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론 (문서 편집) ||<#191970> '''{{{#white 관등}}}''' ||||<:> '''대나마(大奈麻)''' || ||<:><#191970> '''{{{#white 직위}}}''' ||||<:> '''금산(金山) 당주(幢主)''' || ||<:><#191970> '''{{{#white 이름}}}''' ||||<:> 해론(奚論) || ||<:><#191970> '''{{{#white 아버지}}}''' ||||<:> [[찬덕]] || ||<:><#191970> '''{{{#white 사망지}}}''' ||||<:> 가잠성(椵岑城)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618 || [목차] == 개요 == [[삼국시대]] [[신라]]의 장수. 신라 상대 사회의 계율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를 실천한 인물이다. == 생애 == [[서라벌]]의 모량부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찬덕]]은 [[백제]]와의 국경지대 근처인 가잠성[*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의 죽주산성설, [[충청북도]] [[괴산군]]설 등이 있다.]에서 [[백제]] [[무왕(백제)|무왕]]의 대군을 맞아 시체를 뜯고 오줌을 받아 마시는 지옥 같은 [[공성전]] 끝에 장렬히 전사했고 임전무퇴의 본보기가 되어 아들 해론은 그 공으로 20여 세에 대나마라는 높은 관등[* 지금 계급으로는 대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신라는 장수들이 용맹하게 전쟁에서 싸울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공을 세운 인물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남은 가족은 큰 보상과 명예를 받을 수 있었는데 비슷하게 큰 보상을 받은 인물로 [[소나#s-6|소나]], [[야이차]] 등이 있다.] == [[가잠성 전투]]와 죽음 == 아버지가 죽은 지 6년이 지난 618년, [[진평왕]]은 해론과 [[한산주]] 도독 변품(邊品) 두 사람에게 군대를 맡겨 가잠성을 쳐서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해론에게는 아버지의 [[복수]]를 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백제는 다시 신라군을 능가하는 군세로 가잠성을 공격했고, 교전이 시작되자 해론은 주변의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예전에 내 아버지께서 여기서 숨을 거두셨는데, 나도 지금 여기서 백제인과 싸우게 되었으니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 >---- >[[삼국사기]] 해론 열전 해론은 칼을 쥐고 적진으로 달려가 여럿을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진평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아버지 [[찬덕]] 때도 그랬듯 남은 가족들을 매우 두텁게 돌보아 주었다. 당시 사람들이 애도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해론을 위한 노래를 지어 조문했다. 기록에는 없으나, 아마도 그 위의 관등이자 6두품 이상만 받을 수 있는 [[급찬]](현대 계급 소령)이 추증되었을 것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삼국사기)] [각주] [[분류:618년 사망]][[분류:신라의 인물]][[분류:전쟁 사망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