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빙 (문서 편집) [include(틀:위서)] 文聘 생몰년도 미상 || [[파일:attachment/문빙/문빙동상재시도.jpg|width=100%]] || [[파일:attachment/문빙/삽화문빙재시도.jpg|width=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이며 [[자(이름)|자]]는 중업(仲業)으로 [[유표]] 수하 장수이자 [[위(삼국시대)|조위]]의 장수다. 형주 남양군 완현 출신. == [[삼국지(정사)|정사]] == 본래는 [[유표]] 휘하에 있었다. 주로 북방의 수비를 맡았으나 유표 사후 형주를 노린 [[조조]]가 남하하고 유표의 후계자, [[유종(삼국지)|유종]]이 항복하기로 하자 조조의 수하로 들어온다. 유종이 항복하러 갈 때 "제가 형주를 지키지 못했으니 여기서 죄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조조가 한수를 넘은 다음에야 조조의 수하가 되었는데, 이때 유표, 유종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유비]]는 장판파에서 도망 중이었는데 조조는 문빙에게 호표기를 맡겨 [[조순(후한)|조순]]과 함께 유비를 추격하는 임무를 맡긴다. 이때 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3백 리를 달려 유비를 따라잡아 공을 세운다. [[조조]]는 형주를 평정한 뒤 문빙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강하태수[* 장강에 접해 있는 국경지대인 강하를 맡긴 이유는 그가 수군의 비중이 상당히 컸던 유표군의 장수였기 때문에 장강 이북 출신이 많아 수전에는 약한 조조군 장수진 내에서 수군에 가장 능한 사람중 하나이며, 또한 투항해 온 형주의 수군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를 맡겼으며, 조조가 적벽에서 참패한 뒤 [[조인#s-1]]은 남군에서 [[주유(삼국지)|주유]]와 싸울 때 [[관우]]가 북상해 형주 북부를 침공했으나 문빙은 심구에서 [[악진]]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연수정후로 봉해지고 토역장군이 되었다. 또한 한진에서 관우군 수송대를 털은 적도 있다. 이를 비롯해 강하를 맡게 된 순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장강과 접해있는 오나라와의 국경 지대인 강하를 '''수 십 년간''' 막아낸 '''철벽 수문장'''. 손권이 [[이릉대전]]에서 유비로부터 승리를 거머쥔 지 얼마 안된 무렵, 위의 [[조비]]는 이를 틈타 [[손권]]을 [[조비의 남정|공격했으나 결국 패배하였는데]], 손권은 위나라에 반격을 가하여 5만 여 병력으로 강하를 포위했다. 하지만 [[순우]]의 복병에 넘어간 손권이 어처구니없는 삽질을 하게 되어 문빙은 대승을 거둔다. '위략'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성책이 무너졌음에도 백성들은 논밭일로 바빠 미처 성책을 보수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문빙은 되려 조용히 잠자코 있어서 상대로 하여금 의심케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곤 자기 자신도 집안에 드러누워 일어나질 않았다. 문빙의 계책대로 손권은 이에 의심을 품고 물러갔다고 한다.[* 다만, 본전과 맞지 않다고 배송지가 지적했다.] 또한 강하에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공경받았다고 한다. 군사면 군사, 정치면 정치 어디 한 군데 꿀리지 않는 올라운드형 장수다. [[황충]], [[감녕]]과 더불어 유표의 아래에 있었던 명장인데 감녕은 [[황조#s-3]]의 휘하에서 홀대받다 손권에게 귀순해버렸고, 황충[* 황충은 유표의 부하였을 때, 즉 [[유반]]과 함께 장사의 수비를 맡았을 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유표의 부하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은 대체로 한현의 부하로만 알려져 있어 유표의 부하로서는 문빙만 유명하다. == [[삼국지연의|연의]] == [[유표]] 밑에서의 대표적인 장수로 양양성을 지킨다. 채모가 유비를 죽이려고 할 때는 왕위와 함께 조운을 끌어내는 역할이 주어진다. 유표 사후에는 그의 아들인 [[유종(삼국지)|유종]]이 뒤를 잇자 그를 모신다. 당시 피신 중이던 [[유비]]와 백성들의 양양성 입성을 채모가 거부하자 분노한 [[위연]]이 반기를 들었으나, 문빙이 위연에 대항해 싸운다. 사시부터 미시까지 싸워도 판가름이 나지 않았으나 위연의 병사들이 흩어지자 위연은 문빙에게서 몸을 뺀 뒤 한현에게로 의탁했다. [[유종(삼국지)|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후, 조조는 유표의 옛 장수들을 불렀는데 문빙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려고 할 무렵 뒤늦게 나타나자 조조가 늦은 이유를 물었는데, 문빙은 주군의 땅을 지키지 못했다며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고, 조조는 문빙에게 충신이라며 감탄하고 문빙을 강하태수로 삼았다. [[유표]] 휘하에서 함께 세트를 이루었던 [[왕위]]는 투항 후 [[유종]]을 호위하다 [[우금]]에게 죽기 때문에 항장 중에선 유일하게 활약한다. 이후 [[장판 전투|장판파 전투]]에서 유비군을 추격했으나 [[유비]]가 문빙을 알아보고 주인을 저버린 역적이라 꾸짖자 부끄러워하며 그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채모]]나 [[장윤]]에 비하면 엄청난 개념인 기믹. 뒤이은 [[적벽대전]]에서 [[정욱]]이 [[황개]]의 화공을 간파하자 자신이 수중전에 능하다며 자진해 나서서 배를 막으려 하지만 어깨에 화살을 맞아 물에 떨어지는 봉변을 당한다. 그래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조조의 적벽 탈출 때에 뒤따르는 몇 안되는 장수 중에 하나이며 이후에도 형주에서 일어난 전투에 참전한다. 그러나 이후에서는 연의에서의 등장은 많지 않은데, 동작대 활쏘기 이벤트와 나중에 [[한중 공방전]]에 참여하고 [[모용열]]이라는 장군이 조운에게 죽을 때 그가 문빙의 부장이라는 기술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조비가 오나라를 침공하고 실패했을 때, 조비를 업고 후퇴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보통 연의에서 항장 출신 장수들은 일 대 일 대결에 동원되어서 사망하거나, 아니면 후반 스토리 비중이 높아서 살려두는데 문빙만은 특별히 활약시킬 것도 아니면서 왠지 어정쩡하게 살려두었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문빙/기타 창작물)]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조위의 인물]][[분류:몰년 미상]][[분류:난양시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문빙, d=2023-01-06 11:45:2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