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셰허 (문서 편집) ||<-2> '''{{{+1 셰허 [br] 谢赫/謝赫 / Xie He}}}''' || ||<-2> [[파일:셰허.jpg|width=300]] || || '''{{{#white 직업}}}''' || [[바둑기사]] || || ''' {{{#white 소속}}}''' || [[중국기원]] || || ''' {{{#white 생년월일}}}''' || [[1984년]] [[5월 14일]]([age(1984-05-14)]세) || || ''' {{{#white 국적}}}''' || [[파일:중국 국기.svg|width=28]] [[중화인민공화국]] || || ''' {{{#white 출신지}}}''' || [[산둥성]] [[칭다오시]] || || ''' {{{#white 입단}}}''' || [[1995년]] || || '''{{{#white 단급}}}''' || 九단 || || '''{{{#white [[타이젬바둑]] 닉네임}}}''' || Chop(P)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의 [[프로]] [[바둑]] [[기사(바둑)|기사]]. == 경력 == '''한국 기사 킬러''', '''[[이세돌]]의 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풍상, 이세돌은 셰허만 만나면 상당히 고전했다. 상대전적은 2016년 현재 5승 6패. 그 한 예로, 2010년 제12회 농심배에서 이세돌이 호기가 돋아 선봉으로 나왔고[* 농심배는 3국 각 5인이 승발전 방식으로 붙는 기전인데, 주인공(강자)은 대체로 마지막에 배치된다. 한국의 최강자인 이세돌이 선봉으로 나왔다는 건, 간단히 말해 '다 필요 없고, 내가 첫빠따로 나가서 다 쓸어버리겠소' 이런 뜻이다.]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했는데, 이에 중국팀은 천적 셰허를 대항마로 내세웠고, 성공했다. 다만 2011 춘란배 결승[* 둘 사이 벌어진 승부로는 가장 큰 승부였다.]에서는 이세돌이 승리함으로서, 천적 이미지가 약간 사라졌다. 굉장히 침착하고 인내심 강하면서 냉정한 기풍으로 이세돌을 여러 번 잡아냈다. 이세돌이 셰허에게 약한 이유를 분석하자면, 이세돌은 어떻게든 상대를 흔들고 거기에 상대가 맞장구쳐 주면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며 국면의 주도권을 잡아 나가는데, 대부분의 상대는 이세돌이 계속 긁으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싸움에 응해 형세를 망치는 경우가 잦다. 반면 셰허는 인내심이 강하고 냉정하여 이세돌의 도발에 걸려드는 경우가 적고, 상대의 실수와 무리수를 정확히 응징하는 힘이 강하다. 결국 셰허를 상대로 하면 자멸하거나 긴 바둑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이세돌이 아무래도 긴 바둑에서는 뭔가 약하다는 평도 있고 셰허를 긁다 지쳐 자멸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2011년]] [[12월]] 중국랭킹 1위에 랭크되었다. [[2012년]] 초에 제13회 농심배 3차전에서 중국의 주장으로 나와 한국 기사 3명(김지석, 원성진, 이창호)을 연달아 격파하면서 중국의 농심배 2번째 우승을 이루었다. 이 공로로 九단으로 특별 승단되었다고. 중국 기사 중 농심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기사로 2018년 현재 15승 4패를 기록하며, 농심배 본선무대에서 [[최철한]]과 함께 최다승 공동 3위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2022년 12월 기준 농심배 최다승 1위는 본선에서 21승 8패를 기록 중인 [[판팅위]]다. 2위는 19승 3패의 [[이창호]].] 원래 중국 내에서는 초강자였으나, 국제적으로는 입지가 약한 기사였는데 그가 이름을 삼국에 널리 떨치게 되는 계기가 하나 있었다. 제8회 삼성화제배 세계바둑오픈에서 이창호를 8강전에서 만나 탈락시킨 것이다. 전성기 [[이창호]]를, 그것도 반집으로 꺾었기에 이 단 한 판의 바둑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유명 기사가 되어버렸다. 이때 임팩트가 상당했는지 삼국의 바둑 전문 기자들이 앞다투어 인터뷰했으며 셰허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열린 후지쯔배에서 이창호가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일본 기사들을 다 물리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창호의 실력에 감탄한 일본의 바둑팬들은 "어째서 이창호를 이긴 것만으로 셰허가 유명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세계대회에서 이창호와는 나름의 인연이 있는데. 이창호의 마지막 세계대회 결승무대였던, 2011년 16회 [[LG배]] 준결승 상대가 바로 셰허. 당시 셰허는 LG배가 끝나고 난 이후 중국랭킹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전성기였고. 이창호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전성기에서 내려온 시점이었기에 이창호의 승리가 오히려 이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한, 바로 다음해인 2012년 7회 [[응씨배]]에서 이창호와 셰허는 나란히 4강에 올랐는데. 각각 [[박정환(바둑기사)|박정환]]과 [[판팅위]]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 응씨배가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마지막 세계대회 4강 무대가 되고 말았다. 이후 두 기사는 더이상 세계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창호야 나이를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셰허의 전성기는 너무 빨리 끝나고 말았다. 여담으로 착한 성격과 바둑밖에 모르는 묵묵함으로 이창호 九단도 좋아하는 중국 기사라고 한다. [[파일:1502452568171.jpg]] [[중국]]의 [[바둑]] [[잡지]]인 [[위기천지]]에 나온 셰허. == 주요 기사들과의 상대 전적[* 2022년 11월 3일 기준] == === 한국 기사 === * 박영훈 2:3 * 원성진 2:0 * 이세돌 6:5 * 이창호 2:3 * 조한승 0:5 * 최철한 5:2 [[분류:1984년 출생]][[분류:바둑 기사/중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