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비에트력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던 [[1929년]] [[10월 1일]]부터 [[1940년]] [[6월 26일]] 사이 [[소련]]에서 쓰던 달력으로 역법만으로 본다면 [[그레고리력]]과 큰 차이는 없지만, 산업생산력 증가와 휴무일 증가라는 두 토끼를 잡기 위해 도입한 역법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만 소비에트력이 적용되었을때에도 그레고리력이 폐기되지는 않았고, 한국에서 음력을 병기하듯이 그레고리력도 병기하였다. 참고로 역법의 고안자는 소련의 경제학자 유리 라린이었다. 유리 라린이 1929년 5월 5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생산성 향상과 휴무일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소비에트력을 제안했던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위낙 주7일제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내각과 당원들 사이에서도 그냥 흔히들 있는 실험적인 제안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만, 스탈린이 노동생산성과 휴무일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말에 주목하여 언론을 통해 소비에트력에 대한 소개를 하라고 지시하면서 반응을 떠보았고, 대중들도 휴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소비에트력을 실행하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1929년 9월 24일자로 도입되었다. == 방식 == 7요일의 종교적 색채를 지우기 위해 7요일제 대신 5요일제를 도입했다. 일요일은 폐지되고, 색깔 이름을 붙여 [[노란색|황요일]](黃曜日), [[분홍색|도요일]]([[복숭아|桃]]曜日), [[빨간색|적요일]](赤曜日), [[보라색|자요일]](紫曜日), [[녹색|녹요일]](綠曜日)이라고 하고, '''국민 전원에게 각자의 휴일을 배당'''해 자기의 휴일에 쉬도록 했다. 단 1905년 혁명기념일, 노동절과 러시아 혁명일에는 모두가 [[공휴일]]이었다. 각자에게는 휴일을 늘리면서 생산이 완전히 멈추는 일요일을 폐지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게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고, 오히려 기계가 혹사당하면서 고장이 잦았다. 그리고 사람마다, 심지어는 가족 안에서도 휴일이 다른 바람에 여가와 사회생활에 지장이 주는 불편함이 생겨나버려서 불평을 샀다. 결국 시행 2년 만인 [[1931년]]에 주 6일제로 바뀌었다. 주 6일제는 매월 6, 12, 18, 24, 30일을 휴일로 하고, 제1요일~제6요일로 불렀다. 아무 요일도 아닌 31일은 평일로, 공장은 가동하지만 상점이나 관공서는 쉬기로 했다. 2월은 휴일인 30일이 없어서 몇몇 공장은 2월 25일~3월 5일까지 9일 연속으로 일했다.[* 단, [[윤년]]인 [[1932년]], [[1936년]], [[1940년]]은 10일 연속으로 일했다.] 공휴일은 주 5일제 때의 것을 답습했지만, 1936년에 사회주의 헌법절이 추가되었다. 주 7일제보다 휴일은 늘었지만, 불평은 여전했다. 비공식적으로도 주 7일제가 여전히 쓰였기 때문에, 결국 [[1940년]]에 주 7일제로 되돌아갔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태양력, version=486, paragraph=2.9)] [[분류:1929년 출시]][[분류:1940년 폐지]][[분류:역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