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문석 (문서 편집) || '''장문석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LG 트윈스 개막전 선발 투수)] ---- || '''장문석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 || [[신윤호(1975)|신윤호]][br](1994~1996) || {{{+1 →}}} || '''{{{#fff 장문석[br](1997~2005)}}}''' || {{{+1 →}}} || [[강상수]][br](2006) || ||<-5> '''{{{#fff [[KIA 타이거즈|'''{{{#ffffff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 || [[조규제]][br](2004~2005) || {{{+1 →}}} || '''{{{#ff0000 장문석[br](2006)}}}''' || {{{+1 →}}} || [[조경환(야구)|조경환]][br](2007) || ||<-5> '''{{{#fff [[KIA 타이거즈|'''{{{#ffffff KIA 타이거즈}}}''']] 등번호 26번}}}''' || || [[홍세완]][br](2000~2006) || {{{+1 →}}} || '''{{{#ff0000 장문석[br](2007~2009)}}}''' || {{{+1 →}}} || [[서재응]][br](2010~2015) ||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Jangmoonsuk.jpg|width=100%]]}}} || ||<-2> '''{{{+2 장문석}}} [br] 張文碩 | Jang Mun Seok''' || ||<|2> '''출생''' ||[[1974년]] [[12월 15일]] ([age(1974-12-15)]세) || ||[[부산광역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대신초등학교(부산)|대신초]] - [[대동중학교(부산)|대동중]] - [[부경고등학교 야구부|경남상고]] - [[동아대학교 야구부|동아대]]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97년/신인드래프트#s-3.2|1997년 2차 1라운드]] (전체 3번, [[LG 트윈스|LG]]) || || '''소속팀''' ||'''[[LG 트윈스]] (1997~2005)''' [br] [[KIA 타이거즈]] (2006~2009) || || '''지도자'''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br][[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목차] [clearfix] == 개요 ==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투수. == 선수 경력 == 1997년 [[LG 트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며 상당한 기대를 모았으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데뷔시즌이던 1997시즌 7경기 2패에 방어율 13.50에 그쳤고, 5월 4일에는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5:27이라는 역대 최악의 대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출장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9년 6월 28일 해태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등판해 5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데뷔 첫 승리를 기록하더니 7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서 데뷔 첫 완봉승[* 이 경기 승리로 LG는 롯데와의 사직 4연전을 싹쓸이했다.]에 성공하며 무너진 LG 마운드의 난세영웅이 되기도 했다.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스윙맨으로 나오며 4승3패4세이브에 방어율 4.21로 입단 3년만에 드디어 1군 무대에서 제 몫을 했다. 2000년에는 두산과 LG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 등판해서 [[김용수]]가 다 이겨놓은 9회초 2아웃에서 동점홈런, 연장전에서는 역전 홈런을 맞아 한국시리즈 진출을 놓치기도 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역전패를 허용한 임팩트가 워낙 커서 2000년에 부진한 것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장문석은 정규시즌에는 상당히 잘 했다. 2000년은 6연승에 잠시나마 탈삼진 1위도 해보기도 했고, ERA는 3.42로 리그 6위인데 이는 우승팀 현대의 주축투수였던 [[정민태]], [[김수경(야구)|김수경]]보다도 높은 호성적이었다. 심화지표로는 스탯티즈 기준 ERA+ 130.9(선수 시절 2위), FIP+ 130.7(3위)에 WAR은 3.42를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로 여겨지는 2002년보다 높다.[* 그 해 성적은 40경기 등판, 137이닝 9승 8패 11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성적은 00시즌 LG에서 [[데니 해리거]] 다음 가는 성적으로, LG의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못한 것이 이미지로 굳어버렸을 뿐. 2000시즌 장문석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보직이동[* 마무리로 시작해 5월 선발이 되었다가 8월 다시 마무리로 전업했다.]과 마구잡이식 등판으로 인해 후반기에는 거의 퍼져버린 상태였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의 원흉이 된 데는 2차전에서는 [[김동주(타자)|김동주]]에게 강습타구를 맞았고, 5차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 홈런을 맞는 등 부진했음에도 불구, 그것을 감안하지 않고 올려버린 [[이광은]] 감독의 책임이 크다. 더불어 페넌트레이스 때 이상하게 투수운용을 해서[* 마무리를 5번이나 바꿨다. 선발요원이었던 [[최향남]], 장문석, [[이승호(1976)|이승호]], [[경헌호]] 등이 마무리를 돌아가면서 하고 원래 마무리였던 [[김용수]]는 마무리-선발-계투 순으로 전환시키는 식으로... 이해 LG의 국내 투수 선발등판은 김용수의 18회가 최다로, 해리거를 빼고는 붙박이 선발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 장문석이 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까지... 아무튼 이 때 이광은 감독이 장문석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그 여파는 2001년까지 이어져 ERA 7.74를 기록하는 등 크게 부진했다. 그러다가 [[2002년]] 다시 각성, [[이동현(1983)|이동현]],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과 함께 든든한 승리조가 되어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일조했다. 이 때의 기록은 전천후 투수로 등판, 무려 10승 3패 4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1.60'''. 참고로 이 사람, 59경기에서 100이닝 넘게 소화했다. [[이동현(1983)|이동현]]과 [[신윤호(1975)|신윤호]]에 비해서 해당 선수가 묻혀서 그렇지 원조 [[살려조]]라고 봐조 무방한 수준. 이후 2003년에도 전천후로 나와 39경기 100이닝을 소화했다. 전반기 불펜으로는 부진했으나 시즌 중반 전격 선발 전환후 7승을 기록하며 총 9승을 거뒀다. 2004년에는 선발투수로 주로 나와 150이닝 동안 10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2005년/5월/26일|526 대첩]] 항목과 아래 [[흑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또한 김성근 재임 시절 혹사의 여파인지, 부상에 줄곧 시달리기도 했다. 장문석의 이미지가 이도저도 아닌 이미지로 굳어진 것은 이광은 - 김성근 - 이광환 세 감독이 계속해서 혹사시키는 바람에 퍼져서 생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5 시즌이 끝난 후 손상정, [[한규식]]과 함께 [[마해영]], [[서동욱]], [[최상덕]]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되었다.[* 양 팀 모두 폐품정리 트레이드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해영은 기아에서 서정환 감독과 원수도 지고 하락세를 탔으며, 최상덕 역시 2004년을 기점으로 노쇠화로 무너졌다. 둘 다 LG에서 퇴물취급 받고서 2시즌도 안 돼서 방출되었다. 그나마 서동욱이 LG에서 오래 뛰었지만, 넥센으로 갔고 10년만에 친정팀으로 가서 포텐셜이 뒤 늦게 터진 노망주가 되었다.][* 장문석과 묶여서 온 두 선수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저 중에서 가장 오래 뛴 사람이 장문석.] 여담으로 장문석은 KIA로 트레이드될 당시 자신의 친정팀인 LG를 대놓고 디스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팀을 위해 뼈빠지게 던졌는데 돌아오는 것은 토사구팽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부터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로[* LG 시절 전천후로 나와 혹사당한 탓에 피로가 누적되어 부상이 찾아온 영향도 있었으나 LG 시절 사진과 KIA 시절 은퇴하기 직전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체중이 상당히 증가했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자기관리에 소홀한 편이었다.] 인해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KIA 이적 후 첫 시즌인 2006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나와 1승 3패 15세이브를 기록하여 겉으로는 괜찮은 성적을 냈으나, 후반기부터 맞아나가기 시작하며 마무리 자리를 [[윤석민(투수)|윤석민]]에게 내준다. 이후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면서 2007년과 2009년에는 1군 경기 출전 기록이 없고, [[2008년]]에는 밑의 통산 기록에서 보다시피 승패 없이 패전처리조 격으로만 나와 승, 패, 세이브, 홀드 중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김진우(1983)|김진우]]에게 [[노장진]]을 소개시켜 나쁜 물을 들였다고 KIA팬들에게 이미지도 안 좋다. 김진우의 해명에는 한두 번 만난 게 다였다곤 하지만. 결국 2009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이후 선수단 정리 과정에서 방출당한 것. 이후 자신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으로 들어와 재기하기 위해 SK 이적을 시도하였으나, 무릎 부상이 재발해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부상 문제와는 별개로, KIA 시절인 [[2006년]] [[5월 9일]] 문학 SK전에서 장문석은 SK의 외국인 타자였던 [[시오타니 가즈히코]]를 맞췄는데, 시즌 초 SK의 주전 [[3루수]]로 타선에서 맹타를 휘두르던 시오타니는 이 때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방출당했고, 시즌 후 그대로 선수 경력을 접고 말았다. 팀 역시 용병의 갑작스런 전력 이탈로 전체적으로 일정이 꼬이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조범현]] 감독도 물러났다. 그런 장본인을 영입하려는 데 대한 SK 팬들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은퇴 후 모교인 [[부경고등학교 야구부|부경고등학교]](경남상고에서 바뀜)의 코치를 지냈고, 이후 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 연도별 성적 == ||<-16> {{{#ffffff 역대 기록}}}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ERA}}} || {{{#ffffff 경기}}} || {{{#ffffff 완투}}} || {{{#ffffff 완봉}}}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이닝}}}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탈삼진}}} || || 1997 ||<|9> [[LG 트윈스|LG]] || 13.50 || 7 || 0 || 0 || 0 || 2 || 0 || 0 || 12⅔ || 19 || 4 || 10 || 2 || 8 || || 1998 ||<-14> 1군 기록 없음 || || 1999 || 4.21 || 23 || 1 || '''1'''[br](5위) || 4 || 3 || 4 || 0 || 62 || 54 || 4 || 39 || 3 || 51 || || 2000 || 3.42 || 40 || 0 || 0 || 9 || 8 || 11 || 0 || 137 || 123 || 10 || 50 || 12 || 134 || || 2001 || 7.74 || 14 || 0 || 0 || 1 || 3 || 0 || 0 || 43 || 50 || 6 || 35 || 2 || 23 || || 2002 || 1.60 || 59 || 0 || 0 || 10 || 3 || 4 || 9 || 101⅓ || 75 || 3 || 39 || 3 || 86 || || 2003 || 4.40 || 39 || 0 || 0 || 9 || 6 || 0 || 8 || 100⅓ || 112 || 12 || 40 || 5 || 53 || || 2004 || 4.03 || 28 || 0 || 0 || 10 || 8 || 1 || 0 || 152 || 168 || 15 || 55 || 8 || 75 || || 2005 || 3.75 || 27 || '''1'''[br](5위) || 0 || 5 || 5 || 7 || 0 || 84 || 93 || 2 || 31 || 5 || 60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ERA}}} || {{{#ffffff 경기}}} || {{{#ffffff 완투}}} || {{{#ffffff 완봉}}}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이닝}}}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탈삼진}}} || || 2006 ||<|4> [[KIA 타이거즈|KIA]] || 4.36 || 29 || 0 || 0 || 1 || 3 || 15 || 0 || 53⅔ || 51 || 4 || 26 || 3 || 36 || || 2007 ||<-14> 1군 기록 없음 || || 2008 || 5.40 || 21 || 0 || 0 || 0 || 0 || 0 || 0 || 20 || 22 || 0 || 6 || 4 || 11 || || 2009 ||<-14> 1군 기록 없음 || ||<-2> '''[[KBO 리그|KBO]] 통산''' [br] (10시즌) || 4.05 || 287 || 2 || 1 || 49 || 41 || 42 || 17 || 766 || 767 || 60 || 331 || 47 || 537 || == 흑역사 == 선수 본인이 대량실점하며 큰 인상을 남긴 경기가 꽤 있다. 입단 첫 해인 1997년 어린이날 3연전의 두번째 경기인 [[LG 트윈스/1997년/5월/4일|5월 4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등판했다가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중 첫 번째를 헌납했고, '''1⅓이닝 7피안타 10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때 LG는 삼성과의 3연전 중 홈런 '''17개'''를 포함 무려 49점(…)을 내 주면서 3경기를 모두 패했다. 이후 [[천보성]] 당시 LG 감독이 부정배트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증 결과 사실무근으로 입증되어 2중의 굴욕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던 9회초 투아웃에서 김용수로부터 교체되어 등판하였으나 [[안경현]]에게 동점홈런을 허용하고, 그리고 연장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홈런까지 맞아 패전, 탈락의 불명예를 떠안아야 했다. 다만 이는 전술했듯 플옵 내내 부진했는데도 장문석을 올렸던 감독의 책임이 큰 부분. 또한 2005년 5월 26일 롯데전에서는 무려 '''1이닝 7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날 경기는 결국 엄청난 난타전이 된 끝에 롯데가 13:11로 승리. 이 경기는 [[롯데 자이언츠/2005년/5월/26일|526 대첩]]으로 기록되었으며, [[엘 꼴라시코]]의 원조격 경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래의 짤방은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전설로 회자된다. [[파일:attachment/file449804_1.jpg|align=center]] 그리고 KIA로 이적한 첫해인 2006년 5월 9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에서 SK의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에게 사구를 던져 그의 선수 커리어를 끝내버렸다. == 여담 == * 과거 통합[[야갤]]에서 [[알버트 푸홀스]]를 스페인어식인 푸홀스로 읽어야 한다는 집단이랑 Pujols인데 어떻게 푸졸스가 아닌 푸홀스로 읽냐는 집단으로 나뉘어서 의미없는 싸움을 계속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푸졸스라 읽어야 한다는 집단이 그러면 [[랜디 존슨]]은 랜디 혼슨이냐고 읽어야 하냐고 하자 푸홀스로 읽어야 한다는 집단이 그러면 장문석은 [[항문]]석으로 읽어야 된다며 받아치는 식의 유머가 있었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코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감독]][[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2009년 은퇴]][[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MBC 청룡-LG 트윈스/은퇴, 이적]][[분류:해태-KIA 타이거즈/은퇴, 이적]][[분류:부경고등학교 출신]][[분류:동아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