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련사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언급된 3개의 절 모두 白蓮寺로 표기한다. == [[전라남도]] [[강진군]]에 위치한 절 == [[http://www.baekryunsa.net|공식 웹사이트]]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있는 [[절(불교)|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말기인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 때부터 백련사라고 불렀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렀다.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 [[무신정권]] 시대에 원묘국사 [[요세]](了世)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요세는 고려 후기 불교 정화 운동으로서 백련결사라는 신행 단체를 결성하였다. 다만 백련결사가 연구하고 설파한 내용은 관련 자료가 현재까지 전해진 게 없어 파악할 수 없다. 절 입구에 [[동백나무]] 군락이 유명하며 어느정도 올라오면 강진[[만(지리)|만]]이 보이며, 인근에는 [[다산초당]]이 있는데 이 절과 이어지는 오솔길이 만덕산 안에 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이 절에 있던 혜장 스님과 친하게 교류하면서 이 길을 자주 오갔다고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 편에 소개되어 있다. 유홍준의 표현에 따르면 일주문이 아닌 만경루가 우뚝 서서 자리잡다 보니 백련사 절집은 오만할 정도로 불친절한 분위기를 연출한단다. 그렇다고 유홍준이 백련사를 폄하하는 건 아니고 백련사 특유의 배경과 연관해서 풀이한 표현이다. [[파일:손학규 만덕산 백련사.jpg]] 여담으로 [[손학규]]가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패배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2014년]] 8월부터 [[2016년]] 10월 정계복귀까지 2년 2개월을 이 절의 뒤에 있던 작은 흙집에서 지냈다. 2023년 6월 26일 대웅보전이 [[대한민국의 보물|보물]]로 지정되었다. == [[전라북도]] [[무주군]]에 위치한 절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에 위치한 절이며, [[남북국시대]] [[흥덕왕]] 5년 시기(830년)에 무염국사(無染國師)라는 승려가 건립하였다. [[6.25 전쟁]] 시기에 포격으로 전소되었으나, 1962년부터 복원 작업에 돌입하여 현재는 완전히 복구된 상태다. 구천동 계곡에서 시작해 백련사를 지나 덕유산 향적봉(1614m)까지 등산할 수 있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절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절이며 인근에 [[명지대학교]]가 있다. [[분류:대한불교조계종 말사]] [[분류: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분류: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분류:한국의 절]][[분류:강진군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