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비첨 (문서 편집) [include(틀: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UAb5IIBcaLc)] 비첨의 대표적 명반 중 하나인 비제 교향곡 C장조 Sir Thomas Beecham, 2nd Baronet[* 줄여서 Bart.], CH (1879~1961) 영국의 금수저 지휘자. == 상세 == 다국적 제약회사로 유명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의 전신인 비첨필스 사장의 아들이다.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예정이었으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지휘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돈으로 오케스트라를 사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아마추어 출신이나 타고난 음악적 센스, 비범한 해석[* 소박하면서도 여유있는 느낌을 줘서 듣기 편하다는 이유로 찾는 사람들이 있다.]으로 명성 있는 지휘자가 되었다. 학구적인 지휘자는 아니었으나, 감각이 뛰어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그의 지휘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영국인이긴 하지만 [[프레더릭 딜리어스]][* 비첨이 1927년에 처음 녹음을 남겼다.] 이외의 영국 작곡가의 녹음은 많지 않다.[*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말에 의하면 딜리어스를 제외하고 영국의 작곡가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영국음악 보다는 프랑스 음악에 애착이 있어서 그 쪽으로 녹음이 더 많다. 이외에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과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녹음하는 등 래퍼토리의 폭이 넓은 편. 런던의 4대 오케스트라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물려받은 재산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 생애 == 초창기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한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나 악단과 관계가 틀어지자, 비첨은 런던 심포니를 나와서 개인 재산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해서 지휘했다. 그러나 몇년후 역시 런던 필과도 관계가 틀어져서 런던 필에서도 나오게 된다. 때마침 월터 레그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려고 하면서 원로인 비첨에게 조언을 구하자, 비첨은 이 오케스트라를 날로 먹을 생각을 가지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창단에 관여했다. 그러나 월터 레그는 힘들게 창단한 오케스트라를 비첨에게 맡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당시 촉망받던 젊은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허투른 사람이 아니었던 레그는 비첨의 도움을 받았지만 비첨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곧 비첨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창단 작업에서 손을 뗐고 얼마 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하여 운영했다. 비첨의 말년은 행복하진 않았는데 재산을 탕진한 비첨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오토 클렘페러]], [[존 바르비롤리]]와 함께 [[EMI]]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지휘자[* 이후 이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꽤 밀어준 지휘자는 [[사이먼 래틀]]이었다.]였으며 이때문에 상당수의 녹음이 [[GROC]]으로 재발매 되었고 퍼블릭 도메인이 된 이후에도 2015년에 비제 교향곡과 아를의 여인 모음곡이 오리지널 자켓 시리즈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했다. [[분류:영국의 지휘자]][[분류:1879년 출생]][[분류:1961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