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톰 웨이츠 (문서 편집)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 #000)" {{{#fff '''톰 웨이츠 관련 틀 ''' }}}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 {{{+1 '''[[로큰롤 명예의 전당|{{{#ffd700 로큰롤 명예의 전당}}}]] {{{#ffd700 헌액자}}} ''' }}} || ||<-2>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width=100]] || ||<-2><^|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fd700 이름}}}''' || '''{{{#ffd700 톰 웨이츠[br]TOM WAITS}}}''' || || '''{{{#ffd700 헌액 부문}}}''' || '''{{{#ffd700 공연자 (Performers)}}}''' || || '''{{{#ffd700 멤버}}}''' || {{{#ffd700 (개인자격)}}} || || '''{{{#ffd700 입성 연도}}}''' || '''{{{#ffd700 2011년}}}''' || || '''{{{#ffd700 후보자격 연도}}}''' || '''{{{#ffd700 1999년}}}''' || || '''{{{#ffd700 후보선정 연도}}}''' || '''{{{#ffd700 2011년}}}''' ||}}}}}}}}} || [include(틀: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include(틀:어클레임드 뮤직 선정,항목=1980년대 아티스트,순위=14)] ---- }}} || ||<-2> '''{{{+1 톰 웨이츠}}}[br]Tom Waits'''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img.rsrs.co.kr/16490.jpg|width=100%]]}}} || || '''본명''' ||Thomas Alan Waits[br]{{{-1 토머스 앨런 웨이츠}}}|| ||<|2> '''출생''' ||[[1949년]] [[12월 7일]] ([age(1949-12-07)]세)|| ||[[미국]] [[캘리포니아]] [[포모나]]||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신체''' ||180cm|| || '''장르''' ||[[블루스]], [[익스페리멘탈 록]], [[재즈]]|| ||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 '''배우자''' ||캐슬리 브래넌 (1980년 결혼)|| || '''링크''' ||[[http://www.tomwaits.com/|[[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0]]]] [[https://www.instagram.com/tomwaits/|[[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0]]]]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tomwaits, 크기=20)] [[https://www.facebook.com/tomwaits/|[[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0]]]]|| [목차] [clearfix] == 개요 == > '''"톰 웨이츠의 음악을 모른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잃고 사는 것이다."''' > - 영화 감독 [[짐 자머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이다. 캘리포니아 주 포모나 출신. 1973년 앨범 Closing Time으로 데뷔하였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유행한 [[블루스]]나 [[재즈]]를 기초로 한 악곡과 특유의 '''쉰 가성''', 특기인 [[피아노]]에 의한 [[음유시인]]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 이후로는 독창성을 더욱 가미해 ‘루트 음악’에 기인하면서도 전위적인 사운드 때문에 화제몰이를 했다. 배우로서도 활동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짐 자머시]] 등이 감독을 맡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1999년에는 펑크 락으로 유명한 레이블 Epitaph과 계약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뮤지션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글스(밴드)|이글스]], [[로드 스튜어트]], [[브루스 스프링스틴]], [[라몬즈]] 등이 그의 음악을 리메이크하였다. 특히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즈]]와 교류가 깊어서 롤링 스톤즈의 앨범 [[Dirty Work]]의 코러스로도 참여 함은 물론이고 리처즈 또한 웨이츠의 앨범 [[Rain Dogs]]에서 많은 곡의 기타 연주를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어어부밴드]]가 웨이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살짝은 그로테스크한 음악 때문에 국내에선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지만, [[닐 영]], [[폴 매카트니]]같은 거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6년 미국 음악 잡지 페이스트 선정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100인 중 4위'''[* 참고로 1위는 [[밥 딜런]], 2위는 [[닐 영]], 3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선정됐다. 놀라운 것은 5위가 [[폴 매카트니]], 그리고 5위 아래에는 [[키스 리처드]], [[믹 재거]], [[브라이언 윌슨]], [[루 리드]], [[지미 페이지]], [[데이비드 보위]], [[스티비 원더]],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조니 미첼]] 등 2006년 당시에 생존해 있던 이 레전드들을 가벼이 제칠 정도의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증명한다.]로 꼽히기도 했다. == 삶 == 1949년 12월 7일,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태어났다. 무난한 유년기를 보내다가 1959년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두 누이와 어머니와 함께 [[샌디에이고]]로 이주.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이웃집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깁슨]] [[기타]]로 기타 연주도 연습했다. 그리고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나폴레옹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밥 딜런]]의 노래를 밥먹듯이 듣고 히피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잭 케루악과 비트제너레이션 작가들의 작품에 심취하였는데, 이는 이후 그의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역마의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열여덟살 때부터 맘 맞는 친구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애리조나 주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고는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1971년, 근처에 있는 트루버도어라는 유명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프랭크 자파]]의 매니저였던 허브 코언의 눈에 띄어 데뷔를 한다.[* 이 이후로 트루버도어 클럽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레너드 코헨]], [[빌리 조엘]], [[밴 모리슨]], [[건스 앤 로지스]], [[Korn|콘]],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콜드플레이]], [[데미안 라이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과 밴드들이 데뷔 공연 및 신보 쇼케이스 무대로 서기 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핫플레이스이자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엘비스의 [Mystery Train],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비틀즈의 [Rubber Soul], 롤링 스톤즈의 [Satisfaction]이 나오기까지 불과 10년밖에 안 걸렸다고 평가받는 록 음악의 최부흥기였던 70년대 중반기 때 톰 웨이츠 또한 [Small Change]와 [Foreign Affairs]를 릴리즈하며 인지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하지만 허브 코언과의 불평등한 계약[*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계약서에는 모든 곡의 저작권을 코언이 소유하고 있던 레코드사 비자레/스트레이트와 저작권사인 피프티 플로어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웨이츠에게는 자신의 곡과 앨범 판매 수익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일곱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수많은 투어를 해도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물론 웨이츠는 뒤늦게야 불평등한 계약을 깨닫고, 1980년작 앨범은 광고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코언과의 마지막 작업이었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다. 지금까지도 초기 앨범 7장의 음원 수익들을 웨이츠는 한푼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초기작들은 아직도 리마스터가 안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CD가 전부. 그러다가 합의가 되었는지 2018년 3월 23일에 초기작 리마스터가 발매 된다.] 때문에 웨이츠에게 오는 수익이 몇 푼 없었기에 계속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그는 1976년 여름, LA 실버레이크에서 트루버도어 근처에 있는 트로피카나 모텔로 거처를 옮긴다. 트로피카나 모텔로 거처를 옮긴 웨이츠는 시카고의 무명가수였던 리키 리 존스와 만나 많고 탈도 많았던 3년간의 연애를 하지만, 1979년, 존스가 [Rickie Lee Jones]로 그래미 신인상을 받는 등 메이저 가수로서 입지를 한껏 굳힌 반면에 웨이츠는 좋지 않은 투어의 성적과 출연할 수 있던 영화가 무산되는 등 인생 최악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둘은 이별하게 된다. 서른 두 살의 웨이츠는 이별 후 1980년, 허브 코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한다. 80년대가 시작되고 나서, 웨이츠의 음악에는 전위적인 색채가 점점 강해졌고, 이는 커리어 중 최고의 앨범이라고 불리는 [[Swordfishtrombones]]와 [[Rain Dogs]]로 나타났다. 이 두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고, 1986년에는 <프랭크 와일드 이어스>라는 작품으로 연극계에도 데뷔하는 등, 웨이츠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다. 이에 상업적인 성공도 뒤따라오면서 그의 인생에는 드디어 광명이 찾아왔다. 90년대에는 92년작 [[Bone Machine]]이 그래미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음악상을 수상[* 이 때 보인 반응이 아스트랄한데, "웬 얼터너티브냐"면서 팔짝 뛰었다.], 영화 <[[다운 바이 로]]>, <커피와 담배>, <[[숏 컷]]>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써의 커리어도 탄탄히 쌓는다. 2001년에는 ASCAP 팝뮤직상에서 공로상을 수상, 2011년에는 역사적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엄청난 다작을 하던 사람이 2006년작 이후로부터는 뜸해지더니, 2011년작 [Bad As Me]로 또 한번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다. == 디스코그래피 == * Closing Time (1973) * The Heart of Saturday Night (1974) * Nighthawks at the Diner (1975) * Small Change (1976) * Foreign Affairs (1977) * Blue Valentine (1978) * Heartattack and Vine (1980) * [[Swordfishtrombones]] (1983) * [[Rain Dogs]] (1985) * Franks Wild Years (1987) * [[Bone Machine]] (1992) * The Black Rider (1993) * Mule Variations (1999) * Blood Money (2002) * Alice (2002) * Real Gone (2004) * Orphans: Brawlers, Bawlers & Bastards (2006) * Bad as Me (2011) == 여담 == * 2001년 영화 [[라스트 캐슬]] 제작 당시 [[제리 골드스미스]]와 함께 음악을 맡았다. * 누가 [[기인]] 아니랄까 봐, 어머니가 만삭 상태로 산부인과로 가던 중 진통이 너무 심해서 택시 뒷좌석에서 자신을 낳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산부인과 기록을 열람한 어느 팬에 의해 구라로 판명. * 웨이츠는 자신이 목소리 하나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다. 그런데 한번은 어린 아이가 팬레터에 그의 목소리를 '''폭죽'''과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 표현이 맘에 들었는지 당장에 "바로 그거야! 내 노래 들어 줘서 고마워."라고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사실 초창기만 해도 꽤 부드러운 편이었지만, 중후기 아방가르드 경향이 강해지면서 거친 목소리로 확 바뀌었다. * [[히스 레저]]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조커]]의 캐릭터를 톰 웨이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레퍼런스 삼아서 발전시켰다는 [[카더라]]가 있다. 근데 영화계에서도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 우연인지 그는 [[히스 레저]]가 생전 마지막으로 나왔던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악마 "미스터 닉(Mr. Nick)"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youtube(gCSc6E4yG9s)] 백문이 불여일견. * [[스칼렛 요한슨]]은 톰 웨이츠의 열정적인 팬으로 유명한데, 그녀의 가수로써의 데뷔 앨범 [Anywhere I Lay My Head] 은 톰 웨이츠 트리뷰트 앨범이며, 전곡이 웨이츠의 커버 곡이다. * 한국에서는 [[박찬욱]]과 이무영이 톰 웨이츠 팬으로 유명하다. 박찬욱은 아예 웨이츠 찬양글을 하나 썼을 정도며, [[박쥐(영화)|박쥐]] 영어 제목도 Black Wings라고 지을려고 했다. * [[리바이스]], [[도리토스]]로 유명한 제과회사 프리토레이, [[아우디]], [[오펠]] 등 기업들의 광고에서 그의 목소리를 무단으로 도용한 것들에 대해 전부 소송을 걸어 [[인실좆]]을 거나하게 맥인 적이 있다. 자신의 초기 앨범들에 대한 [[저작권]] 행세를 전혀 할 수 없었던 것이 그가 저작권법에 민감한 이유가 됐다. * [[애처가]]로 유명한데, 부인이자 음악적 파트너인 캐서린 브레넌과는 연말 파티에서 단 한 번 보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원 프롬 더 하트>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눈이 맞아 연애한 지 4개월 만인 1980년 8월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허가증, 주례, 결혼사진, 꽃까지 포함한 예식비용이 단돈 49달러에 24시간 서비스였던 '''원스톱 결혼 서비스'''를 통해 한 결혼이라 매우매우 조촐한 결혼식이었다고... 부인 만나기 전엔 포크 가수인 리키 리 존스하고 사귀었으나 헤어졌다. * 애가 생기고 난 뒤, 학부모 면담을 하러 갔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를 못 알아보고 되레 노동자들이 그를 알아봤다고 한다. * 톰 웨이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가 술과 담배이지만, 1980년작인 Heartattack and Vine을 작업할 때에 담배를 끊었고 90년대 초부터는 술도 끊었다 한다. * 2021년에 영화 [[리코리쉬 피자]]에 출연하기도 했다. * 톰 웨이츠에 대한 참고문헌으로는 아래 도서가 국내본으로는 유일하다. 이 책에 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이 담겨 있다. * 신주현 지음, <톰 웨이츠- 고독을 탐닉한 목소리>, 살림, 2011[[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25850|#]] * Tom waits - grapefruit moon 번역[[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ostrockgallery&no=200334&search_head=110&page=2|#]] [[분류:미국 남가수]][[분류:미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1949년 출생]][[분류:포모나 출신 인물]][[분류:1973년 데뷔]][[분류:미국 남배우]][[분류:노르웨이계 미국인]][[분류:영국계 미국인]][[분류:스코틀랜드계 미국인]][[분류:아일랜드계 미국인]][[분류:독일계 미국인]][[분류:스위스계 미국인]][[분류:웨일스계 미국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