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멩거 (문서 편집) [[분류: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분류:1840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 ||||<:> [[파일:Carl_Menger.jpg|width=100%]]|| ||<:>'''풀네임'''|| '''카를 멩거''' (Carl Menger) || ||<:> '''생몰년''' ||<:> 1840년 2월 23일, 노비송치 - 1921년 2월 26일, 빈|| == 개요 == 카를 멩거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창시자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다. == 생애 == 현 폴란드에 위치한 보헤미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법학자 아버지 밑으로 태어났다. 멩거도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 대학, 크라쿠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서 빈 왕실 신문사에서 오스트리아 국무총리의 측근으로 일하게 된다. 이때 경제학에 눈을 뜨게 되어, 몇년 후 빈 대학의 경제학 조교수로 부임한다. 1871년에 경제학 원론을 출판했다. 1883년에 "사회과학 그리고 정치경제의 방법론"을 출판해서 구스타프 슈몰러의 경제 역사학파[* 경제가 역사적인 법칙과 그 시대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학파]와 분쟁이 생긴다. 1890년대부터 화폐론으로 관심을 돌리고, 금본위제 도입을 주장한다. 1903년에 신경쇠약으로 은퇴하고, 1921년에 81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 경제 사상 == 멩거의 한계효용은 수학적 설명이 강했던 [[레옹 발라스]]나 스탠리 제번스에 비해 심리학적 비중이 컸다. [[리카르도]]가 창안한 노동가치론을 반박하고, 재화가 소비자의 욕구, 희소성에 따라 변하는 주관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프로이센에서 강세를 보이던 역사학파의 방법론을 비판했다[* 방법논쟁, 독어로는 "methodenstreit"이라 부른다]. 멩거는 경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멩거는 "교환"이란 개념에 집중했다. 재화의 가격이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아니라 흥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대 한계주의 경제학자인 [[레옹 발라스]]와 의견을 달리했다. == 기타 == [[프랙탈]] 도형의 일종인 [[멩거 스펀지]]를 학계에 처음 제시한 사람인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 [[수학자]]인 카를 멩거(Carl Menger, 1902~1985)가 그의 아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