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벌국 (문서 편집) [include(틀:진한의 국가)] [목차] == 개요 == 多伐國 [[원삼국시대]] [[진한]]([[경상도]]) 지역의 소국들 중 하나. 대구 지역에 위치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 위치 == 지금의 [[대구광역시]]의 옛 이름인 [[달구벌]] 등 여러 이름과 유사성이 있어 대구 땅에 있던 [[소국]]으로 보기도 하나,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쪽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후술할 비지국, 초팔국과 더불어서 망했다는 기사 덕분에 그 방향성으로 대구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구로 볼 경우, 다벌, 달구벌 등 조류 '닭'과 벌판을 나타내는 '벌'이 조합된 국명이며, 한편 동쪽의 경산 지역은 압독국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방향 명사 '앞' + '닭, 닭벌 앞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즉, 대구는 닭벌, 경산은 앞닭인 셈. 이름부터 양자간의 위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 대구 경산이 별 지형 지물 없이 인접해 있다는 점과 상통하고 있다[* 이처럼 원래 우리 지명에는 동식물, 지형 등 자연물에서 딴 이름이 많다. 당장 이 시기만해도 창녕의 빛벌(비사벌, 비자발, 비자화, 비화), 김해의 구야(동물 개 + 나라를 나타내는 '야' 어미), 고성의 곶재(바다를 향해 돌출된 지형을 나타내는 '곶' + 성, 나라, 도시의 우리 나라 말인 '잣' 또는 '재') 등등] == 역사 == 이처럼 다벌국은 경주 사로국이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될 땅이었다. 이미 [[음즙벌국]], [[실직국]], [[우시산국]] 등을 점령해 [[삼척]]부터 [[경주시|경주]]인근까지 지금의 [[경상도]] [[동해]]안 지역을 장악한 지 6년만인 신라([[사로국]]) [[파사 이사금]] 29년에 다시 영역 확장에 나선다. > 29년(108년) 여름 5월에 [[홍수]]가 나서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10도(十道)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 군사를 파견하여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쳐서 병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본기, 파사 이사금 같이 점령한 [[비지국]]과 [[초팔국]]의 위치를 봤을 때 다벌국은 사로국, 즉 경주에서 비지국과 초팔국 방면으로 쳐들어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덤으로(...) 털렸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먼저 복속한 [[압독국]]과는 대구 [[분지]] 지형으로 구분선 없이 이어져 있어 국경 안정 차원에서라도 복속시킬 필요가 있었겠지만. == [[역사고고학|고고학]]으로 본 다벌국 == 위에서 다벌국의 원래 음가는 닭벌, 인접한 압독국은 앞닭이라고 논하였다. 역사서로는 다벌국은 그저 대구 분지에 있던 나라로서, 신라의 거점이 된 것밖에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고고학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특히 기존에 발굴된 [[달성 고분군]]을 비롯하여 [[불로동 고분군]], [[구암동 고분군]], [[경산]]의 [[임당 고분군]] 등의 발굴과 더불어 [[형식학]], 통계학적 방법을 통해 각 지역별 토기 생산과 유통권을 알아냈고, 고분군 부장품의 위계, 토성의 분포 등으로 경산 지역 압독국과의 경계는 물론 대구 정치체 내부 구조, 읍락간의 상하 관계, 그리고 중심지 이동까지 아주 심층적으로 밝혀내었다. [[파일:압도크.jpg]] === 관련 문서 === * [[달성 고분군]] * [[구암동 고분군]] * [[불로동 고분군]] [[분류:삼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