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원집 (문서 편집)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876년 출생]][[분류:190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 || 성명 ||정원집(鄭元執) || || 이명 ||정원집(鄭元集) || || 생몰 ||[[1876년]] ~ [[1909년]] || || [[출생지]] ||[[한성부]] 중서 전동[br](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 || 사망지 ||[[전라남도]] [[나주시|나주군]]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정원집은 1876년생이며 한성부 중서 전동 출신이다. 그는 대한제국 근위병 참위(參尉) 출신으로,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당한 뒤 1907년 음력 9월 10일 동지 이봉래(李鳳來)와 함께 정철하(鄭喆夏)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수행하다 체포된 뒤 11월 30일 평리원에서 유배형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1908년 6월 유배지인 전라도 지도(智島)에서 탈출하여 이후 전남 광주·함평·나주·장성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전해산]] 의병진에 참여하여 7월 29일 선봉장(先鋒將)으로 활약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특히 8월 13일 이래 함평지방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일본군과 그 앞잡이를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여 수많은 적을 처단하였고, 1909년 1월 말 의병의진을 나누어 나주 고막원(古幕院)에 있는 일본군 병참을 공격하였다. 이 때 그는 의병들과 약속하기를 내가 혼자 들어가서 일이 여의하면 나올 것이고 일이 여의치 못하면 포를 놓을 터이니 포 소리를 듣거든 일제히 쏘라"고 지시하였다. 이 싸움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수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러나 불행히 전투 도중 부상을 입고 귀대하던 중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정원집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