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야자키 이치사다 (문서 편집) [[파일:宮崎市定.jpg]] [목차] == 개요 == 宮崎市定 1901~1995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동양사학자. [[나이토 토라지로]] 이래로 유물사관 중심의 관념적인 [[중국사]] 해석에 실증주의적인 연구로 맞선 교토학파의 중심인물로서 20세기 후반 일본 역사학계를 이끌었다. == 생애 == [[교토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1936년 [[파리(프랑스)|파리]]로 유학 가 [[아랍어]]를 공부했다. [[1944년]] 교토제국대학 교수로 취임해 [[1965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함부르크 대학, 루르 대학의 객원교수로 초빙되었다. [[1978년]] 프랑스 학사원으로부터 최고의 [[중국]] 관련 저술에 주어지는 스타니슬라스 쥘리앵 상을 수상했고 [[1989년]] [[일본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중국 사회, 경제, 제도사와 동서양 교섭사에 관한 수많은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겼고 [[서아시아]]와 [[유럽]]과의 비교사적 관점으로 중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해석을 보여줬다. 공산 혁명 이후 [[중국]]과 일본의 국교가 단절되었던 시절 중국에서 〈미야자키 이치사다 논문 선집〉이 소수의 당 간부와 학자들을 대상으로 내부 회람용으로 출간되어 연구되기도 했다. 미야자키의 연구는 동양사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고 참조되는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시바 료타로]], [[마쓰모토 세이초]]를 비롯한 많은 역사소설 작가들도 집필에 미야자키의 저작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의 저작중 『중국통사』가 볼만한데, 대학자만이 쓸 수 있는 중국통사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교토대학을 정년퇴직한 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저술한 중국사 개설서이다. 중국사는 물론이고 동서양의 역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박람강기를 바탕에 놓고 마치 에세이를 쓰듯이 쉽고 재미있게 중국사 전반을 서술하고 있다. 비교역사학적 관점과 옛 문헌의 기록에 근거해 [[춘추전국시대]] 이전 도시국가의 실태를 밝히는 탁견을 비롯해 영토국가 단계에서 기마전술의 도입을 통해 제국 건설로 이어지는 고대사의 발전 과정, 제국의 붕괴 뒤 북방 민족의 중국 진출과 분열 경향의 심화로 대동란에 휩싸이는 중세 시대, 송대에서 시작하는 중국 르네상스의 다양한 면모와 중화주의의 싹이 최근세의 서유럽 문명과 마주치면서 새로운 도전을 맞는 중국사의 전 과정을 대학자의 깊이 있는 안목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 저서 == 아래 저서 외 다수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작 중 많은 것이 번역 소개되었다. *『중국통사』 *『아시아사 개설』 *『[[옹정제]]』 *『과거』 *『[[수양제]]』 *『대당제국』[* 한국에는 <중국중세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수호전]]: 허구 속 사실』, 『[[사기(역사책)|사기]]를 말하다』 *『[[구품관인법]] 연구』 *『아시아사론』 *『[[논어]]의 신연구』 *『자발집: 동양사학 70년』 *『중국사의 명군과 재상』 *『미야자키 이치사다 전집(宮崎市定全集)』(전24권, 별권1)이 [[1991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간행되었다. [[분류: 일본의 역사학자]] [[분류: 중국사학자]] [[분류:인문과학 교수]] [[분류:1901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이야마시 출신 인물]] [[분류:교토대학 출신]][[분류:일본 문화공로자]][[분류:종3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