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핀란드 전쟁책임 재판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41년]]에 [[핀란드]]가 [[소련]] 및 [[영국]]과 전쟁을 하게 만들거나 평화를 저해한 데 영향을 끼친 것이 명백한” 죄를 저지른 전시 지도자들을 심판한다는 명목으로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된 재판. == 상세 == 간단히 말해 [[계속전쟁]]에 대한 [[전범재판]]이다. 구체적인 전범 행위에 대한 심판이 있었다기보다는 계속전쟁 수행 기간 중 국가 지도부였던 [[핀란드 대통령|대통령]], [[핀란드 총리|총리]], [[장관]]들을 모조리 끌고 나왔다. 당연히 이 재판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여론은 매우 나빴는데 [[핀란드]]와 [[소련]]의 전쟁은 [[겨울전쟁]]으로 소련이 [[선빵]]을 친 것이었는데 소련은 승전국이 되어 거기에 대한 심판은 불가능해지고 핀란드의 복수전이었던 계속전쟁만 단죄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공연히 [[피고인]]들을 영웅이라고 불렀고 [[1947년]] [[1947년 파리 조약|파리 강화조약]] 체결로 [[연합국]] 점령군이 핀란드를 떠나자 당시 대통령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는 투옥되었던 피고들을 모두 [[석방]]시키고 [[1949년]]에는 모두 [[복권(법률)|복권]]시켰다. 다만 이에 대해 소련도 할 말이 있는 것이 분명히 핀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이었으며 [[독소전쟁]] 당시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들과 같이 소련에 대항했고 비밀경찰 '발포(Valpo)'를 통해 탄압을 가했으며 점령한 동 카렐리야 지역에서 [[러시아인]]과 [[유대인]]들을 수감시키고 [[게슈타포]]와 협력해서 이들을 살해하거나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등의 행위들도 전쟁 중 핀란드 정부의 묵인과 동조 하에 이뤄진 행위들이었다. == 피고 목록 및 양형 == || '''이름''' || '''직위''' || '''당적''' || '''양형''' || || [[리스토 뤼티]] || 제5대 공화국 대통령 || [[국민진보당]] || 징역 10년 || || [[요한 빌헬름 랑겔]] || 제15대 총리 || 국민진보당 || 징역 6년 || || [[에드빈 링코미에스]] || 제16대 총리 || [[국민연합당]] || 징역 5년 6개월 || || [[배이뇌 탄네르]] || 조달장관; 재무장관; 무역장관 || [[핀란드 사회민주당|사회민주당]] || 징역 5년 6개월 || || [[토이보 미카엘 키비매키]] || 주 독일 핀란드 대사 || 국민연합당 || 징역 5년 || || [[헨리크 람사위]] || 제19대 외무장관 || [[핀란드 스웨덴인당|스웨덴인당]] || 징역 2년 6개월 || || [[안티 쿠코넨]] || 교육장관 || [[핀란드 중앙당|농민당]] || 징역 2년 || || [[튀코 레이니카]] || 재무차관 || 농민당 || 징역 2년 || [[핀란드군]] 수장이었던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만네르헤임]] [[남작]]은 전쟁 중 어디에도 자기 이름을 서명하지 않아 [[전범]] 취급을 면했다. 대신 만네르헤임 대신 서명했던 뤼티 대통령이 전범재판에 끌려갔다. 뤼티는 파시키비에 의해 조기석방되었지만 옥중에서 얻은 [[위암]]이 악화되어 [[1956년]] 사망했다. [[분류:1945년/사건사고]][[분류:1946년/사건사고]][[분류:핀란드의 역사]][[분류:전범재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