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일남 (문서 편집) ||<-2> '''{{{+1 박일남}}}[br]Park Ilnam | 朴一男'''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가수박일남.jpg|width=100%]]}}} || || '''본명''' ||박판용 || ||<|2> '''출생''' ||[[1939년]][* 대학에 입학한 해가 1958년이다. 일자는 불명이나 [[음력]] 6월에 태어났다고만 짤막하게 알려져 있다.] ([age(1939-01-01)]세)||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기장면]] [[송정동(해운대구)|송정리]][br](現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해운대구)|송정동]]) || || '''국적''' ||[include(틀:국기,국명=대한민국)]|| || '''본관''' ||울산 박씨(蔚山 朴氏)|| || '''가족''' ||배우자, 딸 3명 아들 1명[* 조두진, “[[https://news.imaeil.com/page/view/2008012414483743864|세월의 실력을 보여주마…'갈대의 순정'가수 박일남]]” ''[[매일신문]]'', 2008년 1월 24일.]|| || '''신체''' ||175cm[* 현재는 노화로 인해서 172~173cm로 줄은 것 같다. 그래도 당시가 [[일제강점기]]였던 시대를 감안하면 매우 큰 편에 속하며, 현재 기준으로 180cm 이상 되는 키로 볼 수가 있다.], 83kg, [[A형]]|| || '''소속''' ||김앤리엔터테인먼트|| || '''학력''' ||[[동국대학교]] {{{-2 (졸업 / 58학번)}}}|| || '''종교''' ||[[불교]] → [[개신교]]|| ||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병 205기)|| || '''데뷔''' ||[[1963년]] '갈대의 순정'||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원로 가수. == 가수 활동 == 1963년에 '갈대의 순정'으로 데뷔하자마자 당시 30만장이라는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국민가수 톱스타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성격 때문에 여러 차례 싸움에 휘말리며 세 번의 수감 생활과 6년간의 수배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요계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잦은 폭행 사건으로 건달 가수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까지 찍혔다.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과 제11대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 특징 == 박일남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이라면 대한민국 남자 [[육성]] 중에 가장 적은 [[베이스]] 성종을 가졌기 때문에 역시 [[저음]]이 최고의 장점이다. [[-1옥타브]]의 음을 보컬 프라이 없이 깨끗한 진성으로 다루는 그의 [[음역]]은 베이스 중에서도 매우 드물 정도로 낮다. [[https://www.youtube.com/watch?v=K-x4QEX0oA8|이 영상]]에서, 박일남의 동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2초쯤에서 '''-1옥타브 라♯(A♯1)'''을 진성으로 내며, [[https://www.youtube.com/watch?v=U-pA-Gb9SLE|이 영상]]에서도 46초쯤에서 '''-1옥타브 라♯(A♯1)'''을 진성으로 낸다. == 논란 == === 폭행 사건 === 1974년 3월 25일, 배우 [[하명중]]을 구타하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제명된 적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40300209205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4-03&officeId=00020&pageNo=5&printNo=17688&publishType=00020|있다]]. === 두 번의 사기 사건 === 1984년에는 가수협회장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가수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였으나, 시공도 하지 않아 사기죄로 피소되었다.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수]]들을 모아 구로구 주민 위문 공연을 하였다. 가수 공연을 본 선량한 시민들이 사기에 많이 속아 돈을 갈취당하였다. 1988년에도 연예인 아파트 설립을 추진한다고 사기행각을 벌였다. == 여담 == * 병역 또한 해병대를 다녀왔고, 여러 사건사고에 많이 휘말리다 보니 싸움꾼 이미지가 굳어졌으며, 스스로도 '나는 젊을 적에 [[복싱]], [[태권도]], [[레슬링]] 등 운동을 배웠기 때문에 한때 나에게 1대1로 붙으면 상대가 안 됐다'라고 말할 정도로 싸움에 능했다. 파티에 참석을 제안받았으나 박일남이 거절하자 건장한 사람 두 명이 강제로 죄수 호송하듯 박일남의 양팔을 꽉 끌어안고 차에 태워서 데려간 일이 있었는데, 차에 탄 뒤 전말을 알게 된 박일남은 그 상태에서 '다 부숴버렸다'고 한다. * 박일남과 [[남진]]은 해병대 실무에서 같이 군생활을 함께 한 선/후임 관계로 알려졌다. 특히 박일남은 해병대 군 생활 당시 본인보다 한 기수 높은 선임이었던 남진에게 몇 번 맞았다고 말했다. 박일남은 "허리를 잘못 맞아서 지금도 비만 오면 시큰시큰하다."라고 말해 남진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단 박일남은 1939년생이고 남진은 1945년생이므로 나이 자체는 박일남이 더 많아서, 지금은 남진이 박일남을 '형님'이라고 부른다. * 연예계 대선배인 [[송해]]와도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데, 박일남이 직전 [[예능 프로그램]]인 [[도전천곡]]에 출연했을 때 직접 한 말인데, 박일남이 이미 연예계의 건달로 유명할 때 송해가 이 사건을 접한 후 건방지다며 박일남의 뺨을 후려쳤다고 한다. 그 사람 좋은 송해조차도 직접적으로 손찌검을 했을 정도면 박일남의 인격이 얼마나 [[개차반#s-1|개차반]]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 2023년 근황이 공개됐는데, 농가에 일손을 보태는 등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중이다. [[https://www.news1.kr/articles/?5180130|#]] [[분류:한국 남가수]][[분류:트로트 가수]][[분류:1939년 출생]][[분류:해운대구 출신 인물]][[분류:울산 박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동국대학교 출신]][[분류:1963년 데뷔]][[분류:해병대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