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 베르네 (문서 편집) ||<-2><:> '''성명''' ||<(> 장 베르네[br]Jean Vernet || ||<-2> '''생몰년도''' ||<(> 미상 ~ [[1427년]] [[6월 12일]] || ||<-2>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오베르뉴 || ||<-2>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클레인 강변 || ||<-2> '''직위''' ||<(> 시종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왕국]]의 귀족, 정치인. [[샤를 7세]]의 시종장이다. == 생애 == 오베르뉴 출신으로, 1427년경 [[샤를 7세|도팽 샤를]]을 호위하는 경비대에 소속된 종자였다. 1427년 2월 8일 시종장 [[피에르 2세 드 지악]]이 아르튀르 드 리슈몽의 부하들에게 피살당한 뒤, 도팽 샤를은 똑똑하지 않지만 매력적인 그를 총애했다. 그 결과 그는 기병대의 그랜드 마스터에 선임되었고, 푸아티에의 대장을 역임했고, 나중엔 피에르 2세 드 지악의 뒤를 이어 시종장이 되었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해 자신의 부하들이 왕의 주변을 채우게 했다. 이러한 그의 행태에 반감을 품은 앙주 공작이자 명목상 나폴리 국왕 [[루이지 2세]]의 부인인 아라곤의 욜랑드와 프랑스 무관장 [[아르튀르 드 리슈몽]]은 그를 제거하기로 했다. 1427년 6월 12일, 장 베르네는 푸아티에에서 말을 타고 클레인 강둑을 따라 가던 중 아르튀르 드 리슈몽의 지시를 받은 [[장 드 브로세]]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두개골은 쪼개졌고, 한 손이 절단되었으며, 몸통은 강물에 던져졌다. 도팽 샤를은 이에 격노했지만,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과 힘겹게 싸우는 상황에서 리슈몽과 갈등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깨닫고 별다른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분류:프랑스의 귀족]][[분류:프랑스의 정치인]][[분류:1427년 사망]][[분류:오베르뉴론알프 출신 인물]][[분류:백년전쟁/인물]][[분류:암살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