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대(大) 몰트케, rd1=헬무트 폰 몰트케)]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 '''{{{#fff 독일 제국군 육군 상급대장[br]{{{+1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br]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 }}}'''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9940-004-5F9FBFF1.jpg|width=100%]]}}} || ||<#666> {{{#FFF 이름}}} ||<(>'''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br]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몰트케'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 ||<#666> {{{#FFF 출생}}} ||<(>[[1848년]] [[5월 25일]][br][[프로이센 왕국]] || ||<#666> {{{#FFF 사망}}} ||<(>[[1916년]] [[6월 18일]][br][[독일 제국]] || ||<#666> {{{#FFF 복무}}} ||<(> [[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width=25]] [[독일 제국군]] || ||<#666> {{{#FFF 최종 계급}}} ||<(>[[파일:KHeer_OF9_GenOberst_(Bayern)_1918.gif|width=35px]] 상급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br][[제1차 세계 대전]] || ||<#666> {{{#FFF 주요 서훈}}} ||<(>[[붉은 독수리 훈장|붉은 독수리 대십자상]] || [목차] [clearfix] == 소개 == 일명 소(小) 몰트케. 그의 숙부인 [[헬무트 폰 몰트케]]와 구분하기 위하여, 이 사람은 소 몰트케, 그의 숙부를 대(大) 몰트케라고 흔히 칭한다. --호부견자? 호숙견질-- 1차 대전이 시작될 당시에 독일군을 지휘했지만, [[마른 전투]]를 비롯한 초기의 주요 전투에 실패하였다. 그의 실책으로 독일은 속전속결로 승리할 기회를 놓쳤고, 이후 전쟁은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4년간의 장기 소모전, 교착상태를 지속했다. == 생애 == === 초기 ===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는 프로이센 왕국에서 1848년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 [[헬무트 폰 몰트케]]의 이름을 따라 헬무트라는 이름을 받았다. 1868년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여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하였다.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1875년부터 1878년까지 장군참모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로이센 전쟁 대학에 입학하였고, 1880년에 졸업하였다. 1882년,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 [[헬무트 폰 몰트케]]의 부관이 되었다. 1902년 중장 진급과 함께 병참감이 되었다. 빌헬름 2세의 이 임명은 큰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1906년 [[빌헬름 2세]]에 의해 [[알프레트 폰 슐리펜]] 백작의 후임으로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초기까지 그 직위를 지켰다. 몰트케는 군단급 부대에서 참모 보직을 맡은 적이 없었기에 그의 임명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슐리펜]]의 비망록에 남아있던 [[슐리펜 계획|작전 계획]]을 실제로 실행한 당사자이고, 그가 수정한 슐리펜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인하여 흔히 비판받는다. 다만 그 전에 슐리펜 계획도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본질적으로 허점이 많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소 몰트케는 그 이전부터 슐리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폭 수정시켜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슐리펜 계획의 우익과 좌익의 병력 비율은 7:1이었는데, 그것을 6:2로 변경하였고, 1, 2군을 각각 18개에서 13개 군단으로 축소하였다... 게다가 러시아의 총동원이 의외로 빠르자 [[동부전선]]에도 우익에서 5개 군단을 빼내 우익을 더 축소시킴은 물론, 후방에 있던 6개의 예비병력을 좌익 지원 위치로 이동시키면서, 슐리펜 계획에서 포위의 핵심인 우익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무리수를 저질렀다.[* 융커들이 자신들의 심장인 동프로이센을 지키겠다고 프랑스 전선에서의 좌우익 균형을 깨버린 결과가 바로 1차대전의 단기 결전을 무산시키고 참호전 양상으로 변화시킨 마른 전투다.] 이렇게 악화된 조건에도 불구하고 40일이라는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강대국]]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을 굴복시키고, 동시에 동부에서 러시아까지 항복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몰트케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는데,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저지당하고, 이로 인해 [[빌헬름 2세]]의 신임까지도 잃게 되자 그는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황제는 몰트케를 해임한 후 [[에리히 폰 팔켄하인]] 보병대장을 후임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1916년 사망하여 1차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한 이후, 소 몰트케는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에게 러시아에 대한 총동원령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월권을 했다. === [[제1차 세계 대전]] ===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 제국군]]이 지나친 낙관주의로 일관했기 때문이지만, 그의 슐리펜 계획 수정도 전쟁 수행에 악영향을 끼쳤다.[* 총력전 양상으로 확대된 국민전쟁의 특징을 간과하고, 대 몰트케의 중심타격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 받아들인 결과다. 이러한 문제는 보불전쟁 때도 있었지만 당시의 대승리에 도취되어 이를 간과했다.] 결국 이는 프랑스를 빨리 정복하지 못해 마른전투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독일의 양면전과 참호전을 초래하였다. == 기타 == 인터넷에서 몰트케란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1) 장발에 수염없는 깔끔한 장군과 2) 대머리에 콧수염 달린 장군이 동시에 나와서 헷갈리기 쉬운데, 본 항목에 나오는 소(小) 몰트케는 후자의 인물이다. 그런데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이 2000년대 초 제작한 8부작 전쟁사 다큐멘터리 <전쟁과 문명>(War and Civilization)의 6부에서도[* 영국의 원로 전쟁사학자 [[존 키건]]도 출연했다.] 대 몰트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소몰트케의 사진을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KAWR1F8ZdeQ|링크된 영상의 34~35분 정도에 나온다.]]] 은근히 헷갈리기 쉬운 듯. --[[소 윌리엄 피트]]와 [[대 윌리엄 피트]]와 달리 상대적으로 안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분류:독일 제국의 군인]]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몰트케 가문]] [[분류:1848년 출생]] [[분류:1916년 사망]][[분류:독일의 귀족]][[분류:로스토크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