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문서 편집) [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30201174002_V.jpg|width=160%]] [목차] == 개요 == [[1972년]] [[12월 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s-2|서울시민회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53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당했다. == 화재 이전의 서울시민회관 == [[파일:external/www.museum.seoul.kr/img_07_22.gif]] 1956년 건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회관으로 지으려고 했으나, 건설 중 터진 [[4.19 혁명]]으로 인해 서울시민회관으로 바뀌었다. 시공사는 [[극동건설]]이다. 당시 사실상 국내 유일의 대형 극장이었다. 현재는 후술하듯 사고 직후 세종문화회관으로 재건축되었다. == 전개 과정 == [[1961년]]에 준공된 당시 4층 건물이었던 서울시민회관은 [[1966년]]부터 연말마다 시민들로 북적였는데 [[MBC]]의 10대 가수 가요제 때문이었다. 사건 당일 서울시민회관에는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남진]], 이상렬, [[이용복]], [[정훈희]], [[조미미]], [[하춘화]]와 [[김세환]], [[정미조]], [[김추자]] 등과 코미디언 [[구봉서]], [[곽규석]]과 시민 3천여 명이 모여 있었다. ||[[파일:20231014_215240.jpg|width=100%]]|| 공연이 끝나 막을 내리기 직전인 8시 28분에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관객들의 대부분은 빠져나갔다. 불기둥이 건물 두 배 높이로 솟아올라 서울 사대문 안에서 다 보였으며 길 건너 [[정부서울청사]]까지 열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당시 '맹인 가수'로 유명했던 가수 [[이용복(가수)|이용복]]은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도우미와 함께 행사장을 나왔는데, 이용복이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때마침 주최 측이 막을 내리던 중이라 불길이 막으로 옮겨 붙었고 조명도 꺼 두었기 때문에 시민회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급히 대피하던 사람들은 계단에서 넘어져 깔렸고 2,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추락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망자 중에는 이남용 관장과 건물 내에서 내년 예산을 짜던 서울특별시 공무원들도 있었다. 소방차 72대, 소방관 400명, 군 병력 170명 등 1020명을 동원하고 군 헬기까지 동원해 진화 작업을 펼쳤다. 2시간 후 불길은 완전 진화되었다. 연예인 부상자는 [[문주란]], [[김상희(가수)|김상희]], [[하춘화]] 등 3명이었고 재산 피해는 '''2억 5천만 원'''으로 추산되었다.[* 2019년 7월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41억 9250만 원'''이다.] == 원인 ==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서울시민회관의 소방 시설 상태는 상당히 미흡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소방시설]]이 설치되었긴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MBC와 회관 실무자들에게 안전의식이 부재했단 점이었다. 화재 당시 10대 가수 가요제 세트장 설치에 참여했던 MBC 미술부 소품실장 이건식은 전기기술자 면허가 없는 시민회관 조명실 담당자 이용일과 함께 5W짜리 조명전구 240개로 고속도로형 무대조명 장치를 만들었는데, 이 조명의 전기사용량이 시민회관 전체 전기사용량의 반 이상이었다. 이처럼 과대하게 전력을 사용한 탓에 오후 7시 15분 1차 합선으로 두꺼비집 퓨즈가 끊어졌으나, 당시 회관 조명실 담당자 이용일이 부품을 갈지 않고 조명시설 전선을 전원에 연결해 2차 합선이 일어나 화재로 이어졌다. == 이후 == 사건 이틀 후 MBC 소품실장 이건식 등 3명이 중실화 및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12060020920702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12-06&officeId=00020&pageNo=7&printNo=15748&publishType=00020|구속됐고]] 1973년에 금고형 등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1900209207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1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859&publishType=00020|선고됐다.]] 1976년 [[서울특별시청]]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1980년 서울시청 측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90300329207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9-03&officeId=00032&pageNo=7&printNo=10748&publishType=00020|패소했다.]] 반면 해당 건물은 이듬해 철거되어[* 지은 지 '''불과 11년 만에 철거'''된 셈이다.] 공터로 방치되다가 [[1974년]] [[1월]]에 착공되었고 [[1978년]] [[4월]]에 서울시민회관이 있던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섰다. == 둘러보기 == * 당시 현장에서 진행을 맏았던 [[차인태]] 아나운서의 증언 - [[https://2.bp.blogspot.com/-8ErORU12IGk/XYt-AwlqKWI/AAAAAAAALhY/G5QH8q25iiYxxDFOiOEBdhmbnxIbiIzmQCLcBGAsYHQ/s1600/057.jpg|1]] [[https://4.bp.blogspot.com/-IRyMVVJzftE/XYt-BDMKBgI/AAAAAAAALhg/-u3foqFi53Mve91x-dWdO1I7Ycl9SSEkwCLcBGAsYHQ/s1600/058.jpg|2]] [include(틀:화재/한국)] [include(틀:대한민국의 대형 참사)] [[분류:1972년 화재]][[분류:제4공화국/사건사고]][[분류:문화방송/사건 사고]][[분류:종로구의 사건사고]][[분류:건축물 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화재]][[분류: 콘서트 사건 사고]][[분류:극동건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