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나기하라 뱌쿠렌 (문서 편집) 柳原白蓮 [[1885년]] [[10월 15일]], [[도쿄도]] [[미나토구(도쿄)|미나토구]] ~ [[1967년]] [[2월 22일]], [[도쿄도]] [[도시마구]](향년 만 81세) [목차] == 개요 == [[일본]] [[메이지 시대]]에서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에 걸쳐 살았던 여성, [[와카]](和歌) 작사, 시인. [[본명]]은 야나기하라 아키코(柳原燁子)[* 柳原은 야나기하라(やなぎはら) 또는 야나기와라(やなぎわら)로 읽는다. 야나기하라 씨(氏)는 [[교토]] 조정의 문관(文官)에 해당하는 계층인 구게(公家) 중 메이케(名家)에 속하는 가문으로, 메이케는 구게 중에서도 수준이 낮은 하급 계층이었다.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가 그 뿌리이며, 후지와라 북가의 유력 인사였던 곤 다이나곤(権大納言) 히노 스케아키라(日野資明)가 [[가마쿠라 막부]] 말기에 야나기하라 가문을 창시한 것이 그 시초. 메이케에 속하는 다른 가문으로는 간로지(甘露寺) 씨, 세이칸지(清閑寺) 씨, 가쥬지(勧修寺)~~가주지??~~ 씨~~어째 다 [[절(불교)|절]] 이름이다~~ 등이 있다.]이다. 뱌쿠렌(白蓮)은 집필 활동을 할 당시의 [[필명]].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16.jpg]] 15세경의 뱌쿠렌, 옆의 탁자에 보면 두꺼운 책[* [[메이지 덴노]]의 정실 [[쇼켄 황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mpress_Shoken.jpg]]]이 놓여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 여성이 사진을 찍으면 항상 동반되는 것으로,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에게 정조를 지키라는 뜻으로 갖다놓은 듯하다.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81.jpg]] 20대의 뱌쿠렌. '[[다이쇼]] 시대의 3대 미인'[* 야나기하라 뱌쿠렌, [[쿠죠 다케코]], 에기 킨킨(江木欣々). 하야시 키무코(林きむ子)를 이에 추가하기도 한다.] 중 하나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02.jpg]] 노년의 뱌쿠렌. 80세 넘게 살아 비교적 오래 살았다. == 생애 == === 친정 집안 === ※ 이름을 뱌쿠렌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본명인 아키코로 씀.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35.jpg]] 아버지 야나기하라 사키미쓰(柳原前光, 1850 ~ 1894) [[백작]]은, [[교토]]에서 다이나곤(大納言)[* 대납언, 원래는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 고대 역사서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벼슬의 이름인 납언(納言)을 본따 중국 [[당나라]]의 문물 수입이 적극적이던 [[헤이안 시대]]에 생긴 관직명. '납언' 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말씀을 바치다, 드리다' 라는 말로, '신하가 황제(또는 왕)에게 말씀을 드린다'는 뜻이다. [[교토]] 구게(公家) 중에서도 이름 있는 가문의 인물이 역임한 일본 조정의 주요 관직. 다이나곤 말고도 위로 [[천황]]에게 직접적인 조언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간바쿠(關白), 다이조다이진(太政大臣, [[조선]]의 영의정), 사다이진(左大臣, 조선의 좌의정), 우다이진(右大臣, 조선의 우의정) 등이 있었고, 아래에 츄나곤(中納言), 쇼나곤(少納言) 등의 관직이 있었다. 다이나곤의 조정 내 위치는 조선의 관직으로 따지면 정 3품 정도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위에 해당한다.] 정2품 구교(公卿)[* 공경, [[교토고쇼|교토 구(舊) 황궁]]에서 관직에 종사하던 일본의 문신(文臣)을 가리키는 말. 구교의 집안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구게(公家)이다.]인 야나기하라 미쓰나루(柳原光愛, 1818 ~ 1885)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사키미쓰는 [[메이지]] 정부의 외무대신을 지냈다. 청일 간의 조약의 부재로 양국 교역이 불편함을 건의해 [[청나라]]에 파견되어, 청나라 대신 [[이홍장]], [[증국번]]과 청일조약을 체결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와 함께 [[정한론]](征韓論)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에 [[기도 다카요시]] 등과 함께 '[[조선]]이 감히 [[일본]]을 상국(上國)으로 모시지 않다니, 괘씸하다. 이럴 때 조선을 정벌해서 영토도 늘리고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천하의 개쌍놈]]~~ [[한국]]에는 여러모로 인식이 안 좋은 사람. ~~[[원쑤]]~~ 사키미쓰의 여동생 [[야나기하라 나루코]]는 [[메이지 덴노]]의 측실로, [[다이쇼 덴노]]의 생모이다. 따라서 사키미쓰는 다이쇼 덴노의 외삼촌, 아키코는 다이쇼 덴노의 외사촌 여동생이 된다. 어머니 오쿠쓰 료(奥津りょう)는 사키미쓰의 정처가 아닌 [[첩]]이다. 그녀는 본래 [[에도 막부]]의 잡일을 거들던 신미 마사오키(新見正興)의 딸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자 [[교토]] 야나기바시(柳橋)의 [[게이샤]]로 활동하다가 사키미쓰의 첩이 되었다. 1885년 10월 15일([[메이지]] 18년), [[도쿄]](당시 [[도쿄]]부)에서 태어났다. 사키미쓰 백작은 로쿠메이칸(鹿鳴館)에 있다가 딸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 로쿠메이칸이란 본래 서양 외교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점차 [[화족]]들의 사교장 겸 무도회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화려한(燁) 곳에서 딸의 탄생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아키코(燁子)'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첩의 딸인 아키코는 사키미쓰 [[백작]]의 정실(正室)인 하츠코(初子)의 딸로 [[입양]]되었다. 아키코의 생모 료는 일찍 죽었고, 아키코는 곧 [[화족]] 가문의 양육 방식대로 보모에게 맡겨져 길러진다. 6살이 되자 아키코는 본가로 돌아왔고, 8살이던 1892년에 [[소학교]]에 입학한다. 9살에 기타코지 요리미쓰(北小路隨光)[* 사실 기타코지 가문은 [[에도 시대]] 초기에 야나기하라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 혈통이다. 곧 아키코는 먼 친척 집안에 시집간 것이다.] [[자작(작위)|자작]](子爵)의 양녀로 입양되어 13살에 [[화족]] 여학교[* 現 [[가쿠슈인]] [[여중|여자 중등과]], [[여고|여자 고등과]], [[여자대학교]]의 전신이다.]에 입학한다. 그런데… 그녀의 파란만장한 남자 이력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 첫 번째 결혼 : 기타코지 스케타케(北小路資武)[* 일설에는 [[지능]]이 낮았다고도 한다.] == ===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다 === 요리미쓰의 아들 기타코지 스케타케와 결혼한 것이다. 본래 아키코는 입양될 때 스케타케와 결혼하게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런데 아키코가 남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자, 이를 본 스케타케는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며칠 후, 아키코는 자신이 기타코지 집안에 입양된 것이 사실 스케타케와 결혼시키려는 의도 때문임을 알게 되고, 양부모(요리미쓰 부부)에게 "결혼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를 안 스케타케가 홧김에 아키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 네가 [[첩]]의 딸인 건 알고 있냐?! 아버지의 정실 하츠코가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철석같이 알고 있었던 아키코에게, 이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 말에 아키코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략결혼]]은 당사자가, 그것도 여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결혼하게 된 아키코는 [[임신]]을 하게 되어 화족 여학교를 [[자퇴]]하고 15살([[1901년]])에 아들 기타코지 이사미쓰(北小路功光)[* [[도쿄대학]] 문학부를 중퇴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다수의 시집, 가사집을 쓴 시인. 야나기하라 뱌쿠렌의 친아들인 까닭으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를 [[출산]]한다. 아들 이사미쓰는 아키코가 아니라 스케타케의 어머니, 즉 친할머니인 히사코(久子)에 의해 길러지고, 스케타케는 아내 아키코에게는 관심도 안 가지고 [[하녀]]와 어울린다. 아키코는 고독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 5년만에 이혼하고 친정 [[도쿄]]로 돌아온다. === 문학 기질의 발견 === [[도쿄]]의 [[친정]]으로 돌아온 아키코는 행복할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애초에 아키코는 정략혼을 목적으로 키워진 서녀였는데, [[이혼]]한 그녀에 대해 친정은 당연히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집 근처에서 숨어 살며 지내야 했다. ~~막장~~ 그나마 이복 언니 이리에 노부코(入江信子)[* 사키미쓰의 정실인 하츠코의 딸. 이리에 노부코의 3남 이리에 스게마사(入江相政)는 훗날 [[쇼와 덴노]]의 시종장을 지냈으며, 이때 스게마사가 궁중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저술한 일기가 유명하다. 한편 스게마사는 [[쇼와 덴노]]의 막내동생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아내인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의 외삼촌이기도 하다.]가 다수의 문학책을 보내주어, [[독서]]를 하면서 고독을 이길 수 있었다. 이때 읽은 책들이 아키코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주었다. 그 와중에 친정에서는 아키코를 다시 시집보내려고 하였고, 아키코는 참지 못하고 그곳을 탈출해 오빠인 야나기하라 요시미쓰(柳原義光) 백작 부부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아키코는 도요에이와(東洋英和) 여학교[* 現 도요에이와 여학원. [[개신교]]계 [[미션스쿨]]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중고일관교|일관제]] 여학교이다.]에 [[편입학]]해서 조금이나마 행복을 느끼게 된다. 도요에이와 여학교에 다니면서 아키코는 [[문학]] [[동아리]]에 들어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그때부터 아키코의 문학적 소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학 덕분에 류스케와 결혼했지~~ 이때 무라오카 하나코(村岡花子)[* [[일본]]의 여성 번역가, 다수의 영문학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했으며, 초대 일본 [[개신교]] 펜 클럽의 회장을 지냈다. 그 유명한 [[빨간머리 앤]]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번역했다. 하나코의 이야기는 [[하나코와 앤]]이라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와 친분을 맺는다. == 2번째 결혼 : 이토 덴에몬(伊藤伝右衛門)[* [[후쿠오카]] 번(現 [[후쿠오카현]]) 출생, 아카비키(일종의 방범대)의 자식으로 태어나 신분이 비천했다. 그러나 [[탄광]] 개발로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이고 [[벼락부자]]가 된다.] == === 벼락부자의 후처가 되다 === 몇년 후 아키코는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광업의 한 직원의 중매로 50세의 [[규슈]]의 탄광 부자 이토 덴에몬과 [[재혼]]한다. 이토 덴에몬도 첫 아내와 사별하여 재혼이었다. 덴에몬의 신분은 [[화족]]도 아니고 심지어 [[무사(역사)|무사]]계급도 아닌 일반 평민(상인)으로 비천했던 반면, 아키코는 비록 서녀였지만 당시의 [[천황]]이였던 [[다이쇼 덴노]]의 외사촌 여동생이며 지체 높은 [[화족]] 가문의 딸이었다. 둘의 결혼은 [[일본]]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결혼 뒤에는 아키코의 오빠 요시미쓰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요시미쓰는 [[귀족원(일본)|귀족원]] 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선거 자금을 마련해야 했었는데,[* 당시 일본 귀족원에서는 [[화족]] 중 [[공작(작위)|공작]], [[후작]]은 귀족원의 종신 의원 자격이 있었지만, [[백작]] 이하는 자신들끼리 대표의원을 선출하였으며 임기도 7년으로 제한되었다.] 이토 덴에몬은 일본에서도 손에 꼽는 부자라, 요시미쓰가 선거 자금의 공급원~~ATM~~이 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신분 차이뿐 아니라 나이차도 엄청났는데 당시 아키코는 [[20대]]의 한창 나이였다. 반면 덴에몬은 무려 [[50대]]로, 아키코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코가 결혼을 결심했던 까닭은, 덴에몬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카호(嘉穗) 군립기예여학교[* 現 후쿠오카 현립 카호히가시(嘉穗東)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으며, 여성교육과 봉사에 힘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덴에몬은 신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아키코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덴에몬이 마음에 꼭 들었다. 아키코는 '이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덴에몬이 자신을 속였다는 진실을 알게 된 아키코는 또다시 충격을 받는다. === 또다시 순탄치 못한 부부관계 === 덴에몬은 친자식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이미 전처 츠지 하루(辻ハル)와의 사이에서 시즈코(靜子)라는 딸이 있었으며, 2명의 아들을 입양했다. 또한 덴에몬은 너무도 성적으로 문란하고 방탕하여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몸이었다. ~~[[고자]]?~~[* [[김동인]]의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를 생각하면 된다. 서술로 봐선 아마도 [[성병]].] 덴에몬의 집안이 비록 [[일본]] 국내에 수많은 [[별장]]을 가지고 있는 등 돈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 가정에는 인간미가 부족했다. 그리고 덴에몬은 여성 편력이 매우 심했던 고로, 아내인 아키코와 좀처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게다가 덴에몬이 [[사창가]]에서 옮아온 [[성병]]이 아키코에게 옮자, 자존심이 강했던 아키코는 다시 고뇌에 빠져들고 말았다. 덴에몬과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게 돌아가는 와중에, 아키코는 많은 문학활동을 하며 이름을 날린다. 아키코는 [[시]], [[와카]], [[수필]], [[희곡]] 등등 여러 분야의 문학에서 저술활동을 하였다. 이때 '하얀 [[연꽃]]'이라는 뜻의 뱌쿠렌(白蓮)을 필명으로 정한다. 이때부터 본명인 아키코는 쓰지 않고, 거의 뱌쿠렌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 3번째 결혼 : 미야자키 류스케(宮崎龍介) ==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01.jpg]] 미야자키 류스케와 뱌쿠렌. [[파일:attachment/야나기하라 뱌쿠렌/a03.jpg]] 미야자키 부부와 자식들. === 평생의 동반자와의 만남 === 뱌쿠렌은 자신이 쓴 [[희곡]]을 <해방>이라는 잡지에 게재하려는 과정에서, 그 잡지의 주필을 맡고 있었던 미야자키 류스케라는 7살 연하의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류스케는 [[쑨원]]의 [[일본인]] [[동지]]이자, [[중국]]에 건너가 [[신해혁명]]을 지원한 미야자키 도텐(宮崎滔天)[* 본명은 미야자키 토라조(宮崎寅蔵), [[구마모토]] 번 출신으로, 번의 무사 미야자키 마사카타(宮崎政賢)의 4남.]의 아들로,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수재였다. 또한 류스케는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뱌쿠렌과 마음이 척척 들어맞았다. 류스케에게 어느날 뱌쿠렌이 하소연을 하였다. >이렇게 매일 글쓰기만 하는 인생은 재미가 없어… 게재 문제로 [[규슈]] 벳푸의 덴에몬의 별장에서 며칠을 보낸 후, ~~같이?? 단둘이서??~~ 뱌쿠렌은 류스케를 기차역까지 배웅했다. 이 일 이후로 둘은 점차 연애 편지로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또 [[도쿄]]에서 뱌쿠렌이 잡지에 올린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상연되어, 뱌쿠렌이 [[도쿄]]를 방문해 류스케를 만났다. 류스케는 뱌쿠렌의 스스럼없고 솔직한 성격에 반했다. 그러나 뱌쿠렌은 어디까지나 덴에몬의 아내였고, 외출도 덴에몬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었다. 류스케와 자주 만나지 못하자, 뱌쿠렌은 잡지 <해방>에 류스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류스케와 뱌쿠렌의 관계를 눈치채, 먼저 류스케가 뭇매를 맞았다. 류스케는 잡지의 편집부, 문학 협회 등에서 제명당했다. 이때부터 뱌쿠렌과 류스케의 사랑의 감정은 더욱 깊어졌다. 뱌쿠렌은 문학 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처지의 [[쿠죠 다케코]][* [[쿠죠 다케코]]에게도 몰래 사귀는 애인이 있었고, 다케코의 남편도 바람을 피웠으나, 두 사람은 결국 이혼하지 않고 살았다.]와 만나 벳푸의 별장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친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뱌쿠렌과 류스케가 일을 저지르고 만다. === 2번째 재혼, 뱌쿠렌 사건이라 불리다 === 뱌쿠렌은 1921년 [[교토]]에서 류스케의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한 뱌쿠렌은 류스케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벳푸 별장을 탈출하려고 준비하였다. 먼저 [[하카타]]의 한 [[게이샤]]를 끌어들여 4천엔[* 지금의 엔화로 환산하면 약 2천만엔 정도.]을 주고 덴에몬의 아내로 대신 들어가게 하고, 뱌쿠렌은 벳푸를 빠져나와 교토로 도망쳤다. 류스케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뱌쿠렌을 빼내오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뱌쿠렌 사건이다. 뱌쿠렌은 [[아사히 신문]]에, 덴에몬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공개 절연 선언문을 게재했다. >'''나는 금력(金力)을 가지고 여성의 인격적 존엄을 무시하는 당신에게 영원한 결별을 고합니다. 나는 나의 개성과 자유를 보호하고 북돋우기 위해 당신의 곁을 떠납니다.''' 이 사건은 보수적이던 당시 [[일본]] 사회 및 [[화족]]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당했고, 뱌쿠렌의 오빠 요시미쓰 백작은 이를 진정시키느라 사과하며 애를 먹었다. 요시미쓰 백작은 귀족원 의원직, 백작 작위까지 사임했고[* 요시미쓰 백작은 3년 뒤에 [[백작]] 작위와 귀족원에 복귀하지만, 그 뒤에 또 일이 터진다. 본인은 [[동성애]] 의혹에 휘말리고 차녀가 초대형 불륜 스캔들을 터뜨린 것... 이러면서 야나기하라 가문 자체가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뱌쿠렌은 아예 화족에서 [[영구제명]]되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두 남매는 [[의절]]하고 지냈으나, 1935년 들어서 화해하게 된다. === 결혼 생활 === 류스케와 뱌쿠렌은 1922년 아들 카오리(香織)를, 1925년 딸 후키(蕗苳)를 낳았다. 둘은 순조롭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으나, 갑자기 류스케가 [[결핵]]에 걸려 병상에 눕는다. 뱌쿠렌은 작품 집필 등을 통해 어려운 살림과 남편의 병간호를 둘 다 해결해 나간다. 류스케는 뱌쿠렌의 정성스러운 병간호 덕분에 몇 년 지나지 않아 씻은 듯이 회복한다. 그러나 위기가 이번에는 외부에서 닥쳤다. [[태평양 전쟁]] 당시, 1945년에 장남 카오리가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로 참전하였다가 23살 나이에 폭격으로 [[전사]]한 것이다. 그로 인해 뱌쿠렌의 머리카락은 하루아침에 새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반대로 딸 후키는 2022년까지 장수했던 편. === 패전 이후 === 패전 이후에는 [[일본방송협회|NHK]] 라디오 방송에서 연설하는 등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집필 활동도 멈추지 않고 문학열을 불태웠다. 그러다 돌연 [[녹내장]]이 찾아와 시력을 잃었다. 류스케는 뱌쿠렌을 정성스레 간병했고, 뱌쿠렌은 [[1967년]] 만 8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여담으로 1959년 [[아키히토]] 황태자가 평민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와 결혼할 때, 반대운동에 가담하여 극렬하게 활동하기도 하였다. ~~역시 [[화족]]~~ 뱌쿠렌은 화족여학교 시절 친구였던 수필가 시라스 마사코(白洲正子)[* [[쇼와 덴노]]의 바로 아래 남동생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의 아내인 [[세츠코 비]]의 친구이기도 하다.]에게 전화하여, "어떻게 평민 여자가 황실로 시집올 수 있지?!"라며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화족]]에서 제명된 지 오래였지만,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은 버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시라스 마사코도 [[화족]] 가문 출신으로, [[백작]] 카바야마 아이스케(樺山愛輔)의 딸이다. 그러나 마사코는 평민 출신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를 반대하는 뱌쿠렌의 발언에 놀라며 "그런 건 이제 상관없지 않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작 그런 마사코도, "다른 일은 몰라도, [[가사노동]]만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웃긴 건, 뱌쿠렌 본인도 미천한 [[첩]][* 게이샤, 그것도 몰락한 잡일꾼 집안 출신의.]의 딸인 반쪽짜리 화족이고, 마찬가지로 신분을 가리지 않은 결혼을 여러 번이나 했는데 그건 다 잊어버렸나 보다(...) 아니면 화족 여성이 평민 남성에게 출가하는 것과 평민 여성이 황족 남성에게 시집오는건 다르다고 생각했거나. == 미디어 == NHK 연속TV소설로 친우였던 무라오카 하나코([[요시타카 유리코]]가 연기)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하나코와 앤]]의 조연 '하야마 렌코'가 바로 이 뱌쿠렌이다. 해당인물과 주변 인물 이름만 조금씩 바꾸어서 나온다. 결혼 및 재혼 이야기, 여학교 시절, 친구, 가정사 등 위에서 이야기한 사건들이 모두 극화되었다. [[나카마 유키에]]가 연기. [[파일:external/pbs.twimg.com/BufSJ2oCMAEoGMQ.jpg]] 왼쪽에서 2번째. [[분류:일본 제국의 인물]][[분류:일본 여성 작가]][[분류:일본의 시인]][[분류:1885년 출생]][[분류:1967년 사망]][[분류:미나토구(도쿄) 출신 인물]][[분류:서출]][[분류:일본사/여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