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문서 편집) ||<-2> '''{{{+1 부에나벤투라 두루티}}}[br]Buenaventura Durruti'''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Jose_Buenaventura_Durruti_Dumange_1936.jpg|width=100%]]}}} || || '''본명''' ||호세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두망헤[br]José Buenaventura Durruti Dumange|| ||<|2> '''출생''' ||[[1896년]] [[7월 14일]]|| ||[[스페인 왕정 복고|에스파냐 왕국]] [[카스티야]] 레온|| ||<|2> '''사망''' ||[[1936년]] [[11월 20일]] (향년 40세) || ||[[스페인 제2공화국]] [[마드리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스페인 제2공화국)]|| || '''가족''' ||형제 8명[br]^^'''배우자'''^^[*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적은 없다.] 에밀리엔 모랭[br]^^'''딸'''^^ 콜레트 두루티|| || '''직업''' ||노동운동가, 혁명가|| || '''종교''' ||무종교|| || '''소속''' ||[[전국 노동 연맹]]|| || '''서명''' ||<-2>{{{#!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Firma_Durruti.jpg|width=150]]}}} ||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의 [[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 == 생애 == 1896년 [[카스티야|카스티야이레온]]에서 8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에 종사하여 14살에 철도 노동자가 됐다.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조합]] 활동가였기 때문에 그도 [[노동운동]]에 점차 깊숙이 관여했다. 이로 인해 1917년 총파업이 발생했을 때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때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로 망명하여 1920년까지 머물렀는데 그곳의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며 아나키즘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한다. 그는 동지들을 모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를 암살하려고도 했고, 아나키스트 노동자 조직인 [[전국 노동 연맹]]에서 활동하며 [[바르셀로나]]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우익 세력에 의해 희생된 아나키스트에 대한 보복 공격, 군부 지도자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의 병영 습격 등의 굵직한 사건들에도 관여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그는 여러 번 감옥에 갔고 사형 선고를 3번이나 받았다.[* 이 사형선고는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3국에서 각각 받았다. 모두 각국에서 그가 벌였던 아나키즘 활동 때문이었다. 그는 스페인에서의 상황이 녹록치 않았을 때 [[라틴 아메리카]]로 도피했었는데 물론 거기서도 아나키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스페인 왕정이 몰락하고 [[스페인 제2공화국|공화정]]이 수립되자 두루티는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당대의 [[아나키스트]] 그룹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성향을 보였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공화정에 반발하여 [[스페인 내전]]을 일으키자 그는 아나키스트들을 모아 저항군을 이끌었다. 두루티는 1936년 11월 19일 마드리드 전투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고 다음날 사망했다. 그의 정확한 [[사인#s-1|사인]]에 대해서는 국민군에게 사살되었거나 아군의 오발로 인해 사망했다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그의 사망 소식은 공화파의 사기 저하를 우려해 바로 발표되지 않았고 11월 23일 바르셀로나에서 50만 명의 군중이 참여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 창작물 == 스페인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서는 그가 신었다는 신발이 '''두루티의 신발'''이라 불리면서 주인공이 소속된 부대(공화파 부대)의 한 부대원이 가진 걸로 나온다. '빈센트(비센테)'라는 이름의 그 부대원은 나중에 전사하게 되고 그 신발은 주인공에게 들어온다. 주인공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을 타도하겠다는 의지로 그 신발을 간직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동료들마저도 국민파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고 아나키즘을 버리기 시작한다. 결국 절망감을 느낀 주인공은 그 신발을 태워버린다. [[Hearts of Iron 4]]에서는 스페인 내전 시작 시 아나키즘 루트를 선택할 경우 아나키즘 스페인군의 [[원수(계급)|원수]]로 등장한다. == 여담 ==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70|<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출판되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지만 [[https://kr.theanarchistlibrary.org/library/hanseu-mageunuseu-encenseubereugeo-eoneu-anakiseuteuyi-jugeum|여기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추종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딸의 증언이다. 감옥이나 정치활동으로 집에 없을 때도 많았지만 있을 때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데 한 친구가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도 본을 좀 받게. 나는 아내가[* 프랑스 출신 아나키스트이자 속기사인 에밀리엔느 모랭 Émilienne Léontine Morin, 1901~1991. 두루티와 모랭은 실제 생활은 당시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유행하던 자유결합, 자유연애 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부부 생활을 했으면서도 막상 [[https://elpais.com/diario/1979/03/16/opinion/290386804_850215.html|법적으로 정식 결혼은 프랑스에서나 스페인에서나 한 적 없다]].] 일하러 나가고 없을 때는 집안 청소도 하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요리도 한다네. 그 외에도 딸을 씻기고 옷도 갈아입힌다네. 자네 부인도 일하고 있는 동안 아나키스트인 자네가 술집이나 카페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네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네." 당시 CNT는 공화국 정부와의 마찰로 해산되기 전 아예 여성 투사들로 구성된 민병대 '자유여인단(Mujeres Libres)'을 조직하는 등 조직 전체로 보면 스페인에서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가장 급진적인 단체였다. 그러나 대중조직이란 현실 아래 실제 개별 행동가들 차원에서 노동자 문화의 거친 마초성과 여기 내제된 뿌리깊은 성차별적 의식을 완전히 뿌리뽑을 순 없었고, 여기 관련해서도 조직 내부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런 문맥에서 두루티가 가부장적 억압구조의 큰 기둥 중 하나인 가사노동 문제에서 이런 진보적 모습을 강조했던 것은 아나키스트 이념적 기강을 세우는 조직인 FAI의 핵심 멤버 중 하나로서 조직적 이상과 현실이 대립하는 사회적 문제에 모범을 새웠다 할 수 있다. 두루티의 이름을 딴 [[https://en.wikipedia.org/wiki/The_Durutti_Column|두루티 칼럼(The Durutti Column)]]이라는 영국 밴드가 있다. [[분류:1896년 출생]][[분류:1936년 사망]][[분류:카스티야이레온 지방 출신 인물]][[분류:스페인의 사회운동가]][[분류:스페인의 군인]][[분류:스페인 내전/군인]][[분류:스페인 내전/사망자]][[분류:총기에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