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반 베르크 (문서 편집) [[분류: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분류:1885년 출생]] [[분류:1935년 사망]] [[분류:빈 출신 인물]] || {{{#fff '''알반 베르크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서양음악사)] [include(틀:빈 음악파)] ---- }}} || |||| '''{{{+1 알반 베르크}}}[br]Alban Berg'''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www.bach-cantatas.com/Berg-Alban-02.jpg|width=100%]]}}} || || '''본명''' ||알반 마리아 요하네스 베르크 {{{-1 Alban Maria Johannes Berg}}}|| ||<|2> '''출생''' ||[[1885년]] [[2월 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오스트리아)|빈]]|| ||<|2> '''사망''' ||[[1935년]] [[12월 24일]] (향년 50세)|| ||[[오스트리아 연방국]] [[빈(오스트리아)|빈]]||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오스트리아)]|| || '''직업''' ||[[작곡가]]|| [목차] [clearfix] == 개요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함께 2차 빈악파를 주도, 12음 기법을 사용해 낭만적 음악을 작곡했다. == 생애 == 베르크는 [[빈(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에는 음악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아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15살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이후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제자가 되어 그의 12음 기법의 기수로 앞정선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베르크를 제대로 제자 대접도 하지 않았는데, 오만 잡일을 다 시켜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래, 너 작곡좀 하냐?"'''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쇤베르크의 제자가 되면서, 그에게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배우면서 작곡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이 때 작곡한 가곡, 소품들은 연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서 졸업 작품격으로 낸 '피아노 소나타 1번'은 이후 그의 작품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작품번호 1번이 되었다. 이후 그는 관객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데, '현악 사중주'나,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서정 모음곡'과 같은 곡들은 그의 특징인 '''낭만적인 12음 기법'''을 잘 보여준다.[* 이는 알반 베르크의 12음렬이 매우 조성적이다, 라는 이유에서 기인한 것 이다. 예를 들자면, D, F, A, G#, B ,D#, C, E, G, F#, A#, C#, 이런 식으로 12음렬을 짜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3화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역행, 전위를 해도 이는 마찬가지. 쇤베르크의 바이올린 곡 중에도 이러한 음렬을 쓴 곡이 있다.] 이후 1915년에서 1918년까지 군에서 복무, 틈틈이 오페라 '보체크'를 작곡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시 빈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생활한다. 한편, 그의 오페라 '보체크'가 발췌되어 공연된 것이 성공, 대중적인 인기도 얻게 된다. 여담이지만 쇤베르크는 "보체크 절대 작곡하면 안 돼"라고 팔을 걷고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자 베르크는 쇤베르크 평전을 쓰는척 하면서 몰래 보체크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1935년,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한지 얼마 안 돼 그는 벌레에 물려 생긴 패혈증으로 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페라 '[[룰루]]'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조지 거슈윈]]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진지한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슈윈이 그를 상당히 존경했던 듯하다.[* 거슈윈이 베르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베르크는 거슈윈의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거슈윈이 놀라서 "내 음악과 당신의 음악은 전혀 다른데 어떻게 내 음악을 칭찬하십니까?"라고 묻자 베르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음악은 음악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상냥하고 매력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를 기억하는 음악가들의 증언들은 그의 좋은 성품에 대한 언급이 많다. == 작곡 성향: 조성적 12음렬 == 조성적인 12음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케이스이다. 예를 들면 인위적으로 음렬을 장3도씩 진행시킨다거나, 그로 인해서 한 음으로 뭉쳤을 때 여러 화음이 나도록 음렬을 설계한다거나. 이러한 작품들은 후대의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에게 철저하지 못하다고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자체로 독특한 결과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잘 나타나며, 그로 인해 곡의 전반적인 면에서 후기 낭만주의, 또는 색채를 중요시 여겼던 인상주의 시절의 곡 느낌이 나기도 한다. == 주요 작품 == === 피아노 === * '''피아노 소나타 Op.1''' * C장조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 실내악 === * '''현악 4중주 Op.3''' *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Op.5''' * '''현악 4중주를 위한 '서정 모음곡'''' === 관현악 및 협주곡 === [youtube(mOVSIhFA14k)] * '''실내협주곡''' * '''관현악을 위한 3개의 소품 Op.6'''[* 1악장 전주곡, 2악장 원무곡, 3악장 행진곡] * '''바이올린 협주곡 '''[* 말러의 아내였던 알마 말러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사이의 딸 '마농 그로피우스'의 소아마비에 의한 요절 소식에 충격받은 베르크가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 To the memory of an angel>라는 부제로 작곡한 곡으로 당시의 현대음악적 요소와 전통적 조성음악적 요소가 이상적으로 융화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진혼곡의 성격을 가진 이 작품 완성 4개월후 베르크 자신도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사후 이듬해 1936년 초연됐다.] * 파사칼리아 (일부만 남음) === 가곡 === * '''7개의 초기 노래''' * 가곡 "4개의 노래" Op.2 === 오페라 === * '''보체크 Op.7''' * '''룰루'''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