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국7사묘 (문서 편집) [include(틀:일본군의 전쟁범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6%AE%89%E5%9B%BD%E4%B8%83%E5%A3%AB%E5%A2%93.jpg|align=center&width=600]] ||[include(틀:지도,장소=殉国七士廟,너비=100%,높이=300px)]|| [목차] [clearfix] == 개요 == {{{+1 殉国七士廟(じゅんこくななしびょう) }}} [[일본]] [[아이치현]] [[니시오시]] 산가네 산 위에 있으며 [[나고야 철도]] [[가마고리선]] [[히가시하즈역]]에서 가까운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판결을 받고 처형된 7명의 추도비와 제단 등이 설치된 묘지로 가끔씩 추도식이 열린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에 따르면 입구 비석의 글씨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썼다고 한다. == 매장자 명단 == 여기 비석 안의 유골함에 담긴 7구의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데 전술한 것처럼 저 7명 전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한 [[전쟁범죄#전범의 등급과 오해|A/B급 전범들]]'''이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절대 A급 전쟁범죄만 저질렀다고 사형시키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는 B, C급 전쟁범죄도 크게 저지른 것으로 판명난 자들이기도 했다. * [[이타가키 세이시로]] : [[이시하라 간지]]와 함께 [[만주사변]]의 주범. * [[기무라 헤이타로]] : 육군차관으로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조력.[* 버마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죄목으로 처형당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기무라 헤이타로가 학살을 저질렀다는 자료는 없다. 다만 기무라가 [[버마]] 전선에 [[영국군]]이 진공하자 [[탈영]]을 감행해 '''7만명 이상의 아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 [[도이하라 겐지]] : [[신멸작전]]의 주범. * [[무토 아키라]] : [[중일전쟁]] 발발 당시 확전파의 일원. [[노구교 사건]]으로 발발한 교전을 확전시켜 중일전쟁으로 확장. * [[마쓰이 이와네]] : 중지나 방면군 사령관으로 [[난징]]을 점령.[* 다만 적어도 [[난징 대학살]]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등 그의 부하들이 독단적으로 저질렀던 것이었고 당시 마쓰이는 병석에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난징 대학살만큼은 마쓰이의 직접적인 악행이라고 볼 수 없다.] * [[히로타 고키]] : 일본 제국 제 32대 총리대신. [[중일전쟁]] 시기 총리.[* 다만 히로타의 사형 판결에는 여러 의문점이 남아 있는데 중일전쟁 발발의 최고 책임자 [[고노에 후미마로]]의 책임을 덮어쓰고 사형되었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고노에는 패전으로부터 몇 달 뒤인 12월 자택에서 자살했다.] * [[도조 히데키]] : 일본 제국 제40대 총리대신. [[태평양 전쟁]]의 총사령관. == 배경 == 이 묘가 어떻게 생겨났는 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원래 A급 전범들은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 1948년 12월에 사형이 집행되었고 화장 후 유골은 비행기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뿌려졌다.[[https://www.bbc.com/news/world-asia-57474104|#]] 하지만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호사였던 산몬지 쇼헤이가 화장했던 [[화장장]]에서 그나마 수거하고 남은 한 항아리 분량의 유골 조각과 재를 수습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수거하고 남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화장장에서 시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었던 데다 [[미군]]이 태평양에 뿌리려고 바로 뒤에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수거하고 남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한 항아리만큼이나 모였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화장 과정에서부터 작심하고 빼돌린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그 유골을 유족에게 돌려줬거나 정상적인 장례를 치르고 묘를 조성했다면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즈오카현]]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인 [[https://ja.wikipedia.org/wiki/%E8%88%88%E4%BA%9C%E8%A6%B3%E9%9F%B3|코아칸논]](興亜観音)상 [* 흥아관음. 흥아는 직역하면 '아시아를 흥하게 한다'는 뜻으로 실제로는 [[대동아공영권]]을 가리키는 단어다. 대동아공영권이 어떤 사상인가를 생각하면 관음상에 저런 이름을 붙인 의도부터가 매우 불순하며 마쓰이가 생전에 중일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을 추모하려고 세웠다.] 밑에 10년 간 숨겨 두었다. 이것까지도 당대의 분위기를 봐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1958년에 그 유골을 다시 꺼낸 다음 이들이 조성한 게 바로 순국7사묘다. == 기타 == * [[야스쿠니 신사]]는 명분은 전사자 추모용[* 물론 전사자 추모용으로 야스쿠니가 좋은 곳인 것도 아니다. 더 좋은 곳도 있는데도 그곳은 아예 무시하다시피 하니까. 진짜 무명의 전몰 장병들을 위한 추모지이면서도 극우들이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여기는 '''[[국립묘지]]도 모자라서 미국의 국방장관이나 야스쿠니를 비난하는 [[일본 공산당]]도 이 치도리가후치에선 참배한다.''' 자민당, 공명당, 입헌민주당 의원들도 참배하는지는 불명.]이고 [[일본의 전쟁범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전범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것도 그나마 '''잘못된 방법으로 국가에 충성한 사람들을 추도'''하는 식이기 때문에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등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지키는 게 아닐 정도다. 물론 전범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찾을 수 있게 유골을 빼돌려 묘를 조성하는 정도까지야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쳐도 이 시설은 명칭부터가 그냥 전쟁범죄를 '순국'이랍시고 아예 대놓고 찬양하는 곳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 결국 이 곳의 존재 그 자체가 일본 사회가 아직까지도 [[일본/과거사 청산 문제|과거에 대한 청산]]을 제대로 안 했다는(혹은 할 생각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쯤 되면 그 악명높은 야스쿠니 신사조차도 한 수 접어야 될 정도로 정말 [[답이 없다|답이 없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적어도 [[히로타 고키]]나 [[마쓰이 이와네]]만큼은 억울하게 사형당했다는 의견이 많다. [[기무라 헤이타로]]는 적어도 민간인 학살만큼은 누명을 쓰기는 했지만 태평양 전쟁의 개전에 관여한 것만으로도 억울하게 사형당했다고 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 1960~70년대에 가장 격렬한 [[적군파]] 계통 무장투쟁 조직이었던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0816.html|이곳의 비석을 폭파해 버린 적이 있다.]] * A급 전범들의 후손들도 이 무덤을 아주 싫어하는지 [[마쓰이 이와네]]의 손주는 이 무덤을 두고 ''''내 조부께서 이딴 쓰레기 같은 놈들과 같이 잠들어 계신다고?''''라고 분노했다고 한다. 마쓰이 이와네는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부하]]의 죄를 뒤집어쓴 점도 있으니 화낼 만하긴 하다. [[분류:국수주의/일본]][[분류:팽창주의]][[분류:일본의 무덤]][[분류:아이치현]][[분류:일본의 역사왜곡]][[분류:일본 극우사관]][[분류:인종차별/선전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