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정모 (문서 편집) [include(틀:관련 문서, top1=국제그룹)]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같은 이름의 1953년생 前 레슬링 선수, rd1=양정모(레슬링))] ||<-2> '''{{{#000000,#dddddd {{{+1 양정모}}}[br]梁正模}}}'''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양정모.jpg|width=100%]]}}} || || {{{#000000,#dddddd '''본관'''}}} ||[[남원 양씨]] || ||<|2> {{{#000000,#dddddd '''출생'''}}} ||[[1921년]] [[9월 13일]] ||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 || ||<|2> {{{#000000,#dddddd '''사망'''}}} ||[[2009년]] [[3월 29일]] (향년 87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000000,#dddddd '''가족'''}}} ||아버지 양태진[br]딸 양경화(梁京華), 딸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x_csa=%7B%22fromUi%22%3A%22kb%22%7D&pkid=1&os=14304381&qvt=0&query=%EC%96%91%EC%A5%90%EC%96%B8%EB%8B%88%20%ED%94%84%EB%A1%9C%ED%95%84|양쥐언니]][* 1977년생, 본명 양지혜], 사위 [[왕정홍]], 외손녀 [[왕지원]] || || {{{#000000,#dddddd '''학력'''}}} ||[[부산공업고등학교|부산공립공업학교]] {{{-2 (가구과 / 졸업 / 14회)}}}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기업인]], [[국제그룹]] 제2대 총수. == 일생 == 1921년 9월 13일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에서 양태진(梁泰振)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부산공립공업학교]] 졸업 후, 1949년 부친과 함께 부산에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해 '''왕자표''' [[고무신]]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와중에 군수품 생산으로 큰 돈을 모았다. 1963년 신발류와 비닐제품 생산업체 진양화학[* 1974년에 동생 양규모에 의해 독립하여 현재의 KPX그룹이 되었다.]을 세워 1970년대초 신발 수출 붐을 타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직물가공업체 성창섬유, 국제상선, 신동제지, 동해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창업하고 동서증권, 동우산업, 조광무역, 국제토건, 국제종합엔지니어링, 원풍산업, 연합철강[*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창업주인 권철현(1925~2003)과 연관된 논란이 많았다.] 등을 인수하며 [[재벌]]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초반 들어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 기업집단으로 키웠다. 1976~1985년까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및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지내며 부산도시가스 및 항도투자금융 설립에 참여했고,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1985년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제그룹]]이 해체된다. [[국제그룹 해체 사건]] 문서 참조. 결국 주력 계열사였던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은 극동건설그룹에, 연합철강과 국제종합기계는 동국제강에, 국제상사 등 나머지 계열사와 국제그룹 사옥은 한일그룹에 각각 넘어갔다. 당시 정부 측은 그룹 해체 원인이 자체 브랜드 개발 실패 및 용산사옥 신축으로 인한 자금난, 전근대적 경영방식, 사우디 건설업 적자 등으로 보았으나, 세간에선 양 전 회장이 정치자금 헌납 등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임에 늦게 나타난 것이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이것이 그룹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이후 1987년에 '[[국제그룹]] 복원 추진위원회'를 세워 1988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의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 소송[* 당시 소송 대리인이 [[조영래]], [[황인철]] [[변호사]]였다.]을 벌여 1993년에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아 1994년에 한일합섬을 상대로 국제상사를 돌려받고자 '주식인도 청구반환 소송'을 냈으나 1996년에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고,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그룹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국제 계열사들을 많이 가져간 [[한일그룹]], [[극동그룹]] 등이 외환위기로 파산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8년 [[부산도시가스]] 사외이사 추대 후 고향인 [[부산광역시|부산]]에서 칩거생활을 하다가 2009년 3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노환]]에 따른 [[폐렴]]으로 [[https://www.joongang.co.kr/article/3549875#home|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 대중매체에서 == * 1993년 8월 29일자 KBS1 <다큐멘터리극장>에선 배우 [[김진해]]가 연기했다. * 2005년작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배우 [[한인수]]가 연기했다. == 여담 == * 자식이 3남 11녀로 매우 많다. 장남은 그룹이 해체된 직후인 1985년에 미국에서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30730004004|사망]]하였다. 동생으로는 KPX그룹(진양화학) 회장 양규모와 양귀애 전 [[대한전선]] 명예회장[* [[설원량]] 2대 [[대한전선]] 회장의 아내. 하지만 설 회장의 급서로 아버지와 남편-아들 그룹 모두가 분해되는 고통을 겪었다.]이 있다. * 아직 어린 아들을 대신해 사위들을 요직에 배치한 가족 중심의 경영체제가 그룹 해체 당시 도마에 올랐었다.[* 첫째 사위(한윤구)가 국제상사 생산담당 사장, 둘째 사위(이대황)가 국제상선 사장, 셋째 사위(김정형)가 국제상사 부사장, 넷째 사위(김영)가 동서증권 부사장, 다섯째 사위(김덕영)이 국제그룹 부회장을 맡았다.[[https://www.hankyung.com/article/1993073000471|#]]] 이들 다수는 국제그룹 해체 이후 세간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상당 기간 칩거해야 했다. 다만 이 가운데 2인자로 가장 중용되었던 다섯째 사위 김덕영은 김종호 신한종합금융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서, 국제그룹 해체 이후인 1986년에 국제그룹 직원들을 중심으로 두양상사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7/04/30/1997043070243.html|설립]]하고 두양그룹의 창업주가 되었다. * 발레리나 출신 배우 [[왕지원]]의 외조부다. 즉,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이 양정모의 사위다. * [[LG]]그룹에서 [[LG#s-12.1|㈜LG]] 대표이사,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등 최고위 전문경영자로 활동한 [[권영수(1957)|권영수]] 부회장도 사위이다. [[권영수(1957)|권영수]]는 동갑내기(1957년생)인 양정례와 결혼하였고, 당시 다른 사위들과 마찬가지로 국제그룹 경영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제안을 거절하고 계속 LG에 근무했다고 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양정모, version=13, paragraph=2)] [[분류:1921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폐렴으로 죽은 인물]][[분류:남원 양씨]][[분류:부산공업고등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업인]][[분류:국제그룹]]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