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신기오로 울히춘 (문서 편집) ||<-2> '''{{{#white {{{+1 아이신기오로 울히춘}}}[br]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ᡠᠯᡥᡳᠴᡠᠨ[br]愛新覚羅 烏拉熙春[* 한국 한자음으로 애신각라 오랍희춘.][br]Aisin-Gioro Ulhicun[* [[만주어]]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 국제 학계에서는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 여권]]은 이름을 무조건 [[한어병음#s-7.1|변형 한어병음]]으로 적기 때문에 법적인 로마자 성명은 '''AIXINJUELUO, WULAXICHUN'''일 가능성이 높다.]}}}''' || || '''{{{#white 다른 이름}}}''' ||요시모토 치에코(吉本 智慧子) || ||<|2> '''{{{#white 출생}}}''' ||[[1958년]] ([age(1958-12-31)]~[age(1958-01-01)]세) || ||[[중국]] [[베이징시]] || || '''{{{#white 국적}}}''' ||[[중국|[[파일:중국 국기.svg|width=20]] 중국]], [[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8]] 일본]] || || '''{{{#white 민족}}}''' ||[[만주족]] || || '''{{{#white 학력}}}''' ||[[중국민족대학]][br][[교토대학]] || || '''{{{#white 직업}}}''' ||[[언어학|언어학자]] || [목차] [clearfix] == 개요 ==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은 [[중국]] 태생의 [[언어학|언어학자]]이자, [[중국]]학자, [[만주족]] 부흥운동가로, [[만주어]]와 [[여진어]], [[거란어]]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 혈통과 가족 == [[중국]]의 [[베이징시|베이징]]에서 [[만주족]] 가정의 차녀로 태어났다. 울히춘의 아버지인 [[https://en.wikipedia.org/wiki/Jin_Qicong|진치총]]은 [[청나라]] 황실의 후손으로, [[건륭제]]의 9대손이자 그의 아들 5황자 영순친왕 [[아이신기오로 영기|영기]]의 8대손이다. 딸 울히춘처럼 [[언어학|언어학자]]였는데, [[여진어]]가 [[만주어]]의 전신이고, 둘 다 [[퉁구스어족]]에 속함을 이용해서 여진어를 재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여진어-[[중국어]] 사전을 만들었고,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이 이를 이용해 여진어-[[일본어]] 사전을 만들었다. 후술할 [[여진 문자]]의 해독은 이를 바탕으로 이뤄낸 것이다. 울히춘의 할아버지인 [[https://en.wikipedia.org/wiki/Jin_Guangping|아이신기오로 헝쉬]](愛新覺羅 恒煦, 진광핑(金光平))는 청나라 최후의 황제인 [[아이신기오로 푸이]]를 보좌하기도 했다. 중국사를 전공한 일본인 학자 요시모토 미치마사(吉本道雅)와 결혼하였고, 그 때문에 요시모토 치에코(吉本智慧子)라는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 생애 == 중국민족대학을 졸업한 울히춘은 [[일본]]으로의 유학길에 올랐고,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만주어]]와 [[여진어]], [[거란어]] 연구에 착수했다. 그 와중에 [[일본]]의 [[역사학|역사학자]]인 요시모토 미치마사와 혼인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이때 [[일본어]]로 의역한 치에코라는 이름을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만주어]]로 '울히춘'은 지식이라는 뜻으로,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의 [[일본]]식 이름인 '치에코'의 치에는 [[일본어]]로 지혜라는 뜻이다. 이후에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소멸위기언어]]가 된 만주어를 보존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 언어학자로서의 업적 ==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은 [[거란어]]와 [[만주어]], [[여진어]]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데, 그녀의 최대 업적은 [[거란 문자]]와 [[여진 문자]]를 해독한 것이 있다. 우선 [[거란 문자]]는 [[요나라]]의 태조인 [[야율아보기]]가 창시한 거란 대자와 야율아보기의 남동생인 야율질라가 창시한 거란 소자로 나뉘는데, 전자는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고, 후자는 [[표음 문자]]다. 문제는 거란 대자와 한자를 병기한 사료가 거의 없는지라 해독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1,600여 글자에 달하는 [[거란 문자#s-2|거란 대자]] 중에서 해독에 성공한 글자는 고작 188개밖에 안 된다. [[거란 문자]]는 여러 개의 글자를 모아쓰기 하는 방식으로 조합해서 사용하는 글자였음이 밝혀져있다. 이런 조합 방식이 한글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글이 거란 문자에서 차용되었다는 유사역사학의 떡밥이 되었다. 허나 실제로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스스로 고안해낸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져있다. 당시 [[명나라]]를 대국으로 사대하고 이민족을 오랑캐라 멸시하던 [[조선]]의 특성 상, 이민족의 문자를 참고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거란 문자#s-3|거란 소자]]는 전술했듯이 표음 문자라서 상대적으로 해독이 쉬운 편이라,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글자의 절반 이상이 해독된 상태다. [[여진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여진 문자]]도 대자와 소자의 구분이 있다. [[여진 문자]] 중에서 대자는 [[금나라]]의 태조인 [[완안아골타]]가 창제했고, 소자는 [[희종(금)|금 희종]]이 창제했다. 이 대자 소자가는 서로 비슷한 관계로 주류 [[언어학|언어학계]]는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여진 문자도 역시 아이신기오로 울히춘이 아버지 진치총과 공동으로 해독하는데 성공했고, [[거란 문자]]와는 달리 완전하게 해독된 상태다. 울히춘의 연구에 의하면, 여진 문자는 일부가 거란 문자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한자]]에서 차용해서 변형시킨 글자도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거란어]]와 [[여진어]]로 된 사료들을 해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청나라]] 시대에 저술된 방대한 양의 [[만주어]]로 된 공문서를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대한민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란]]의 [[https://blog.naver.com/jhleetck1/150133009888|청동거울]]인, [[동제(거란문자)명 원형경]][銅製(契丹文字)銘圓形鏡]을 보고, 이 유물을 조사하여 2011년 이와 관련된 책인 [[https://www.amazon.co.jp/%E9%9F%93%E5%8D%8A%E5%B3%B6%E3%81%8B%E3%82%89%E7%9C%BA%E3%82%81%E3%81%9F%E5%A5%91%E4%B8%B9%E3%83%BB%E5%A5%B3%E7%9C%9F-%E6%84%9B%E6%96%B0%E8%A6%9A%E7%BE%85-%E7%83%8F%E6%8B%89%E7%85%95%E6%98%A5/dp/4876985774|韓半島から眺めた契丹・女真]]도 낸 적도 있었다. [[분류:1958년 출생]][[분류:중국의 언어학자]][[분류:일본의 언어학자]][[분류:중국계 일본인]][[분류:일본으로 귀화한 인물]][[분류:베이징시 출신 인물]][[분류:교토대학 출신]][[분류:인문과학 교수]][[분류:중국학자]][[분류:아이신기오로 가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