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880년대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brooklyn_bridge_cc_img.jpg]] [[브루클린 대교]], 1883년 5월 [[조선]]은 1881년 [[청나라]]에 영신사, [[일본 제국]]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는 등 초기 개화에 힘썼으나, 이내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듬해인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흥선 대원군]]의 재집권 하였으나, 그 해 [[명성황후]]의 환궁으로 조선은 청의 강력한 구속을 받게 된다. 이에 개화파들에 의해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으나,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80년대 내내 조선은 역사상 유래 없이 청나라에게 사실상 반[[식민지]] 수준의 강한 간섭을 받았다. 그러나 개화가 중단 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홍장]]의 권유로 [[미국]], [[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등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이 때문에 1885년에는 [[거문도 점령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연대 들어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 해 7월 미 해군부에서 발행한 해양국가의 깃발들이라는 서적에 실려있다.[* 기존에 1882년 9월 일본으로 가던 박영효가 최초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자료이다.] 1883년 [[고종(대한제국)|고종]] 집권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조선]]의 국기가 탄생[*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 하었고 이듬해에는 우정국이 신설되어서 한국의 우편업무가 시작되었다. [[브루클린 대교]]가 1883년 5월 24일에 건설 완료됐다. 전근대 조선의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으로 신식 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지석영]]의 [[천연두]] 우두법이 1885년 국내 접종을 시작했다. [[일본 제국]]은 1885년 [[일본국 내각총리대신|내각총리대신]]직을 신설하여 초대 총리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했으며,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을 만들었다. [[남미]]에서는 1880년 [[볼리비아]], [[페루]]와 [[칠레]]간의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이 일어났다. [[빈센트 반 고흐]]가 최후의 전성기를 보인 시대이며, [[자판기]]가 등장한 시대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1883년에 대월국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1885년에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등 열강의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