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령군(1385) (문서 편집) ||<-3><#94153E> {{{#gold '''조선 태조의 손자'''[br]{{{+1 '''의령군[br] 義寧君'''}}}}}} || ||<-2><#94153E> '''[[작호|{{{#gold 작호}}}]]''' ||<(> 원윤(元尹)[br]→ 의령후(義寧侯)[br] → 의령군(義寧君) || ||||<#94153E> '''[[본관|{{{#gold 본관}}}]]''' ||[[전주 이씨|전주]] || ||||<#94153E> '''[[이름|{{{#gold 이름}}}]]''' ||맹종(孟宗)[* 《선원록》 등에는 이름이 '맹중(孟衆)'으로 나와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게 자진을 명하는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507011_002|기사]] 및 그가 죽은 뒤의 기사들에서도 계속 '맹종'이라고 언급되는 것을 보면 '맹중'은 그냥 오기인 듯하다.] || ||||<#94153E> '''[[아호|{{{#gold 호}}}]]''' ||망우당(忘牛堂) || ||||<#94153E> '''{{{#gold 생부}}}''' ||[[회안대군]] || ||||<#94153E> '''{{{#gold 생모}}}''' ||삼한국대부인 [[여흥 민씨]][* 민선(閔璿)의 딸로, [[권근]]의 처이모이기도 하다.] || ||||<#94153E> '''{{{#gold 부인}}}''' ||[[청주 한씨]][* 주부(主簿) 한기(韓琦)의 딸.] || ||||<#94153E> '''{{{#gold 자녀}}}''' ||1남 || ||||<#94153E> '''[[무덤|{{{#gold 묘소}}}]]''' ||[[경기도]] [[여주시]] {{{-1 (현재 실전)}}}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385년]] [[2월 15일]] ~ [[1423년]] [[7월 11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385년]] [[3월 26일]] ~ [[1423년]] [[8월 25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초의 왕족으로,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손자이자 [[회안대군]] 이방간의 아들. 1400년(정종 2년) [[2차 왕자의 난]] 당시 아버지와 함께 숙부 [[태종(조선)|이방원]]에게 맞섰으나 패배하고,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사촌]] 세종대왕의 강요로 인해 자살했다. == 생애 == [[고려]] 말인 1385년(우왕 11년)에 이방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392년(태조 원년)에 조선이 건국되고 아버지가 회안군으로 봉해지자 그도 원윤(元尹)에 봉해졌다. 이후 1398년(정종 즉위년) 의령후(義寧侯)를 거쳐 1400년(정종 2년)에 의령군(義寧君)으로 개봉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이맹종은 아버지의 편에 서서 책사 노릇을 하며 숙부 이방원에게 맞섰다. 불과 16세 밖에 안된 나이임에도 활을 매우 잘 쏘았고, 꾀가 많아 중요한 역할을 맡는 등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고, 아버지와 함께 생포되어 [[황해도]]로 유배를 떠났다. 임금이 된 [[태종(조선)|태종]]은 이방간과 이맹종 부자의 작위와 녹권[* 고려, 조선시대에 공신으로 책봉된 신하에게 지급했던 문서]을 모두 회수했으나, 그들을 죽이라는 신하들의 상소는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세종(조선)|세종]] 제위 시기인 1421년 이방간이 [[충청도]] [[홍주목]]에서 사망하자 이맹종은 유배지를 그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1423년부터 이맹종의 탄핵과 사형을 주장하는 [[의정부]]와 [[육조]]의 상소가 빗발치자, 세종은 그에게 [[자살|자진]]을 명했고, 결국 이맹종은 7월 11일 자진했다. 그의 시신은 외가가 있는 [[경기도]] [[여주시]]에 안치되었으나 묘는 후일 실전(失傳)되었다. == 대중매체에서 == 이맹종은 이방석보다 어린데,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석은 아역 배우가 연기한 반면, 이맹종은 아래와 같이 성인 배우가 맡아 역사적 사실을 알면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맹종은 1차 왕자의 난 이후부터 등장해 둘이 같이 나온 장면은 없다. 항상 활과 화살을 장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명궁이라 언급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쏜 화살이 빗나가 결국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특징 중 하나. * 1997년 [[KBS 1TV|KBS1]] 〈[[용의 눈물]]〉에서 배우 [[김경응]]이 연기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용의 눈물 맹종.png|width=100%]]}}} || || {{{#gold '''〈용의 눈물〉의 의령군'''}}} || * 2022년 [[KBS 1TV|KBS1]]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박장호가 연기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맹종(태종 이방원).jpg|width=100%]]}}} || || {{{#gold '''〈태종 이방원〉의 의령군'''}}} || [[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1385년 출생]][[분류:1423년 사망]][[분류:조선의 자살한 인물]][[분류:전주 이씨 회안대군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