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난 라돈치치 (문서 편집) ||<-3> {{{+1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ffffff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 ||<-3> {{{#157b3a '''Tim nasional sepak bola Indonesia'''}}}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ufc2007라돈.png|width=100%]]}}} || ||<-2> {{{#157b3a '''이름'''}}} || '''{{{+1 제난 라돈치치}}}[br]Dženan Radončić[br]Џенан Радончић''' || ||<-2> {{{#157b3a '''K리그 등록명'''}}} ||'''라돈치치''' || ||<-2> {{{#157b3a '''출생'''}}} ||[[1983년]] [[8월 2일]] ([age(1983-08-02)]세) /[br][[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구신예 플라브 || ||<-2> {{{#157b3a '''국적'''}}} ||[[몬테네그로]]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width=28]] || ||<-2> {{{#157b3a '''신체'''}}} ||[[키(신체)|키]] 194cm | [[체중]] 89kg || ||<-2> {{{#157b3a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축구)|스트라이커]]'''/ ^^은퇴^^) || ||<|2> {{{#157b3a '''소속''' }}} || {{{#157b3a '''선수''' }}} ||[[수원 kt 소닉붐|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2000~2002) [br] [[FK 루다르 플레블라|FK 루다 프예비야]] (2002~2003) [br] [[FK 파르티잔]] (2003~2004) [br]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8)''' [br]→ {{{-1 [[반포레 고후]] (2007 / 임대)}}} [br] '''[[성남 일화 천마]] (2009~2011)''' [br]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2~2013)[br]→ {{{-1 [[시미즈 에스펄스]] (2013 / 임대)}}}[br][[오미야 아르디자]] (2014)[br][[오이타 트리니타]] (2014)[br][[FK 모르나르]] (2015~2016) || || {{{#157b3a '''감독''' }}}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네시아 대표팀]] (2021~ / ^^코치^^) || [목차] [clearfix] == 소개 == [[몬테네그로]] 출신의 前 [[농구선수]], [[축구선수]]이자 현 축구코치. == 클럽 == === [[인천 유나이티드 FC]] 시절 === [[파일:external/edit.sportalkorea.com/SK004_20080402_210101.jpg]] 한국에 첫 이름을 알리게 된 때는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4년부터이다. 한국에의 편도 비행기를 끊고 대뜸 입국하여 반쯤 연습생 신분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테스트를 요청해 당시 [[장외룡]] 감독에 의해 정식으로 인천에 입단하였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를 쓴 책 "파란 공포의 외룡구단"을 보면 초반에는 감독과의 트러블도 많았다고. 첫 2004년에는 16경기 1골로 부진했으나 라돈치치의 가능성을 본 장외룡 감독이 라돈치치를 다음 해에도 안고 가기로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해서 한국 경력 2년차인 2005년에 27경기 13골 2어시로 대폭발했다. 라돈치치의 활약에 힘입어 인천은 창단 2년만에 준우승을 이뤄내었고, [[왈도|힘세고 강한 공격수]]와 함께하는 인천의 미래는 항상 밝은 것처럼 보였으나....2006년에는 완벽하게 잉여로 변신. 31경기 2골 2어시로 인천의 부진에 큰 역할을 맡았고, 2007년에 영입된 [[데얀 다미아노비치|데얀]]이 대폭발하며 인천의 동유럽커넥션의 정점을 찍는 동안 라돈치치는 16경기 2골로 계속 부진에 빠졌고 데얀과의 공존에도 실패하였다. 결국 J리그의 반포레 고후로 반 시즌 임대되었고, 거기서도 그냥저냥 잉여롭게 살다가 인천으로 임대복귀하게 된다. 데얀이 2008시즌을 앞두고 [[FC 서울]]로 이적하게 되자 인천팬들은 모두 멘붕에 빠졌다. 인천을 홀로 먹여살려주던 데얀은 가고, 게으르다고 악평도 듣고, 몇년간 잉여잉여거리던 라돈치치를 톱으로 세워야 한다고 하니 이번 시즌도 답이 없을 것만 같았으나..... ~~닥치고 라돈치치 머리만 믿는 뻥축구의 빠와로~~ 32경기 14골 2어시스트로 멋지게 부활했다! 라돈이 살아나자 인천은 6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만한 저력을 갖춘 팀으로 다시 살아났고, 2008시즌이 끝나게 되자 [[이동국]]에게 학을 뗀 [[성남 일화]]가 이동국 카드를 버리면서[* 23경기(10교체) 2골 2어시. 한 시즌을 맡긴 국가대표 공격수라고 하기에는 처참한 성적표였다.] 그 대체자로 라돈치치를 낙점, 결국 18억원의 이적료로 인천을 떠나 성남으로 이적하게 된다. === [[성남 일화 천마]] 시절 === 2009년부터 성남에서 뛰게 된 라돈치치는 첫 시즌에는 32경기 5골 2어시로 부진한 활약을 벌여서 성남 팬들 사이에서는 또 까임권을 차근차근 적립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마우리시오 몰리나|몰리나]]와 발이 맞춰지게 된 2010시즌에 31경기 13골 6어시로 또 [[원기옥|라기옥]]이 터졌고, 리그와 아챔을 가리지 않는 활약은 성남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2011년 [[FIFA 클럽 월드컵]] 당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여 전반기를 통으로 날려먹었으나 후반기에 복귀해서 무난하게 10경기 3골 2어시로 잘 활약해주었는데, [[신태용]] 감독의 용병 3년 주기설과 함께[[http://www.inews24.com/view/612822|#]] 시즌 후에 성남에서 라돈치치를 방출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뜬금없이 [[스테비차 리스티치|스테보]]가 버티고 있는 수원에서 영입을 해 버렸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024079_700.jpg]] 2012년 수원이 뜬금없이 3년 계약으로 라돈치치를 잡았다. 그리고 즉시 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서 수원팬들은 '우리 용병 4+1명 쓸 수 있는 것임?' '[[데니스(축구)|데니스]] 때랑은 정반대 상황이구만~ 성남ㅋㅋㅋㅋㅋㅋㅋ' 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에 골넣는 공무원으로 활약한 타겟형 공격수인 [[스테비차 리스티치|스테보]]와 역할이 겹치는 선수이기에 스테보와의 공존 문제가 팬들에게서 많은 걱정거리가 되었다. 2012년 K리그 2라운드 경기는 라돈치치가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인천 유나이티드]]가 상대. 그리고 하필이면 그 경기가 인천의 새 경기장, [[숭의 아레나 파크]] 개장경기였다. 이러한 스토리 덕분에 팬들의 수많은 관심을 받던 라돈치치는 전반에 득점을 성공시키며 인천의 잔치상을 제대로 엎어버렸고, 후반에 PK까지 성공시키며 인천 팬들을 확인사살시키는데 성공했다. 전반기동안 8골 1어시를 성공시키며 팬들로 하여금 [[스테비차 리스티치|스테보]]를 잊게 할 정도의 활약을 하였으나, 6월 20일에 있었던 [[슈퍼매치]] 경기 20초만에 [[김진규(1985)|김진규]]의 살인태클에 우측 무릎 내측 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었고, 결국 3개월 부상을 끊게 되었으나[* 라돈치치의 부상 이후 수원은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드러내며 신나게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를 시전했다.], 예상외로 재활이 잘 되어서 빠르게 복귀하여 남은 시즌동안 4골을 더 넣으며 총 12골 5어시스트로 2012시즌 수원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13년에는 [[서정원]] 감독이 라돈치치 길들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하는 듯. 그때문인지 2013년 전반기엔 벤치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6라운드 [[슈퍼매치]]에서는 동점골을, 14라운드 전북과의 경기에서는 2골을 넣으며 팀의 5:4 승리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골넣고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6/2013062604012.html?news_sports|빡쳤다는게 함정.]]~~ === [[시미즈 에스펄스]] 시절 === 6개월 임대되어 15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 [[오미야 아르디자]] 시절 === 2014년 1월 18일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였다. 이적하자마자 팀 동료가 된 [[조영철]]에게 [[https://twitter.com/hello1538/status/424362793442095104|형 노릇 하려고 했다고 한다(...).]] === FK 모르나르 === 2015년 9월 1일, 자국 몬테네그로 리그 소속팀인 FK 모르나르로 이적했으나 2016년 1월 26일, [[https://www.transfermarkt.com/dzenan-radoncic/transfers/spieler/10294/transfer_id/1424029|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이후 경력이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역에서 은퇴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은퇴 후 == 소리소문 없이 은퇴 후 에이전트를 하고 있다. 김두현과 페이스북에서 자연스럽게 한글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목격됐다.[[https://www.flayus.com/25572389|#]] 그리고 몬테네그로 2부리그의 [[FK 제제로 플라프]]에서 코치생활을 하였다. 2021년 8월, 새로운 근황이 알려졌는데, [[신태용]] 사단에 합류해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확한 직책은 확정된 것이 없지만 사단에 들어간 것은 맞다고 하다 ~~야! [[아스나위 망쿠알람 바하르|아스나위]] 투게더 임마~~ 2021년 9월 6일, 라돈치치가 [[김봉수]], [[신상규]] 코치와 함께 신태용 사단 2기에 합류하는것이 공식화되었다. 자연스럽게 전에 맡고있던 FK 제제로 플라프 수석코치직은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 == 플레이 스타일 == 192cm/92kg의 큰 체격을 주 무기로 삼아 몸빵으로 상대 수비진을 박살내 주는 스타일이지만 타겟형으로 쓰기엔 몸싸움을 좀 싫어해서 헤딩을 꺼리는 게 단점.[* 그런데 2007시즌 인천이나 2012시즌 수원에서 하는 걸 보면 헤딩도 꽤 열심히 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 시절 초기에 박힌 게으른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 왼발을 주 발로 쓰며 킥력 또한 매우 우수하다. 인천 시절에는 헤딩 아니면 왼발에 걸리면 다행이지만 오른발에 걸리면 [[의족]] 수준이었다고 많이 까였으나 가면 갈수록 오른발 킥도 좋아지면서 보다 다양한 옵션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인천 시절에는 그냥 골대 앞에 콕 박혀서 공만 날아오면 받아먹는 보급형 [[사샤 드라쿨리치|샤샤]][* 국적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게 게으르다고 까였다.]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력은 많이 성숙해졌다. 골 욕심이 많고 중앙 공격수 이외의 포지션은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 그래서 수원 이적 후 윤성효 감독은 라돈치치와 스테보의 공존을 위해 4-4-2일때는 라돈치치-스테보 투톱을 쓰거나, 4-3-3일때는 라돈치치 원톱에 스테보를 윙어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멘탈적인 면은 전 인천 주장이었던 [[임중용]]의 [[http://www.sports-g.com/2011/10/29/%ec%9d%80%ed%87%b4-%ec%9e%84%ec%a4%91%ec%9a%a9-%ec%96%b8%ec%a0%9c%eb%82%98-%ec%9d%b8%ec%b2%9c%ea%b3%bc-%ed%88%ac%ea%b2%8c%eb%8d%94%ed%95%a0-%ea%b2%83|말]]에 의하면 라돈치치는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거만해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쓴소리를 많이 했다고. == 여담 == * 부인의 미모가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FIFA 클럽 월드컵]] 3~4위전에서 무릎 십자인대를 다친 후 고향에서 재활을 하다가 만나게 되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파일:/image/260/2011/09/09/%25B6%25F3%25B5%25B7%25C4%25A1%25C4%25A1-8.jpg]] 하지만 어릴 적부터 라돈치치의 옆집에 살던 꼬마였다는 점과 18살이 되자마자 결혼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라돈치치와 10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 가득 담은~~ '도둑놈'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 [[http://blog.daum.net/rewty/8734761|기사 참조]] * 오랜 한국 경험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능숙하다. 통역이 없이도 충분히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그러다보니 축덕들이 말하는 K리그 최고의 꿀보직 중 하나로 '라돈치치 통역'이 거론될 정도. 실제로 라돈치치의 인터뷰 중에 통역에게 농담으로 '가~'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이것때문에 아예 별명이 '김라돈'이다.(…) [youtube(icb2SmgFb2g)] 귀화를 시도할 경우 한국어를 잘 못하는 [[에닝요]]보다 유리한 점이 아마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어 실력 덕에 다음 짤방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오재원|아~ 식빵~]]--아 시발-- [[파일:external/data.shootgoal.com/3905283351.gif]] * 한국 귀화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있던 시기에 J리그로 반 시즌간 임대를 떠나는 바람에 귀화 조건 중 하나인 '연속으로 5년 이상 한국에 머무를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대한축구협회]]의 요청 등이 있을 경우 특별귀화라는 형태로 귀화를 이룰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다만 국제축구연맹에서도 저 5년 이상 연속 거주 요건을 아예 규정으로 박아버린터라 특별귀화로 국적을 취득했다고 해도 저 문제로 인해 국가대표에 승선할 가능성은 없다시피했다.]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수원 팬들은 라돈치치의 한국 귀화를 기원하여 밑의 그림의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또 일본에 임대가서 현역인 상태로 귀화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라돈치치가 한국에 애정이 있기에 은퇴하고도 프로야구 두산의 [[맷 랜들]]처럼 한국에 눌러 살 가능성은 없지 않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20411145207800.jpg]] * 라돈치치의 별명 중 하나인 엉덩치치는 이 사진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상대 수비수가 라돈치치의 하의를 잡아서 파울이 선언되었는데, 라돈치치가 심판에게 '이렇게 벗겨질 정도로 잡았는데 왜 경고를 안 주느냐'고 따지는 장면. 하지만 전후사정을 모른 채 보면 영락없이 섹도시발... [[파일:external/t3.gstatic.com/images?q=tbn:ANd9GcT8_CiPQEg4VP80yR6xg8baaTtwerNc22IYCH2KHlFVBqzCDz2w&filename=imagesCAENU2WD.jpg]] * [[샤다라빠]]의 만화에서는 앞니가 벌어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http://www.goal.com/kr/news/1788/goalcom-%EC%9B%B9%ED%88%B0/2011/11/14/2756154/%EC%9B%B9%ED%88%B0-%EB%8C%80%ED%84%B8-%EB%9D%BC%EB%8F%88%EC%B9%98%EC%B9%98|대털 라돈치치]] * 예전 소속팀을 애교있게 디스하는 경우가 많다. 성남 시절에는 '인천? 야구팀 아니에요?' 드립을 쳐서 인터뷰장을 뒤집어놨고, 수원 시절에는 '성남의 약점은 내가 이적한 것' 이라는 발언과 함께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8698|'성남은 좋은 야구팀' 드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과의 경기에서 경기 후 인천 팬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모습 등을 보면 일종의 유머로 전 소속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전 소속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 명대사(?)로는 '''"허리 아파~"'''. 인천 유나이티드의 2005 시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s-2.1|비상]]에서 나온 대사로, 훈련을 위해 선수들이 골대를 들어 옮기는데 라돈치치는 손가락만 대충 갖다대는 시늉만 했다. 촬영팀이 "라돈은 안 들어요?"하고 물어보자 핑계랍시고 댄 게 저 말. 이를 본 주장 [[임중용]]이 성질이 뻗쳐서 날린 대사인 '''"아 랴돈! 투게더, 똑같이 해 새끼야!"'''도 명대사. * 몬테네그로 2부리그 FK 제제로 플라프에서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는 근황이 포착되었다. 슬림했던 동유럽 미남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살이 붙어 푸근한 아재 인상이 되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신태용 사단에 코치로 합류했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각주] [[분류:1983년 출생]][[분류:몬테네그로의 축구선수]][[분류:공격수]][[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FK 파르티잔/은퇴, 이적]][[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방포레 고후/은퇴, 이적]][[분류:성남 FC/은퇴, 이적]][[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분류:시미즈 S펄스/은퇴, 이적]][[분류:오미야 아르디자/은퇴, 이적]][[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은퇴, 이적]] [include(틀:포크됨2, title=제난 라돈치치, d=2022-07-08 23:55:5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