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문점 총격사건 (문서 편집) [[분류:김일성 시대]] [[분류:제5공화국/사건사고]] [[분류:레이건 행정부]] [[분류:체르넨코 시대]] [[분류:1984년/사건사고]][[분류:파주시의 사건사고]][[분류:공동경비구역/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대한민국의 대외 전쟁ㆍ전투)] [include(틀:북한의 대외전쟁)] ||<-4> {{{#fff {{{+1 '''판문점 총격사건''' }}}[br]Soviet Defector incident[br]Инцидент с пробегом Василия Матузка}}} || || '''{{{#fff 날짜}}}''' ||<-3>[[1984년]] [[11월 23일]]|| || '''{{{#fff 장소}}}''' ||<-3>[[공동경비구역|판문점 공동경비구역]]|| || '''{{{#fff 원인}}}''' ||<-3>한 소련인의 월남 시도|| ||<-4> '''{{{#fff 교전국}}}''' || ||<-2><^|1>[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2><^|1>[include(틀:국기, 국명=북한)] || ||<-4> '''{{{#fff 병력}}}''' || ||<-2><^|1>[[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6]] [[한국군]] [[파일:JSA Insignia.png|width=26]] [[JSA 경비대대]] [[5분대기조]] 35명 [[파일:유엔군사령부 휘장.svg|width=26]] [[유엔군사령부]] ||<-2><^|1>[[파일:북한 국기.svg|width=26]] [[북한군]] 17명 || ||<-4> '''{{{#fff 피해 규모}}}''' || ||<-2><^|1>[[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6]] [[한국군]] 1명 {{{#red 전사}}} [[파일:미국 국기.svg|width=26]] [[미군]] 1명 {{{#orange 부상}}} ||<-2><^|1>[[파일:북한 국기.svg|width=26]] [[북한군]] 3명 {{{#red 전사}}} 5명 {{{#orange 부상}}} || ||<-4> '''{{{#fff 결과}}}''' || ||<-4> 소련인 망명 성공 || [목차] [clearfix] == 개요 == [[1984년]] [[11월 23일]] [[공동경비구역|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소련]]의 관광 유학생인 '''바실리 마투조크'''(Василий Яковлевич Матузок / Vasily Yakovlevich Matuzok[* 누군가 실수로 잘못써서 'Matusak'라고 나온 적이 있다.])가 갑작스럽게 군사분계선을 넘고 월남을 시도하자 [[북한군]]과 [[한국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사건. == 전개 == 1984년 11월 23일 11시 30분경 당시 [[소련]]의 유학생인 바실리 마투조크가 갑자기 월남을 시도하자 [[북한군]]은 월남을 제지하기 위해 총격을 하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침입했다. 이에 [[한국군]]은 망명인을 대피시키고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갑작스러운 총격전에 합류한 [[미군]]과 [[5분대기조]]가 출동했다. 이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의 주범인 박철 중위도 총격전 현장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로 보이지 않아 미군에게 사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박철 중위는 미군 장교 2명을 죽인 경험이 있어 그동안 분노를 품고있던 미군이 박철 중위에게 집중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미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군들은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무에 몸을 숨겨 한국군과 교전을 벌였다. 20여 분간 총격전이 계속됐고 [[5분대기조]]까지 출동한 상황에서 총격전이 심화되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장교가 급히 '''사격 중지! 사격 중지!'''를 외치며 총격전이 잠시 멈추자 북한군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습해 돌아가겠다며 교전 중단을 청했고 유엔 측이 받아들이자 북한군들은 사상자들을 끌고 다시 돌아갔다. == 결과 == '''바실리 마투조크'''는 미국으로의 망명이 결정되면서 성공했다는 생각에 안도하였지만, 이후에 그는 자신의 망명으로 인해 한국군 1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한다고 했다. [[https://youtu.be/UDin3H_x7bM|총격사건 이후 판문점]] 총격전 과정에서 북한군은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우리군 장명기 일병이 언덕에서 엄호 사격 도중 북한군 초소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전사했다. 또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미군 중 한명인 버고인 일병(Michael A. Burgoyne)이 부상을 입었다. [[https://youtu.be/yBV4H2QMvXM|퍼플하트를 수여받는 버고인 일병]] 북한군의 전사자 3명 중에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원흉 중 하나인 박철[* 본명은 홍성문.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후 처벌 대신 오히려 공화국 영웅으로 추서되었다. 이후에도 판문점에서 복무하며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총격사건에서 전사한 것이다.][[인과응보|이 포함된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