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족 (문서 편집) [include(틀:몽골계 민족)] || '''사서에 등장하는 해족'''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주서)] [include(틀:수서)] [include(틀:북사)]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include(틀:신오대사)] }}} || ||[[파일:attachment/2013-11-16_14;55;57.jpg]]|| ||6세기 무렵의 지도. [[거란|Khitans]]위에 "Tatabi"가 보인다.|| [목차] == 소개 == 해(奚)는 '''고막해'''(庫莫奚)라고도 한다. [[랴오허]](요하)와 라오허(노합하) 일대에서 동호계 [[거란]] 등과 잡거한 종족들로 [[동호]]가 그 원류라고 하며, 선비 [[우문부]] 또는 [[흉노]]의 일파라고 한다.[* 거란족이 원래 해족의 일원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돌궐 제2제국이 남긴 퀼테긴 비문의 '''타타비'''(tataby)를 해족으로 추정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 (특히 [[북위]])에 시라무렌 강(약락수) 남쪽과 라오허 유역에 거주했다. [[유목]]을 했고, 융단 장막에서 머물며 수레를 가지고 군영을 만든 뒤 500명을 두어 지켰다고 한다. [[거란]]과 자주 충돌했고 [[당나라]] 고조 이연 때 중국과 교류했다. 당시는 거란보다 해족이 더 강성했다. == 기록 == 648년에 해족의 추장 가도자(可度者)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하니 '''요락도독부'''를 설치했다고 한다. [[무주(당나라)|무주]]의 [[측천무후]] 치세때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돌궐]] 제2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712년 당나라 장수 손검이 12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해족을 습격했지만 당군이 패배했다. 715년에 당나라에서 다시 '''요락주'''를 설치하여 해족을 간접 지배했다. 788년 동호계 [[실위]]와 함께 당나라의 변방을 습격했으나 군사 60,000명이 격퇴당했다. 830년과 847년에는 해족이 대대적으로 당나라를 침공했으나 대패를 당하고 오히려 털렸다. 9세기 중엽 이후 [[거란족]]에 통합당했으나, 추장 거제(去諸)가 일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했다. 이로써 '''동해'''(東奚 : 친거란파)와 '''서해'''(西奚 : 친당파) 두 개로 나뉘었다. [[요나라]] 시기 거란의 부속 민족이 되어 '''해왕부'''를 세워 자치를 했다. 요나라 말기 생여진의 [[금나라]]가 흥기하여 거란의 통치체제가 흔들리자 1123년 해왕 회리보[* 回離保, 거란명은 소간(蕭幹)]가 '''[[대해국]]'''(大奚國) 신성황제(神聖皇帝)를 자칭했으나 1년 만에 부하들한테 피살되고 멸망했으며, 이후 해족은 금나라 치하에서 동화되어 소멸되었다. == 여담 ==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해금]]은 오랑캐 중 해족이 좋아하는 악기이다. 현도(絃鼗)에서 나온 것으로 모양도 같다." 고 했다. 해금은 나중에 한반도의 [[고려]]로 전해졌는데 이후 토착화가 잘 되었는지 당악기가 아니라 향악기로 분류되었다. [[요나라]] 말기~[[금나라]] 초기의 격변으로 해족들이 발해 유민들과 함께 고려로 도피한 기록이 존재한다. == 해족이 건국한 국가 == * [[대해국]] [[분류:선비족]][[분류:9세기 멸망]][[분류:사라진 민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