {{{#FCE774,#FCE774 '''이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br]Marcus Aurelius Numerius Numerianus Augustus || ||<|2> {{{#FCE774,#FCE774 '''출생'''}}} ||미상 || ||[[로마 제국]]|| ||<|2> {{{#FCE774,#FCE774 '''사망'''}}} ||284년 11월 || ||[[로마 제국]] [[에메사]] || ||<|2> {{{#FCE774,#FCE774 '''재위 기간'''}}} ||{{{#000 로마 황제}}} || ||[[283년]] [[8월]] ~ [[284년]] [[11월]] '''(1년 3개월)''' || || {{{#FCE774,#FCE774 '''전임자'''}}} ||[[카루스]] || || {{{#FCE774,#FCE774 '''후임자'''}}} ||[[디오클레티아누스]] || || {{{#FCE774,#FCE774 '''부모'''}}} ||[[아버지]] : [[카루스]] || || {{{#FCE774,#FCE774 '''종교'''}}}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군인 황제 시대]]의 로마 제국 42대 황제. 공식 이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Marcus Aurelius Numerius Numerianus Augustus). 로마 황제 [[카루스]]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283년부터 284년까지이며, 형인 [[카리누스]]와 공동 황제였다. == 생애 == === 황제가 되기 전 === 아버지는 [[프로부스]] 황제의 근위대장이자 후임 황제인 [[카루스]]이다. 형인 [[카리누스]]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연도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가 판노니아 남부의 시르미움 근처에서 배수로 공사 중, 폭동이 일어나 황제로 선포되고 난 이후에 즉위하면서 282년 카이사르에 임명되었다. 이때 카루스는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의 국방을 장남인 카리누스에게 맡겼고, 그는 라인 주둔 군대로 파견되었다. 동시에 누메리아누스는 아버지와 함께 남아 동방원정 준비를 했다. === 황제 즉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umerianusAntoninianus.jpg]] 형과 달리, 누메리아누스는 아버지와 함께 동방 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도나우 강]]을 넘어온 [[콰이족]]과 [[사르마티아족]]을 283년에 굴복시킨 뒤, 후방을 안정화시킨 상황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를 향해 나아갔다. 이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셀레우키아]]를 점령하였고, [[티그리스 강]]을 건너 [[크테시폰]]마저 장악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83년 여름인 8월, 아버지가 베일에 싸인 사건으로 죽자[* 사료들에 의하면 그가 머물던 막사에 번개가 떨어져 그곳에 머물던 카루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위대장이자 사돈인 아리우스 아페르(Arius Aper)의 손에 의해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정군은 당황하였고 로마군은 혼란에 빠졌다. 이후, 형인 카리누스는 로마 서부지역의 황제가, 누메리아누스는 동부지역의 황제가 되었다. === 의문의 죽음 === 다시 283년 여름으로 넘어가서, 로마와 사산 왕조 사이의 전쟁이 한창일 무렵 아버지 카루스가 갑자기 사망하자, 갑작스럽게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누메리아누스는 망연자실했다. 거기에다 새 황제는 원정길에서 최고사령관으로 맡아야 할 의무나, 다른 어떤 조치를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의욕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결국, 로마군은 철수를 결정했다. 군대를 이끌고 귀국하던 중, 눈병까지 걸린 누메리아누스였다. 이들 원정군은 그가 탄 마차를 에워싸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때 친위대장이자 장인인 아리우스 아페르(Arius Aper)는 새 황제가 병에 걸려 있으니 마차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284년 군대가 보스포루스 해협에 이르기 직전, 숙박 예정지에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누메리아누스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병사들과 경호대장 디오클레스(Diocles)[* 훗날 황제가 되어 [[디오클레티아누스]]로 개명했다.]는 황제가 탄 마차 안을 열었다. 이때 마차 안에서는 시체가 부패한 냄새가 났고, 커튼이 외부에서 마차를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다. 이어 침상 위에 칼에 찔린 뒤 죽은 채로 누워 있는 황제가 발견되었다. 경호대장 디오클레스는 즉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주둔지를 수색해 황제의 장인이자 친위대장 아페르를 황제 살해죄로 체포했다. 그는 아픈 황제를 대신해서 당시 군대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철수 중이어서 더욱 급박했기에 그는 즉시 체포되었다. 디오클레스와 로마 장군들은 아페르의 행적과 그가 이동 중 보여준 정황 등을 토대로 그를 체포한 것이다. 이유는 먼저 아페르만이 황제의 마차에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도 황제의 마차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거기에다 그는 누메리아누스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증언도 나왔다.[* 디오클레스(디오클레티아누스)가 누메리아누스 암살과 무관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정황상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누메리아누스를 암살한 증거도 없고 행적도 암살과 무관했다.] 군사회의를 통해 로마 동방원정군은 만장일치로 38세의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 디오클레스를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한 뒤 제위에 올렸다. 새 황제는 보라색 망토[* 황제의 상징.]를 입은 뒤, 누메리아누스 암살범과 자신이 무관함을 다시 선언했다. 이어 자신의 칼을 태양에 비추어 맹세를 한 뒤, 아페르를 황제 암살죄로 단칼에 베어 죽였다.[* 혹은 전 군대에게 연설을 한 뒤, 아페르에게 자결을 명했다고 한다.] == 인물됨 == 악습에 빠져 있었고 인망이 두텁지 않은 형 [[카리누스]]와 달랐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우 상냥하고 뛰어난 웅변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상당한 문학적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황실 친위대장인 아리우스 아페르의 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