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립 트루시에 (문서 편집) [include(틀: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대표팀 감독)]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D439B 0%, #1A2842 20%, #1A2842 80%, #1D439B)" '''필립 트루시에의 역임 직책'''}}} || || {{{#!folding ▼ ---- ||<-4> '''둘러보기 틀 모음''' || ||<-4> '''대표팀 감독''' || || [[틀: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D896; font-size: 0.9em" [[틀: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0c684e '''코트디부아르'''}}}]]}}}[br]{{{-2 15대}}} || [[틀: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58C655; font-size: 0.9em" [[틀: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ffffff,#191919 '''나이지리아'''}}}]]}}}[br]{{{-2 26대}}} || [[틀: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1963A; font-size: 0.9em" [[틀: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ffc525 '''남아프리카 공화국'''}}}]]}}}[br]{{{-2 7대}}} || [[틀: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263164; font-size: 0.9em" [[틀: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ffffff '''일본'''}}}]]}}}[br]{{{-2 27대}}} || || [[틀: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1971-2006).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800000; font-size: 0.9em" [[틀: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ffffff '''카타르'''}}}]]}}}[br]{{{-2 35대}}} || [[틀: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DEAF5B; font-size: 0.9em" [[틀: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2c5c46 '''모로코'''}}}]]}}}[br]{{{-2 28대}}} ||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s-5|[[파일: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B50017; font-size: 0.9em"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s-5|{{{#ffffff '''베트남'''}}}]]}}}[br]{{{-2 21대}}} || || ||<-4> '''클럽 감독''' || || [[틀: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감독(41대~80대)|[[파일: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a1df; font-size: 0.9em;" [[틀: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감독(41대~80대)|{{{#bea064 '''마르세유'''}}}]]}}}[br]{{{-2 79대}}} || || ||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white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 ||<-3> '''Đi tuyn bóng đá quc gia Vit Nam'''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FC_Philippe Troussier.jpg|width=100%]]}}} || ||<-2> '''이름''' || {{{+1 '''필립 트루시에'''}}}[br]'''Philippe Troussier''' || ||<-2> '''본명''' ||필리프 오마르 트루시에[br]Philippe Omar Troussier || ||<|2><-2> '''출생''' ||[[1955년]] [[3월 21일]] ([age(1955-03-21)]세) || ||[[일드프랑스|일드프랑스지방]] [[파리(프랑스)|파리시]] || ||<-2>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 ||<-2> '''신체''' ||183cm || ||<-2>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축구)|수비수]][* [[센터백]]] / ^^은퇴^^)[br][[축구 감독]][br][[축구 행정가]] || ||<|3> '''소속''' || '''선수''' ||[[AS 앙굴렘]] (1976~1977)[br][[레드 스타 93]] (1977~1978)[br][[FC 루앙]] (1978~1981)[br][[스타드 드 랭스]] (1981~1983) || || '''감독''' ||[[INF 비시]] (1983~1984)[br][[CS 알랑송]] (1984~1987)[br][[레드 스타 93]] (1987~1989)[br][[US 크레테유-뤼시타노]] (1989)[br][[ASEC 미모사]] (1989~1992)[br][[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 대표팀]] (1993)[br][[카이저 치프스 FC]] (1994)[br][[CS 라바트]] (1994~1995)[br][[FUS 라바트]] (1995~1997)[br][[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대표팀]] (1997)[br][[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부르키나파소 대표팀]] (1997~1998)[br][[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남아공 대표팀]] (1998)[br]'''[[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대표팀]] (1998~2002)'''[br][[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카타르 대표팀]] (2003~2004)[br][[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4~2005)[br][[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모로코 대표팀]] (2005)[br][[FC 류큐]] (2008~2010)[br][[선전 FC]] (2011~2013)[br][[CS 스팍시앙]] (2014)[br][[항저우 뤼청]] (2014~2015)[br][[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 U-19 대표팀]] (2019~2021)[br][[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 대표팀]] (2023~ )[br][[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 U-23 대표팀]] (2023~ ) || || '''행정''' ||PVF 아카데미 (2018~2019 / ^^기술위원장^^) || ||<-2> '''국가대표''' ||없음 || ||<^|1><-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종교''' ||[[무종교]] → [[이슬람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0027235|기사]].] || }}}}}}}}}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감독|감독]], [[축구 행정가|행정가]]. [[2023년]]부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주요 커리어로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번째 황금기를 이끈 감독으로 '백인 주술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외의 감독직에선 경력을 길게 채우지 못한채 아시아 등지를 전전하던 [[저니맨]] 감독. == 선수 경력 == 1976년 AS 앙굴렘에 입단, 프로무대에 데뷔하여 1976-1977 시즌을 뛰었다. 이후 레드스타 93 이라는 팀에 이적해 짧은 시간동안 있었다. 그러고 난 뒤 1981년까지 [[FC 루앙]]에서 활동했고,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은 [[스타드 드 랭스]]에서 마무리했다. 이렇게 선수 시절은 여느 명감독들이 그랬듯이 별로였다. == 지도자 경력 == === 초창기 ===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로 전향한 그는 [[INF 비시]]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당시 4부리그였던 [[CS 알랑송]]으로 옮겨서 아마추어 팀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감각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수 시절에 뛰었던 레드 스타 93으로 가서 1989년까지 감독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 아프리카 === 1989년,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클럽인 [[ASEC 미모사]]에서 아프리카팀을 처음 지도하게 되었다. 1992년까지 3년간 재직하는 동안 ASEC 미모사를 3년 연속 코트디부아르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93년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1994 FIFA 월드컵 미국|94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남아공 축구 클럽인 [[카이저 치프스 FC]]로 옮겼다. 카이저 치프스 FC에서의 짧은 재임 기간을 뒤로한 채 [[모로코]]의 축구 클럽인 CS 라바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FUS 라바트도 지도하면서 모로코 컵 우승을 일구냈고, 모로코에서 1997년까지 보내게 된다. 1997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4경기를 이끌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연맹은 그가 '월드 클래스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경질했다. 사실 트루시에는 재임 내내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과 여러모로 잡음이 많았다. 다음으로 그가 간 곳은 [[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부르키나파소]]였다.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결승에서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이집트]]에 0:2로 지고 [[3위 결정전]]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콩고민주공화국]]에도 지며 4위를 했다. 그래도 이 업적에 힘입어 당시 랭킹이 106위에 불과했던 부르키나파소는 대회 이후 75위로 대폭 올랐다. 대회 후 그는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 있었던 처녀 출전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남아공 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본선에서는 개최국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에 0:3으로 깨지고,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와는 1:1,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와는 페널티킥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2:2로 [[무재배]]를 기록하였고, 최종 결과는 2무 1패로 광탈. 이후 사임했다. === 일본 대표팀 === 1998년, [[오카다 다케시]]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처음에 일본은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 경력이 있는 [[아르센 벵거]]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벵거는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트루시에를 추천해준 것. [[http://naver.me/5UhUPoOA|#]] 계약 기간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이며,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지도하게 되었다. [[파일:트루시에.jpg|width=400]] U-20에서는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2000 시드니 올림픽]]의 [[2000 시드니 올림픽/축구(남자)|남자축구]]에 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슬로바키아]]를 연속으로 이기고 마지막에 [[브라질]]한테 패하면서 2승 1패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에서는 [[미국]]과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8강 6위)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도 위기에 봉착했던 적이 있었는데, 2000년 봄, 운명의 [[한일전]]에서 패배한 이유로 경질 여론이 돌기 시작한 것. 사실 일본 특유의 색깔에 유럽의 철학을 입히는 과정에서 [[일본축구협회]]와의 갈등도 있었는데, 한일전 패배를 기점으로 이것이 폭발한 것이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75331|#]] 일본은 아르센 벵거 선임으로 리턴하며 물밑작업까지 진행하는 등 분위기는 험악해졌으나, 기술위의 재신임 결정으로 가까스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불신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성인 대표팀에서는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우승,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컵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대회이며, 일본은 2000아시안컵 우승국 자격과 2002 [[FIFA 월드컵]] 개최국 자격으로 진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도 개최국이므로 마찬가지로 진출했으나, 한국은 당시 [[거스 히딩크]]가 갓 부임한 시점이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첫 상대였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에 0:5로 깨진 것이 화근이 되어서 승점 6점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밀리는 바람에 조 3위 대회 5위로 아쉽게 4강 진출 실패라는 성적으로 조기에 대회를 마쳤다.]에서 브라질과 0:0 무승부로 승점 1점 획득한 것을 포함하여 브라질을 제치고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다. 8강 B조에 속해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캐나다]]를 3:0으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을 2:0으로 연속으로 깨며 일찌감치 4강을 확정지었고, 최종전 상대 브라질에게[* 어차피 일본은 4강 확정 상태였고, 브라질도 일본한테 패하지만 않는 이상 4강은 확정이었으나 브라질은 FIFA A매치 대회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팀에 무승부로 승점을 헌납하였다. 근데 이 때의 브라질 대표팀은 말이 브라질이지 2002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부터 부진했는데, 이게 컨페드컵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약체 캐나다와도 비기고 [[3위 결정전]]에서는 호주에게도 패하는 등 [[동네북]] 노릇을 제대로 했었다. 만일 일본이 이름값에 쫄아서 조심스런 경기만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2002월드컵에서 전력이 부활하여 7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무승부 승점 1점을 얻어 조 1위로 가볍게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를 [[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깨고 결승에 갔으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에 0:1로 패해서 준우승했다. 그러나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상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는 호평을 들으며 기분 좋게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일본의 이 '''준우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FIFA 대회 A대표 대회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이때 한국의 히딩크는 오대영감독 이라는 불명예스런 칭호를 달고있었으며 경질까지 논의되는 상황이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개국 본선에서는 자동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H조|H조]] 첫번째 자리에 속해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러시아]],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튀니지]]와 한 조를 이루었다. 러시아와 튀니지는 말할 것도 없는 약체들이고, 그나마 벨기에가 좀 경계 대상이긴 했지만, 벨기에도 당시 [[세대교체#s-1|세대교체]] 실패 탓에 전력이 강한 축엔 못 들었다. 동구의 강호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와 우승후보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이라는 유럽의 두 강호들에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이라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까지 있는 조가 구성되어버린 한국과는 대조되었던 부분이었다. 첫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는 [[마르크 빌모츠]]에게 오버헤드킥으로 선취골을 얻어맞고 2:2로 간신히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일본에게 [[FIFA 월드컵]] 첫 [[승점]]을 선사해 주었다. 2차전인 러시아전에서는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 다만 이 골은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기에 빛이 바랜 부분도 없지 않다. '''지금처럼 공격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시에만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도록 한 것은 2005년에 개정된 룰이 적용되면서부터'''이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3554_Gallery.jpg]] 당시에만 해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H조|32강 H조]] 일본 대 러시아 경기에서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은 논란이 되었다. '''[[https://m.youtube.com/watch?v=ebzXz-dHlos|다른 일본 선수가 명백히 오프사이드에 있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 했다]]'''. 2002 월드컵 당시에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선수가 있다면 공을 받지 않더라도 짤없이 오프사이드였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더불어서 안 그래도 반일감정이 극심한 나라인 러시아는 이 사태 이후로 더 [[일본]]을 [[증오]]하게 되었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4418_Gallery.jpg]] 특히 한국은 3위 결정전이었던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터키전|터키전]]에서 [[안정환]]이 득점을 하였으나, [[이천수]]가 하필 오프사이드라인에 있어서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버린 통에 득점 인정을 못 받았다.]로 1:0으로 이겨 일본 역사상 본선 첫 승리를 따냈다. 마지막 튀니지전에서는 [[모리시마 히로아키]]의 선제골과 [[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2:0 승리를 해서 무패에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상대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C조|C조]] 2위를 차지한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튀르키예]]였는데[* 이는 일본으로써는 대단한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C조 1위가 브라질이었는데, 만약 브라질과 맞붙었더라면 일본은 속된 말로 개발리고도 남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한 조가 되었는데, 선제골을 넣고 4골을 내리먹혀 1:4로 역전패했다. 그래서 일본은 브라질을 피하고 터키와 싸우게 된 것을 [[호재#s-1|호재]]로 생각했지만, 터키는 무려 대회 3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일본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 [[미야기 스타디움|미야기]]에서 열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6강#s-2.7|16강전]]에서 전반 12분 위미트 다발라의 헤딩골을 허용하며 [[터키]]에 0:1로 패했고, 그렇게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순위 월드컵 9위로 마감했다. 경기 후 트루시에는 대표팀 자리에서 사임하면서 트루시에 재팬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말 그대로 당시 대한민국에 [[히딩크]]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트루시에가 있었던 셈인데, 일본의 2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16강 진출(9위)을 달성한 점은 한국과 같은 입장이다. 그렇지만 히딩크가 지금도 한국을 간간히 방문하면서 변함없이 한국을 향한 애정을 멈추지 않고 있고, 또한 한국인들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여전히 히딩크를 마치 신처럼 떠받들고 찬양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트루시에에 대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 있고, 트루시에 본인도 일본에 대하여 훈훈한 감정은 딱히 없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트루시에 역시 일본의 첫 16강이자 월드컵 9위를 기록한 만큼 처음엔 나름 명장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이 [[히딩크호|같은 날 저녁에 16강에서 이탈리아를 깨고 준준결승전(8강)에 오르더니 나흘 뒤에는 스페인까지 격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자, 그 때부터 갑자기 일본 내 여론이 180도 돌변한 것이었다. 어제까지 명장이었던 트루시에가 히딩크로 인해 오늘 갑자기 희대의 졸장으로 전락해버렸고, 일본인들은 '''"한국은 우리보다 늦게 감독을 선임했고 대진도 우리보다 더 어려웠는데도 4강까지 올라갔는데 트루시에 넌 고작(?) 16강에서 떨어지니?"'''라면서 트루시에를 향해 온갖 질타를 보냈다. 당시 일본의 전력을 볼 때 16강 진출(9위)도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는데, 라이벌 한국이 더 높은 고지에 오른 것에 대한 열등감이 트루시에를 향해 폭발한 것이다.[* 트루시에 역시 [[AFC 아시안컵]] 우승과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거둘 만큼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질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위상을 가진 [[FIFA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분명 감독 선임 기간이 늦었던 한국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낸 것은 사실.] 즉, 히딩크는 4강 신화를 계기로 본인의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고 현재도 변함없이 한국에 애정을 보이고 있는 것에 [[한국인]]들도 히딩크를 존경하고 있지만, 트루시에는 일본의 첫 승점, 첫 승, 첫 토너먼트 진출에 16강전 탈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인 16강 9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후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8년뒤]] 또 [[카타르 월드컵|12년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모두 패해 같은 기록인 9위를 기록한다.] [[일본인]]들의 대접이 저러니 일본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 카타르 대표팀 === 2003년 7월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2004 중국 아시안컵]]에서 16개국 본선 A조에 속해 약체 중에서도 최약체인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네시아]]에 1:2로 패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경기 결과 하나로 인하여 바로 해임되었다. 이후 팀은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바레인]]을 상대로 1:1 무재배, 홈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중국]]에 0:1로 져서 대회 14위로 8강 실패가 확정되었다. 사실 카타르에서는 그동안 [[영 좋지 않다|영 좋지 않은]] 모습만 많이 보였었다. === 거듭되는 실패 === 카타르에서의 대실패 이후 그는 2004년 11월 프랑스로 돌아가 당시 1부리그에 있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적 부진에 [[비셴테 리사라수]]와의 불화로 인해 이듬해 6월에 해임되어 야인으로 보내는동안 각종 대표팀과의 링크를 한몸에 받게 된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음에도 개인적인 부상을 이유로 결렬되었으나, 사실상 다른 팀을 맡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그 팀은 반갑게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인데,[* 당시 [[조 본프레레]] 경질 직후 공석상태.] 전성기를 보냈던 아시아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는지 강한 관심을 표했으나, 반대로 한국측에서 최근까지 일본 감독이었던, 커리어도 히딩크보다 한두수 아래인 트루시에를 데려오는 것에 어려움을 표시하고, 히딩크 이후 이어온 더치 커넥션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딕 아드보카트]]의 선임으로 한국행은 무산되었다.[[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9&aid=0000022028|#]] 그리고 머지않아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직장을 구했으나, 마찬가지로 악명높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고질병인 해당국 축협과의 불화로 인해 불과 2개월만에 경질되었다.[* 중둥,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은 유럽과의 근접성 등으로 인한 잦은 교류등으로 선수의 수준,전술의 수준은 꽤 높다고 평가 받으며, 유럽과 비행거리가 길지 않고, 중동국가 출신들이 유럽에 하도 많아 네트워크도 많은 편이라 유럽권 감독들에게는 제법 선호된다, 하지만 정말 사우디, uae등 부국들이 아니면 후진국 국가들의 열악한 재정 등으로 인해 훈련환경 등이 매우 열악하며, 감독에게 전술의 자유를 주지 않고 선수 선발등에도 관여하는 등 후진국의 단점이 극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후진국의 낮은 행정능력으로 선수들이 비자등의 문제로 출전을 못하게 되거나, 급여 등의 체불되는 것 등은 덤. 동아시아의 경우 거리와 문화 차이 등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행정수준, 양호한 훈련환경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 다시 아시아로 ===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08년 [[FC 류큐]]의 감독으로 부임해 6년만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2010년까지 팀을 지휘하다가 2013년까지 [[선전 FC]]의 감독을 하게 되었다. 2014년 [[튀니지]] 리그인 스팍시엔에 잠깐 있었으나 그해 12월 2일에 [[항저우 뤼청]]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2015년 7월 1일에 사퇴했다. 2012년 [[신태용]] 감독이 사임한 [[성남 FC]] 감독으로도 하마평에 오른적도 있었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212120100069090005704&servicedate=20121211|#]] 그리고 2010년 모처럼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던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접촉했던 사실도 보도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던 모양.[[http://www.koreatimes.com/article/566448|#]] 2019년 9월, 베트남 U-18 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http://naver.me/FCG4DYyW|#]] 베트남 성인 대표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태국전을 앞두고는 일본 축구에 대한 이해가 밝다는 점을 활용해 태국 [[니시노 아키라]]의 전술을 분석해 [[박항서]] 감독을 도와주었다고 한다.[[http://naver.me/555iAE3q|#]] 2023년 1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계약 종료 이후, 수많은 후보들 중 차기 감독에 선임될 확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점쳐졌다. 베트남에서 유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장기간 활동한 덕에 현지 축구 사정에 이미 익숙하다는 점이 확실한 강점이다. 이미 내정까지 완료했지만, 박항서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오피셜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베트남 대표팀 === [[2023년]] [[2월 16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https://www.news1.kr/articles/4956043|기사{{{-2 (뉴스1)}}}]] [[https://www.xportsnews.com/article/1689288|기사{{{-2 (엑스포츠)}}}]] 계약기간은 [[2026년]] [[7월]]까지로, [[2026 FIFA 월드컵]] 48개국 본선에 진출까지 염두에 둔 계약이다. 동남아시안 게임 4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게 그것도 1명이 퇴장한 상태에서도 밀려 2:3으로 역전패당하며 3회 연속 대회 금메달을 날려먹었다. 박항서가 인도네시아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지라 좀 까였다.[* 다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신태용]]이 들어와서 예전보다 강해진 탓도 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박항서 시기인 2020~2022년에도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 축구가 약해진 탓도 있다. 이때 [[신태용]]이 6월 A매치와 아시안 게임 및 아시안컵을 준비하느라 인드라 샤프리가 대신 지휘 중이었다. 이전에 박항서를 많이 봤던(그리고 많이 털렸던) 샤프리는 경기 끝나고 나서 '베트남 축구가 갑자기 약해졌다'고 인터뷰까지 했다.] 카타르 도하 컵에서도 1승 5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냈다. 아직도 영점이 잘 잡히지 않는 분위기다. 2023년 A매치에서 6월부터 9월까지 홍콩,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연달아 잡아내며 기분 좋게 이어가나 싶었지만, 9월부터 한 수 위인 중국, 우즈벡에 연속으로 0:2로 패한 이후 10월 17일 한국과의 친선경기에서는 역습을 위해 어중간하게 라인을 올리려다가 카운터를 얻어맞고 무려 0:6 참패를 당했다. 물론 베트남의 체급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6:0으로 이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찬스를 놓칠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면서 호통을 치면서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는데 정작 트루시에 본인은 6:0으로 압살당하고 있으면서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것마냥 팔짱끼고 벤치에 앉아서 지시도 없이 느긋한 모습을 보여 더 욕을 먹었다.] 부진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자 베트남인들의 트루시에에 대한 여론은 점점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전임자 [[박항서]]가 그립다는 여론도 베트남 현지에서 꽤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럴 만한 것이 박항서의 경우 단기간에 팀의 조직력을 잡기 위해 과감하게 3백 포메이션으로 전향하는 등 당시의 선수 퀄리티에 맞추면서 조직력을 극대화한 모습을 꽤 많이 보여줬고 축구 외적으로도 식단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트루시에의 경우 전체적인 베트남 대표팀의 스텝업을 원함과 동시에 전술적으로도 압박과 역습 등을 강조하며 그 시기와는 대표팀을 이끄는 방향도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다가 그러한 과정에서 대한민국전의 6:0 참패 등 시행착오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 실제로도 트루시에가 베트남 대표팀에게 입히는 색의 방향은 주도적으로 축구를 하면서 압박과 역습을 강조하는 등 2002년 그 시기부터 정립되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꽤나 많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본인이 23년 전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2000아시안컵]] 우승과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2001 FIFA컨페드컵]][*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컵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대회] 준우승, 2002월드컵 16강(9위)을 기록시킨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14일 치러진 일본과의 아시안컵 24강 조 1차전에서는 대표팀 주전 선수가 무려 9명이나 부상으로 낙마해서 U-23 대표팀 선수를 대거 대표팀으로 차출하는 등의 악재 속에서도 선제골을 먹히긴 했지만 이후 2골을 득점하며 '''2:1로 잠시나마 일본을 상대로 앞서가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압도적인 체급 차이로 인해 결국 4:2로 무릎을 꿇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시아 최강급의 전력을 가진 일본을 상대로 선전했고, 준비한 세트피스 전술로 일본의 수비를 흔들려는 시도를 한 것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는 성과를 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겼어야 할 2차전인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하여 조 4위 대회 22위가 되며 결국 베트남은 24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베트남은 그동안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는 탈락한적이 있었으나,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24자리로 확대 된 이후 처음으로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마지막 남은 이라크와의 3차전은 2:3으로 패하며 3전 전패로 대회를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세 경기 모두 무기력한 패배는 아니었고, 조 양강 이라크와 일본에게 각각 2골씩 뺏어낸 점 등 긍정적으로 볼 요소도 있었긴 하다. 허나 '''FIFA랭킹이 52위나 낮은[* 50위면 한국과 중국과의 차이 정도이다.]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패배한것으로 인하여 24강 조별리그에서 탈락'''(22등)해버렸기에 박항서와 비교당하며[* 박항서는 직전 2019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8강(8위)까지 진출시키며 우승후보 일본을 상대로도 0:1로 분전하는 성과를 낳았던 바 있었다.] 베트남의 높아진 눈을 만족시키질 못하는 분위기다.[[https://sports.news.nate.com/view/20240120n05108|#]] 단 대진운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운것이 아시안컵의 24강 조별리그 통과 후 16강에 올라가는 널널한 규정이기 때문에 베트남의 경우 인도네시아를 이겼으면 올라가는것이 확정이었고, 비기기만 했어도 올라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지만 결국 인도네시아에게도 패하여 대회 22위로 16강에 실패했다.[* 실제로 베트남을 잡은 인도네시아는 그 외 경기들을 패했음에도 24강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그런것을 상술하였듯이 FIFA랭킹이 50위정도 차이나는 인도네시아와 패배함으로서 진출에 실패하였으니 베트남 현지인이 분노하는것이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 축구행정가 경력 == 2018년 8월부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 대표팀]]의 유소년 트레이닝센터인 'PVF 아카데미'의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에서 잔뼈가 굵은 장본인으로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중국 대표팀]]의 현실에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44884|#1]][[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44907|#2]] == 기록 == === 대회 기록 === * [[ASEC 미모사]] (1989~1992) * 코트디부아르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0, 1991, 1992 * [[FUS 라바트]] (1995~1997) * 쿠페 두 트론: 1995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1998~2002) * [[AFC 아시안컵]]: 2000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2001 === 개인 수상 === * AFC 올해의 감독: 2000 *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2020 == 둘러보기 == [include(틀: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감독)] [include(틀: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감독)] [include(틀: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 [[분류:1955년 출생]][[분류:프랑스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프랑스의 축구감독]][[분류:축구 행정가]][[분류:FC 루앙/은퇴, 이적]][[분류:스타드 드 랭스/은퇴, 이적]][[분류: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US 크레테유/역대 감독]][[분류:ASEC 미모사/역대 감독]][[분류:카이저 치프스 FC/역대 감독]][[분류:FUS 라바트/역대 감독]][[분류: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역대 감독]][[분류:FC 류큐/역대 감독]][[분류:선전 FC/역대 감독]][[분류:클뢰브 스포르티브 스팍시앙/역대 감독]][[분류:저장 FC/역대 감독]][[분류: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감독]][[분류: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감독]][[분류: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참가 감독]][[분류: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감독]][[분류: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감독]][[분류:AFC 아시안컵 우승 감독]][[분류: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분류:이탈리아계 프랑스인]][[분류:개명한 인물]][[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1976년 데뷔]][[분류:1983년 은퇴]][[분류:센터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