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동 갑옷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Middle East Armour. 말 그대로 [[중동]] 지방([[중양]])에서 사용한 [[갑옷]]. == 중동 갑옷의 역사 == 중동 지방은 비옥한 평야가 존재하여 [[수메르|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 발생된 곳이었다. 따라서 조직화된 군대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전차]],[[기병]]과 같은 병과도 최초로 등장하였다. [[수메르]]의 도시인 [[우르]](Ur)의 벽화인 우르의 스탠다드(Standard of Ur)에는 가장 오래된 전차와 망토와 투구를 걸친 것으로 추측되는 보병대가 등장하는데, 망토에 묘사된 점들은 방어용 청동판, 혹은 [[두정갑]]처럼 내부 방어재를 고정한 리벳을 묘사한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며, 중동 역사에서 확인 가능한 최초의 갑옷으로 추정할 수 있다. [[파일:attachment/중동갑옷/8f.jpg]] [[우르]]의 스탠다드.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 이르러서는 뾰족한 양식의 청동투구와 청동 찰갑이 확인된다. 아시리아의 부조에서는 가슴을 가리는 원형의 판이 묘사되어 있어 호심경이 이때에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서는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리스식의 [[아마포]] 흉갑을 사용하였으며, 기병 중 일부는 팔과 다리를 가리는 [[스케일 아머]] 방식의 방어구를 착용하였다. == 이슬람의 발흥 == [[이슬람]] 세력이 발흥할 당시인 7세기경 이슬람 세력과 아랍부족들의 무기와 갑옷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북방의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장비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었다. 이때 당시 아랍부족과 이슬람세력의 전투와 무장을 묘사한 문헌들에서는 예외 없이 모두 체인메일을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또 갑옷 무장비율이 매우 적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슬람 세력의 급속한 팽창에 의해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당하고 [[소아시아]] 지방,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이슬람세력은 토착 장비와 무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또 [[투르크]]인들이 [[용병]]이나 전투[[노예]]로써 이슬람 지배자들에게 활발히 고용됨에 따라 이들의 군사 문화가 크게 도입되게 된다. == 몽골의 침략 == [[튀르크]]계 [[이란]] 왕국인 [[호라즘 왕조]]의 침공과 함께 개시된 [[몽골 제국]]의 침공은 중동 세계를 뒤흔들어놓은 대대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란과 아랍, 투르크의 다양한 왕국들이 참담한 패전을 면치 못하는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때 [[몽골인]]들은 트란스옥시아나를 비롯해 이란, 소아시아 지방까지 점령했으며, 놀라운 군사적 승리로 인해 중동 각국에서 즉시 몽골의 병법을 카피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때를 그린 그림에서 몽골군으로 묘사되는 군대는 몽골식의 전형적인 [[러멜러 아머]]와 몽고발형 투구뿐만 아니라 이란식의 터번헬름이나 소아시아의 시샤크(Shishak) 투구, [[러시아]]와 이란 북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커간(Kurgan) 투구에 이르기까지 중동의 다양한 장비들을 망라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몽골 본대는 매우 적었으며, 몽골군으로 불린 대다수의 군대는 점령지에서 징발된 구 현지 [[육군]]들이라는 점과 일맥 상통한다. [[이집트]]의 [[맘루크]]들도 몽골식의 러멜러 아머를 입고 몽골을 모방한 병법을 채용했는데 이는 몽골에게 멸망한 호라즘의 군인이나 귀족들이 노예로 중동에 팔려왔고 이들이 다시 전투노예 맘루크로써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에 배속되어 있어 튀르크인의 정서와 함께 몽골과 직접적으로 교전한 경험에 의해 몽골식의 장비를 앞다투어 채용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때에 비로소 몽골식의 갑옷과 무장이 중동 갑옷의 대세를 이루게 되며, 특히 완전 점령되어 [[일 칸국]]이 세워졌던 [[이란]]과 주변 지역은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몽골식의 러멜러 아머 슈트를 사용하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에도 [[페르시아어]]로 유연한 갑옷은 죠우샨. == 15~17세기 == 다양한 갑옷들이 각축을 벌이던 14세기까지의 경향은 점차 사라지고 이슬람이라는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점진적으로 이슬람세계의 통일된 갑옷 양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전까지 이슬람세계의 갑옷 양식은 튀르크-몽골계에서 유래된 형태와, [[동로마]]에게 영향을 받은 양식이 공존하던 [[찰갑]], 튀르크-몽골과 몽골-이란에서 유래된 [[두정갑]], 이슬람 등장 이전부터 활발히 사용되었던 [[체인메일]], [[스케일 아머]]를 비롯한 다양한 갑옷들이 뒤섞여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15세기부터 점진적으로 [[경번갑]]형식의 갑옷이 기존의 갑옷들을 대체하며 이슬람세계의 주력을 차지하게 된다. 경번갑은 [[튀르크어족|튀르크어]]로 코라진(Korazin), [[페르시아어]]로 여전히 죠우샨(Jawshan)이라고 불렀으며 단순히 갑옷이라는 의미의 베흐테르(Behter)라고 부르기도 했다. == 18~19세기 == 이미 17세기부터 대다수의 중동국가들이 갑옷을 포기하고 19세기에는 서구식의 군사개혁을 앞다투어 시작하고 있었지만 [[이란]]의 [[카자르 왕조]]는 장식적인 용도로 여전히 쿨라 쿠드(Khula Khud)투구를 착용하였다. 당시 갑옷을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장식적인 용도였지 실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갑옷을 착용하지는 않았다. [[인도]]가 가장 독특했는데 갑옷을 19세기 초까지 실전용으로 유지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인도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고 당시의 인도는 남부의 [[마라타 동맹]]과 북부 [[무굴 제국]]의 내전이 가장 중요했으며, 지방 소국가 군주들간의 분쟁도 자주 벌어졌었다. 특이한 점은 이 18세기의 인도는 대포와 [[화승총]][* 인도에서도 당연히 부싯돌식 머스킷이 들어왔으며, 유럽에서는 사장된 스냅펀스 락 방식으로 제조되었고, 유럽의 플린트락 유닛을 수입하거나 노획해서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심각한 습기 속에서 부싯돌이 제대로 발화가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져 인도에서는 속도는 느려도 발화 신뢰성이 좋다고 여겨진 매치락, 즉 화승식을 계속해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기후가 다른 지역은 부싯돌식을 선호했다.]을 사용하는 근대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투창[* 투창의 전쟁 운용은 유럽에서는 14세기쯤 되어서는 거의 찾기 힘든 것이었다.], 도검[* 당시 유럽에서 보병의 도검은 장교나 부사관의 지휘용이었다.], 방패, 활, 철퇴, 코끼리 같은 전근대적인 무기들이 함께 활용되는 기이한 경향을 보였다. 18세기 당시에는 구식에 해당하는 [[경번갑]]인 지르후 바그타르(Zirah Bakhtar)와 함께 신형에 해당하는 챨타 하자르마샤(Chihal'ta hazar masha)가 등장하여 사용되었다. 챨타 하자르마샤는 '천개의 손톱 외투'라는 의미로써 경화시킨 가죽을 벨벳 외투 아래에 고정하고, 안감을 결합하여 복잡한 바느질로 마무리했던 가죽 [[두정갑]]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 여기에 이란식의 [[차하르 아이네]]나 [[Krug 흉갑]]의 양식을 본따 허벅지나 가슴 부분에 철판을 갖다대어 방어력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파일:external/pds22.egloos.com/c0063102_4d31877637742.jpg]] 철판이 붙은 것과 붙지 않은 것을 모두 챨타 하자르마샤로 불렀으며, 화승총에 대응하여 등장한 신형 갑옷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은 물론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었으며, 완전한 구식인 사슬갑옷(Zirih)과 솜누비 갑옷(kubcha)도 많이 사용되었다. 중세 식의 튼튼한 투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으며, 이란식의 쿨라 쿠드(Khula Khud), 쇠사슬로만 이루어진 인도 독자적인 경량 투구인 쿨라 지라흐(Khula Zirah), 그리고 솜누비 패딩 모자나 챨타 하자르마샤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투구 등이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0769a6d5e898362d6936e9cfd2c189fe.jpg|width=400]] 쿨라 지라흐의 모습. 1818년 영국이 인도 전토를 수중에 넣으면서 이러한 전근대적 장비의 사용은 종말을 맞게 된다. [[분류:갑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