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안군 학살 사건 (문서 편집) [[분류:6.25 전쟁 학살/인민군과 좌익]][[분류:1950년/사건사고]][[분류:황해도의 사건 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이 [[황해북도]] [[수안군]]에서 시행한 '''학살극.''' == 상세 ==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과 대한민국통계연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대한민국통계연감(1952년 발간)]에 따르면, 1950년 9월 15일 ~ 1950년 9월 28일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은 후퇴하면서 북한 지역에서도 숱한 학살극을 벌였다. 김일성은 6.25남침 때에 북한지역에서 이른바 북한 내 불순분자 색출을 모토로 '예비검속'(豫備檢束)을 했는데, 이들에 대한 성분조사는 악명높은 '정치보위부'에서 실시했다. 김일성은 미군이 압박해 들어오자마 모조리 이들을 학살했다.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7199&project=10|관련 기사]] - 발생장소 : 운곡면 차탄 다리밑, 관평역과 흑토령 중간 저지대, 성내리 뒷산 공동묘지 - 방식 : 무차별 총살 - 희생자 수 : 1,100명 다음은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다는 근거이다.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김일성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