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경윤 (문서 편집)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908년 출생]][[분류:193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송경윤(宋慶潤) || || 생몰 ||[[1908년]] [[2월 4일]] ~ [[1930년]] [[11월 23일]] || ||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 ||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송경윤은 1908년 2월 4일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3월 어의동공립보통학교(於義洞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6년 독립문상업학교(獨立門商業學校) 1학년을 중퇴한 후 숭인동 소재의 광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8년 봄 [[신간회]] 경동지회에 가입했으며, 1929년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 동구지부원(東區支部員)이 된 뒤 1930년 6월 동구지부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3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서 신간회와 중앙청년동맹에 함께 소속을 두고 있던 홍영섭(洪榮燮)과 사전에 협의하여 동대문 성벽과 예지동 동대문시장 동쪽 입구 판벽 등에 붓으로 그린 태극기와 ‘백의대중(白衣大衆)에게 격(檄)함’ 및 ‘백의동포(白衣同胞)에게 줌’ 등의 격문을 붙여서 대중을 선동하고 민심을 동요시켜 민족대시위를 단행할 목적으로 격문을 첨부하다 1930년 9월 초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0년 11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그해 11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장티푸스]]에 전염되어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송경윤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