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쌍십절 (문서 편집) [include(틀:대만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yilidi.chugen.com.tw/A138072762315.jpg|width=100%]]}}} || || {{{#fff ''' 쌍십절 '''}}} || [목차] [clearfix] == 설명 == '''쌍십절'''([[雙]][[十]][[節]])은 [[중화민국]]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경일(國慶日), 국경절(國慶節), 쌍십국경(雙十國慶), 쌍십경전(雙十慶典)이라고도 한다. 쌍십절이라는 이름은 [[신해혁명]]이 1911년 [[10월 10일|'''10'''월 '''10'''일]]에 일어나 십(十)이 두 번 들어가서 붙여졌다.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의 건국일은 1912년 1월 1일이다. 매년 새해의 첫날인 만큼 이 날도 빨간 날이다. == 역사 == [[서구권]] 열강의 각축으로 기울어져 가던 [[청나라]]는 이 봉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혁명 세력은 순식간에 전국에 파급되어 1개월 이내에 거의 모든 [[성(행정구역)|성]](省)에서 호응하여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신해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쑨원]]으로, 그는 혁명의 지도자로 추대되어, [[광저우]]에서 혁명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정하였다. 쑨원은 ‘혁명 시대의 정부’의 과제는 [[민족]]·[[영토]]·[[군정]]·내치·[[재정]]의 [[통일]]에 있다고 보고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통일할 것을 주창했지만, 안으로는 임시 정부 [[파벌]]의 내분이 그치지 않고, 밖으로는 [[일본]]·[[영국]] 등의 [[열강]]이 개여해 ‘[[북벌]](北伐)’에 대한 혁명의 철저화가 곤란해졌다. 쑨원은 [[베이징]]의 [[위안스카이]]에게 중화민국 정부의 전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청 조정을 폐지해 달라는 거래를 제안했고, 그는 이를 승낙하여 군정 양권을 장악, [[선통제]]를 퇴위시키고 [[3월 10일]]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거역함으로써 ‘혁명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전 [[중국]]이 산산조각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였다. 각 지역을 장악한 [[군벌]]과 [[중국국민당]] 내부의 각 파벌들 그리고 오로지 이권에 몰두하는 외세 간의 [[내전]]이 계속되었고, [[1920년]] 창당한 [[중국공산당]]까지 세력을 키워서 이 천하 쟁패의 대결에 뛰어들었다. 이후 1차 [[국공합작]] - [[장제스의 북벌]] - [[4.12 상하이 쿠데타]] - 1차 [[국공내전]] - [[대장정]] - [[만주사변]] - [[중일전쟁]] - [[시안 사건]] - 2차 국공합작 - [[제2차 세계 대전|2차대전]] 승리 - 2차 국공내전 - [[국부천대]]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대륙 시절의 [[중화민국]]의 정식 총통들은 모두 쌍십절에 취임했다. [[위안스카이]]가 [[1913년]] [[10월 6일]]과 [[10월 7일]]에 걸친 첫 대총통 선거에서 단독 후보로 국회의 간접선거로 당선돼서 [[1913년]] [[10월 10일]]에 정식 대총통으로 취임했고, [[쉬스창]]은 [[1918년]] [[9월 4일]]에 국회를 통한 간접선거로 [[1918년]] [[10월 10일]]에 취임했으며, [[차오쿤]]은 [[회선 사건]]을 통해서 [[1923년]] [[10월 10일]]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장제스]] 역시 [[국민혁명]]을 성공시키고 나서 [[1928년]] [[10월 10일]]에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주석]]으로 취임했다. 이후 [[반장전쟁]], [[초공작전]], [[중일전쟁]]등의 혼란으로 [[헌법]]제정이 지연되어 오다가 [[1947년]] [[12월 25일]]에 [[중화민국 헌법]]이 시행되면서 [[1948년]] [[4월 19일]]부터 [[1948년]] [[4월 29일]]에 걸쳐서 [[제1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가 열리고 [[1948년]] [[5월 20일]]에 [[장제스]]가 [[중화민국 총통]]에, [[리쭝런]]이 [[중화민국 부총통]]에 취임함으로서 [[대만]]의 모든 총통들은 [[장제스]]의 사망으로 인한 궐위, [[장징궈]]의 사망으로 인한 궐위로 취임했던 [[옌자간]],[[리덩후이]] 총통을 제외하면 모두 [[5월 20일]]에 취임을 하고 있다. 현재 [[중국 대륙]]을 지배중인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섬]]을 통치하고 있는 [[중화민국]] 모두 쑨원을 숭상하며 신해혁명 [[기념일]]인 쌍십절을 기리고 있다. == 기념 == [[파일:external/ichef.bbci.co.uk/151010071117_taiwan_honour_guard_976x549_reuters_nocredit.jpg]] [[타이베이]]의 [[총통부(대만)|총통부]] 앞 퍼레이드 [[국부천대|대만으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쌍십절은 아직도 [[중화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로 매년 [[정부]]가 주최하는 축하 행사가 열린다. [youtube(eQ6xH1Guj70)] [[1963년]] [[대한뉴스]]가 보도한 쌍십절 행사. [youtube(ZqWwA8N2JDE)] [[1975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영상 속의 당시 자막을 보면 우횡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 [youtube(edcKNw7nBH4)] [[1978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youtube(o2pV5Xk7F_8)] [[1979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youtube(JiHiUGf4AD8)] [[1981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썸네일 중심에 안경 쓴 인물은 [[장징궈]]이다.] [youtube(O32Psygb_LY)] [[1986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youtube(Cu-tmGB8jfg)] 1987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https://youtu.be/2EjdwM0tssE|1987년 쌍십절의 뉴스영상]]도 있는데 당시 총통이 [[장징궈]]다 보니 [[땡뉴스|땡장뉴스]] 형식으로 나왔다. 이 쌍십절의 세계 각국 인사 인터뷰에 당시 김상태(金相台) 주중 대한민국 대사도 참여했다. 마지막 부분의 일기예보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2018년부터 [[타이중시]] 시장을 지내고 있는 [[루슈옌]]이다. [youtube(b-QM0ksHlng)] [[1988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youtube(YGXZnZ4L9KQ)] [[1991년]] 10월 10일 총통부 앞에서의 열병식 [[파일:external/2013hot.weebly.com/4490345_orig.jpg]] [[장제스]], [[장징궈]] 부자의 국민당 정권이 집권하던 1950~[[80년대]]에는 '본토수복' 구호를 상기시키는 행사로 애용되기도 했다. 위의 사진은 [[1984년]]([[민국기원]] 73년)의 행사. ~~[[청천백일만지홍기]]만 빼고 보면 [[중국 공산당]] 집회로 보일 지경~~ 원체 [[중국인]]들이 국공 할 거 없이 빨간색을 좋아하긴 한다. 중국에서 빨간색은 좋은 의미였기 때문에 서양에서 혁명의 상징으로 쓰이는 빨간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청천백일만지홍기]]와 [[오성홍기]] 모두 빨간색을 바탕으로 하였다. [[파일:external/img.epochtimes.com/710100740211528.jpg]] ([[천수이볜]] 정부 시절인 [[2007년]]의 행사 모습. '대만 국호로의 [[UN]] 가입' 구호를 내걸고 있다.)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인 [[천수이볜]] 집권기에는 약간 홀대를 받는 날이기도 했다. 극단적인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사실 '''중국 침략자들의 기념일'''이라고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마잉주]] 집권 이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사실 중화민국의 빨간 날 중 [[타이완 섬]]과 직접 관련 있는 날은 [[2.28 사건|2월 28일]] 딱 하루다.~~ 지금은 정권이 다시 [[민주진보당|민진당]]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차이잉원]] 총통은 천수이볜 총통보다는 [[대만 독립]]에 대해 온건한 [[화독]] 성향이라 여전히 쌍십절은 국가적 행사로써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다. 오히려 쌍십절을 '중화민국'보다 '대만'의 기념일로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여 대내외에 중국의 위협을 상기시키고, 대만의 존재를 강조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1001%E9%9B%99%E5%8D%81%E7%AF%80%E4%BC%91%E5%81%87%28paul%29.png]] 일반적으로 쌍십절을 "대만의 건국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중화민국]]의 건국일'''은 [[쑨원]]이 임시 대총통으로 선출되고 공화정의 성립을 선언한 [[1912년]] 1월 1일이다. 하지만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수립의 연관성과 더불어 두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멀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쌍십절을 그냥 건국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덧붙여 당시 [[타이완 섬]]은 국가가 아니라 [[일본 제국]] 치하의 [[대만일치시기|식민지]]였고, 중화민국으로 반환된 건 한참 뒤인 [[1945년]]이다. [[2011년]]에 언론에서 언급된 '''대만 건국 100주년'''이라는 문구도 옳지 않은 문구다. 대만이 중화민국의 별칭이 된 건 [[1971년]] 이후이고, [[영어]] 명칭으로 '''Taiwan, Republic of China'''를 밀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이다. 하지만 [[대만인]]들끼리도 '''祝賀臺灣建國100周年'''이나 '''Happy 100th Birthday Taiwan'''이라고 하는 중. 그냥 사람들 뇌리 속에 중화민국이 곧 대만이라는 생각이 익숙해지는 바람에 중화민국 100주년 대신 그냥 대만 100주년이라고 쓰는 듯. 아무래도 '중화민국'이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 테니 편하게 '대만'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실제로 현재 신해혁명 기념일로 쌍십절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그냥 건국일 취급이 좀 더 강하다. 강경한 대만 독립론자들도 이 날만큼은 조용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대만 이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Double_Ten_Day_is_celebrated_in_Hong_Kong_2012.jpg]] [[2012년]] 홍콩의 쌍십절 기념행사 [[파일:external/img.epochtimes.com/810082232571996.jpg]] 미국 [[LA]]의 쌍십절 행사 (출처: [[대기원시보]]) 이 날은 중화민국의 기념일일 뿐만 아니라 [[홍콩]], [[마카오]] 등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화교]]들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의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축하 행렬이 매년 실시되고 있다. [[파일:external/img3.cache.netease.com/201110020859456f70e.jpg]] [[중화인민공화국]] [[궈칭제]](국경절) 연휴에 세워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의 [[쑨원]] 초상. 한편 국경절과 쌍십절은 며칠 차이 안 난다. 중국 본토에서는 건국 62주년이 신해혁명 100주년이어서 더욱 성대하게 기념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쑨원]]을 혁명의 선구자로서 존경하며, 따라서 이 날을 辛亥革命纪念日([[신해혁명]]기념일)이라고 하며 전후하여 신해혁명 기념행사를 여는 등 나름대로 기념하고 있다. 해외 화교들이 [[대만]] 계열, [[중화인민공화국]] 계열로 나뉘어 있지만 똑같이 쌍십절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절이 10월 1일에 있는데다가 국경절 연휴때 1주일씩이나 쉬기 때문에 쌍십절을 공식연휴기간에 넣기가 참으로 애매하여 쉬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국 대륙에서는 대만만큼 거창한 스케일의 행사를 벌이지는 않는다. [[http://chuansong.me/n/1795679|중국의 신해혁명기념 100주년 대회]] 다만 지역이나 회사에 따라서 쌍십절에도 쉬는 경우는 있다. 요즘은 춘절에 한 달 짜리 휴가도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 이 날 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정식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감은 점점 줄어들어서 중국인중에는 쌍십절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즉 대만과 중국이 똑같이 축하하는 날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옛날 일에 불과하다는 것임. == 기타 == 萌[* ㄇㄥˊ이라 발음한다. 귀엽다는 뜻. 모에(萌え)에 들어가는 한자가 바로 이것이다.]을 파자하면 십월십일(十月十日)이 되기 때문에 이걸로 말장난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삼민주의]]를 삼맹주의로 바꾼다든지 하는식. 이날은 북한 정권인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북한에서는 군사 퍼레이드 등 대규모 기념 행사를 거행하며, 이에 걸맞는... 각종 군사도발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년 10월 10일을 앞두고 대한민국과 주변국에선 북한을 예의주시하는 편. [[린 민메이]]의 생일이 1993년 10월 10일인 관계로 VT시절부터의 오랜 덕후들은 다른 의미로 이 날을 기린다고 [[카더라]]. === 쌍십절 인육사냥 괴담 === 2010년대 초반 한국 인터넷에 쌍육절 인육괴담이 퍼진적이 있다. 중국 [[삼합회]]를 비롯한 중국(대륙)인들이 한국에 몰려와서 [[인육]](?)을 얻기 위해 한국인들을 납치한다는 괴담, 괴소문이다. [[http://sports.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4575757 | "한국인들 조심하라" 등골 오싹한 괴담 (스포츠한국 2012.09.20) ]]. 그런데 '''쌍십절이 대만의 공휴일이며 해외 화교의 명절'''인 반면 '''중국에서는 10월 1부터 한 주를 쭉 쉬는 [[국경절]]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말이 안 되는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괴담을 만든 한국인은 화교, 쌍십절, 대만, 중국, 국경절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외국의 차이나타운의 쌍십절 기념 같은 걸 접하고 중국대륙도 그렇겠지 하는 망상에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거짓말. 정말 삼합회를 비롯한 중국계 범죄조직이 인육을 얻을 목적으로 납치를 할 것이면 말과 문화가 통하고 지리도 익숙하며 인구가 훨씬 많은 자기 나라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사냥하는 것이 훨씬 낫지, 굳이 관광비자가 따로 필요한 한국으로 건너올 이유가 없다. [각주] [[분류:대만]][[분류:중국의 기념일]][[분류:10월의 기념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