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레시안 (문서 편집) [Include(틀:아일랜드 신화사)] [목차] ==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민족 == {{{+2 Milesian}}} [[투어허 데 다넌]] 족을 물리치고 [[에린]]에 6번째로 도래한 민족. [[11세기]] 문헌 [[에린 침략의 서]]에 그 전설이 전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게일인이 본인의 진짜 [[조상]]인 [[켈트족]]이 [[드루이드|비기독 다신교 신앙]]을 믿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조상'''이다. 또한 해당 역사서의 마지막 켈트족 [[최초]][[신화]]이기도 하다. 사실 "밀레시안"이란 "밀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삼촌(밀과 형제) 이흐가 투어허 데 다넌에게 살해되자 복수를 위해 에린으로 쳐들어온 "밀의 아들들"만이 정확한 의미에서 밀레시안에 해당한다. 문헌상에서 전하는 그들 민족의 정확한 이름은 '''고이델(Goidels)'''. 그냥 [[게일인]]과 같은 민족이다. 말하자면 쳐들어간 민족은 게일인, 그들을 지휘한 지도 세력이 밀레시안이라는 설정이다. "밀레시안의 후손이 게일인"이라는 설명은 옳지 않다. 민족명은 에린에 쳐들어가기 전부터 고이델-게일인이었다. [[노아]]의 아들들 중 [[야벳]]의 후손인 [[스카티아]]의 왕 페누스 파르사드(Fénius Farsaid)가 고이델인의 시조라고 한다. 페누스의 아들 넬(Nel)은 이집트 [[파라오]]의 왕녀 [[스코타]](Scota)와 결혼해서 기델(Goídel)을 낳았다. 이후 [[바벨탑]]이 무너지고 언어의 혼란이 벌어지자 기델은 72개 언어들로부터 좋은 점만 골라 새 언어인 기델어, 즉 고이델어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고이델인이 비롯되었다.[* 7세기에 쓰여진 『학자의 지침서』에서는 페누스의 손자 기델이 아니라 기델 막 에헤르라는 학자가 페누스의 명을 받고 고이델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오검 문자]]도 이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출애굽기|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떠난 것]]과 같은 시기에 고이델인들은 이집트를 떠나 [[스키타이]] 땅으로 갔다가, 이후 440년을 더 지구상을 방황했다. 기델의 후손 브로간(Breogán)의 아들 갈람(Galam)은 스키타이와 이집트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다가 자기 후손이 서쪽 땅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서쪽으로 갔고, 그들 무리는 [[이베리아 반도|히스파니아]]를 정복하여 갈람은 "히스파니아의 전사"라는 뜻의 [[밀 에스파너]](Míl Espáine)[* 라틴어로는 밀레스 히스파니아이(라틴어: Miles Hispaniae)]라고 불리게 되었다. 갈람=밀은 히스파니아에서 죽고, 브로간이 오늘날의 [[갈리시아]] 지방에 "브리간티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높은 탑을 지었다. 브로간의 아들이며 밀의 형제인 이흐(Íth)가 그 탑에 올라갔다가, [[아일랜드 섬|바다 건너에 땅]]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린 침략의 서는 여기까지 게일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시계를 한참 전으로 돌려서 [[카사르]]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카사르 - [[파르홀론]] - [[네메드]] - [[피르 볼그]] - [[투어허 데 다넌]]의 집권까지 다룬 한참 뒤에 다시 게일인들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발견한 땅에 건너간 이흐는 선주민족 투어허 데 다넌의 세 왕[* 에후르 막 쿠일・테후르 막 케크트・케후르 막 그레네]을 만나 환대를 받지만,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한다. 밀의 아홉 아들들, 즉 "밀레시안"들은 삼촌의 복수를 위해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간다. 그들은 투어허 데 다넌의 수도로 향하는 길에 투어허 데 다넌의 세 왕비[* [[에리우와 자매들|반바・포들라・에리우]]]를 만난다. 세 왕비들은 이 땅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이면 축복이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게일인들의 음유시인 아메르긴(Amergin)이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 중 에리우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알려진 [[에린]], [[아일랜드]]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즉 밀레시안이 쳐들어오기 전까지 이 땅에는 "에린"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것이다.] 투어허 데 다넌의 세 왕은 수도까지 몰려온 게일인들에게 3일간의 휴전을 제안한다. 휴전을 승낙한 게일인들이 바다로 나가자 투어허 데 다넌은 약속을 어기고 강풍을 소환해 게일인들의 배들을 침몰시키려 한다. 하지만 아메르긴이 주술적 노래를 불러 바람을 가라앉히고, 다시 섬에 상륙한 게일인들은 투어허 데 다넌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배민족이 된다. 투어허 데 다넌은 바다 건너의 환상섬[* 히브라실 또는 [[티르 너 노그]].]이나 지하세계로 쫓겨난다. 에린 곳곳에 산재한 고분("시")들이 지하세계로 통하는 통로였기에 그들은 "고분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스시]]라고 불리게 된다.[* 아일랜드에는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보다 오래된 석기시대의 거대 고분들이 많이 있는데, 켈트족이 유입되기 전부터 있던 것이라 누가 세운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암흑시대 이후 그리스인들이 [[미케네 문명]]의 건축물을 거인들의 소행으로 돌렸듯이 중세 게일인들은 이 고분들을 요정족의 소행으로 돌렸던 것이다.] 밀레시안 중 [[에레원]]이 에린 섬의 북쪽 절반을, [[에베르 핀]]이 남쪽 절반을 분할해서 다스렸다. 투어허 데 다넌의 수도를 계속 수도로 사용한 에레원은 아내 테아(Tea)가 죽자 수도에 아내의 이름을 붙여 타라(Tara)라고 했다. 1년 뒤, 에베르 핀이 절반의 영토에 만족하지 못하고 형에게 싸움을 걸어 죽고 에레원이 [[아르드리|에린 전체의 왕(아르드리)]]이 되었다. 에레원이 10여년을 다스린 뒤 죽자 전처 오드바(Odba)의 소생인 밈네, 리그네, 라그네(Muimne, Luigne, Laigne)가 공동으로 아르드리가 되었다. 3형제 중 밈네가 먼저 역병으로 죽고, 3년만에 그들의 사촌이자 에베르 핀의 아들들인 에르, 오르바, 페론, 페르그나(Ér, Orba, Ferón, Fergna)가 리그네와 라그네를 죽이고 아르드리가 되었다. 하지만 1년을 못 채우고 에레원과 테아의 아들 이리얼 파드(Irial Fáid)가 그들을 죽이고 아르드리가 되었다. 이리얼 파드는 10년을 다스린 뒤 아들 에흐리엘(Ethriel)에게 양위했다. 에흐리엘은 20년을 다스리다가 에베르 핀의 막내아들 콘말(Conmáel)에게 죽었다. 에흐리엘은 투어허 데 다넌을 몰아낼 때 에린에 도래한 "밀레시안"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고, 콘말 이후의 아르드리들은 에린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로 구성된다. 콘말은 30년 동안 에레원계와 25번을 싸운 끝에 에흐리엘의 아들 티게른마스(Tigernmas)에게 죽었다. 티게른마스는 에베르계와 27번을 싸워 에베르계를 완전히 멸족시키고, 77년을 다스린 뒤 [[크롬 크루어히]] 신을 숭배하던 도중 인구의 4분의 3과 함께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았다. 이후 7년간 아르드리 왕좌가 공석이다가, 밀 에스파너의 조카이자 이흐의 아들인 루가드의 후손 오하드(Eochaid)가 왕위에 올랐다. == 밀레시안 신화의 해석 == 아일랜드 신화의 다른 요소들([[투어허 데 다넌]] 이야기나 [[쿠 훌린]], [[핀 막 쿨]] 등 영웅들의 이야기들)에 비해 밀레시안 도래 신화는 상당히 뜬금없는 편이다. 대양 건너 이베리아반도에서 섬을 발견해 건너왔다는 부분부터 이상하다. 못 건너왔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아일랜드섬에서 가장 가까운 땅은 옆의 브리튼섬, 그리고 거기서 한번 더 건너간 [[프랑스]] 해안이다. [[켈트족]]이 [[동유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갈리아(프랑스) → 브리튼 → [[아일랜드]] 순서로 넘어간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신석기 시대에 [[이베리아인]]이 이베리아에서 브리튼 제도로 넘어왔다는 학설이 있지만, 이베리아족은 켈트족에게 밀려나 사라졌고, 밀레시안은 켈트족이다. 이베리아족이 아일랜드에 넘어왔다 하더라도 밀레시안 포지션이 아니라 투어허 데 다넌 포지션이다. 하지만 투어허 데 다넌은 대륙의 켈트족이 믿던 신들과 교차해서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켈트족의 신이 맞고, 이베리아족이 투어허 데 다넌일 리는 없다. 순전히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밀레시안 신화가 기록된 『에린 침략의 서』는 순수한 켈트 신화 기록서가 아니다. 이 책은 옆동네 [[웨일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와 같은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즉, 당대 아일랜드의 지식인이었던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민족인 [[게일인]]이 성경의 선민종족인 히브리인이나 유럽 세계의 정통성을 가진 로마인들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목적으로 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고대의 켈트족이 신으로 모셨을 것이라 추측되는 존재들인 [[투어허 데 다넌]]은 게일인들의 조상으로 설정된 밀레시안에게 패배해서 밀려난 이민족으로 격하되었다. 일부 역사가들이나 [[연구자]]들은 처음 멸족이 된 [[이베리아인]]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게일인이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설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3가지 설명이 존재한다.[* Carey, John. "Did the Irish Come from Spain? The Legend of the Milesians", History Ireland (Autumn 2001), pp.8–11.] 해당 게일인은 이베리아인이 아니다. 첫째, 이베리아의 라틴어 이름 "히스파니아"가 아일랜드의 라틴어 이름 "히베르니아"와, 그리고 이베리아의 "[[갈리시아]]" 지방의 이름이 "게일"이라는 민족 이름과 우연히 비슷했다는 점이다. 근현대 한국의 [[환빠]]들이 그러하듯이, 중세 역사학자들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기독교적으로 유구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발음상의 유사성만 가지고 단정을 내리곤 했다. 둘째, 이들 유사역사학자들은 고대말 중세초의 [[파울루스 오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이시도루스 히스팔렌시스 등 고명한 [[주교]], [[교부]]들이 작성한 유사역사서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세비야 대주교였던 이시도루스 히스팔렌시스는 수에비, 서고트, 반달 등 온갖 이민족들이 할거한 이베리아를 "모든 종족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래서 게일인 유사역사학자들도 자기 조상들 역시 거기서 건너왔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원인일텐데, 파울루스 오로시우스, [[타키투스]] 등이 아일랜드섬의 위치를 이베리아와 브리타니아 사이에 있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아일랜드와 이베리아 사이가 그렇게 멀지 않다고 착각했고, 원양항해를 할 동기도 능력도 없었던 중세인들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종합적으로, 밀레시안 신화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켈트 신화]]가 아니고, 중세에 게일인들의 민족적 자존감과 게일인 왕들의 권력을 위해 창조된 '''기독교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옆동네의 [[아서왕]] 신화가 그렇듯이, 19세기까지 진짜 역사처럼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Ó hÓgáin, Dáithí (1991). Myth, Legend & Romance: An encyclopaedia of the Irish folk tradition. Prentice Hall Press. 296–297] 여러모로 밀레시안 신화는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고 지배자의 정통성을 윤색하기 위해 날조된 정치적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것으로 일본 [[기기신화]]가 있다. 예컨대 에레원과 에베르 핀이 섬을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은 7-8세기에 아일랜드의 왕도가 북쪽의 타라(전통적인 수도)와 남쪽의 카러그 파드러그([[먼스터]]의 수도)로 양분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화였다. 중세 아일랜드의 게일인 군주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투아하 데 다난을 몰아내고 아일랜드를 정복한 밀레시안들로부터 찾았다. 심지어 16세기부터는 [[에드먼드 캠피언]], [[에드먼드 스펜서]] 등 잉글랜드인들이 [[진구 황후|영국의 아일랜드 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밀레시안 신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니들도 아일랜드 섬을 침략한 수많은 민족 중 하나니 우리도 침략하겠다'라는 논리(...).[* Andrew Hadfield, "Briton and Scythian: Tudor representations of Irish origins", Irish Historical Studies 28 (1993) pp. 390–395.] == 한국의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의 [[플레이어]] 종족을 지칭하는 단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밀레시안(마비노기))] [각주] [[분류:아일랜드 신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