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기아 (문서 편집) [[분류:아나톨리아의 역사]][[분류:튀르키예의 지리]] [[분류:인도유럽계 민족]][include(틀:다른 뜻1, other1=선법, rd1=선법, anchor1=프리기아)] [include(틀:아나톨리아 고대 지명)] [include(틀:아나톨리아의 역사/고대)] [include(틀:튀르키예 관련 문서)] * [[영어]]: Phrygia * [[고대 그리스어]]: Φρυγία * [[튀르키예어]]: Frigya [목차] == 개요 == [[파일:터키 아나톨리아.jpg]] 기원전 1200년 ~ 기원전 700년 [[아나톨리아]] 중서부(현 [[튀르키예]])에 위치했던 왕국. 멸망 이후 프리기아라는 명칭은 행정구역명으로 간혹 등장하다가 기원전 2세기에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프리기아인들은 5세기에 [[그리스인]]에게 동화되었다. 지리적인 명칭으로는 [[중세]] 후기까지 사용되었다. 수도는 고르디온이었다. 사카리아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와의 동맹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그리스군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는 아나톨리아 중서부를 평정하고 [[아시리아]], [[우라르투]]와 경쟁하였다. 그러다 기원전 700년 경 킴메르족에게 침공 받고 [[리디아]]에게 종속 된 후, 리디아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게 정복된다. 후에 프리기아인은 기독교화가 진행되어 그리스어를 도입하여 [[동로마 제국]]에 동화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몬타누스파]]도 프리기아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주류 교파들에게 이단시 당했지만 프리기아에서는 나름 강성했다.[* 교황 [[엘레우테리오]]와 논쟁을 펼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교파도 프리기아인들이 소멸함으로서 이 교파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며 그리고 미다스의 손 이야기로 유명한 [[미다스]]가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프리기아어도 인도유럽어족 계통 언어였지만, 인접한 [[히타이트]] 등지의 언어보다는 좀더 먼 그리스 지역의 [[그리스어]]에 가까웠다. [[노예제]]를 했으나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이 잦았으며[* 사실 이는 프리기아만의 특징이 아닌, [[노예제]]가 실시된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노예]]도 엄연히 사람인지라 주인이 의식주를 해결해주어야했으므로 그 경제적 부담이 장난이 아니었던데다, 아무래도 사람이 같은 사람을 부려먹고 착취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좋아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주인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이면 자포자기로 노예들을 해방시키기도 했고, 은퇴 후에 노후를 준비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명예와 도덕성을 입증하고자 자신을 따라 고생한 노예들에게 일정량의 재산을 나눠주고 자유를 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프리기아보다 훨씬 이후에 세워진 [[미국]]에서도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유언을 통해 자기 소유의 노예들을 몽땅 해방시킨 사례가 있다.], 노예를 해방시킬 때 특정 디자인의 모자를 씌워서 해방시켰다. 이 모자를 [[프리기아 캡]]이라 한다. 게임 [[토탈워 트로이]]에서 [[트로이]] 주변의 민족으로 등장한다. 일부는 트로이와 적대하거나 동맹을 맺기도 한다. 트로이 측이건 아카이아 측이건 포섭해서 아군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든든하다. [[토탈워 파라오]]에서는 [[히타이트]] 주변의 민족으로 역시 일부는 적대하거나 히타이트군에 고용되기도 한다. 히타이트가 멸망해가는 시점인 만큼 [[바다 민족]]의 침공에 편승해서 대부분 적대적으로 공격해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