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로남왜 (문서 편집) {{{#!wiki style="margin:0 0 1em 1em;float:right;font-size:.95em;text-align:center;width:500px;max-width:100%;min-width:50%;" [[파일:북로남왜 지도.png|width=100%]]{{{#!wiki style="margin:0 0 5px 0;" {{{#a021cc ■}}} {{{-1 15세기경 [[오이라트]]의 판도}}}[br]{{{#0030a1 ■}}} {{{-1 16세기경 [[몽골]]의 판도[br]{{{#6f401d ■}}} {{{-1 [[여진족]]의 분포}}}[br]{{{#ddb8e2 ■}}}{{{#241e2c,#ddd ●}}} {{{-1 14-16세기경 [[왜구]]의 활동과 침입 지역}}}}}}}}}}}} [목차] [clearfix] == 개요 == 북로남왜(北虜南倭)는 [[중국사]]에서 주로 [[명나라|명대]]에 변경을 침범하는 북쪽의 [[오랑캐]](유목 민족)와 남쪽의 [[왜구]]를 가리키던 말이다. 여기서 오랑캐는 [[15세기]]에는 [[오이라트]], [[16세기]]에는 [[다얀 칸]]과 [[알탄 칸]] 시기의 [[몽골]]을 의미한다. == 구성 == === 북로 === [[영락제]]의 [[막북]] 친정 이후 [[몽골]]이 약화되면서 서쪽의 [[오이라트]]의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고, [[1449년]] 명나라 군대가 오이라트를 토벌하려 하였으나 오이라트의 [[에센 칸]]에게 대패하여 황제 [[정통제]]가 포로로 잡히는 [[토목의 변]]이 일어났다. 16세기에는 [[다얀 칸]]이 오이라트를 몰아내고 몽골부족을 통일하면서 몽골의 힘이 강해졌고, 다얀 칸의 [[손자]]인 [[알탄 칸]]은 [[1550년]]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켰다. 이후 명이 쇠퇴하자 여진족을 통일한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한 뒤 몽골을 멸망시켜 북로의 포지션을 대체하였고, 이들은 국호를 청으로 바꾼 뒤 아예 명나라를 격파하여 중원을 통일하게 된다. === 남왜 ===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 교체기에 더불어 [[조정]]이 [[남북조]]로 분열되면서 혼란기가 찾아왔고 이를 틈타 왜구들이 출몰하여 명나라와 [[고려]]/[[조선]]에 피해를 끼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남북조가 합쳐지고 무로마치 [[막부]]가 명과의 조공무역를 하는 조건으로 왜구를 단속하면서 왜구는 잠시 주춤하였으나, 무로마치 정권의 [[오닌의 난|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어 [[센고쿠 시대|일본 역사상 최악의 헬게이트]]가 도래하자 또다시 왜구들이 출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명나라군|명군]]이 얼마나 막장이였냐면 왜구가 가장 활개를 치던 [[1555년]] 명나라는 '''고작 72명'''의 왜구들을 한명도 죽이지 못하고 900명이 전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동시기 [[조선]]은 [[제주도]]에서 벌어진 2차 [[을묘왜변]] 당시 '''70명으로 14배가 넘는 1000명의 왜구들을 무찌른 엄청난 [[대첩]]을 거두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당시 고려나 [[척계광]]의 [[원앙진]] 전법을 도입한 [[명나라군]]조차 14:1이라는 숫적 열세인 상황에서 이긴적은 없었다.[[https://www.newsn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60120|#]] 또한 명나라와의 감합무역량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방의 세력들은 밀무역을 감행하였고, 여기에 [[무역]]을 둘러싼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 명나라 [[관리]]가 살해당하고 무역선의 일부 인원들이 명나라 해안지방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는데 이를 [[영파의 난]]이라 한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며 [[임진왜란|조선침략]]을 감행하였는데 명나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면서 상당량의 [[재정]]을 소모하게 되고 이로 인해 동북쪽의 [[여진족]]이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영향 == 명나라의 쇠퇴 원인 중 내부에는 [[명 4대 암군]]이 있었다면 외부에는 바로 이 북로남왜가 있었다. 명나라는 북로남왜의 침입에 시달리면서 재정의 상당액을 [[국방비]]에 지출해야 했고 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많은 재정을 조선을 구원하는데 써야 했다. 이후 [[청나라]]의 공격을 받는 동시에 내부에는 [[이자성의 난]]이 발생하면서 한계에 봉착한 명나라는 결국 [[버틸 수가 없다!|멸망하고 말았다.]] == [[한국사]]에서 == 조선 역시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구의 침략에 시달렸다. 북쪽의 몽골족은 고려 말 [[공민왕]]의 반원정책으로 [[원 간섭기]]가 종식되고, 명나라의 [[건국]]으로 아예 북쪽으로 쫓겨나 더이상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서, [[금나라]]가 멸망한 이래 [[만주]] 지역에서 살아가던 여진족이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여진족은 명과 조선의 감시 속에서도 종종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감행하자, 조선은 [[4군 6진]] 개척과 사민정책, 정기적인 토벌로 이에 대응하게 된다. 남쪽의 왜구는 고려 말과 조선 초 3번에 걸친 [[대마도 정벌]]로 예전만큼 대규모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공도 정책]]으로 비워진 [[섬]]에 몰래 거주하거나 아예 조선에 약탈 거점을 마련하고자 을묘년에 [[을묘왜변|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조선을 침공하였고]], 여진족 역시 [[누르하치]]의 영도 아래 [[후금]]을 건국한 뒤 [[정묘호란|2번에 걸쳐]] [[병자호란|조선을 침략하였다.]] == 관련문서 == * [[토목의 변]] * [[영파의 난]] * [[경술의 변]] [[분류:명나라]][[분류:중국-몽골 관계]][[분류:중일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