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벽하원군 (문서 편집) [[분류:중국 신화]][[분류:산의 신]][[분류:선인]]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던전 앤 파이터의 직업 무녀의 2차 각성명, rd1=무녀(던전 앤 파이터))] [include(틀:중국의 제군)] ||<-2> '''북송 추존 진군[br]{{{+1 碧霞元君 | 벽하원군}}}''' || ||<|2> '''출생''' ||[[4월 18일]] || ||[[태산]] || || '''봉호''' ||동악태산천선옥녀벽하원군[br](東岳泰山天仙玉女碧霞元君) || || '''부황''' ||[[동악대제]] || || '''절일''' ||[[4월 15일]] ~ 4월 18일 (4일) || || '''이명''' ||천선옥녀(天仙玉女) [br] 태산노모(太山老母) [br]태산성모(泰山聖母) [br] 태산내내(太山奶奶) [br] 태산낭랑(泰山娘娘)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신화]]에서 [[태산]]에 거하는 [[여신]] 혹은 [[선녀|여선]](女仙). 호칭도 많아서 천선옥녀(天仙玉女), 태산노모(太山老母), 태산성모(泰山聖母), 태산내내(太山奶奶)[* 태산 할머니라는 뜻이다.]라고도 부르며, [[한국]]에서는 '''태산낭랑'''(泰山娘娘), 태산할미라고도 부른다. 11세기 초, [[중국]]에서 [[북송]]의 [[송진종|진종]]이 이 여신을 봉하여 '''동악태산천선옥녀벽하원군(東岳泰山天仙玉女碧霞元君)'''이라고 했는데, 이후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이 여신을 가리키는 가장 표준적인 호칭이 벽하원군이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천선낭랑(天仙娘娘)'''이란 호칭이 통용되어 일본의 [[게임]], [[만화]] 등 [[서브컬처]]계에서 이 여신은 천선낭랑(天仙娘々)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영향으로 본 문서도 천선낭랑이란 이름으로 개설되었으나 벽하원군으로 이동되었다. 중국의 전설에서는 벽하원군의 생일이 음력 4월 18일이라고 하므로, 이 날이 되면 태산이나 벽하원군 사당에서 성대하게 제사를 거행한다. 음력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에 걸쳐 묘회(廟會)라 하여 성대하게 기리기도 한다. == 상세 == 벽하원군은 중국의 고유한 여신들을 믿는 낭랑 신앙이 산악 신앙과 결부되어 나타났다고 추정한다. [[중국]] 화북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 신화에서 가장 높은 여신인 [[서왕모]]를 넘는 듯이 대우하여, 안광낭랑, 송자낭랑 등을 제치고 [[마조|마조낭랑]]과 함께 낭랑신들 중에서 영향력이 가장 강하다.[* 왕모낭랑이라고도 불리는 서왕모를 낭랑신에서 제외할 경우.] 벽하원군은 [[결혼]], [[출산]], 액막이, 출세를 비롯해 여성의 수호신으로 깊이 숭배받는다. 오악 중 으뜸이라는 태산을 특별하게 여김은 고래로부터 뿌리 깊어서 기원전 3세기 [[진시황]] 이래로 중국의 [[황제]]들은 태산에서 [[봉선]]이라는 제사의례를 거행했다. 17세기 [[명나라]] 때 나온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북송]]의 [[송진종|진종]]이 봉선을 치르려는데 옥녀지(玉女池)라는 연못에서 손을 씻자 돌연 돌로 된 석상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송진종]]은 이를 보고 [[옥]]으로 옥녀상을 다시 조각하라 명령하고 사당을 세워 소진사(昭眞祠)라 이름하였는데 이때가 1009년이었다. 소진사가 나중에 이름을 벽하사(碧霞祠)라 바꾸어 태산 꼭대기로 이동하자, 소진사의 옛 터는 태산에 행차한 황제들이 석각을 남기는 곳이 되었다.[* 대관봉에 있는데 흔히 태산석각(泰山石刻), 혹은 당마애(唐摩崖)라 불린다.] 중국학계는 태산에 원래 옥녀 신앙이 있었는데, 이것이 벽하원군 신앙의 전신이라고 추정한다.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벽하원군이 태산부군(泰山府君)의 딸이라는 믿음이 퍼졌다. 중국 민간에서 벽하원군의 인기는 아버지 태산부군을 뛰어넘는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태산부군이 길흉화복 모두를 담당하는 엄하고 무서운 인상인 반면, 벽하원군은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이로운 면이 부각되는 이미지 덕이라고 추측한다. == 전설 == === 유래에 관한 전설 === 벽하원군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는 중국 [[산둥성]]에 있는 [[태산]]을 관장하는 신령 [[동악대제]]의 딸이라는 것이다. 태산은 [[오악]] 중 동악으로 손꼽히고, 예부터 죽은 자의 [[영혼]]이 모이는 [[명계]]로 여겨져 영산(靈山)으로서 이름 높았다. 태산이 신격화된 것이 바로 동악대제 · 태산부군인데, 그 딸 옥녀대선이 북송의 진종에게 주목받아 신앙이 크게 번성하여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선 아버지 태산부군을 넘는 인기를 누렸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태산을 관장하는 신은 벽하원군이 첫 번째로 꼽힐 정도이다. 옥녀고(玉女考)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황제(중국 신화)|황제(黃帝)]]가 [[태산]]에 대악관(岱岳觀)을 지을 때 일곱 [[선녀]]를 파견하였다. 구름 관을 쓰고 날개 옷을 입고 [[태산]]으로 내려가니, 서곤진인(西昆眞人)이 맞이하였다. 옥녀(벽하원군)는 그중 한 명이 득도한 [[신선]]이다. 옥녀권(玉女卷)이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후한]] [[한명제|명제]] 시절, 중원(中元) 7년 갑자년[* [[한명제]]는 중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적이 없다. 선황인 [[광무제]]가 건무(建武), 건무중원(建武中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는데, 중원 7년이 건무 7년을 가리킨다면 서기 31년인데 신묘년이다. 명제 시절 영평(永平) 7년은 간지가 갑자로 서기 64년이다. 후자가 맞을 것이다. ] 4월 18일 자시, 선우국 손녕부 봉부현(西牛國 孫寧府 奉符縣) 선비 석수도(石守道)의 아내 김씨가 여아를 낳았는데 이름을 옥엽(玉葉)이라 하였다. 외모가 단정하고 머리가 총명하여 3살에 인륜을 알았고 7살에 법[* 여기서는 법률이란 뜻이 아니라 도교나 불교의 가르침이란 의미]을 이해하였으며 일찍이 [[서왕모]]를 모셨다. 14살에 [[서왕모]]의 계시를 받아 산에 들어가 조선장(曹仙長)의 지도를 받아 천공산(天空山) 황화동(黃花洞)에 들어갔다. 천공산은 [[태산]]이며, 황화동은 산 꼭대기에 있는 석실이다. 3년간 수도하여 단(丹)을 이루니, 원정(元精)이 발하여 빛이 선명했다. 이후 [[태산]]에 몸을 의탁하였다. 이때부터 태산에 옥녀신(玉女神)이 있게 되었다. [[불교]]가 얽힌 전설에서는 벽하원군을 [[관음보살]]의 현신이라고 전한다. === 불교에 관련된 전설 === 벽하원군이 여선, 즉 [[선인]]으로 취급 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벽하원군은 민간신앙에서 출발해 [[도교]]로 흡수된 도교 계통의 신이지만, 중국 민중들은 신이나 신선과 [[부처]]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고전소설]] 《[[서유기]]》를 보아도 알 수 있듯 도교와 불교의 [[세계관]]은 서로 섞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벽하원군의 전설 중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것이 존재한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태산에 목어(木魚)[*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비게 파 낸 불구(佛具). 목탁의 원형이라고 한다.]를 묻고 태산이 자신의 것이라 선포하려 든 적이 있었는데, 벽하원군이 이를 먼저 알고 목어 아래 자신의 신발을 묻는 수법으로 태산을 차지했다는 일화가 있다. === 여우와 관련된 전설 === 전설에서 [[여우]]는 수행을 쌓아 여우의 선인이라 할 수 있는 [[요호|선호]](仙狐)가 될 수 있는데, 이 선호가 되기 위해서는 수행 이전에 먼저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여우 시험을 주최하는 것이 태산낭랑(벽하원군)으로, 이 때문에 태산낭랑은 여우의 신으로도 여겨진다. == 이야기 == [[베이징]]에는 오정(五頂)이라 하여 동정낭랑묘(東頂娘娘廟)·서정낭랑묘(西頂娘娘廟)·남정낭랑묘(南頂娘娘廟)·북정낭랑묘(北頂娘娘廟)·중정낭랑묘(中頂娘娘廟)가 있다. 사당의 주신은 당연히 벽하원군이고 태산부군이나 [[관우]] 등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다른 신들도 모시는데, 특히 북정낭랑묘가 크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용할 [[베이징]] 국가수영센터(国家游泳中心) 건설예정부지가 북정낭랑묘와 겹쳐서,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파와 낭랑묘를 철거해야 한다는 파가 격하게 대립하였으나 결국 철거하기로 하였다. 2004년 8월 27일에 철거하려고 장비를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공사장에서 [[토네이도|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건설장비들이 파손되고 철거하려고 모인 일꾼들이 죽거나 다쳤다. [[토네이도|회오리바람]]은 북정낭랑묘 쪽으로 가더니 사라졌는데 기왓장 하나 부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이 모종의 영험으로 생각되었는지, 예정을 바꾸어 국가수영센터를 북정낭랑묘에서 100 m 떨어진 곳에 세웠다. 중국 TV에 [[토네이도|회오리바람]]이 부는 상황을 찍은 영상이 공개되는 등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 관련 항목 == * [[신화 관련 정보]] [각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