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왕(고조선)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청주 한씨 족보에 등장하는 종통왕, rd1=종통왕)] [include(틀:역대 고조선 군주)]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60202, #820000 20%, #820000 80%, #660202); color: #ffd400" '''고조선 제?대 국왕[br]{{{+1 부왕 | 否王}}}'''}}} || ||<|2> '''출생''' ||연대 미상 || ||[[고조선]]? || ||<|2> '''사망''' ||[[기원전 210년]]경 추정 || ||[[고조선]]? || ||<|2> '''재위''' ||'''{{{#ffd400 제?대 국왕}}}''' || ||[[기원전 230년]] ~ [[기원전 210년]] 추정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성''' ||--한(韓) / 기(箕)--[* 다만 당시에 성씨가 존재했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 기씨나 한씨로 표현하는 것은 대개 후대에 족보를 만들거나 유교적 관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져다 붙였을 것이다. 특히 [[기자조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도 하는 마당에 기씨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다.] || || '''휘''' ||부(否) / 비(丕) || || '''부친''' ||불명 || || '''모후''' ||불명 || || '''왕자''' ||[[준왕]] || || '''시호''' ||불명 || ||<|2> '''왕호''' ||부왕(否王) || ||비왕(丕王) ||}}}}}}}}}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조선]]의 군주. 혹은 비왕(丕王)이라고도 하며 ([[기자(상)|기자]]를 제외한다면) '''문헌상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군주'''[* [[단군]]이나 [[기자(상)|기자]] 같은 신화적 존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칭왕했다고 문헌에 등장하는 사람은 부왕의 윗세대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은 [[조선왕 1세]]가 있다. 다만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인물은 아닌데, 조선왕 1세의 신하였던 [[대부례]]라는 인물이 문헌에 전해지기 때문이다.]이다. == 행적 == 부왕 이전의 고조선의 군주의 [[이름]]은 시조인 [[단군|단군 왕검]]이나 즉위 여부 자체가 의심스러운 [[기자(상)|기자]]나 [[부루]] 같이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왕은 기록은 소략하기 그지없지만, 한국사에서 이름이 전해지는 최초의 군주라 행적에 비해 의외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주. 그 이전에 [[조선왕 1세]]가 칭왕 했다느니,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를 치려 한다느니 하는 대목이 [[정사 삼국지]]를 통해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다 보니 문헌이 추가로 발굴되지 않는 이상은 이 때의 재위했던 군주나 단군의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기자조선]] 계보도가 전해져 내려온다고는 하지만 이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게 정설이라 신뢰성이 매우 낮으며,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같은 저서에서도 역대 단군의 계보도가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저서 자체의 사료적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 이 또한 신뢰성이 떨어진다. [[진시황]]이 활동했을 무렵에 즉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사 삼국지|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14년, 시황제가 [[몽염]]을 시켜 [[만리장성]]을 쌓게 했고 이에 조선왕 '''부(否)'''는 [[진(통일왕조)|진나라]]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해 진나라에 복종했다고 하나 입조하지 않았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준왕|준(準)]]이 즉위했다. 하지만 오히려 진나라의 멸망 직후에 팽창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명목상으로만 진나라에게 숙인것으로 추측된다. 대체적으로 기원전 210년경에 사망한 걸로 보이지만 기록은 없다. 다만 부왕에서 준왕으로의 부자 세습이 이루어진 것은 한국 사학계에서 국가의 일정한 발전으로 다루고 있다. == 기타 == 청주 한씨 족보에 따르면 부왕(否王)의 부왕(父王)은 [[장평왕]](章平王), 조부는 [[조선왕 3세]]에 대응하는 현문왕(顯文王)이라고 하며, 부왕(否王)의 시호는 [[종통왕]](宗統王)이라 하나 21세기 기준 이 기록들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인정되지 않는다. 문서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10년에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었던 적이 있다. 이것은 대개 환단고기와 같은 재야 사학의 위조된 기록이나 족보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확인될 뿐이므로 신용할 수 없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부왕이 부루를 비하한 말이므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신채호의 착오일 가능성이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부왕, version=88)] [[분류:고조선의 군주]][[분류:몰년 미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