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치아 도제 (문서 편집) || [[베네토어]] ||Doxe de Venexia || [목차] == 개요 == 베네치아 [[도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공직으로, 공화국의 원수이자 정부수반이었다. 베네치아 도제 부인의 칭호는 도가레사(dogaressa)이다. == 선출과 임기 ==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체제는 유력 가문들 간의 [[집단지도체제]]였으며 그들의 투표를 통해 지도자인 도제를 선출했다. 일단 선출된 도제의 임기는 종신이었다. 하지만 실제 국가 최고 권력은 도제와 그 보좌관 6인, 그리고 임기 1년의 위원 10명으로 구성되는 10인 위원회에 있었으며 도제도 10인 위원회 내에서는 다른 위원들과 동등하게 단 1표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제55대 도제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6%AC%EB%85%B8_%ED%8C%94%EB%A6%AC%EC%97%90%EB%A1%9C|마리노 팔리에로]]는 독재자를 꿈꾸며 1355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10인 위원회에게 체포되어 사형당하고 [[기록말살형]]을 당한 일이 있다. == 외교 == 베네치아 도제는 [[동로마 제국]]의 봉신으로서 [[달마티아]] 공작을 겸하고 있었다. 실제로 8~11세기까지 베네치아는 명실상부한 동로마의 봉신국였으나, [[11세기]] 이후 [[아랍]]과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남이탈리아의 동로마 거점들이 무너지자 베네치아는 명목상의 봉신으로만 남게 되었고 1082년 [[알렉시오스 1세]]에게 [[금인칙서]]를 받아 사실상 독립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지위는 베네치아가 [[교황령]]과 [[신성 로마 제국]] 등의 서유럽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종교적 독립을 지키는 적당한 명분은 될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강력한 상업을 통해 이룬 재력 및 군사력과 서유럽 최고의 외교력으로 이것을 충분히 활용했다. 다만 이런 체제는 베네치아가 국가의 규모를 키우지 못하고 결국 강대국들의 등쌀에 밀려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외부 혼란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성장 동력의 고갈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의전 == || [[파일:Ritratto_del_Doge_Andrea_Gritti_-_Tiziano_059.jpg]] || || 코르노 두칼레와 도제 예복을 착용한 제77대 도제 안드레아 그리티 || 정치적으로는 집단지도체제를 택했으나 그래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종신직 국가원수로써 다른 나라의 군주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나라 군주들과 같은 [[담비]] 모피의 화려한 예복을 착용하고, '코르노 두칼레(corno ducale, 도제의 뿔)'이라는 왕관을 공식 행사에서는 착용하였다. == 역대 베네치아 도제 == [include(틀:역대 베네치아 도제)] [[https://ko.m.wikipedia.org/wiki/%EB%B2%A0%EB%84%A4%EC%B9%98%EC%95%84_%EA%B3%B5%ED%99%94%EA%B5%AD%EC%9D%98_%EB%8F%84%EC%A0%9C_%EB%AA%A9%EB%A1%9D|참고]]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베네치아 공화국, version=105, title2=도제, version2=82)] [[분류:베네치아 도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